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1. 26
스마트폰이 보급된 지 10년이 지났건만 연초까지만 해도 필자는 전철에서 책을 읽었다. 다른 이유는 아니고 스마트폰보다는 책을 보는 게 눈이 덜 피로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책 보는 것도 부담스러워져 음악을 듣거나 라디오를 청취하며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쪽으로 바꿨다.
이러다 보니 사람들이 왜 이어폰을 쓰다 청각이 손상되는지 알 것 같다. 책을 읽을 때는 인식하지 못했는데 뭘 들으려다 보니 지하철 소음이 너무 크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볼륨을 꽤 올리지 않으면 음악감상이 제대로 안 되고 진행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알아듣지 못하겠다. 이건 아니다 싶어 지난 여름 큰맘 먹고 무선(블루투스) 노이즈캔슬링 이어폰을 장만했다.
그런데 지난주 신문에 난 기사를 보니 애플이 최근 에어팟 프로를 출시하면서 본격적인 무선 노이즈캔슬링 이어폰 시대가 열릴 것이란다. 아이폰의 액세서리이기 때문에 무선 노이즈캔슬링 이어폰의 시장 규모가 달라질 것이고 삼성이나 LG 등 다른 스마트폰 제조 업체들도 조만간 무선 노이즈캔슬링 이어폰을 내놓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십 평생 이어폰을 거의 쓰지 않던 필자가 어쩌다 무선 노이즈캔슬링 이어폰은 얼리어답터가 된 느낌이다. 필자의 체험을 곁들여 노이즈캔슬링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 노이즈캔슬링 이어폰의 내부는 꽤 복잡하다. 소니의 WF-1000XM3의 경우 외부 소음을 감지하는 마이크(feedforward)와 노이즈캔슬링이 된 소음을 감지하는 마이크(feedback)가 제공하는 정보를 바탕으로 프로세서가 최적의 반대 위상 음을 내놓는 시스템이다. / 소니코리아 제공
능동적 소음 조절 기술
소음 또는 잡음으로 번역하는 노이즈(noise)란 전체 소리에서 시그널(signal·신호)을 뺀 나머지다. 신호대 잡음 비율(S/N)의 값이 클수록 정보의 질이 좋다. 기존 이어폰을 쓸 때는 소음이 큰 상태에서 정보 질을 높이려면 볼륨(신호)을 키워 분자의 값을 크게 한다. 반면 노이즈캔슬링 이어폰에서는 능동적으로 소음을 줄여 분모의 값을 작게 해 정보의 질을 높인다.
우리가 주변의 소음을 줄이는 방식은 두 가지가 있다. 먼저 수동적 소음 조절로, 창문을 닫거나 귀마개를 하는 게 여기에 속한다. 헤드폰이 이어폰보다 소음의 영향이 덜한 것도 귀 전체를 덮기 때문이다. 반면 소리를 만들어 소리(소음)를 줄이는 능동적 소음 조절이 바로 노이즈캔슬링이다.
이는 소리가 공기를 매질로 한 파동이기 때문에 가능한 현상이다. 공기의 밀도가 주기적으로 높았다 낮았다를 반복하며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게 소리로, 진행 방향과 밀도 변화 방향이 같기 때문에 종파다. 다만 이를 시각화하기 어려워 세로축을 공기밀도(공기압)로 한 그래프로 나타내면 사인파 형태로 횡파처럼 보인다. 세로축이 진폭을 뜻하는 진짜 횡파는 아니라는 말이다.
기압이 가장 높을 때와 가장 낮을 때의 차이가 클수록 소리가 크게 들린다. 노이즈캔슬링이란 이 차이를 줄여 소음이 작게 들리게 하는 기술이다. 파동에는 간섭이라는 현상이 있어 이런 일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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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가 같은 파동 둘이 만날 때 위상이 같으면 파동이 강해지고 위상이 반대(사인함수의 경우 180도 차이)면 파동이 상쇄된다. 노이즈캔슬링 이어폰은 소음의 파동을 분석해 그와 위상이 반대인 파동을 만들어내 소음을 상쇄시킬 수 있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장착돼 있어 가격이 꽤 비싸다.
▲ 소리는 공기를 매질로 하는 파동으로, 진행 방향으로 밀도차가 바뀌는 종파다. 공기밀도(공기압)를 세로축으로 해 표현한 그래프를 즐겨 쓰기 때문에 자칫 횡파로 오해하기 쉽다. /.사우스햄프턴대 제공
50~1000Hz 소음 줄여줘
사실 노이즈캔슬링 이어폰에서 수동적 소음 조절도 중요하다. 보통 이어폰이 귓구멍 바깥에 걸치는 디자인인 것과는 달리 귀마개처럼 귓구멍에 끼우는 방식(커널형)인 이유다. 수동적 소음 조절 능력 자체만 보기 위해 노이즈캔슬링 기능을 끈 채 착용해봤는데 지하철 소음이 꽤 줄어들었다.
