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화사는 1950년에 서만혜 스님과 하종례 보살이 창건했다. 용화사 사적기에 의하면 세혜만 스님과 하종례 보살이 한날한시에 같은 꿈을 꾸었는데, 꿈속에서 미륵보상에 의하여, “야산에 내가 있으니 모셔다 절을 창건하라”는 마정수기를 받았다. 두 사람은 감격하여 미륵의 세상인 용화회상을 생각하고 미륵도량으로 용화사를 창건했다고 한다.
초대 주지인 서만혜 스님은 대웅전과 꿈속에 나타나신 미륵불을 모신 미륵전과 요사를 창건하여 사격을 갖추었다. 그 뒤를 계속해서 고대근·김철봉·이종남 주지로 이어오면서 사찰의 면모를 갖추어 나갔다.
1982년에는 정법운 스님이 대웅전을 고쳐서 늘려짓고 종각을 새로 지어 범종을 조성했다. 또한 부처님 진신사리를 스리랑카에서 모셔와 오층석탑을 세웠다. 그리고 또한 부처님 진신사리를 스리랑카에서 모셔와 오층석탑을 세웠다. 그리고 부처님의 지혜로 암흑의 세계를 비춘다는 2기의 석등과, 인류의 평화와 남북통일을 기원하는 평화통일 기원비를 세웠다. 이어서 용화사의 창건주 서만혜 스님과 하종례 보살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공덕비를 세웠다.
용화사 안내석
용화사 입구
용화사 공덕비외
용화사 범종각
용화사 석불좌상
용화사 요사채
용화사 오층석탑
종각 왼쪽에는 석가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오층석탑이 있다. 규모는 높이 700㎝, 기단이 세로 각 250㎝며, 1987년에 법운 스님이 세웠다.
탑의 기단부에는 8부신중이 조각되어 있으며, 1층 부분에는 동서남북으로 사천왕상이 조각되어 있다. 탑에 모셔진 부처님 진신사리는 서경보 스님을 통해 스리랑카에서 모셔온 사리 1과이다.
용화사 요사채
용화사 전경
용화사 대웅전
용화사 대웅전 벽화
용화사 대웅전
용화사 미륵전
용화사 미륵불상
문화재자료 제83호
미륵전에 본존으로 안치되어 있는 불상으로서 무릎 이하 아fot부분이 땅 속에 묻혀있어 전체높이는 알 수 없지만 현 높이는 약 185㎝ 정도이다. 불상은 두툼한 돌을 이용하여 뒷부분은 원형 그대로 다듬지 않고 두었으며 앞부분은 조각을 기하였지만 전체적으로 평면적인 느낌을 준다. 그러나 측면에서 보면 상당한 중량감이 느껴지는 불상이다. 머리에는 지붕돌 모양의 커다란 보관(寶冠)을 쓰고 있는데 윗부분을 구슬 모양으로 처리하였다. 정수리에 있는 상투 모양의 육계는 분명치 않지만 그 부분이 높게 솟아 보관을 받고 있다. 전체적으로 길쭉한 얼굴에 유난히 큰 귀가 눈에 띄며 얼굴은 마모가 심하여 잘 알아볼 수는 없다. 하지만 눈 부분은 움푹 들어가게 하여 상대적으로 눈동자가 튀어나와 보이며, 약간 벌어진 입은 아주 작으면서도 해학적으로 표현되었다. 가슴 부근에는 두 손을 두드러지게 표현하기 위하여 팔 안 부분을 의도적으로 갈아낸 흔적이 있으나 후대에 보수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현재 불신은 허리 아fot부분에서 두 동강이가 나 시멘트로 붙여놓은 상태이지만 그 아래로 무릎과 발 부분이 더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체적으로 얼굴이 크고 신체표현이 빈약한 거불(巨佛)의 전통을 따르고 있다. 하부가 매몰되어 알 수는 없지만 괴체적인 신체표현과 생략 화된 세부표현, 지붕돌 모양의 보관 등에서 고려시대 이후 거불의 전통을 계승한 조선후기의 석불로 생각된다. 친근감이 있고 해학적인 독특한 석불의 표현과 민간신앙이나 무속신앙과 불교신앙과의 습합(習合)을 이루어 가는 단면을 살필 수 있는 자료로 평가된다.
용화사 찾아가는 길
서해안고속도로 영광톨게이트로 나와서 영광IC삼거리에서 23번국도 고창방면으로 우회전하여 3.5km정도 주행하면 춘산 교차로에 도착하게 된다. 춘산 교차로에서 대산, 용화사방면으로 좌회전하여 200m정도 주행하면 시등 사거리에 도착하게 된다. 이곳에서 해룡· 용화사방면으로 좌회전하여1.5km정도 주행하면 대산초등학교에 도착하며 이곳을 지나 1km정도 주행하면 연동마을 정류소, 용화사 이정표가 설치되어 있다. 연동마을 정류소에서 용화사방면으로 좌회전하여 좁은 도로로 200m정도 들어가 우측으로 300m정도 길을 따라 내려가면 용화사에 도착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