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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재림교인이 구원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 - 함민호 목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정말 만나뵙게 되어서 정말 반갑습니다.
사경회를 월요일부터 하는 교회는 요즘에 많지 않은 것 같은데 우리 삼패동교회 성도님들의 하나님을 사랑한 그 사랑과 또 열정이 많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와서 서로 인사를 나누시는 모습을 보니까 교회가 굉장히 따뜻하고 또 사랑이 넘치는 그런 교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목사님 안녕하세요. 원주 36 대선배님이신데 목사님 또 이렇게 교회에 출석하시는 줄 제가 못 알아뵙습니다.
이렇게 귀하고 또 따뜻하고 아름다운 교회 초청해 주셔서 정말 감사하고요.
우리 정덕준 중 목사님께서 아주 훌륭하게 목회를 잘하고 계시다는 소식을 우리 앞에서 많이 듣습니다.
제가 또 이렇게 4년 동안 나가 있다 와가지고 목사님이랑 많이 이렇게 같이 있을 시간은 많이 없었는데 또 학회에 들어오면서 또 많이 이야기도 듣고 알게 되었습니다.
또 목사님 심모하시는 교회에 초청해 주셔서 정말 감사하고 한 주 동안 우리의 심령과 마음이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은혜로 충만해지는 그런 한 주의 시간이 되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저는 이번 한 주일 동안 제가 나름대로 정해본 제목은 재림 교인들이 구원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 라고 정해봤고요.
사경회는 여러분 보통 책을 정해서 이렇게 공부를 하잖아요.
그래서 저도 나름 책을 정했습니다. 그 책은 바로 로마서입니다.
로마서 다른 로마서를 설명해 놓은 책을 굳이 정하지 않았고요.
이번 일주일 동안 우리가 이 로마서 안으로 들어가서 목표는 1장부터 8장까지는 적어도 우리가 한번 다 살펴보는 것입니다.
다 읽어보고 함께 읽어보고 로마서가 정말로 우리에게 이야기해 주고 있는 바가 무엇인지 성경을 통해서 우리가 한번 직접 이해해보고 깨달아보는 그런 시간을 좀 갖기를 원합니다.
로마서는 총 16장으로 되어 있는데요. 그중에서 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가장 중요한 기별을 전하는 것은 1장부터 8장입니다.
그래서 로마서는
다른 부분들도 중요하지만 1장부터 8장 특별히 한 3장부터 8장에 있는 내용들을 우리가 잘 이해하면 우리의 신앙은 흔들리지 않는 굳센 반석 위에 세워지게 됩니다.
저는 나름대로 이 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진리를 잘 깨닫거나 이해하지 못했었습니다.
오랫동안 제가 안수를 받고 목회를 하면서도 이 부분이 참 어려웠어요.
그래서 제가 목회를 그만두려고도 참 많이 생각을 했었고 참 힘들더라고요.
그 어려운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들을 살펴가면서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또 그분께서 베푸신 용서와 자비가 무엇인지를 제가 깨닫게 되었을 때 제 마음속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평강과 기쁨을 누리기 시작했고 그다음부터는 이제 삶과 목회와 신앙의 모든 방향들이 정말 새로워지는 것들을 경험해왔고 또 지금도 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래서 이번 한 주 동안은
여러분들께서 빠지지 않으시고 이 사경회에 잘 참석하시면 물론 평소에 목사님께서 주시는 좋은 말씀들도 우리에게 꼴이 되지만 때때로는 여러분 외식하는 것도 좀 좋지 않으십니까?
그래서 뭐 살찌게 하는 것은 집밥이지만 그러나 때때로 우리의 입맛을 돋우는 것은 또 밖에서 남이 해주는 음식도 또 좋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이번에 결심을 아시고 교회에 오셔서도 로마서를 읽으시고 또 집에서도 개인적으로 로마서를 계속 읽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한 구절 한 구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게 왜 이 얘기를 했을까 이 말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이해하고 깨닫기 위해서 여러분의 모든 지성과 또 지식과 또 경험들을 다 활용해가지고 이 말씀들을 이해하는 일에 좀 한 주일의 시간을 좀 보내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준비해 주신 놀라운 축복과 은혜가 우리의 심령 가운데 차고 넘치는 것을 이번 돌아오는 안식일에 분명히 느낄 수 있게 되리라 믿습니다.
우리
다 같이 하나님의 말씀 먼저 요한복음에 있는 말씀을 제가 한 구절 읽고 기도하고 시작하겠습니다.
다 아시는 말씀인데요. 요한복음 3장 3절에 있는 말씀을 제가 봉독하겠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내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기도하겠습니다.
은혜로우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로 하여금 이 추운 겨울이지만 그러나 일주일의 시간을 우리가 구별하고 하나님의 말씀 깊은 곳으로 내려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셨사오니 주님 정말 감사합니다.
아버지 이 한 주 동안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말씀들 중에 특별히 로마서에 있는 말씀, 우리를 어떻게 구원해 주셨는지에 대한 놀라운 이야기들이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는 이 말씀을 우리가 살피기 원하오니 주의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하여 주십시오.
