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me 어둔 밤 쉬 되리니
Text ECC 3,11-14
(11)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12)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13)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 (14)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것은 영원히 있을 것이라 그 위에 더 할 수도 없고 그것에서 덜 할 수도 없나니 하나님이 이같이 행하심은 사람들이 그의 앞에서 경외하게 하려 하심인 줄을 내가 알았도다
1. 추석이 있는 주간의 주일입니다. 명절을 지내려고 이미 오신 분들도 계시고 오늘 예배하고 바로 고향으로 출발할 분들도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명절을 통해 모처럼 만나는 가족들과 즐겁고 행복한 추억들을 많이 만드시기를 바랍니다. 추석 명절의 대표적인 가족 행사는 추모 예배와 성묘입니다. 추모 예배를 하며 모든 가족 구성원은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어 절대로 남남이 될 수 없는 사이인 것을 확인하며 서로 화목하고 사랑하며 살 것을 다짐하는 것이 명절과 추모 예배의 중요한 의미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선조들이 그렇듯이 모든 사람은 이 세상의 삶에 끝이 있음을 웅변적으로 증언하는 것도 아주 중요한 추모 예배의 의미라 할 것입니다.
또한 오늘은 기독교 대한감리회 총회가 정한 ‘기독교 교육 진흥 주일’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어린이들이 기독교적 가치관으로 무장한 인격을 갖추게 하는 것이 기독교 교육의 목적이라면, 이번 추석 명절은 그런 의미에서도 깊이 연결되어 있다 할 것입니다.
이런 날에 하나님은 전도서 3장 말씀을 주셨습니다. 부디 오늘 주신 성경 말씀이 우리 성도들 모두에게 큰 은혜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2. 먼저, 11절 말씀을 봅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여기에서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다.’에서 ‘때’는 앞의 1-8절에서 말한 ‘때’입니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에 다 때가 있는데,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 외에도 하나님은 그 만드신 모든 것에 다 때가 있게 하셨다고 합니다. 특별히 하나님이 만드신 것 중에 인간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게 하시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작과 끝을 알 수는 없다고 하였습니다.
하루에 아침이 있고 저녁이 있으며 저녁 후에는 어두운 밤이 있습니다. 1년에는 싹이 돋고 자라서 열매를 맺는 봄과 여름이 있고 열매가 익고 잎사귀가 다 떨어져 앙상한 가지만 남는 가을과 겨울이 있듯이, 인생에도 태어날 때가 있는가 하면 마찬가지로 반드시 죽을 때가 있습니다. 또한 이 세상 온 우주도 생성될 때가 있듯이 소멸할 때도 있는 것이 진리입니다. 그리고 그 시작의 때와 끝의 때는 우리 인간으로서는 알 수 없다는 것을 아마 모든 사람이 알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 명절에 추모하는 우리 선조들도 이 ‘때’의 진리를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사람은 개인적 신념과 가치관에 따라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하여 이해를 달리하고 있습니다. 불교는 죽음을 생명의 순환의 일부로 보고 생사의 반복(윤회)가 있다고 하면서, 해탈(열반)에 이르면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 영원한 평화와 해방을 얻는다고 가르칩니다. 이슬람에서는 죽음 후에는 심판의 날이 오는데, 도덕적이고 올바른 삶을 살아가는 행위에 따라 천국(자나트)이나 지옥(자함)으로 간다고 합니다. 신경과학적 관점에서는 의식이 뇌의 신경 활동에 의해 생성된다고 봅니다. 따라서 뇌의 기능이 멈추면 의식도 사라지며, 죽음 이후에는 경험이나 의식이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한 이런 종교나 과학자들의 주장으로는 해석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또한 선행의 기준도 모호하고 사람이 선행으로 여기는 것도 그 실상이 후에 드러나 반대인 경우도 있으며, 선행으로 천국에 이를 사람이 있을 수나 있는지에 대하여도 온전하게 설명할 수 없습니다. 기독교에서는 죽음 이후의 삶이 천국과 지옥 두 가지로 나뉜다고 믿습니다. 여기에서 천국은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하는 행복한 상태를 의미하며, 지옥은 하나님과의 분리와 고통을 뜻합니다.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구속 사역을 믿고 그 은혜를 의지하는 것이 유일한 길이라 믿습니다.
