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 가는 길 (隨筆)
影園 김인희
토요일 이른 아침이다. 일주일 직장생활에서 쌓인 피로를 고스란히 껴안고 자동차에 앉아 시동을 켠다. 자동차 내비게이션에 중부대학교 목적지를 입력하고 선글라스를 찾는다. 부여에서 출발하여 금산으로 가는 길은 강렬한 아침 햇살이 눈을 뜨지 못하게 한다. 선글라스를 끼고 햇살을 가려야 금산으로 가는 길을 찾을 수 있다.
2학기 첫 주 대학원에 가는 길은 여름에서 가을로 가는 기로였다.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청록의 세상이었다. 시간이 시나브로 지나고 가을이 깊어 가면서 청록의 산빛은 파스텔로 노랗게 빨갛게 색칠되고 있었다. 마침내 11월의 산빛은 고흐의 붓으로 진하게 덧칠되어 있었다. 토요일마다 격주로 중부대학교 대학원에 가는 길에서 만나는 풍경이 시간의 흐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자동차 창밖으로 산과 나무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잔잔한 호수다. 바늘 하나 꽂을 틈 없는 촘촘한 일상이다. 직장에서 사회복지사로서 날마다 처리할 업무가 산적해 있다. 지자체와 연관된 전문적인 업무는 서류심사가 다반사고 관외 출장도 잦다. 가정사는 하루 24시간 내내 해도 끝이 없다. 소속된 여러 개의 문학회에서 맡겨진 소임에도 한 치 모자람 없이 해내려고 동동하고 있다. 강의와 시낭송의 양 날개를 달고 비상하고 있다. 게다가 학과 공부와 과제를 하면 자정을 훌쩍 넘어 침실에 들어간다. 영원이 자처한 일이다.
영원은 왜 멈추지 못하는가. 무엇이 영원을 블랙홀 속으로 이끌고 있는가.
영원은 이따금 매너리즘의 늪 언저리를 배회한다. 일감을 잡고 끙끙하다가 자신이 아니어도 되지 않는가 하고 주춤한다. 영원 자신이 없어도 무탈하게 돌고 돌아갈 일이라고 독백한다. 글을 쓰는 일이 몸서리치는 설레는 일이었건만 시답잖은 글을 쓰는 것이 아닌지 골똘히 생각해보기도 한다.
영원의 삶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걸어가는 길이다. 영원이 살얼음판을 걷듯 언행을 살피고 심사를 삼가는 이유다. 별을 사랑하는 일은 멈출 수 없는 과업이다. 돌이킬 수 없는 운명이다. 시작 노트를 끼고 코스모스 꽃밭에 누워 파란 가을 하늘을 보고 글썽이던 소녀 시절에 하늘이 부여한 운명이었으리라.
영원에게 문학은 별을 찾아 나선 길이었는지 모른다. 영원은 책에서 만난 사람을 엄격하게 선별하여 영원의 하늘에 별로 띄우는 거룩한 작업을 하고 있다. 그 여정에서 영원이 만난 책은 영원을 문학의 산맥으로 끌어올렸고 저자는 영원을 힘껏 밀어주었다. 영원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을 별로 명명하면서 영원의 하늘에 초대하고 있다. 영원에게 감동을 준 사람은 영원의 하늘에 빛나는 별이 되는 특권을 누리고 있다.
영원이 자동차를 운전하여 금산으로 가는 길에서 불현듯이 그 또한 별을 찾아가는 유랑의 길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한 시간 이상을 자동차로 달려 학교에 당도하니 일주일 사이 나뭇잎은 단풍으로 변했다. 주차하고 걸어오는 길에 별을 닮은 다섯 손가락 모양의 단풍잎이 뚝 뚝 낙하하는 모습을 보고 걸음을 멈추었다. 휴대전화를 열어서 사진을 찍어 저장하였다. 영원은 낙엽을 하늘에서 내려온 별이라고 나지막이 속삭였다.
영원이 강의실에 도착한 후 캡스에 전화하여 강의실 문을 열어달라고 요청한다. 칠판을 깨끗이 지우고 칠판지우개를 빨아서 둔다. 한 명씩 동기들이 들어올 때 웃으면서 인사하고 막힌 담을 조금씩 허물고 있다. 영원은 외국인 동기생들에게 “제가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씀하세요.” 하고 말했다. 영원에게 실제로 동기들이 도움을 요청했다. 시낭송 과제를 위해 영원의 목소리로 시낭송을 녹음해서 보내달라고 했다. 종합시험을 앞두고 시험 내용을 요약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영원은 담당 교수님 허락을 구한 후 성의껏 도와주었다.
스승님께서 석박사 대학원생 전체가 모여 세미나가 있던 날에 영원에게 시낭송을 하라고 하셨다, 영원은 주저 없이 배경음악을 열고 ‘노래하리라’라는 시를 낭송했다. 영원이 국어국문학과 박사 과정을 공부하면서 사명처럼 낭송하는 최애의 시다. 스승님께서는 영원을 문단에 알려진 시인이고 수필가이며 칼럼니스트라고 소개하셨다. 그 후로 영원은 더 낮은 자세로 임했다. 수업시간 전에 30분 일찍 도착하여 굳게 닫힌 강의실 문을 열고 칠판지우개를 세탁하고 매사 봉사하는 이유다.
기적이 일어났다. 외국인 원생에게 아주 작은 도움을 주었을 뿐이었는데 그는 영원에게 어마어마한 일을 제의해왔다. 영원은 흔쾌히 손을 잡기로 했다. 어마어마한 일은 잠시 베일에 덮어두기로 한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영원은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었다. 영원은 황홀한 순간에 가장 먼저 주님께 엎드려 기도했다. 영원의 모든 여정에 동행하는 절대자, 영원에게 축복을 쏟아부어주시는 주님의 사랑 앞에 감사를 드렸다. 영원에게 주신 많은 달란트에 감사하면서 간구했다. 모든 분야에서 신실하게 노력하고 흡족한 결과를 드릴 수 있게 해달라고 애원했다.
영원의 하늘에는 국경이 없어졌다. 베트남의 별, 미얀마의 별, 우즈베키스탄의 별, 몽골의 별, 중국의 별 등 모든 별이 빛날 수 있게 되었다. 영원이 걸어가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여정은 어쩌면 별과 별을 만나는 위대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 주일에 한 번 금산으로 가는 길!
영원의 별을 찾아 떠나는 황홀한 순례의 길이다. 그 길에서 영원 또한 빛나는 별이 된다.
첫댓글 사람과 사람사이를 걸어가는 영원님께 상처 받지 않도록 늘 주님이 동행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샬롬
금산 출렁다리
감사합니다.
아름답게 빛나는 별이 되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