그리고 갈급한 심정으로 이 말씀을 찾고 읽고 연구하는 모든 심령 심령들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예비해 주신 충만한 은혜가 차고 넘치는
귀한 시간 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제가 기도하는 가운데 갑자기 한 가지 깨달아지신 게 있어요.
뭐냐 하면 우리 사모님을 제가 어디서 봤는지가 생각이 났어요.
기도하는 중에 사모님 죄송합니다. 제가 어디서 봤지 계속 그러고 있다가 사모님의 모습이 기도하는 중에 떠올랐습니다.
또 사모님 계신 교회에 오니까 더 또 기쁨이 있고 좋습니다.
우리 로마서의 말씀 들어가겠습니다. 로마서 1장부터 제가 쭉 읽어내려가겠습니다.
그리고 한 구절 한 구절씩 제가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설명하면서 이렇게 나아가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게 총 5번 6번에 끝내려면 굉장히 빨리 읽어야 될 것 같아요.
설명도 하고 해야 된다면 그래서 빨리 좀 스피디 있게 좀 나가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
1장 1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여러분 바울이 누군지는 잘 아시죠?
사도바울이 이 로마서를 썼다는 데는 모든 학자들이 이견이 없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 바로 바울이에요.
그리고 바울은 신약성경의 거의 3분의 2 정도의 기록을 이 바울 사도가 남겼습니다.
바울은 뭐가 분명한 사람이었냐면 다른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지만 복음이 분명한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어디 가든지 바울은 분명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그 복음을 믿고 받아들이면 사람의 생애가 바뀌는 거예요.
삶이 완전히 바뀌어요. 눈빛이 바뀝니다. 모든 것이 바뀌어요.
그래서 사도바울은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하면서 갔어요.
가는 도시마다 그는 복음을 전했고 그곳에서 하나님을 믿기로 결심한 사람들에게 기본적인 것들을 알려주고 또 떠납니다.
그리고 새로운 장소에 가면서 계속 그는 복음을 전하고 그곳에 교회를 세우는 일들을 했죠.
사도바울은 회심한 이후에 세 번에 걸쳐서 지금으로 말하면 터키와 그리스 지방이죠.
소아시아 지방을 다니면서 복음을 전했는데,
세 번째 여행 때 3차 선교 여행 때 이 고린도 지역 고린도 지역이 여러분 어딘지 아세요?
그리스 유럽의 관문이잖아요. 그리스 지역의 고린도 지역에서 3개월 동안 머물렀어요.
근데 그 3개월 동안 머물면서 이제 바울이 어떻게 생각했냐면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터키 쪽에 복음을 전했고 그다음에 이제 유럽으로 넘어들어와서 유럽의 관문이었던 그리스의 복음을 전한 거예요.
그래서 바울이 이제 어디를 가기를 원하냐면 이탈리아 이탈리아로 넘어가길 원하는 거야.
당시에 로마 제국의 수도가 있었던 그 이탈리아에 가서 가장 큰 도시인 로마의 복음을 전하고 그 이후에 유럽의 끝자락으로 여겨졌던 서바나 스페인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기 원했던 것이 바울의 목적이었어요.
그래서 고린도에 머무는 3개월 동안 이제 고린도에서 다시 날씨가 좋아지면 예루살렘에 갔다가 그다음에 로마로 가는 것이 목적이었어요.
그래서 고린도에서 머무는 동안에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쓴 편지가 바로 로마서예요.
근데 이 로마서가 약간 특별한 것은 무엇이냐 하면 바울은 보통 편지를 쓸 때 그 대상들이 자신이 복음을 전해서 세워놓은 교회에 편지를 보냈어요.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다 마찬가지입니다. 거기서 시하고 목회하면서 사람들이 바울이 무얼 얘기하는지를 다 알아들어요.
이미 바울이 그 사람들에게 직접 복음을 전했기 때문에 바울이 아하면 알을 알아듣고 어하면 어를 알아듣는 거예요.
그래서 편지를 쓸 때 이 복음과 구원에 대해서 자세하게 쓸 필요가 없어요.
이미 다 설명했기 때문에 갈라디아서도 견책을 하면서 중요한 것들을 딱 다시 설명하긴 하지만 로마서처럼 자세하지 않아요.
복음이 그러나 로마서는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바울이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바울이 이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를 쓸 때는 이 복음이 무엇인지를 최대한 자세하게 풀어가지고 설명한 거예요.
그래서 성경에 이 복음이 모르는 사람에게 복음을 설명할 수 있는 가장 탁월하고 좋은 책이 바로 로마서인 거예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기 때문에 바울이 뭘 얘기하는지를 그 사람들은 들어본 적이 없거든요.
그래서 아주 복음의 인문부터 시작해가지고 복음에서 중요한 모든 부분들을 다루어서 편지를 쓴 내용이 로마서인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지금 로마에 있는 사람들에게 내가 복음을 위해서 부름을 받은 사람이다라고 얘기를 하면서 2절에 이 복음은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통하여 누구에 대해서요?
그의 아들 누구시죠? 예수님 예수님에 대해서 약속하신 내용이 바로 복음이다.
여러분 복음이 누구에 대한 것이라고요? 예수님 근데 로마서만 예수님에 대해서 다룹니까?