여러분의 선조들 가운데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분들도 계시고 믿지 않은 분들도 계십니다. 그런데, 눅16,28에 보면, 생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아 고통받는 곳에 있는 한 부자가 세상에 살고 있는 자기 형제 다섯에게 사람을 보내어 그들로 자기처럼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해달라고 간청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 가신 선조들이 세상에 있는 후손들이 고통받는 곳에 가지 않기를 염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번 추석에 추모하는 우리의 모든 선조들의 간절한 바람은 이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반드시 죽는 때가 있다. 그리고 죽음 이후에는 영원히 사는 두 곳이 있는데 천국과 지옥이다. 우리 후손들은 꼭 천국에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영원히 죽지 않고 이 세상에서 천년만년 살 것처럼 이 세상만을 위하여서만 살지 마십시오. 또 죽을 때가 왔을 때는 죽음 이후의 삶이 천국으로 예비되어 있어서 평안히 이 세상을 하직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3. 다음, 12-13절입니다. “(12)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13)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 사람은 사는 동안을 기뻐하여야 합니다. 그 이유는 이 ‘때’를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은 그 ‘때’를 아름답게 하셨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사는 ‘때’를 아름다운 ‘때’로 받아들일 때, 사람은 그 사는 동안 선을 행하며 살 수 있습니다. 자기의 사는 ‘때’를 불우하게 보면 원망과 불평으로 살 수밖에 없을 것이며 그런 삶은 자신과 타인에게 해악이 될 것이 분명합니다. 사람에게 먹고 마시는 것이 선물입니다. 저도 어릴 때 ‘안 먹고 살 수는 없을까?’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습니다만, 지금은 사람에게 먹고 마시는 것만큼 좋은 선물은 없다고 확신합니다. 무엇을 먹든 하나님께 감사하고 음식을 주신 분들에게 감사하면서 먹을 수 있고 즐겁게 먹을 수 있습니다.
이 명절은 하나님이 아름답게 하신 아주 좋은 명절입니다. 이는 불변의 사실입니다. 이 아름다운 명절을 최고로 즐겨야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얻는 우리 분깃을 기뻐하지 않으면 안 되고, 우리에게 대한 하나님의 뜻을 기쁜 마음으로 묵묵히 따라야 하며 그 뜻에 순응해야 합니다. 이 명절에 일어나는 일들을 선용해야 합니다. 타인의 유익을 위하여 선용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내 안에 있는 모든 좋은 것을 사용하여 우리 가족과 이웃에게, 가난한 자와 대중에게, 선을 행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사람이 자기 자신들만을 위해 태어난 것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것은 어리석음입니다. 그것은 틀린 생각이며 선을 행하는 것이 우리의 본업입니다.
선을 행하는 이 생애에서의 시간은 짧고 그 기간이 불확실합니다. 우리는 선을 행할 수 있는 시간을 조금밖에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선을 행하는 시기는 바로 이 ‘생’에서이고 이 ‘생’에서 우리는 저 죽음 이후의 다른 ‘생’을 위한 시험과 견습의 상태로 삽니다. 모든 사람의 생은 자기에게 영원한 이익이 되어 줄 것을 행하는 기회인 것이다. 가장 참된 즐거움은 선을 행하는 데에 있으며, 그렇게 행한 것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저축이며 또한 가장 훌륭히 인정될 것입니다.
13절의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라는 말씀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인생에는 ‘수고’를 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수고’를 힘들게 여기고 피해 가려는 것은 잘못된 판단입니다. 오히려 ‘수고’ 또한 하나님이 아름답게 하신 좋은 것임을 믿어야 합니다. 믿음으로 살고 믿음을 따라 행하기 위해서는 ‘수고’가 따릅니다. 그렇게 살기 위해 ‘수고’를 하게 된 것을 좋게 여기고 기쁨으로 여겨 즐기라는 것입니다. 수고로 사랑의 땀을 흘리는 것처럼 아름다운 것은 없습니다. 사도 바울께서도 고전10,31-33에서 “(31)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32)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33)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생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생을 사는 방법이 달라지고 그 생의 가치까지도 달라집니다. 명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명절에도 여러 가지 일이 일어날 수 있고 그 일에 대하여 갖는 태도에 따라 명절이 불행할 수도 있고 행복할 수도 있습니다. 사과 열 개가 있습니다. 열 개의 사과를 먹으면서 마지막까지 제일 좋은 것을 먹는 비결이 있습니다. 그것은 있는 것 중에 제일 좋은 것부터 먹는 것입니다. 남아 있는 사과 중에서 제일 좋은 것부터 먹는 사람은 열 개를 다 먹는 중에 늘 제일 좋은 것을 먹습니다. 반대로 제일 좋은 사과보다 제일 못한 사과부터 먹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껴 먹느라고 그럴 수 있고 나중에 좋은 것을 먹으려고 그럴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제일 좋지 않은 사과부터 먹는다면 열 개의 사과를 먹는 내내 그 사람은 제일 좋지 않은 것을 먹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명절이라는 사과를 어떻게 먹으려 하고 있습니까?
