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역사 연표 요약.
1.야요이 시대:기원전후~ 372.
미생시대.
낙랑(낭인,아잔),가야(카나/카라/가나/가라)계 정권.
북구주(키타큐슈)중심.
2.야마토 시대:4세기말 ~710.
대화시대.
백제(백잔,이잔계),가야계 정권.
대판(오사카)중심.
3.나라 시대:710~794.
내량/나랑(내랑)시대 (아스카문화시대)-백제계 독주시대
웅진 공주백제인 이잔계 성왕의 제2왕후(제명여왕/황극천황/사이메이)중심으로 절정에 이름.
동성왕,무령왕,성왕의 이잔계에 이어 위덕왕,무왕,의자왕 제1왕후계의 위구태백제계 독주시대.
이잔계 부여풍의 유신정변(임신의 란 672/신라계 도륙사건)으로 위구태 백제(사비백제)인 의자왕 제1왕후계
중대형 황자[천지천황/황권을 차지하기 위해 신라계와 결탁하여 후쿠오카(복강) 군선제작소 조창궁에 제명여왕(황극천황)을
가둬 불태워 죽이고, 1년후 663년 사비백제 백강으로 군선을 보내 나당연합군에 패하게 만든 사건]를 몰아내며 다시 회복.
나라현 중심. [일본 중부지방]
4.헤이안 시대:794~1192.
평안시대.
동경(도쿄)의 고구려, 발해멸망계 나라백제 침공으로 경도(교토)천도
경도(교토)백제시대.
200여년간 남북국시대 개막.
5.가마쿠라 시대:1192~1333.
겸창 막부시대(鎌倉幕府/미나모토노 요리토모)-이름으로만 보면 가야계로 판단됨.
겸창이라는 말은 "겨차"이다.
가마쿠라는 가마안의 도자기, 그릇 등을 구우라는 말이다.
가마안에 왕겨가 가득 찼을때 겨가 찼다는 말로 "겨차"라고 하였는데
한자로 표기하기를 겸창이라고 표기하였다.
교토(경도) 카나가와(奈川)시대.[경도 동남부 카나가와(奈川)>동경 도쿄공항남부 요코하마 서남쪽
가나가와(神奈川)현과 그 서쪽 겸창시(가마쿠라)로 덕천가강(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의해
강제이주(가마쿠라>현재도 가야지명이 산재해 있음].
1270년 고려, 몽고 연합군 대마도 상륙작전이 대마도로 저항거점을 옮긴 삼별초 저항으로 실패.
1274년 고려, 원나라 연합군 북구주(기타큐슈)를 거쳐 구주 서남부 나가사키 타카섬으로 상륙하다
풍랑으로 괴멸되고 3만을 실은 병선만 살아 돌아감.
[배에서 숙박하는 바람에 풍랑으로 침몰/ 나가사키 서남부 타카섬.
도원수 홀돈, 우부원수 홍다구, 좌부원수 유복형. 고려군 사령관 김방경)
나라, 경도백제인 일본 서남부 구주(큐슈)지방으로 옮겨 구주백제를 열어
원나라 쿠빌라이 세조 지원 4년에 조공하고 정식 구주백제국으로 인정을 받아
원나라군에 구원을 요청하여 1274년 고려, 원나라연합군 일본을 침공했으나 삼별초와 풍랑으로 실패].
삼별초군 오키나와(옥이나와) 600년 고려 유구(류큐)왕국 건설.-조선에 옥을 수출함.
1867년 명치유신 이후 일본 점령후, 세계 제2차대전 태평양 전쟁 막바지때 오키나와 제도 삼별초의 후예 45만을
학살하고 본토로 철수.-홍길동전에서 이상향의 율도국을 찾아 떠난다는 곳이 유구국.
남북조 시대:1336~1392(남조:대각사총vs북조:특명원총).
1392년 이성계 조선 건국.
6.무로마치 시대:1338~1573.
실정시대 :이름으로만 보면 고령 본가야, 거창 대가야 등에서 이주한 가야계로 판단됨.
족리존씨(이시카가 다카우지)막부시대.
[일본서기 신대(신들의 시대)상편에 고령 출운국에서 일본 중서해안 시마네현으로
출운(이즈모)하는 곳이 족씨가문이다. [해류가 한국 남해안과 동남부 해안에서 일본 시마네현으로 흘러감].
족씨가문의 후예가 우두산의 우두천황 연오랑(일본신화에서는 스사노오 노미코토/야요이 문화).