아니죠. 성경 전체가 다 예수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에요.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예수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거예요.
우리 다 아시잖아요. 구약은 약속된 메시아 메시아를 기록해 놓은 책이고 그다음에 신약은 다시 오실 예수님에 대해서 기록해 놓은 책이라는 거 우리 다 알고 있죠.
근데 왜 예수님이 오셔야 되죠? 창세기 3장에
하나님께서 양을 잡아서 예수님이 이와 같은 모습으로 올 거라는 것을 아담과 하와에게 말씀해 주셨잖아요.
그죠? 그럼 그 예수님이 왜 오셔야 되는 거예요? 누구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서요?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서 오셔야 되는 거예요.
여러분 그럼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의 죄 용서해 주셨어요.
근데 아멘이 왜 이렇게 작으시죠? 예수님이 오셔서 나의 모든 죄 다 용서해 주셨습니까?
확실합니까? 네 고맙습니다. 이게 로마서의 주제예요.
이게 복음이에요. 예수님이 이미 나의 모든 죄를 용서해 놓으셨다 라는 것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이 질문에 아멘 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은 이 사실을 분명하게 믿는 사람들이에요.
근데 이 사실에 대해서 아멘을 하고 싶은데 내가 죄가 너무 많은데라고 생각이 들면 내가 아직 못 믿는 거예요.
이 부분이 어떻게 이게 왜 그런지를 이제 로마서를 통해서 제가 계속 말씀을 반복해서 말씀을 드릴 거예요.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딱 이 주제 하나예요.
매일 똑같은 주제로 말씀을 드리는데 내용은 약간씩 다르죠.
그죠? 그러나 주제는 같아요.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왜 오셔야 되냐 나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오셨다.
그래서 그분이 진짜 오셔서 2천 년 전에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셔서 어떻게 하신 거예요?
십자가에서 어떻게 하신 거예요? 죄를 누구 죄를 용서하셨어요?
네 그러면 내가 용서받은 사람입니까? 아멘 지난주 이런 얘기 자꾸만 하면 시간이 늦어지는데 너무 재밌는 이야기가 있었어요.
저희 아이가 막내가 4학년이거든요. 자녀들이 셋인데 이제 저희 집사람이 새로남 쉼터의 예배의 말씀을 이제 듣고 있었어요.
근데 저희 아이가 엄마랑 같이 이제 그 말씀을 같이 들었나 봐요.
근데 그 안에서 이제 원장님이 새로 나온 우리 김영근 원장님이 하시는 설교를
이제 저희 아이가 듣고 저한테 얘기를 해주는 거예요.
아빠 아빠 오늘 이런 설교를 하셨어 이런 내용을 얘기를 하셨는데 그 내용이 뭐냐면 어떤 분이 이 관절 턱관절염이 걸려가지고 이 말씀도 못하고 너무 고통스러워가지고 쉼터를 오셨대요.
근데 이제 원장님이 물으신 거예요. 아니 왜 턱관절 이렇게 병에 걸리신 것 같으세요 하고 물으니까 그분은 아마 우리 재림 신앙을 하시는 분인지 어떤 분인지는 제가 잘 모르겠어요.
근데 그분이 이렇게 대답을 하셨대요. 저희 아이가 얘기를 해주는 거예요.
아빠 그분이 뭐라고 대답하셨냐면요. 하면서 자기가 죄를 너무 많이 져가지고 하나님이 자기를 치셨다는 거예요.
그래서 아 그러세요? 그런데 그럼 신앙은 왜 하세요?
하나님은 왜 믿으세요? 그랬더니 그분이 뭐라고 대답했냐 하면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내가 믿습니다.
이렇게 대답하셨대요. 아 그래요. 그런데 턱관절은 왜 왔어요?
내가 죄를 많이 지어서 하나님이 나를 치셨어요. 아 그러세요?
근데 예수님은 왜 믿으세요? 저희 아이가 계속 반복해서 그걸 얘기를 해주는 거예요.
여러분 저는 되게 신기했어요. 우리 아이가 이걸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신기한 거예요.
신앙을 왜 하세요? 턱관절이 왜 왔어요? 하나님이 날 치셨어요 내 죄 때문에 날 치셨어요.
예수님을 왜 믿으세요? 예수님이 나의 죄를 용서해 주셔서 내가 믿어요.
그럼 예수님이 용서해 주셨는데 왜 치시죠? 여러분 이해가 되세요?
이게 그래서 무한 반복을 하는 거예요. 저희 아이가 저한테 이거 코미디 아닙니까?
여러분 여러분 예수님 우리 죄 용서해 주신 거 맞아요.
근데 왜 우리 죄 때문에 고민하고 있죠? 왜 내 죄 때문에 왜 하나님 앞에 못 가겠다는 생각은 도대체 어디서 온 거죠?
네 이 부분이 우리에게 풀리지 않는 숙제예요.
이것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죄의 문제 때문에 씨름하고 씨름하고 씨름하고 힘들어하다가 내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가지고 내가 결국 이 사단이 났다고 생각을 하게 돼요.
그래서 나중에는 하나님도 잃어버리고 신앙도 잃어버리게 되는 경우들이 굉장히 많아요.