이때 노이즈캔슬링 기능을 켜자 소음이 뚝 떨어지면서 순간 내가 공간적으로 격리되는 듯한 착각이 든다. 이제 지하철에서도 스마트폰 볼륨 표시선의 3분의 1지점까지만 높여도 듣는 데 문제가 없었다. 이론적으로 그럴 거라고 예상했지만 막상 체험해보니 이를 구현한 기술이 대단하다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그런데 이상한 현상을 발견했다. 분명 소음이 아득하게 들릴 정도로 꽤 줄었음에도 오히려 정차할 역을 알리는 방송 소리는 더 또렷하게 들리는 게 아닌가. 이어폰의 입장에서는 이 소리도 소음이므로 노이즈캔슬링의 대상일 텐데 효과가 시원치 않은 것 같다.
▲ 서울 지하철의 소음을 분석한 그래프로 1000Hz 미만 영역이 데시벨이 높다./ J. Audiol. Otol. 제공
사실 이 소리가 정보인 사람의 입장에서는 이런 현상이 오히려 바람직한 일이다. 노이즈캔슬링 이어폰으로 지하철 소음(N)은 90%가 줄었는데 방송 소리(S)는 70% 줄었다고 치면 정보의 질을 나타내는 신호대 잡음의 값이 커져 목소리가 작지만 또렷이 들리는 것이다(예를 들 S/N=100/100=1 → 30/10=3). 그렇다면 소리에 따라 왜 이렇게 노이즈캔슬링 효과가 다른 것일까.
노이즈캔슬링은 소음의 주파수(초당 주기의 횟수)가 50~1000헤르츠(Hz)일 때 효과가 뛰어나다. 지하철 소음이 전형적인 예다. 노이즈캔슬링의 원리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수긍이 간다. 여기 100Hz, 1000Hz, 1만 Hz인 소음이 있다(각각 저음, 중음, 고음). 참고로 사람의 가청 범위는 20~2만 Hz이다.
100Hz 소음의 경우 음파가 한번 진동할 때 걸리는 시간이 0.01초다. 따라서 프로세서가 소음을 상쇄하기 위해 음파를 분석해 위상차가 5밀리초인 반대 위상의 음파를 만들어 내보내야 한다. 현재 기술로 이 정도의 정교함은 충분히 구현할 수 있다.
1000Hz 소리에서는 위상차가 0.5밀리초인 음파를 만들어야 하고 1만Hz 소리에서는 0.05밀리초의 정교함을 구현해야 한다. 현재 기술로는 1000Hz가 노이즈캔슬링의 경계이고 1만Hz는 전혀 안 된다. 그 결과 노이즈캔슬링 이어폰이더라도 1000Hz보다 주파수가 높은 영역의 감쇠는 수동적 소음 조절이 주된 역할을 한다. 착용감이 다소 부담스러운 커널형을 채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참고로 주파수에 따른 수동적 소음 조절의 효과는 노이즈캔슬링과 반대다. 소음의 주파수가 높을수록 차음이 잘 된다. 결국 노이즈캔슬링 이어폰은 저주파에서만 이름값을 하는 셈이다.
▲ 소니 WF-1000XM3를 대상으로 주파수에 따른 노이즈캔슬링 효과를 나타낸 그래프로 이어폰을 쓰지 않았을 때 소음을 ‘0’으로 설정했다. 커널형 이어폰이라 노이즈캔슬링을 하지 않더라도 1000Hz 이상 고음에서는 30데시벨 정도 소음을 꽤 낮추는 효과가 있다. 노이즈캔슬링 기능을 켜면 50~900Hz 영역에서 10~20Hz 정도 소음을 더 낮춰주지만 900Hz가 넘어가면 컸을 때와 별 차이가 없다. / rtings.com 제공
카페에서는 오히려 역효과
사람 목소리의 기본 주파수는 성인 남자가 100~150Hz, 성인 여성이 200~250Hz다. 이것만 보면 저음 영역이므로 노이즈캔슬링으로 쉽게 잡을 것 같다. 그러나 실제 목소리는 이 기본 주파수에 다양한 배음이 조합된 상태이고 주로 500Hz에서 4000Hz 사이에 분포한다. 게다가 목소리가 커질수록 고음의 비율이 높아진다. 따라서 노이즈캔슬링으로는 사람 목소리에서 일부 영역만 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을 뿐이다.
▲ 사람 목소리의 주파수 분포로 기본주파수는 저음이지만 배음이 있어 고음 영역도 포함된다. 여성과 아이가 소리를 지를 때 노이즈캔슬링 효과가 가장 미미할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 DPAO microphones 제공
카공족(카페에서 공부하는 사람)이 옆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의 얘기를 듣지 않으려고 고가인 무선 노이즈캔슬링 이어폰을 사려고 한다면 다시 생각해보기 바란다. 지하철과 마찬가지로 배경 소음이 줄어들면서 자칫 옆 사람들의 대화가 더 또렷이 들릴 수도 있다. 이 경우 노이즈캔슬링 기능을 꺼 적당한 배경 소음이 대화 내용을 못 알아듣게 해주는 상태가 더 나을지도 모른다. 수동식 소음 조절이 뛰어난 커널형 이어폰이면 충분하다는 말이다.