우두천황이 거창으로 팽창하였다가 백제, 금관가야 여왕 세오녀(일본신화에서는 천조여신 아마테라스
/야마토 문화)연합군에 의해 패하자, 우두천황 스사노오가 영일만 근기국을 거쳐 일본으로 도주하여
철을 전래하면서 야요이 문화를 연다>금관가야 여왕 아마테라스 손자가 후일 왜로 넘어가
야요이 문화를 일군 우두천황을 밀어내고 대화(야마토)문화를 연다].
-우두산은 고령, 거창, 춘천, 함남 고원군 고원, 천원지역(고천원)에도 존재함.
이로써 이들의 이동 루트를 알 수가 있다.
중원 감숙성 돈황지구,내몽고 시라선맹(사라선맹)실크로드>산서성 대동시 용성>발해만 천진>북발해만
>대련반도 조양, 심양>만주>함남 고원, 천원>춘천>고령>거창 팽창>영일만>왜.
(실크로드 문물이 수북히 쌓여 있다는 뜻인 "거창하게" 가 여기 거창 대가야에서 유래된 말임).
562년 대가야가 신라에 멸망할 때 주류가 왜로 도해하고, 대가야인들이 철과 도기, 전사집단이 몰려있는
호남 중동부 우르가야 지방으로 밀려 들어옴.
"우르(우륵) 6가야"는 bc3000~ bc1100년경 힛타이트 문명이 멸망한 이후
기원전 700년경 춘추시대 때부터 서역으로 진출하기 시작하며, bc 668년 앙골계(앵글족)의 페니키아인들이
그리스 지중해에서 상업무역 활동을 하다가 이라크 바빌론 문명을 침공하고 신바빌론을 세워
비단길 실크로드 무역이 중단되며 중원으로 물류가 들어오지 못하자 감숙성 비단길 돈황지구와
청해성 서령(청구)지구의 후리인(감숙성, 청해성 흑하), 모압인( 감숙성 흑하인), 아무르(감숙성 흑하 지류)인과
내몽고 서남부 파단(단파)길림사막의 사반지방에서 비단길 무역으로 활동하며 잔류하던 서역의 사라센인들이
함께 거병하여 신바빌론 문명을 무너뜨리고 힛타이트 문명을 재건설하며 이집트까지 실크로드 무역로를
확장시킨다.
기원전 550년 힛타이트 문명 재건설 당시 팔레스티나(팔레스타인) 가나안 갈대아 지방에서
이집트를 연결하는 실크로드 교통로 중계무역 활동을 위해 잔류하였다가 후리인(후려인>구려인), 모압인, 아무르인들이
혈통이 희석되는 것을 막기 위해 동방으로 돌아가자, 가장 늦게까지 남아서 활동하다,
훗날 기원전 336년 알렉산더의 동방원정에 밀려 이라크 남부 우르국(우륵국)으로 옮겨간 이후,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로 회귀한다.
이후 대월지의 점령으로 실크로드 중간 세금을 가로채 막대한 부를 형성하며 분열하자,
감숙성,내몽고 사라선맹지구에서 중원과의 실크로드 무역에 종사하다 반도로 들어오는 후발주자로
전기가야가 왜로 이주하자, 실크로드 교통로인 중계무역로 경제루트 빈공간을 차지하며 왜까지 잇는다.
우르 6가야 문화는
임실 슬치, 진안 웅치, 완주 운주, 금산 이치, 논산 연무, 정읍 칠보, 태인,
순창 강창산(강천산) 동부 산악지방까지였고, 감숙성 비단길 돈황지구, 청해성 초원의 길 서령/청구지구,
내몽고서부 사라/시라선맹 번외 거래 지구에서 북흉노(모돈), 단선비(단석괴), 전진(부견), 북위(탁발십익건, 탁발규),
고구려(광개토대왕, 장수왕)에 밀려 동만주를 거쳐 이치, 슬치, 웅치의 가야루트와 경호강, 섬진강 루트를 통해
왜까지 선진문물이 공급되도록 연결하는 비단길(초승달무역) 실크로드, 초원의 길(반달무역) 교통로였음.
우르 6가야 문화는 고창 선운산 동부산악지방, 화순동부지방, 광주[무진주]지방으로까지 피신하여
발견되고 있음.