아니면 율법을 부인해버리든지 그래서 율법이 더 이상 나를 정제하지 못하도록 내가 그냥 값싼 믿음으로 내가 구원받았으니까 더 이상 죄의 문제는 율법은 순종하지 않아도 구원받을 것처럼 생각하는 그렇게 가거나 아니면 죄의 문제 때문에 이게 해결이 안 돼가지고 결국은 신앙을 떠나거나 그런 분들이 너무나 많은 것입니다.
네 계속 나가겠습니다. 다른 이야기들 하면 시간이 많이 바빠지니까.
그래서 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이 복음이에요.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우리 인식 가운데 그것이 정리되고 들어오느냐에 따라서 우리가 참된 신앙과 기쁨의 신앙을 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4절에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그분이 누구시냐 죽었다가 살아나셔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신 그분 그분이 바로 복음의 핵심 내용인 것입니다.
그래서 5절에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서 그 일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내가 직분을 받아가지고 모든 이방인들이 그 예수님을 믿을 수 있도록 내가 지금 그 일을 하고 다닌다.
그러면서 6절에 너희도 그럼 너희 누구죠? 로마인들 그죠 로마에 사는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름을 받은 자니라 그 복음을 믿고 깨달은 사람들이지 하고 얘기를 하는 거예요.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하고 이제 인사를 딱 하는 거죠.
그렇죠. 우리 삼패동 교회에 계신 모든 성도님들의 심령 심령마다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제가 이렇게 인사하는 것처럼 사도바울도 지금 인사를 한 거예요.
그러면서 이제 본격적으로 조금 더 본인 개인 이야기를 합니다.
먼저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에 관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내가 정말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로마에 있는 사람들의 믿음이 어떻게 된다고요?
우리 삼패동 교회에 있는 교훈님들의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고 있습니까?
우리 동중하나 앞에 내 산패된 교회 하면 그 성도님들은 정말 믿음이 훌륭하신 분들이야.
하나님을 정말 열심히 믿고 있고 그 열매가 그냥 충만하게 맺히는 분들이야
이런 소문이 들리더라고요. 그렇죠 들려야 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깨달은 사람의 삶 가운데는 그런 열매들이 분명하게 맺히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로마에 있는 사람들이 그 열매가 그들의 삶 가운데 맺혀서 사도바울이 듣게 된 거예요.
로마에 사는 성도들이 신앙을 잘하고 있대 아주 훌륭하대.
그런 이야기들이 들려온 것을 사도바울이 들은 것입니다.
그래서 너무 감사하다는 거예요. 내가 그의 아들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내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내가 얘기하는데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어떻게 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
나는 정말 로마에 가서 너희들을 너무나 만나보고 싶어 여러분들을 정말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 제 마음에 가득합니다.
이렇게 얘기를 하는 거죠. 그죠
그러면서 내가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제가 여러분들을 만나기를 원하는 것은 어떤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눠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이니 신령한 은사라는 건 성령의 은혜겠죠.
그죠 성령의 은혜를 성령을 충만하게 더 받을 수 있는 그런 방법들과 비밀들을 내가 너희들에게 함께 나눠서 그 은혜가 충만하게 되기를 원한다.
그러면서 이는 왜 그러냐 하면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피차 아니함을 얻으려 함이니라.
여러분 우리가 그런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고 있으면요.
같이 예수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기도하고 찬양하는 가운데 우리의 마음이 서로 격려가 되고 믿음이 동반 성장하게 되는 거잖아요.
그쵸. 근데 한쪽이 냉랭해요. 한쪽은 복음을 몰라요.
그러면 이게 소통이 잘 안 되겠죠 그죠 그러나 로마에 사는 사람들과는 그런 은혜를 서로 누리고 싶다는 그 표현을 바울이 지금 들려준 거겠죠.
그죠
그러면서 13절에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하는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무슨 말입니까?
내가 여러 번 가려고 했었다. 근데 근데 이는 너희 중에서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함이로되 지금까지 그 길이 막혔었다.
내가 다른 데서 복음을 전해서 그 사람들이 복음을 믿고 기뻐했던 것처럼 너희들도 그렇게 되고 또 그렇게 만나기를 원하지만은 하나님께서 그 길을 막으셨다는 거죠.
그러면서 14절에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고 사도바울이 내가 빚진 자래요.
왜 빚진 자죠? 사도바울이 돈 것을
감정을 가질 수밖에 없어요. 왜냐하면 사실 그 로마인들에게 빚을 진 게 아니에요.
바울이 누구에게 빚을 졌냐면 예수님께 빚을 진 거예요.
너무나 큰 빚을 졌어요. 자기의 생명값을 대신 치르신 그 예수님께 내 생명 생명의 빚을 진 거예요.
그러니까 이제 바울은 예수님께 그 빚을 갚아드리는 삶을 살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그분이 위하여 돌아가신 그 영혼들을 위해서 그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 사람들을 구원하는 일에 자기 자신을 온전히 헌신하고 싶었던 거거든요.
