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여래현상품’ ③ - 여래와 비유:해주스님의 화엄경 법석
흘러가는 냇물소리도 산색의 변화도 모두가 부처님 설법
모든 사물 다 비유로 사용…비유가 법 드러내기에 ‘비유=법’
부처님 정각보리심은 가없는 공덕의 바다, 법신은 허공 비유
만법 보는 게 부처님 보는 것, 부처님 보는 게 자기 보는 것
부처님은 법성이 무애함을 요달해 아시는 분이어서 ‘여래’이며, 여실한 도를 타고 와서 바른 깨달음을 이루기에 ‘여래’다.사진=문화재연구소
여래의 광명설법을 통한 여래현상을 앞에서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부처님과 보살에 대한 대중들의 질문에 여래께서 광명으로 설법해주신 법회가 보리수 아래에서만이 아니라 일체 세계 모든 도량 중에서도 다 똑같이 이루어짐을 들었습니다. 하나가 전체이고 하나 가운데 전체인 화엄법계이기 때문입니다.
여래가 어떤 부처님이신지, 여래의 과거세 수행법인 보살행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답을 여래의 광명과 미간백호상에서 출현한 보살들의 게찬을 통해서 보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여래를 잘 알 수 없고, 또 깨달음을 얻었다는 화엄성중을 포함한 보살세주들은 왜 부처님이라 불리지 않는지 궁금한 분들이 계실 겁니다.
이러한 점들은 여래현상의 광명소리만이 아니라 계속해서 펼쳐지는 화엄회상의 대표되는 설주 보살들의 음성 언어를 통해서도 반복해서 다양하게 들을 수 있겠습니다. ‘화엄경’ 전체가 다 불세계를 드러내고 있는데, 특히 품명에서 여래의 명호와 여래의 상호를 나타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하여 앞으로도 대방광불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는 단지 ‘세주묘엄품’과 ‘여래현상품’에 보이는 부처님 명호를 통해서 부처님 여래가 어떤 분이신지를 한 번 더 간단히 살펴보고 넘어가겠습니다.
이 두 품에서 부르는 부처님 명호로서는, 불(佛)·여래·세존·선서(善逝)·묘각·십력(十力)·초세정지(超世正智)·법왕·도사(導師)·변조존 등이 있으며, 석가모니불과 비로자나불(60권 ‘화엄경’에서는 노사나불)이 출현하십니다. 그리고 시방세계 미진수의 모든 부처님도 계시고, 법신·화신·색신 등의 불신(佛身)도 설해져 있습니다.
불은 깨달으신 성정각불이고, 세존은 세간에서 가장 존귀하신 분이며, 선서는 진리의 세계로 잘 가신 분입니다. 온전한 깨달음인 묘각과 부처님만이 가지신 10가지 지혜의 힘인 십력도 부처님을 부르는 호칭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초세정지는 세간을 초탈한 바른 지혜이고, 법왕은 세간의 전륜성왕이 아니라 진리인 법의 왕이며, 도사는 세간을 초탈하도록 이끌어주는 인도자이며, 변조존은 광명변조인 비로자나불을 일컬은 말이라 하겠습니다. 시성정각하신 석가모니불은 법신인 비로자나불과 한 분으로서 노사나불과 함께 삼불원융의 부처님입니다.
부처님 명호를 통칭해서 ‘여래십호’라 명명되고 있는 ‘여래’는 여여 즉 진리에서 오신 분이고, 진리의 세계로 가신 분이고, 진리 그 자체입니다. 이 세 의미가 원어는 같으나, 우리에게 오신 분을 더 좋아해서 여래라고 많이 부르게 된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래현상품’의 여래에 대하여 ‘청량소’에서는 다음의 다섯 가지 뜻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⓵ 여래는 법성이 무애함을 요달해 아시는 분이다. ⓶ 말씀이 허망하지 않으므로 여래이다. ⓷ 여실한 도[第一義諦]를 타고 와서 바른 깨달음을 이루므로 여래이다. ⓸ 온 곳도 없고 간 곳도 없어서 여래이다. ⓹ ‘여(如)’ 외에 다른 법이 없으며 ‘래(來)’ 또한 곧 여이니, 이렇게 온 것이 진실한 여래이다. <표13 참조>
이처럼 법성무애를 깨달아 여래이고 내지 일체 법이 다 여래인 점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여래는 한 몸이면서 여러 몸인 일다무애이고, 진신과 응·화신이 둘이 아닌 진응무애이며, 의보와 정보가 둘이 아닌 의정무애입니다.(‘지귀장’) 화엄교학에서는 부처님을 ‘융삼세간 십신무애 삼불원융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이라 통칭하고 있습니다. 모든 존재가 원융한 부처님, 한량없는 부처님 몸이 걸림 없으며, 법신·보신·화신이 원융하여 한 몸이시고, 청정과 염오가 따로 없는 그러한 비로자나불이 화엄교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부처님 세계인 화엄법계는 보살들의 세계이기도 합니다. ‘화엄경’은 부처님께서 과거세 수행하신 보살도를 무진장하게 설하고 있습니다. 그 보살도를 따라 깨달음의 세계로 가는 보살, 중생들을 교화하여 불세계로 인도하는 보살들의 세계는 다 연(緣)으로 이루어진 연기세계입니다.