562년 대가야가 신라에 멸망당할 때 무진주[茂鎭州]인들이 마한지방인 광주로 피신해 들어가
660년 무진주[武珍州]로 알려지는 것임.
최초 산서성 대동시 용성(평성)서북부 내몽고 무주산(武州山)과 무천진(武川鎭)의 서진(西秦)이
불교전파를 명분으로 내세운 전진 부견(북조 통일전쟁)의 제1차 침공으로 멸망당하고
부견이 돌아간 틈에 탁발선비족 탁발십익건이 내몽고 포두시(바오터우시) 파언탑랍(바옌타라) 지방에서
용성으로 들어가 서진을 다시 점령하고 대나라를 건국하자 부견이 제2차 침공하여 멸망시키면서
서진인들이 산서성 장치시 장사지방, 사탁지방, 점탁지방으로 남하하여
또다시 사마선비족의 사마염 때 서진(西晉/晋)을 건국함.
북월지(우르가야, 대가야, 왜)가 세금을 비싸게 거두는 부견을 피해 돈황지구를 우회하여
신강, 감숙, 내몽고 서북부를 거쳐 이기산 남부 단파(파단)길림사막 사반(沙泮)지방으로 내려가
산서성 장치시 장사지방, 사탁지방, 점탁지방으로 남하하여 백잔, 이잔, 그리고 서진의 사마염과
실크로드 무역을 주도하자, 부견이 불교 전파를 명분삼아 실크로드 통제권을 장악하기 위한
북조 천하통일전쟁(383/영가의 난)을 일으키고 낙양에서 서진의 사마염(사마 선비족)을 살해하고
동생인 사마예가 서진인을 이끌고 강소성 남경으로 들어가 동진(東晉)을 건국하자,
다시 남북조 천하통일 전쟁을 일으킴.
무주산(武州山)과 무천진(武川鎭)은 북위 건국 이후 산서성 대동시 용성(평성) 서북방 내몽고 자치구에서
흉노의 침입을 막는 변방지역을 말하는데 원래 서진(西秦-산서성 대동시 용성-석탈해가 용성국 출신)의
영토였다.
[부견이 죽고 385년 5호16국시대 때 걸복국인이 감숙성 완천(원천)에 세우는 서진(西秦) 과는 다른 나라].
동진이 북위 출신 유유에게 넘어가자 산서성 장치시 사탁지방에서 강소성 서북 안휘성 동남부로 옮겨간 사안, 사현가문의
양하사씨와 전진의 부견이 일으킨 영가의 난을 피해 사천성 성도(청두) 촉나라 후신 예촉에서 강서성 예장지방으로 옮겨갔던
예촉가문의 환온, 환현 일파와 함께 동진 황제 가문을 이끌고 대련반도 옛 낙랑국(요녕성 조양, 심양)으로 들어가
낙랑 잔류인을 복속하고 후동진을 세운후, 고구려 고국원왕에 밀려 동수가 해주 낙랑국으로 밀려났다가
백제 근초고왕의 도움을 받고 하한(익산 금마 연립마한국/기준조선과 천안 직산>익산 마한인의 연립정권)으로
들어오게 되는데,
광개토 때 북월지(우르가야, 대가야, 왜)가 돈황지구 (비단길), 청해지구(서령시 서경 초원의 길)를 장악한
고구려를 피해 내몽고 서남부 파단(단파) 길림사막 지방으로 우회하여 실크로드 문물을 가지고
산서성 장치시 장사지방, 사탁, 점탁지방과 산서성 대동시, 하북성 북경, 산동성 제남시 위례백제,
요녕성 조양, 심양까지 실크로드 문물을 거래하였다가 광개토, 장수왕에 밀려 하한으로 남하하는 것임.
[이 당시 광개토대왕과 마한은 동맹관계였으며 소도구역이었음.
>고(구)려인중 고려의 선조는 고선비족, 구려인은 동이족과 백잔, 이잔, 가야, 왜.
산서성 장치시 장사지방, 사탁, 점탁지방에서 실크로드 문물을 교류하는 과정중
백제인과 대월지(북월지)의 혼혈로 백잔이 탄생하고, 북월지와 백잔의 혼혈로 이잔이 탄생하며
북월지와 이잔이 융합하여 가야, 왜로 분화한다].