그래서 이 빚을 진 거예요. 그래서 내가 빚진 자이기 때문에 내가 이방인이나 헬라인이나 내가 유대인이나 모든 사람들에게 이 좋으신 하나님의 복음을 내가 나누고 싶다 그 얘기를 하고 있는 거죠.
여러분 우리 안에도 그런 바울과 같은 심정이 있습니까?
그런 기쁨이 있습니까? 그 복음을 사람들에게 나누고자 하는 그런 열정들이 있나요?
우리 삼패동 교회는 있으신 것 같습니다. 벌써 아멘 소리가 다르네요.
그러면서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뭘 전하고 싶다고요?
저도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그러므로 나도 할 수 있는 대로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기를 원합니다.
저는 이것이 너무나 기쁘고 행복해요. 제가 지난주에도 이제 몇몇 분들을 만났어요.
근데 그분들이 이 복음의 문제가 해결이 안 돼가지고 정말 힘들고 고민하는 분들이에요.
이분들에게 이 복음이 무엇인지를 설명해주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어떻게 달려 돌아가셨는지를 설명해주고 그분들이 그 은혜를 깨닫게 될 때 이 쌓여 있던 이 흑암 가운데서 깨고 나오는 거예요.
그걸 보는 것은 너무나너무나 큰 기쁨이에요. 사도바울은 다른 세상에 재밌는 게 없었어요.
복음을 전하는 거 여러분 저에게 누가 이 세상에서 가장 기쁘고 행복한 일이 뭡니까?
물으시면 저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어요. 저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거라고
그게 제 취미고 그게 제 특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이것만이 우리를 기쁘게 만드는 거예요. 사도바울은 불철주야 복음을 전하러 다니고 그렇게 몰매를 받고 그렇게 힘들게 살면서도 그는 하나도 힘들어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그의 마음속에 바로 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의 심령도 그런 복음으로 타오르게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그러면서 사도바울이 정말 유명한 이 말을 남기죠.
다 같이 16절은 다 같이 읽어볼까요? 시작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니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라. 여러분 복음이 뭐가 된다고요?
능력 복음은 능력입니다. 능력 여기서 예전에 어떤 목사님 설교하는 걸 들었는데 이 능력이라는 단어가 두나미스라는 헬라어라 그러시더라고요.
근데 이 두나미스라는 단어는 다이나마이트 할 때 사용되는 그 단어래요.
어마어마한 파괴력을 가지고 있는 능력이라는 거예요.
복음이요. 그러니까 복음이 올바로 깨달아지고 복음이 올바로 그 안에 들어가면 폭발이 일어나는 거예요.
그러나 그게 올바른 복음이 아니고 올바른 복음이 아니라 불발되는 거지 불발.
그죠? 여러분 우리 안에 있는 복음은 폭발하고 있나요?
왜 갑자기 아멘이 줄어들었습니까?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여러분 이 16절은 여러분 잘 아시죠? 16절은 정말 모든 믿는 자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는 이 말씀 그리고 그와 더불어서 17절에 이 17절 다 같이 한번 읽어보죠.
복음에는 시작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여러분 이것 때문에 회심한 사람 있죠? 누군지 아십니까?
마틴 루터 마틴 루터가 이 17절 때문에 회심한 거예요.
마틴 루터는 여러분 잘 아시는 것처럼 가톨릭의 신부였잖아요.
근데 그가 아무리 노력하고 아무리 애를 써도
심령 가운데 하나님과 평광의 관계를 누리고 있다는 그 만족감이 느껴지지 않는 거예요.
여러분 여기 우리 장로님 계신데 제가 장로님이랑 정말 크게 싸웠습니다.
정말 막 다시는 안 볼 것처럼 정말 이렇게 대판 크게 싸웠어요.
그럼 화해를 안 하고 지내면 마음이 어떻죠? 행복합니까?
엄청 불행한 제일 마음이 불편하게 하는 게 사람과의 관계가 삐뚤어졌을 때가 제일 불편한 거예요.
그래서 집안에서 아내와의 관계, 남편과의 관계가 삐뚤어지면 여러분 밖에 가서 이게 일이 제대로 잡힙니까?
안 잡히잖아요. 그죠? 관계가 삐뚤어지면 사람과의 관계가 삐뚤어져도 마음에 평안이 있을 수가 없어요.
근데 하나님과 나 사이에 이 관계가 삐뚤어져 있으면 우리 마음은 절대로 평화를 누릴 수가 없습니다.
절대로요. 그러면 내가 신앙을 오랫동안 하면서도 나한테 평안이 없다.
그럼 내가 지금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로 맺어져 있는 걸까요?
안 맺어져 있는 걸까요? 안 맺어져 있는 거예요.
근데 그 평안의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바로 이 복음이에요.
이 복음이 올바로 우리 안에 작동될 때 우리는 하나님과 우리가 올바른 화평의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굳게 믿고 하나님께 담대함으로 나아갈 수 있고 그분 안에서 누릴 수 있는 그분의 모든 축복과 은혜들을 누리며 사는 거예요.
그럴 때 그분이 우리 안에 임하셔서 우리 안에 이 다이나마이트와 같은 폭발적인 능력을 행사하시는 거예요.