4. 마지막으로 14절을 봅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것은 영원히 있을 것이라 그 위에 더 할 수도 없고 그것에서 덜 할 수도 없나니 하나님이 이같이 행하심은 사람들이 그의 앞에서 경외하게 하려 하심인 줄을 내가 알았도다” 전도자가 무릎을 치며 깨달은 것, 세 번째는 하나님께서 바르고 좋게 하시려는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사람으로서는 알 수 없기 때문에 더할 수도, 덜어낼 수도 없으니, 사람은 하나님께서 개인적 관심사나 공공의 관심사에 대해 내리시는 모든 처분을 전적으로 흡족히 여겨야 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가장 지혜롭다는 것입니다.
해는 뜨기도 하지만 지기도 합니다. 달도 차서 보름달이 되는가 하면 기울어 그믐달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확실히 앞으로의 세상은 지금만치 나쁘진 않을 거야’라고 한다든가, 아니면 ‘우리가 지금 겪는 실망만큼 허무한 것을 경험할 때는 없을 거야.’라고 말하는 것은 지각없는 말이 됩니다. 시간이 우리를 개선시켜 줄 수 없으며, 슬퍼하는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기뻐할 시간이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인간으로서는 알 수 없는 하나님의 계획에 속해 있을 뿐입니다.
확실한 것은 하나님의 구원계획은 하나님의 뜻대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밝히신 뜻에는 종말과 새 세상‘, 밤이 오며 또한 아침이 온다.’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형통한 중에 있다고 해서 안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안심하는 사람에 대하여서는 예수님께서 눅12장에서 ‘세상에 대하여서는 부요하나 하나님께 대하여는 가난한 어리석은 부자’라고 비유로 설명하여 주셨습니다. 곧 어두운 밤이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누리고 있던 환락이 끝이 나고 연일 즐기던 잔치가 끝날 날이 오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지금 역경 속에 있다고 하여 낙담하지도 말 것이니 그 수고를 그치고 십자가 우편 강도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평안과 기쁨을 누릴 낙원의 때가 다가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헷세의 시 두 편을 소개하면서 말씀을 마칩니다.
시든 꽃// 모든 꽃은 열매가 되고/ 모든 아침은 저녁이 되려 한다/ 이 세상에서 영원한 건 변화와 무상뿐!// 가장 아름다운 여름조차/ 언젠가는 가을이 되고 시들어 간다/ 잎사귀야, 바람이 너를 낚아채 가려 하거든/ 꾹 참고 가만히 있으렴// 네 유희를 계속하며 저항하지 마라/ 가만히 그저 내버려두어라/ 바람이 너를 떨어뜨려 집으로/ 실어 가게 하려무나
방랑을 하며<크놀프를 생각하며>// 슬퍼하지 말아요, 곧 밤이 옵니다./ 밤이 오면 쉬게 될 거예요./ 서늘한 달님이 살포시 웃어주는 것을 바라보며/ 서로 손을 잡고 쉴 거예요.// 슬퍼하지 말아요, 곧 때가 옵니다./ 때가 오면 쉬게 될 거예요./ 우리의 작은 십자가 두 개가 나란히 밝은 길가에 서 있을 거예요./ 비가 오고 눈이 오고/ 바람이 오갈 거예요.
우리 성도들 가족 모두 구원의 은혜를 받고 곧 오는 밤에 찬란히 빛나는 별이 되는 복이 있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