독후감 문유석의 <쾌락 독서>
저자가 현직 부장판사란다. 1977년부터 판사로 일했다. 글이야 누구나 쓸 수 있지만 현직 판사의 글은 흔하지 않다. 책도 여러 권 냈다. 정말 제목처럼 ‘쾌락’일까 하는 기대와 의문 속에 읽기 시작했다.
책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읽는 것이고 읽으면서 저자가 나와 같은 점이 무엇이고 또 다른 점을 찾아서 읽다보면 책이 책을 부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책 읽는 사람들은 읽을 책이 더 늘어나고 책에서 벗어나기 어려워진다. 그렇다고 무조건 안 읽겠다는 것은 너무 무료해지고 시간이 아까워서 견딜 수가 없다.
판사는 참 많이도 책을 읽었다. 어떻게 그렇게 많은 책을 읽었느냐는 질문에 좋아하는 책을 골라서 읽었고 좋으니 멈출 수가 없었다. 지루한 책은 건너뛰며 읽거나 주저 없이 중단했다. 책을 천 권을 읽어야 한 권 쓸 수 있다는데 아마도 훨씬 많은 책을 읽었음에 틀림없다.
책은 세 부분으로 나뉘었다.
1장 개인주의 성향의 뿌리
2장 편식 독서, 누구 마음대로 ‘필독’이니
3장 계속 읽어보겠습니다.
1장
자신의 어린 시절 글 읽던 이야기이다. 물론 그때에는 뚜렷한 독서의 방향이나 이론이랄까 그런 것이 있지도 않았다. 좋아하는 분야의 글을 읽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친구 집에 가보니 책이 많은 것이 엄청 부러웠고 한없이 책을 읽었고 많이도 빌려다보기도 했다. 그러면서 차츰 자기 취향의 글이 무엇인지 생기게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래 제목보다는 우선 읽고 보는 것이다. 무릇 많은 사람이 사랑이 무엇인가 연구하기 위해 사람을 사귀기보다는 사람이 좋아서 만나다보니 사랑을 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전체적으로 보면 이 책은 상상력을 발휘하는 시나 소설과는 달리 직접 겪은 일을 쓴 것이어서 독자가 직접 동감할 수 있는 재미가 있다. 혼자 방구석에서 읽기 시작하여 도서관으로 가서 무한정 책을 읽기고 하고 독서토론회에 가입하여 자기가 읽은 책을 이야기하며 다른 회원이 읽은 책에 대한 이야기도 들으며 생각을 넓혀가기도 하였다.
2장
‘고 3때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가 소설책을 읽으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공부가 아니라 쉬면서 읽는 영화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를 소설화한 책은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킥킥대면서 읽었나보다. 누군가가 어깨를 툭 치면서 애기 좀 하게 나오란다. 굳은 그의 표정에 살짝 긴장한 채 따라 나갔다. 그는 나의 고교 선배였고 재수중이다. 대학에 가기위해 죽어라 공부했지만 낙방, 재수중이다. 그런데, 내가 소설책을 잔뜩 쌓아놓고 킬킬대고 읽고 있는 꼴을 보니 눈이 뒤집히더란다.’
그래서 ‘소설책을 반납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무엇이 잘못 되었나 생각했다. ‘(…) 늘 누구에게도 폐 안 끼치고 살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존재 자체가 누군가에게 폐가 될 수도 있는 거였다.’ 그렇게 누구나 자신을 돌아보고 조금씩 성장해 나가는 것이기도 하다.
3장에서는 마지막 부분에 있는 <여행과 책, 그리고 인생1>과 <여행과 책, 그리고 인생2>가 마음에 많이 와 닿았다.
<인생 1>
저자가 다섯 살과 일곱 살 두 딸을 데리고 로마로 여행을 갔다. 아내에게 큰 소리쳐가며 로마로 가서 신나게 성지를 둘러보는데 ‘큰애의 한마디 “아빠, 무너진 돌무더기를 왜 자꾸 봐야 해?” 돌아보니 두 아이 모두 두 볼이 빨갛게 익고 머리는 산발이었다.’
‘(…) 그제야 깨달았다. 여행은 숙제가 아니다.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지내는 것이 중요하지 무슨 거창한 목표 완수가 여행의 목적이 아니다. 아마 인생도 그럴 것이다. 위약금을 물며 미리 예약한 숙소를 다 취소했다.’
<인생 2>
‘강도, 살인, 강간, 이런 강력범죄를 재판하는 형사합의부 재판장으로 일하던 해가 있었다. 매일같이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어디까지 잔혹해질 수 있는지 보아야 하는 나날이었다. 법관도 사람이다. 이런 나날이 계속되면 내면에서 무언가가 조금씩 부서져가는 느낌이 든다. 어린이의 사체를 부검한 사진을 보다가 내 안에서 팽팽하게 겨우 버티고 있던 현 하나가 끊어지는 걸 느꼈다.’
그래서 뭔가 해답을 얻기를 기대하며 인도로 간다. 류시화의 책과 많은 인도 여행자의 책이 그에게 인도에 대한 큰 환상을 주었다. 그곳에 가면 무엇인가 영적이고 세속을 초월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그가 맞닥뜨린 ‘인도는 상상을 넘는 커다란 차이, 혼돈을 보았다. 인도는 치열한 생존경쟁과 세속적 욕망, 오감을 마비시키는 강렬한 감각의 공세였다.’
소, 원숭이, ‘돼지 떼가 몰려와 먹이를 찾아 쑥대밭이고, 찻길에는 소, 말, 염소, 낙타에 이어 코끼리까지 짐을 지고 지나갔다.’ (…) ‘내가 도착한 곳은 영적인 공간은커녕 온갖 감각과 욕망의 끝. 쥐스킨트의 향수의 세계였던 것이다.’
‘그렇다고 현실에 엄존하는 거대한 부조리와 불평등에 눈을 감고 내면의 평화와 영적인 세계에서 행복의 원천을 찾는 시도는 여전히 올바른 답이 아닌 것 같았다. 가난 속에서도 행복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이 갖고 있는 힘이다. 그렇다고 그것이 구조적인 가난을 정당화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마지막 새끼를 기르기 위한 어미 혹등고래의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가까스로 비명이 멈췄고 물결도 잔잔해졌다. 갑판 바로 옆까지 다가온 혹등고래는 눈을 들어 우리를 바라봤다. 고래의 눈을 무표정한 물고기의 눈과 달랐다. 새끼를 위해 지구 반 바퀴를 헤엄쳐온 포유류의 눈은 따뜻했다. 물론 이 시선에 뭔가 의미를 부여하고 위로받고자 하는 것 또한 인간의 어리석음이다. 그래도 우리에겐 그런 어리석음이라도 있기에 견뎌낼 수 있는지 모른다. 쉽게 보답이 주어지지 않은 삶을.
31편의 짧은 이야기가 어쩌면 하나하나 긴 이야기의 단축 형 같다. 실생활에서 느끼는 순간의 이야기가 내가 그토록 바랐던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언제나 그리던 이상향(理想鄕)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