그러면 다른 사람들이 금방 알아채겠죠. 우리 안에 그런 폭발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 표정만 보고 그 사람의 신앙 모습 조금만 보면 이게 뭐지 하고 분명히 알 수 있게 됩니다.
숨길 수가 없어요. 여기 이 안에서 다이나마이트가 터지는데 이걸 어떻게 숨기겠습니까?
이제 사도바울이 여기까지는 서론이에요. 그리고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사도바울은 복음을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한 가지 깨달아야 될 분명한 것이 뭐냐면 복음을 이해하기 전에 먼저
죄가 무엇인지를 이해해야 돼요. 죄를 모르면 복음이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여러분 만약에 갑자기 이렇게 친구가 오더니 얼굴을 딱 보더니 야 너는 아무리 봐도 암 말기가 분명해 넌 암 말기야 오늘 아침도 잘 먹고 건강생활 열심히 하고 운동도 열심히 하고 다 잘하는데 갑자기 얼굴을 보더니 너는 암 말기가 분명해 이렇게 하면 여러분 어떻게 하시겠어요?
그래 고마워 이렇게 하실 분 계십니까? 어떻게 하시겠어요?
성질을 내겠죠. 무슨 지금 말을 하고 있는 거냐고 말도 안 되는 얘기하지 말라고 막 화를 내겠죠.
그죠? 근데 그 친구가 어제 찍은 MRI를 탁 가지고 와가지고 탁 들이대면서 이거 보라고 그 친구가 의사인데 그거 딱 보라고 하고 딱 딱 내보여주면 그다음에 생각이 좀 달라지겠죠.
그렇죠 여러분 세상에 있는 많은 사람들한테 세상에 있는 사람들이 교회에 와가지고 제일 듣기 싫어하는 이야기가 뭔지 아십니까?
죄인이라는 이야기 왜 자꾸만 죄인이라고 하냐고 내가 무슨 뭐 밖에서 무슨 엄청나게 큰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왜 죄인이라고 얘기하냐고 그러니까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에게 자꾸만 죄인이라고 얘기하는 것은 굉장한 신뢰예요.
거기다가 기분 나쁘게 만드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먼저 뭘 하게 해줘야 되냐면 내가 왜 죄인인지를 명확하게 설명하고 이해를 시켜줘야 돼요.
그래야지만 그런 죄로부터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감사해지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복음은 순서가 있어요. 항상 먼저 죄를 먼저 보여줘야 돼요.
근데 죄를 깨달으려면 뭘 알아야 되냐면 율법을 깨달아야 돼요.
법을 모르면 죄를 못 깨닫는 거예요. 그래서 사도바울은 이제 시작하면서 바로 여기에서 이 율법을 먼저 들이대면서 우리가 왜 죄인인지를 설명해 주고 있는 거예요.
그게 3장 18절까지 쭉 나옵니다. 그러니까 죄가 뭔지를 쭉 설명하는 거예요.
오늘 이걸 다 넘어가야 되는데
하여튼 최대한 빨리 가보겠습니다. 가는 데까지 18절부터 제가 읽겠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 진리로 막는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사도바울은 첫 번째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인들에 대해서 얘기하는 거예요.
그 사람들이 왜 죄인인지 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죄인인지에 대해서 얘기를 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요. 근데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도 그 마음속에 뭐가 있다고요?
양심이 있어요. 그래서 하나님을 부인하는 사람들도 사실은 그 아주 이 마음속에 있는 양심이 그러면 안 된다고 얘기를 해줘요.
그런데 왜 하나님을 부인하는 거냐 내 죄를 버리기 싫거든요.
하나님을 부인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왜 부인하냐면 내 안에 죄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요.
모든 사람들은 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걸 속에 알아요.
근데 하나님께 가려면 그 죄를 버려야 된다는 생각 때문에
하나님은 오히려 부인해버리는 거예요. 그래서 그렇게 하나님을 거절하게 되면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밑에부터 쭉 설명하는데,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물을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그러니까 천연계를 보면서 하여튼 어쨌든 우리 양심 가운데서 그들은 하나님을 알 수 있게 된다는 거예요.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의 모양과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거절하면 하는 일이 뭐냐 하나님 대신에 다른 걸 섬기는 거예요.
그럼 뭐 섬기죠? 네 돈도 섬기고 그다음에 우상들 많이 만들잖아요.
뭐 소도 섬기는 사람이 있고
개도 섬깁니까? 개도 섬기는 사람도 있고 그다음에 뭐 일반적으로 금속 금속으로 불상 같은 거 만들어 놓고 그다음에 하여튼 뭐 나무를 섬기는 사람들이 해를 섬기는 사람 달도 있고 다 있잖아요.
그죠? 근데 여러분 우리는 거기에 해당은 안 되지만 이 사람들에 해당은 안 되잖아요.
적어도 그런데 되게 이상하죠. 진짜 똑똑하잖아요.
사람이 만물 중에서 제일 똑똑한 사람이잖아요. 그쵸 근데 그 사람들이 어디에다 머리를 조아해요.
아니 이런 저런 생명이 있긴 하지만은 이 생각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이런 꽃에다 갖다 빌면서 머리를 조아리는 거예요.
