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터가 그리 멀지 않은 동네가 끝나는 끄트머리께 여고를 다녔던 갈래 머리 곱게 묶은 청자 누나
어린 눈에도 청자 이미지와는 달랐지만 웃을 때는 푸른빛이 돌았다
스무 살 즈음 전봇대에 기대 청자 담배를 몇 모금 빠끔 거리면 푸른 하늘이 빙빙 돌다 어깨에 내려앉았다 읍내 동문 사거리께 친구 서넛과 드나들던 청자다방
폐업한 지 오래되었는데 폐기된 것들 에는 옹기를 굽던 가마터도 있다 유약을 발라 잘 구워져 빛나던 옹기들 간혹 청자가 되려다 만 것도 보였다
수십 년 지나 연향동 도심 한 복판에 들어선 청자다방 갈래 머리 아가씨가 아메리카노 커피를 내려주고 있다
다방에 앉아 촌스러워 더 그리운 시간들을 곱씹어가며 잠시나마 설렜던 것은 긴 시간 잊고 살아온 사람들 때문이다
가슴속 푸른빛으로 묻어둔 것들 다시 꺼내본다면 특별하지 않은 것이 전부였다
춘설 (시와문화 49호)
티브이 소주 광고에 나온 처음처럼 전생 이후 첫 순결한 마음으로 그대를 만났다 어차피 생은 죽음을 덧댄 동면에서 깨어나는 봄 산을 닮았다 죽음 같은 껍질을 벗기거나 덜 아문 상처의 딱지를 뜯어야만 올라오는 새살 같은 봄의 입들이 말하기 시작하는 4월 매번 아픔을 건너는 고행이다 굴목재 오르는 조계산 초입 눈 내릴 때 갓 눈 뗀 초록의 나무들과 잔설 비집고 핀 볕 양지꽃 노란 무리와 북사면을 뒤집어쓴 채 꽃등 내건 엘레지를 외면할 수 없다 사는 맛이 시큼한 것을 알려주듯 생강 꽃이 진달래꽃 피다가 다시 앙다문 상처까지는 알 리가 없다 찰나가 헤아릴 수 없는 겁의 세월이라면 봄 산 춘설 만난 나는 일장춘몽이 아니다 억겁의 시간을 살았던 내 환생의 상처가 된 첫 만남은 그토록 절실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