기술에는 명암이 있다지만 노이즈캔슬링은 볼륨을 줄여 청력을 보호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면이 부정적인 면(이동하다 위험 ‘신호’를 알아차리지 못해 사고가 날 수도 있다)보다 훨씬 큰 것 같다. 이게 바로 착한 기술 아닐까.
▲ 노이즈캔슬링 이어폰이라도 1000Hz 이상 고음은 수동식 소음 조절에 의존한다. 노이즈캔슬링이 잘 안되는 고음 영역에서 오히려 차음이 잘 되는 커널형을 채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 애플코리아 제공
우리 뇌에 노이즈캔슬링 회로 있다
노이즈캔슬링 이어폰을 처음 경험해보면 신기하게 느껴지지만 사실 우리는 일상에서 노이즈캔슬링을 경험하고 있다. 우리 뇌에 노이즈캔슬링 회로가 있어 필요할 때 작동하기 때문이다.
밥 먹을 때 나는 ‘쩝쩝’ 소리를 생각해보자. 식탁에 마주한 사람이 정말 게걸스럽게 먹지 않는 다음에야 남이 밥 먹을 때 나는 소리보다 내가 밥 먹을 때 나는 소리가 내 귀에는 더 크게 들려야 하지 않을까. 바로 귀밑에서 나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기가 밥 먹는 소리가 거슬리기는커녕 제대로 인식을 하지도 못한다. 지난 2017년 학술지 ‘네이처 신경과학’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이는 뇌의 노이즈캔슬링 회로가 작동해 내가 밥 먹는 소리가 잘 안 들리게 줄여주기 때문이다.
본론에 앞서 간단하게 우리가 소리를 듣는 과정을 살펴보자. 소리(음파)가 귓구멍을 지나 귀청을 때리면 그 충격이 이소골을 통해 달팽이관으로 전달된 뒤 전기신호로 바뀌어 청신경을 타고 연수의 와우핵으로 간 뒤 중뇌 하구를 지나 시상 내슬핵을 거쳐 대뇌의 청각피질에 이르러 처리돼 우리는 ‘어떤 소리’를 듣게 된다.
와우핵(cochlear nucleus)은 두 쌍이 있어 위치에 따라 등쪽 와우핵(DCN)과 배쪽 와우핵(VCN)으로 불린다. 미국 컬럼비아의대 연구자들은 생쥐가 물을 먹으려고 금속 꼭지를 핥을 때 나는 소리가 유발하는 신경신호를 측정했다. 그 결과 등쪽 와우핵의 발화 빈도가 배쪽 와우핵의 발화 빈도에 비해 꽤 낮았다.
그런데 다른 생쥐가 꼭지를 핥을 때 나는 소리를 녹음해 들려주자 DCN과 VCN의 발화 빈도에 차이가 없었다. DCN은 다른 생쥐가 꼭지를 핥는 소리에는 민감하지만 자신이 핥을 때는 둔감해진다는 말이다.
추가 실험 결과 생쥐가 꼭지를 핥을 때 DCN으로 촉각 등 다른 감각 정보도 들어온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들 정보가 소리 정보에 대한 반응을 억제한다는 말이다. 소리가 아니라 신경신호가 DCN에서 선별적인 노이즈캔슬링을 거친 뒤 중뇌 하구로 전달되는 것이다. 이 역시 정보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 포유류의 뇌는 우리 몸이 만들어내는 소음을 줄이는 노이즈캔슬링 시스템을 진화시켰다는 사실이 2017년 밝혀졌다. 쥐가 물을 먹기 위해 꼭지를 핥을 때 나는 소음(그래프의 검은 선)에 대해 노이즈캔슬링이 일어난 연수의 등쪽 와우핵의 신경 발화 빈도(아래 빨간 선)가 배쪽 와우핵 신경 발화 빈도(위 파란 선)보다 훨씬 낮음을 알 수 있다. / ‘네이처 신경과학’ 제공
꼭지를 핥거나 음식을 먹을 때처럼 내 몸에서 나오는 소리는 정보로서 가치가 없다. 신호가 아니라 잡음이라는 말이다. 반면 외부에서 들리는 소리는 정체를 파악하기 전까지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신호다. 만일 내 몸이 내는 잡음을 줄여 신호 대 잡음 비율을 높일 수 있다면 돌발 상황에 좀 더 빨리 대처해 생존에 유리할 것이다. 우리 몸이 내는 소리를 줄이는 노이즈캔슬링 시스템이 진화한 이유다.
무슨 일로 심통이 나서 연인이나 배우자가 밥 먹는 소리까지 거슬리게 들릴 때 내 몸의 노이즈캔슬링 시스템을 떠올린다면 ‘피식’ 웃고 넘어가지 않을까.
강석기 / 과학 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동아사이언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