여러분 이게 너무 이상하지 않습니까? 금속 뭐 나무 뭐 돌로다 뭘 깎아다 놓고 생각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그곳에 갔다가 막 벌벌벌 기면서 비는 거예요.
여러분 이게 이게 정말 너무 어리석고 어리석은 일들 중에 어리석은 일이잖아요.
만약에 우리가 이렇게 대학생이 있잖아요. 유치원생한테 가가지고 박사님
너무 훌륭하세요. 어떻게 이렇게 똑똑하실 수가 있어요?
이러면 이런 사람을 제정신으로 보겠어요 어떻게 그 사람 제정신으로 보겠어요?
훨씬 더 똑똑하고 아는 것도 많고 훌륭한 사람이 아무것도 모르는 그런 유치원생한테 가가지고 근데 유치원생보다 더 한 거죠.
사실은 이 꽃은 유치원생도 못하잖아요. 이게 무슨 생명이 있고 이게 무슨 생각이 있고 이게 뭐가 있어요?
근데 사람들이 왜 이렇게 되는 거예요? 왜 이렇게 된다 그래요?
지금 바울이요 누굴 거절하니까 하나님을 거절하니까 세상을 창조하시고 만왕의 주인이 되시는 이 하나님을 거절하면 사람들이 이렇게 바보같이 우둔하게 되는 거예요.
똑똑해지고 싶다면 하나님을 올바로 알아야 돼요.
하나님을 제대로 알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하고 위대한 사람들이 될 수 있는 거예요.
제가 이제 어떤 분이랑 성경 공부를 하게 됐는데 저는 이분이 그렇게 훌륭한 분인 줄 몰랐어요.
알고 봤더니 이분이 서울대학에서 박사를 하시고 카이스트에서 포스트 닥터를 하시고 있는
정말 수제 중에 수제신 거예요. 근데 제가 성경을 펴가지고 인생의 이 문제와 구원의 문제와 영원한 생명에 대한 문제를 설명해 주니까 이분이 무릎을 치면서 너무나 기뻐하고 막 행복해하면서 막 저한테 고마워하는 거예요.
저는 학교 다닐 때 공부 진짜 못했거든요. 그래서 제가 나중에 그걸 알고 제가 하느님 우와 진짜 이런 일도 다 있네요.
여러분 어디 가고 박사를 앉혀놓고 여러분 이렇게 막 가르쳐 볼 수 있겠습니까?
우리 같은 사람이요. 근데 인생의 문제를 알고 세상이 어디서부터 어디로 왔는지를 알고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신 분인지를 알면 세상에 아무리 똑똑하고 훌륭한 사람들이 와서도 우리한테 배워야 돼요.
그분들이 이 인생의 진정한 이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고 영원한 생명 가운데 들어가고 싶다면 배울 수밖에 없죠.
이제 그분은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사람으로 준비되어 간다고 저는 믿습니다.
여러분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은 거예요.
모든 사람들이 어리석어요.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은 절대로 지혜로울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세상의 발명가나 뭐 세상 이치를 깨닫는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그 마음이 자기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자라날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이 온 우주 만물의 이치를 모르는데 그래서 이 나무나 새나 이런 걸 보면서 도대체 쟤네들이 어떻게 있는지도 모르는데 사상이나 생각이 그것 이상으로 자라날 수가 없는 거예요.
근데 우리는 만물을 창조하시고 만왕의 왕 되시는 그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그분이 세상을 만드신 이 모든 이치와 이 논리들을 깨달아 알게 될 때 우리의 사고는 하늘까지 높아지는 거예요.
이런 축복이 우리에게 있지 않습니까? 빨리 가겠습니다.
그렇게 됐기 때문에 그들이 하나님을 거절했잖아요.
그래서 더 이상 그 마음이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못하게 되는 거예요.
더 이상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마음이 그들의 마음속에 없는 거예요.
그러면 여러분 어떻게 되냐면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냐면 그냥 내버려두시는 거예요.
여러분 그게 형벌이에요. 하나님께서 더 이상 그들의 그 그건 하나님이 어떻게 하실 수 없기 때문에 그래요.
강제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끝까지 마음을 완고하게 하고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숭배를 하고 우상을 따라가고 하나님 아닌 것들을 사랑하고 그것들을 섬기려고 하면 하나님 더 이상 어떻게 하실 수 있죠?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서 생명까지 내어주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그들에게 구원의 모든 길을 다 주셨는데 선물을 주셨는데 끝까지 거절하고 다른 신들을 섬기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더 이상 하실 수 있는 게 있을까요?
없어요. 그러니까 내버려 두는 거예요. 그 내버려 두면 그들의 마음속에 더 이상 성령께서 역사하실 수가 없겠죠.
마음이 완고해졌으니까 그러면 그들이 점점점점 죄악 가운데서 탈락하고 탈락하고 죄악의 깊은 수렁 안으로 내려가게 되는 거예요.
그 끝이 어딘지를 사도바울이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뭐가 다스려지지 않는 거예요?
마음이 다스려지지 않아요. 이 정욕 죄된 본성이 다스려지지 않아요.