산서성 대동시 평성의 변방 무주(武州), 무천진(武川鎭)이라는 지명이 같은 곳을 피하기 위해
전북 무주(茂州/茂鎭州)로 들어가서 이어가다가 호남 동부의 우르가야 (왜까지 연결하는 실크로드 교통로)가
대가야에 점령당하자, 후일 562년 신라가 대가야를 침공하여 복속하면서
전북 일대와 광주 마한지방으로 피신하며 또다시 같은 지역을 피하기 위해 무진주(茂鎭州)라는 지명을 버리고
무진주(武珍州/광주)로 바꾸는 것임.
광주라는 지명이 무진주(武珍州)로 바뀐다는 것은 광주 마한인보다도 더욱 앞선 선진문물을
가지고 들어갔다는 뜻임.
이 당시 지구 최고의 선진기술이었고 청화백자의 선조인 무색청자가
진안 성수면 도통리 중평에서 다량 발견됨.
[우르 6가야는 알렉산더가 시리아 서북부의 파르티아 지방을 침공하여
bc 334년 아케메네스 제국을 멸망시키고 셀레우코스 왕조를 세우자,
이라크 남부 우르국[동유럽, 아랍, 아프리카 이집트를 연결하는 실크로드 교통로인 철의 삼각주]에서
동방으로 회귀하면서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트로 들어갔다가, 실크로드 교통로를 선점하기 위해
대월지가 사마르칸트를 점령하며 셀레우코스 왕조를 멸망시키고 분열하자,
가장 늦게까지 남아있다 북월지가 되어 내몽고 시라/사라선맹지구 [번외 무역지구]로
실크로드 문물과 유약을 사용하는 도기, 철기(숯, 석회석을 이용한 탄소 강화 제련법) 등 첨단기술을 가지고 들어옴].
이후 기원전 200년대 북흉노(모돈선우계), 기원후 100년대 단선비(단석괴)와
북흉노, 전진, 북위, 북부여 [고구려/고선비]에 동만주로 밀려나 한반도 대가야지방 실크로드 교통로에
도자기 터를 지어 왜까지 교역로를 연결하는 것임.
(장수 장계면에는 우르 6가야 최대의 철 생산지가 발견됨)
[실크로드 중심 소비지가 민족 이동에 따라 한반도와 일본으로 옮겨가자, 중간 교통로를 차지하고
철의 삼각주 중계무역을 서역에서 동방 반도로 이동하여 우르가야가 대가야와 함께
한반도와 왜까지 연결하는 것임.
정유재란때 남원성전투, 구례 석주관 전투에서 왜군에 잡혀가는 남원 도공들이
다시 한번 증명해주고 있음].
이것을 가지고 대가야국을 일본 역사라고 주장하면 곤란함.
[무진주의 茂보다 더욱 전사적/군사적인 용어가 武이고 나라를 되찾으려는 의지를 보여주는 한자임]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직전신장)에게 멸망.
7.전국시대:1473~1573.
오다 노부나가가 응인의 란, 족리의소(이시카가 요시아키)를 경도(교토)에서 축출하는 시기.
숙여진, 거란 망인계 권력 장악해 들어가는 시기.
8.안토조산 시대(아즈치 모모야마)-1573~1600.
경도(교토) 에도(강호)시대.
풍신수길(도요토미 히데요시)과 오다 노부나가 권력 장악한 시기.
1592년 4월13일 임진왜란 일으킴.(풍신수길, 직전신장)
1597년 7월7일 정유재란 일으킴.
1598년 풍신수길이 덕천가강(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살해당함.
1600년 풍신수길군 관원전투(세키 가하라)에서 덕천가강군에 패하여,
그 책임을 직전신장(오다 노부나가)에게 묻는 본능사의 변란발생으로 직전신장을 자살케함.
[임진왜란, 정유재란은 호남만 방어에 성공함].
9.에에도 시대-1600~1868.
강강호 시대.
덕천가강(도쿠가와 이에야스) 동경 막부시대.
고구려, 발해 망인계 동이족 동북(도호쿠)지방으로 밀려남
[동경 동북 동해촌/이바라키현(茨城県/자성현)~후쿠시마(福島/복도) 원전 터진곳. 미야기(宮城/궁성)현].
10.명치시대-1868~1912.
메이지 유신 시대.
왕정 복고시대로 왕정을 경도에서 동경으로 옮기는 시대.
1894년 동학 농민혁명(갑오경장/갑오개혁),
청일전쟁.
1897년 10월 조선 대한제국으로 국호 변경.
1902년 영일동맹.
1904년 러일전쟁.
