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 방앗간 주인 作家 되다
淑川 강 동 구
참 살다 보니 별일이 다 있다.
얼마 전에 KBS 인간극장에서 강원도 정선 산골에 사시는 칠십 오세, 되신 할머니를 주인공으로 하여 소리(창)도 하고 배우로서 연기도 하는 모습을 재미있게 본 적이 있다. 할머니의 남편 되시는 할아버지가 참 살다 보니 별일을 다 있고 하시면서 마음속으로는 TV에 출연하신 할머니가 엄청 대견하고 자랑스러우신가 보다. 동네 사람들이 할머니가 TV에 출연하셨으니 한턱 내라고 한다며 껄껄 웃으신다. 할머니에게는 TV 출연이 일생에 가장 큰 사건이었을 것이다. 산골 마을에서는 경사가 아닐 수 없다.
문득 내 지난날을 돌아 보았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일찍이 사회생활을 시작한 나는 속된말로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으면서 살아오다 떡방앗간 운영 삼십 년을 끝으로 돈 버는 일을 마감하고 그동안 바쁘게 사느라 소홀히 하였던 건강도 챙기고 평생 접해보지 못했던 컴퓨터도 배우면서 새로운 미지의 세상과 소통을 시작하였다. 남들에게는 일상이고 아주 평범한 일들이 나에게는 신비롭고 호기심과 궁금증을 숨길 수 없는 많은 것들이 있다는 사실에 하루하루의 삶이 기대와 설렘이 교차한다.
내가 살아온 세상은 어떻게 하면 가족을 제대로 부양하고 자식들을 잘 교육 시켜서 나와 같은 삶이 아닌 보다 멋진 삶을 살아주기를 바란다. 그런 일념으로 죽기 살기로 일하다 보니 내가 모르는 세상과 접할 기회가 전혀 없었다. 그런 나에게 뜻밖에 찾아온 기회가 있었으니 작가가 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중학교 동창생 Y 그녀는 공직에서 은퇴하고 문단에 등단하여 창작활동을 활발하게 하여 수상도 여러번 하였고 시집과 수필집을 수 차례나 펴낸 중견 작가이다.
그녀를 동창회에서 만나 수필집을 선물 받으면서 시작된 대화는 수필에 관심을 보인 나에게 수필을 공부해 보면 어떻겠냐는 뜻밖의 제안을 받았다, 언감생심-. 학력이라곤 중학교가 최종인 떡방앗간 주인이었던 내가 글 짓는 공부를 한다? 나 자신도 누구도 수긍할 수 없는 황당한 제안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딱히 할 일도 없는지라 호기심이 발동하여 Y를 따라 복지관 문예 창작반에 가서 강의를 들어 보았다. 생각했던 것 보다 분위기는 편안하였고 특별한 사람들만의 수강인 줄 알았는데 대부분 평범한 모습의 은퇴한 분들이라 전혀 어색함이 없다.
강사 선생님도 어렵지 않았다. 수강생들이 써온 글들을 일일이 지적해 주시면서 어느, 누구의 글도 잘 썼다며 칭찬을 아끼지 아니하신다. 몇 주가 지난 후 용기를 내어 문예 “창작반에 처음 가는 날”이라는 제목으로 수필을 써 선생님께 보여 드렸더니 처음 써온 글인데 참 잘썼다고 하시면서 칭찬을 해주시는게 아닌가! 격려 차원에서 하시는 말씀인 줄 알면서도 용기백배 더 열심히 공부하여 남들에게 인정받는 글을 쓰고 싶다는 무모한 욕심이 생긴다.
매주 금요일에 열리는 문창반 강의는 기대와 설렘으로 기다려진다. 선생님의 지도를 받아가면서 문우들과 작품을 공유하면 시간이 언제 저만치 달아났는지 모른다. 선생님께서 늘 입버릇처럼 하시는 말씀은 호랑이를 그리려다 고양이를 그려도 좋으니 열심히 글을 써보는 것이 최상의 공부라는 말씀에 힘을 얻어 일 년여 동안 쓴 글이 무려 수십 편은 되었다.
선생님께서는 어느 날 등단을 해보라는 권면을 하셨다. 사실 등단이라는 단어의 개념조차도 알지 못하였는데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등단을 결정하였다. 선생님 말씀이 등단을, 하고 나면 글 쓰는 자세와 마음가짐이 달라진다고 하신다. 선생님 당신도 경험하셨고 다른 수강생들의 경우도 그러하다고 하시기에 부족하지마는 용기를 내어 한국 문인에 세 편의 글을 제출했는데 두 편의 글이 아! 신인 문학상에 당선되는 기쁨을 누리게 되다니-.
어느 날 중학교 동창회에 갔더니 친구들이 너는 요즈음 방앗간 그만 두고 뭘 하느냐고 묻는다. 나는 목소리를 조금 깔고 으~응 나, 나 요즈음 글 짓는 공부하러 다녀, 문단에 수필작가로 등단도 했어, 이곳저곳 문예지에 내 글이 몇 번 실렸지 아직 단행본은 못 냈지만 몇 년 후에는 단행본으로 책도 낼 계획이야. 그~~래 친구들의 놀라는 모습에 우쭐한 기분이 든다. 솔직히 말하면 친구들에게 내가 이런 사람이야라고 자랑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아니 더 정직하게 말하면 자랑하고 싶었다고 말해야 맞다.
내 학력과 내가 살아온 과정을 잘 아는 친구들은 믿기 어렵다는 표정들도 있었고, 격려와 축하의 인사를 건네는 친구도 있었다. 참! 살다 보니 별일이 다 있다. 사실 내가 수필작가가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나 같은 아둔한 사람을 문학세계로 인도해 준 고마운 친구 Y 누구에게도 편견없이 가능성을 열어두시고 열과 성을 다하여 지도해 주신 문창 반 선생님, 남편의 무모한 도전을 묵묵히 응원해준 사랑하는 아내와 문창 반 문우들의 성원에 힘입어 감히 등단작가가 되어 인생 말년에 글 짓는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지혜와 건강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의 크신 은혜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끝)
첫댓글 요즘 강작가님은 넉잠잔 누에가 뽕잎을 서걱거리며 마구 취하듯 습작이 대단합니다.박수를 보내며 자칫 한 문장이 나도 모르게 길어져 초점을 잃을까 ㅎ 문장은 짧아야 강도가 있고 독자들에게 감동을 주지요. 또 수필이 자전적 수필이지만 자꾸 나, 나를 쓰다보면 1인층에 새로움이 묻힐 수가 있지요. 독자들은 이미 작가 글임을 아니까 아끼시길-.
겸손이 뚝뚝 묻어나는 글 잘 읽었습니다. 집안 DNA가 남다르시단 풍문을 들었습니다. 문장은 짧아야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