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평구전집>문명과 기독교 신앙
나는 도무지 식견이라곤 없는 우물 안 개구리이다. 그런데 연초에 해방 후 처음으로 유네스코 초청으로 일본을 보았다. 미국이나 유럽이라면 우리와 별로 연결점도 없지만, 이웃 나라이고 같은 동양이니 소감을 한마디 하려고 한다.
일본 사람은 키는 우리보다 작으나 전체 국민이 혈색 좋고 건강했으며, 여성들의 화장도 얌전하고 남녀의 옷차림도 검소했다. 나의 옷은 서울에서는 부끄러운 것이었지만 일본에서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우리의 유익할 것 없는 정치 관심에 비해 일본 사람들은 모두 조용했다. 순종적인 국민으로 보였다. 전체적으로 물질문명, 기계문명화 하는 듯했다. 공업의 약진은 세계를 상대하는 것으로 놀라운 규모였다. 어디서고 눈에 띄는 것은 갖가지 상품과 자동차의 범람이었다. 농업에서 가정 식생활에 이르기까지 모두 전기화, 기계화, 서양화 하고 있었다. 심지어 달걀 반숙도 전기를 이용해 기계로 했다. 나가노(長野) 현 텐류카와(天龍川) 연안을 봤는데 산림과 발전 시설이 부러웠다. 전후에 준공된 것으로 20만 킬로와트 규모의 사쿠마(佐久間) 댐도 볼 수 있었다. 일본의 전력생산 총량은 8백만 킬로와트라고 했다.
그러면 일본의 이런 외적 문명 발전의 근원은 어디에 있는가? 나는 이것을 메이지(明治) 시대 이후 그들이 받아들인 서양 학문의 소화에 근거하는 것으로 보았다. 학문의 소화 역시 정신의 일인데, 그러면 이 소화력은 어디에서 왔는가? 서양 학자 중에는, 서양문명이 멀리는 2천년 기독교와 그리스 철학을 배경으로 하고, 가까이는 16세기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을 통해 이루어진 것임에도, 일본이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의 학문을 1세기 이내에 소화한 것을 격찬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일본의 성숙한 전통 교육의 배경이 되었던 드높은 일본 정신이 서양식 교육에 계승된 결과라고 보기도 한다. 나는 이번 교토(京都)에서 최근세에 이르기까지 지속된 일본의 위대한 민중 불교에 접했는데, 여기에 더하여 무사도적인 유교 정신 등이 결합된 일본의 이 종교 정신이야말로 서양 근대 학문 소화의 원동력이 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여기에서 다시 고찰해야 할 일은, 일본의 이러한 놀라운 외적 발전에 비해 과연 그들의 정신, 사상, 도덕 면의 발전은 어떠한가 하는 것이다. 진정한 문명은 정신적, 도덕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동양 문명 전체가 안고 있는 문제이긴 하지만 역시 일본에도 많은 문제점이 있는 듯했다. 혁혁한 외적 발전을 자부하며 동양의 유럽으로 자처하는 그들에게서 서양의 인도주의 정신은 찾아보기는 힘들었다. 그 정도의 문명 수준이면 협소한 국토이니만큼 청년들도 낙후된 세계 각지로 떠나 봉사 활동을 벌일 만도 하건만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민주주의도 사상적, 도덕적인 이해가 아니라 기계적인 법적 운영을 넘지 못하는 듯했고, 정치나 정당, 정치인도 정신이나 인격, 개성보다는 정략으로 움직이는 듯했다.
결론적으로 여기에는 전체 동양 사회의 본질적인 문제가 내재해 있다고 본다. 즉 외적 문명의 형성이나 제도적인 현대 국가의 발족 정도는 교유의 민족정신이나 재래 종교 신앙으로도 가능할 수 있겠으나, 사람의 정신과 도덕의 개조와 신생은, 죄관(罪觀), 정의를 중심 내용으로 하는 신관(神觀), 그리고 구원관(救援觀) 등에 깊이 관련되는 것으로서, 기독교 신앙에 의한 진정한 산 기독교 정신 이외에 달리 이를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개혁적인 개종이 절대 필요한 것이다. 이상이 이번에 일본을 돌아보며 깊이 느낀 점이다.
<성서연구> 제90호 (1961년 8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