1909년 이등박문(이토 히로부미 총리)암살(안중근)
9월 남한 대토벌작전(호남 대공세)
1910년 8월29일 대한제국 병탄.
11.대정시대-1912~1926.
다이쇼시대.
1914년 세계 제1차 대전 독일에 선전 포고.
1918년 세계 제1차 대전 종전.
1923년9월 관동 대지진으로 그 책임을 조선인에게 물어 4~5만 명이 희생당함.
일본 학자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3~4만 명이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함.[실제 자료 2만3천건을 찾아냄]
15엔(쥬고엔), 150엔(햐쿠 고쥬엔/잇뺘꾸 고쥬엔)발음을 시켜보고 다르면 모두 죽이고 다닌 사건.
12.소화시대-1926~1989.
쇼와시대.
1928년6월 만주 군벌 장작림 폭사 사건을 일으킴.(만주침공 명분쌓기/요녕성 심양/선양)
1931년 만주사변 일으킴.
1932년3월 만주 괴뢰국 건설.
1937년7월 노구교 사건[하북성 북경]일으키고 천진(텐진)을 공습하며 중일전쟁을 일으킴.
1941년12월 진주만공습- 일본의 호주령 파퓨아뉴기니 침공으로 기름 공급을 중단하자
일본이 점령하고 간접 식민지배하던 하와이를 돌려 달라며 진주만을 공습.
독일, 이태리, 일본연합 결성.
1945년8월 태평양 전쟁 패배로 일본항복-영미연합군 승리.
1946년5월 극동 국제군사재판(동경재판)에서 전범 도조 히데키(東條英機/동조영기)전 총리 사형 구형.
1947년5월3일 일본국 헌법 시행.
1965년6월 한일 기본조약 시행.
1970년5월 오키나와(유구/류큐)제도 미국으로 부터 반환.
13.평성시대(아키히토)-1989~2019.
헤이세이시대.
1995년1월 신호(고베)대지진.
2009년 8월30일 전후 자민당 독점정권 사상 첫 붕괴. 처음으로 하토야마 민주당 내각 성립.
하토야마 총리 오키나와 후텐마 미 해군기지 괌으로 이전해 가라고 요구.
2011년 3월 11일 태평양 지진, 쓰나미 여파로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 발생.
2012년 12월 16일 자민당 정권 재창출. 우익강경 보수파 아베 신조(安倍晋三/안배진삼)재집권.
14.령화시대(令和)-
레이와시대(나루히토/德仁)-2019~
p/s
승문(繩文/조몬)문화.
조몬족(繩文族)(BC 10,000∼BC 300년)
승문 문화의 주인공이 되는 조몬족의 원래 조상은 오월족이다.
폴리네시아인들이 오키나와 제도까지 북상하여 들어와 살고 있었는데,
bc 300여년 전부터 부여족들이 반도루트로 일본으로 이주하기 시작하자,
중국 남해안 해남도(하이난) 해구(하이커우/海口)에서 대만, 조어도, 살남제도(사쓰난제도),
유구해구(오키나와 류큐해구), 첨각열도(센카쿠열도)를 거쳐 구주(九州/큐슈)로
오월족들이 이주하기 시작하여 구주(큐슈) 오월국에 이어 일본 중부지방에서 오국, 월국 등을 세우며
시작된다.
繩文이라는 말은 새끼줄승, 글월문이다.
일본 열도가 새끼줄처럼 길게 늘어져 대만까지 연결되어 있는 것을 뜻하는 말로 새끼줄승 字를 사용하였고,
문자(文字)를 가지고 일본으로 도해하였다는 뜻을 나타내는 말이 繩文이라는 말이다.
오키나와 제도에는 키가 작은 폴리네시안인들이 선주민으로 살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과 함께
승문(繩文)제도를 거쳐 일본 구주로 들어간 종족 문화를 승문(繩文/조몬)문화라고 부르는 것이다.
직전신장과 풍신수길의 전국통일로 영주들에게 논공행상을 할 영지가 부족하자,
직전신장이 풍신수길에게 조선을 침공하여 영주들의 불만을 해소시키라고 제안한 자다.
천조여신[天照女神/天照大御神 아마테라스]은 일제시대 때 만주사변을 일으키기전
백두산에서 천조여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출병하게 되는데, 가부장적 사회로 완전 진입한 일본군과
정부에 의해 천조대신으로 바뀌게 된다.