현상계의 이것과 저것, 하나와 전체 등 사법(事法)과 사법의 상호관계가 상즉하고 상입하는 사사무애 법계연기를 열 가지로 설해 보인 것이 십현문(十玄門)입니다.
열 가지란 예를 들면 모든 법이 상즉해서 자재한 문[諸法相卽自在門], 하나와 많은 것이 서로 용납하되 움직이지 않는 문[一多相容不動門] 등입니다. 역용의 측면에서 서로 용납하기 때문에 서로 들어갈 수 있으니, 상용은 상입의 다른 표현이고, 낱낱 존재가 자기 자리를 움직이지 않고 섭입하므로 부동문(不動門)입니다.
반면 낱낱 존재가 체성이 다르지 않고 하나인 상즉은 각기 자기 자리를 고수하면 하나가 될 수 없으므로 움직이고 자재합니다. 이처럼 모든 차별적인 존재들이 체성이 다르지 않고 서로 용납하고 들어가므로 무장애법계입니다.
‘법성게’에서 의상스님은 상즉의 즉문을 “하나가 일체이고 많은 것이 하나[一卽一切多卽一]”이며, 상입의 중문을 “하나 가운데 일체이고 많은 것 가운데 하나[一中一切多中一]”라고 읊고도 있습니다. 이 경계는 많고 적음, 크고 작음, 넓고 좁음, 빠르고 더딤 등이 둘이 아닌지라 일체에 걸림이 없습니다. 시·공간에 걸림 없는 이러한 존재세계가 화엄법계입니다.
십현문 가운데 사법에 의탁해서 법을 드러내어 이해를 내게 하는 ‘탁사현법생해문(託事顯法生解門)’도 있으니 이 문은 이미 언급한 바 있습니다. 갖가지 사물이 다 비유로 사용될 수 있고, 모든 비유로 사용된 존재 즉 사법이 그대로 진리인 법을 드러내고 있어서 비유가 바로 법입니다.
‘화엄경’에는 수많은 비유가 설해져 있습니다. 지금까지 본 ‘세주묘엄품’과 ‘여래현상품’의 두 품만 하더라도 바다·허공·바람·구름·햇빛[日光] 등등의 다양한 비유가 보입니다.
부처님의 정각보리심이 가없는 공덕의 바다에 비유되고, 청정하고 분별없는 법신이 널리 두루한 허공에 비유되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무애자재하셔서 매임 없는 바람에 비유되고, 공양구가 한량없어서 온 하늘에 퍼져있는 구름에 비유되고, 여래의 현상과 의업의 지혜가 세간을 밝게 비추는 햇빛에 비유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 비유에 대한 구체적인 의미가 무엇이든 간에 모두 부처님과 불공덕을 드러내기 위한 것임은 다르지 않다고 하겠습니다. 모든 것이 부처님 몸이고 부처님 설법이니 흘러가는 냇물소리를 들어도 환희롭고 변화하는 산색을 보아도 즐거운 것입니다.
우리가 늘상 눈과 귀 등 육근으로 상대하는 육진경계가 그대로 다 불경계이고, 두두물물이 청정한 비로자나진법신이며, 법계 일체 존재가 다 원융무애한 법성신입니다. 중생의 무명 번뇌심조차도 근본 부동지불이라 간주됩니다. 그리하여 부처님 세계는 이루 다 헤아리기 어려워서 대방광이고 불가설이라고 합니다.
이로 볼 때 만법을 보는 것이 부처님을 보는 것이고 부처님을 보는 것이 자기를 보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자기를 바로 보는 그 마음이 자기에게 본래 갖추어져 있는 부처님의 지혜마음입니다.
‘화엄경’의 문문구구가 다 부처님이니(‘총수록’) 경을 보는 간경도 부처님을 보는 견불이며, 자기에게 본래 갖추어진 청정한 심성을 보는 것입니다. 따라서 간경이 견불이고 관심이며 견성인 것입니다.
아무튼 ‘화엄경’에서는 부처님의 광명설법을 다시 한 번 설주보살이 언설을 통하여 설하고 있습니다. ‘화엄경약찬게’에서 “보현문수대보살 법혜공덕금강당 금강장~”이라 한 구절은 설주보살을 거론한 것입니다.
보현·문수·법혜·공덕림·금강당·금강장 등 설주보살 중에서, 보현보살은 초회를 포함한 총 세 번 모임의 설주가 됩니다. 그 세 번 모임은 부처님 또는 깨달음에 대한 설법회입니다.
이와 같이 초회에서는 여래현상의 광명설법을 보현보살이 다시 설하게 됩니다. 먼저 보현보살이 삼매에 들었다가 일어나서 화엄정토와 비로자나부처님의 환귀본처(還歸本處)를 설합니다. 그래서 ‘여래현상품’ 다음에 ‘보현삼매품’이 이어집니다.
해주 스님 동국대 명예교수 jeon@dongguk.edu
[1558호 / 2020년 10월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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