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분들이 욥의 고난만을 큰 고난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큰 고난이 맞습니다. 그런데 그의 고난은 인류가 처하고 성도가 처한 고난의 대표 사례입니다(for example). 병원, 요양병원, 요양원에 가 보십시오! 아마 욥 보다 더한 고난을 겪는 분들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고난 속에서 기도해야 하고, 구분선 아래에서 칼빈과 함께하는 매일기도의 내용을 보시면 그 기도의 방향에 도움을 받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고난은 우리를 기도로 이끈다
여호와여 내가 주를 높일 것은 주께서 나를 끌어내사 내 원수로 하여금 나로 말미암아 기뻐하지 못하게 하심이니이다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매 나를 고치셨나이다 여호와여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서 끌어내어 나를 살리사 무덤으로 내려가지 아니하게 하셨나이다 주의 성도들아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의 거룩함을 기억하며 감사하라 그의 노염은 잠깐이요 그의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내가 형통할 때에 말하기를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하였도다 여호와여 주의 은혜로 나를 산 같이 굳게 세우셨더니 주의 얼굴을 가리시매 내가 근심하였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고 여호와께 간구하기를 내가 무덤에 내려갈 때에 나의 피가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진토가 어떻게 주를 찬송하며 주의 진리를 선포하리이까 여호와여 들으시고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여호와여 나를 돕는 자가 되소서 하였나이다 주께서 나의 슬픔이 변하여 내게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이는 잠잠하지 아니하고 내 영광으로 주를 찬송하게 하심이니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영원히 감사하리이다 (시편 30편) |
우리의 매일의 삶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형성된다. 그 십자가는 그리스도인의 순종이다. 주님께서 지신 십자가가 우리의 기도 생활을 비롯한 모든 것을 구성한다. 칼빈은 이 점에 주목하면서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고 여호와께 간구합니다"(시 30:8)에 주석을 붙인다. "십자가 앞에 모든 생각을 내려놓고 모든 감정을 완전히 가라앉히지 않고서는 그 누구도 기쁜 마음으로 기도하러 나아갈 수 없다. 이것이 고난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이다. 고난은우리가 얼마나 가련한 존재인지 깨닫게 하여 하나님의 은총을 간절히 구하게 한다."
십자가 그늘 아래에서 살아가는 제자들이 삶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고난은 우리를 연단하고 우리 삶의 방향을 인도한다. 깨지고 절망에 빠지게 하기보다 섬김의 깊이를 더하게 하고 우리의 기도를 새롭게 한다. 시편 기자는 다음과 같이 기도한다. "여호와여 들으시고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여호와여 나를 돕는 자가 되소서!"(10절). 고난은 우리의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게 한다. 고난 중에 우리는 그 고통을 감당하기 위해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한다. 그렇게 행하실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첫 단계는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눅 9:23)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반응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자기 유익을 구하는 삶에서 들이켜 자신의 삶을 주장하지 않고 자신을 향하신 예수님의 말씀과 뜻을 따르는 것이다. 그렇게 한다는 것은 예수님이 죽음을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기까지 순종하신 것처럼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당신이 겪고 있는 고난을 이겨 내도록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기도하라. 그리고 당신의 뜻을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보라. |
도널드 K. 매킴, 『칼빈과 함께하는 매일기도』, p.26.
첫댓글 본문 위 소개 글에 제 눈길이 갑니다. 욥의 고난 못지 않은 고난을 받는 분들이 꽤 있는 것 같습니다. 위로와 분별이 있는 좋은 묵상이네요.
본문과 댓글 모두 좋네요. 공감합니다.
공감합니다222
고난에 좌절하지 않고 하나님을 신뢰하며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멘!
아멘22
칼빈주의 성향을 가진 베이커 주석(구약편)에서 설명한 것을 타붙하여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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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30편.
하나님은 다윗을 그의 원수들과의 거의 죽을 뻔한 만남에서 구해 주신다(30:1~3). 그결과 다윗은 하나님을 찬양한다(30:4~5). 하나님은 그 다음에 다윗의 생명이 안전하게 하시면서 그를 굳게 세우신다(30:6~7a). 하지만 하나님은 다윗을 버리시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고뇌 가운데 다윗은 하나님께 자비와 생명과,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찬양할 능력을 부르짖어 구한다(30:7b~10).하나님은 다시 한 번 다윗의 슬픔을 기쁨으로 바꿔 주신다(30:11~12).
시편 30편은 어떻게 28~29편에 나온 다윗의 소망과 관심사들이 자신의 삶의 드라마에서 이루어지는지 보여 주는 4막 극의 대단원이다. 다윗은 하나님이 하나님의 성막 안에서 다윗을 확고히 서게 하시려면 자신을 자기의 원수들 위에 높이실 것이라고 확고하게 믿는다(27:5~6). 그래서 하나님의 자비를 구한다. 자신을 자기의 원수들에게서 보존해 달라는 것이다(27:7, 12; 28:2~3; 30:8~10).
하나님은 다윗의 기도에 응답하신다. 하나님은 또한 다윗을 죽음에서 지켜 주신다(30:1~3). 그러자 다윗은 자신을 구해 주신 것에 대해 그리고 자기 생명을 보존해 주신 것에 대해 하나님을 찬양한다(28:1~2, 6; 30:2~3, 9). 하지만 다윗은 하나님이 하나님 자신을 자신에게서 숨기실까 봐 두려워한다(27:9). 하나님은 분명 그렇게 하시는 듯하다(30:7). 하지만 결국에는 하나님은 다윗의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신다(30:11~12). 다윗은 하나님의 엄위하심에 압도된 다른 신자들처럼(29:1~11), 자신이 자기의 하나님을 찬송하겠다고 선언한다(30:12).
@장코뱅 아멘!
@장코뱅 아멘22
"다윗은 하나님이 하나님 자신을 자신에게서 숨기실까 봐 두려워한다(27:9)는 내용은 마치...
아기가 엄마가 없어질까봐 두려워하는 그 두려움 같고요. 그 두려움은 엄마를 향한 사랑입니다. 진정한 성도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동시에 사랑합니다. 그것이 경외함의 진수라고 생각합니다.
베이커 주석과 장코뱅님의 댓글에 깊이 공감하며 올려주신 글에서 은혜를 받습니다.
@코람데오 네, 공감합니다.
시편 30편의 내용들이 너무도 절절하게 심금을 울리네요. 매킴의 해설도 아주 풍성하고 좋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자기를 부인하고서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 순종하는 것이다로 요약되는 문장들을 잘 기억하겠습니다.
네, 매우 공감합니다.
공감과 격려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