일제는 함남 고원군, 천원지역을 고천원으로 판단하여 고원, 천원지역을 출운국[이즈모]의 시원지로 보고
신사를 세워, 만주 출병의 성공을 기원하는 제사를 천조대신[天照大神]으로 다시 바꿔 치루고
만주사변을 일으킨다.
천조여신은 여자라 그 당시에는 만주사변을 앞두고 "암탉이 새벽에 울면 재수없다"는 말이 있었기 때문에
천조대신[天照大臣/아마테라스 오미카미]으로 바꾼 것이다.
일본의 국가 기미가요[君が代][군주의 치세]는 천조여신>천조대신[아마테라스 오미카미]를
추앙하며 부르는 노래이다.
"우리 주군은 천대만대로 작은 돌이 바위가 되어 이끼가 낄때까지...."
[아리안의 대이동은 아프리카에서 서역과 이라크 티그리스, 유프라테스강 유역으로 이동했다가
인도 인더스강, 갠지즈강 유역으로 동진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 중원대륙에서 살다가
동북아인들로 부터 쫒겨나 북인도로 이주하여 인더스강, 갠지즈강 유역으로 들어갔다가
팔레스티나 가나안~이라크 우르국의 티그리스 유프라테스강 유역으로 이주하는 사건이 아리안의 대이동이며,
그중에서 아리랑족이 중원으로 비단길 초승달무역, 동유럽 초원의 길 반달무역 루트를 개척하며
중원으로 다시 동진해 들어오는 사건이었다.
그리고 비단길과 초원의 길을 따라 대량>양나라(산서성 양천시, 하남성 개봉시, 강소성 양주시, 남경시,
하북성 안양시>경기인),
서진, 동진 (하남성 낙양시, 강소성 남경시> 호남 익산, 나주, 여수, 순천, 경남 사천,
사마 선비족 황제(사마혁, 사마덕종, 사마덕문)가문 일본 이주)
>일제시대때 동진을 빼앗긴 원한을 남경(난징/건강/견강)대학살로 보복함.
백제 (하남성 정주시 한성백제, 산동성 제남시 위례백제>개성, 인천(위례), 서울 한성, 충청, 전북,
전남 영광, 장성, 담양등 북부지방, 일본 이주),
고구려(감숙성 평양시, 청해성 서령시, 섬서성 북부, 산서성 서부>경기북부, 황해도, 평안도)등이
중원을 상실하자 반도로 들어왔다가 그 일부가 일본 열도로 이주해 가는 사건이었다].
우르라는 말의 원뜻은 "이리"라는 뜻으로 감숙성과 내몽고 서남부 이기산맥에서 신강성으로 흐르는 이리강의 이리하를
가리키고, 일반적으로 개/강아지를 뜻하는 말로 집에서 개를 기르며 위안관계(반려의 대상)가 아닌
서로 간의 필요에 의해서 필요관계(가축몰이, 집 지킴이로 마당에 개를 기르며 살아가는 관계)로 살아가는 종족을 뜻함
첫댓글 서역은 아라비아에서 이집트까지 기원후 800년에 이슬람교화가 깊숙히 진행되기 전까지 상업, 공업, 의학 등 과학기술이 가장 발달한 문명이었음.>> 서기 800년대이후 이슬람교화가 깊숙히 진행되면서 서역 실크로드 교역이 쇠퇴하며 중원 감숙성 돈황지구 청해성 서령지구, 내몽고 서남부 파단길림 사막 사반지방에서 실크로드 무역에 종사하던 세력이 중원으로 남하하면서 5대 10국 시대가 펼쳐지며 군웅할거시대가 열리며 한국, 일본과 동남아시아로 완전히 밀려나며 현재의 영토 구도가 완성된다.
아리안의 대이동은 기원전 2010년 경에 한번 일어나고 기원전 1천년전 경에 두번째 대이동이 발생하는데,
2010년 경에 일어났던 아리안의 대이동은 아프리카와 이집트에서
서역 이라크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강과 인도 인더스, 갠지즈 강 유역으로 대이동하는 사건이고,
기원전 1천년전 경에 천해에 물이 넘쳐 인류가 북상하면서 일어났던 아리안의 대이동은 중원 대륙에서
동북아인들에게 쫓겨 이라크 우르국과 팔레스타인 가나안 지방으로 까지 대이동하는 사건이
아리안의 대이동이었으며 그중에서 아리랑족이 비단길 초승달 무역과 초원의 길 반달무역로를 개척하면서
동진해 들어오는 사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