그럼 이게 악해지고 악해지고 악해지면서 다스려지지 않는 자신의 정욕이 계속 자신을 지배하면서 가면 어디까지 내려가냐 하면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내버려 두셨다 그랬죠.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부릴 듯함에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그 끝이 어디라고요?
동성년이 된 거예요.
왜 세상에 지금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하나님이 버린 것에 대한 결과물이에요.
앞으로 세상은 이런 죄악들이 더 흉흉해지고 팽배하지는 쪽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우리가 그들을 비난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그냥 그렇게 갈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 사람들이나 우리나 똑같은 죄인이잖아요. 그쵸 우리는 그 사람들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어떻게든지 구원받기를 원해요. 그러나 죄는 있는 그대로 죄라고 말할 수 있어야 되는 거죠.
그래서 그런 죄악이 점점점점 세상에 지금 관영해지고 있는 거예요.
그 세상이 완벽하게 관영해져서 더 이상 회개할 수 없었을 때 하나님께서 뭘 행하셨죠?
노아 홍수태 심판을 행하시는 거예요. 그럼 마지막 세상의 심판이 어떻게 일어나는가?
이 죄악이 관영해지고 관영해져서 모든 사람들이 이 죄악 가운데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는 그 죄악의 깊은 수렁 가운데로 내려가게 되는 거예요.
하나님의 백성들은 물론
하나님 편에 서겠지만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이 두 부류로 딱 나눠지게 되면 그때 심판이 딱 임하는 거예요.
여기에 있는 사람들 중에 여전히 구원받을 희망이 있고 여전히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여지가 남아 있다면 하나님 심판하지 않으십니다.
기다려 주세요. 성 지성서의 봉사 사업은 여전히 계속될 거예요.
그러나 이 두 부류가 분명하게 나눠지게 될 때 그때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중보 사업을 만년 억만 년 하더라도 여기 있는 사람이 이쪽으로 가지 않습니다.
여기 있는 사람이 이쪽으로 넘어가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중보 사업을 마치시는 거거든요.
중보 사업을 마치기 때문에 인간의 멸망과 구원이 결정되는 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각자 누구를 섬길지가 완벽하게 선택이 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중보 사업이 필요 없어져서 그치시는 거예요.
세상은 지금 그와 같이 타락한 시대로 점점점점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렇게 되기 때문에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가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주기를 싫어하며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근수근하는 자여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력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여 부모를 거역하는 자여 우매한 자요 배악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그들이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를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아느니라.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이러한 죄악 가운데 지금 다 빠져들어가고 있는 거예요.
하나님을 거절했기 때문에
근데 그들의 양심이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을 분명히 얘기해 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마음이 이미 하나님 해서 떠났기 때문에 그런 영원한 멸망 가운데서 계속 탈락한 그 안으로 지금 내려가고 있다는 걸 사도바울이 분명하게 얘기하는 거예요.
그래서 세상에 있는 이 모든 죄인들이 사형을 당할 만한 이 죄 가운데서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사도바울이 선포하고 있는 거예요.
그럼 여러분 오늘 이 교회에 앉아 있는 우리는 어떤 마음이 듭니까?
그들에 대하여 어떤 마음이 들어요? 그들은 죽을 만하지 그들을 사형당할만 합니까?
안 합니까? 왜 이렇게 갑자기 꿀먹은 버거리가 되셨죠?
아니 그들이 지금 하나님을 거절하고 죄악 가운데서 지금 순리를 역리로 쓰고 수많은 죄악들을 다 지금 만들어냈잖아요.
그렇죠 이 사람들이 죽을 만합니까? 안 죽을 만합니까?
그렇죠 당연히 죽을 만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형을 당해야 돼요.
그거는 분명한 사실이에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러면 우리는 이게 중요한 거죠.
그 사람들은 그렇다고 치고 그럼 오늘 여러분들 그리고 오늘 저는 사도바울은 이제 그 관심사를 세상에서부터 교회 안으로 가지고 들어오는 거예요.
그러면서 2장 1절에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가 판단했죠?
우리죠 그죠? 누구를 막론하고 내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내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내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우리가 그 사람들을 물론 죄악 가운데 죽는 건 맞아요.
그러나 우리가 그 사람들을 비난해서는 안 돼요. 왜냐하면 우리도 똑같은 죄인이거든요.
근데 여기 보면 뭐라고 돼 있냐면 시간이 다 됐기 때문에 이것만 하고 마쳐야 되고 나머지 뒤에 부분은 집에 가서 다 읽어오셔야 될 것 같습니다.
여기 보시면 제가 다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29절에 요 지금 읽는 구절이 나에게도 해당되는지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모든 불이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미워하는 거죠. 그다음 미워하는 거 분쟁 사기 사기가 남들 속이고 거짓말하는 것도 사기죠.
그죠? 또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근수근 수근수근 여러분 해보셨습니까?
비방하는 자요 비방 삼패동교회 성도님들은 비방 안 하시죠?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무슨 자요?
교만하시지 않죠? 우리는요 그리고 뭘 안 했네요 우리는 자랑은 한 번도 여태까지 해보신 적이 없으시죠?
그렇죠 어떻게 이 사형죄인데 자랑하면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아까 읽을 때는 그게 다른 사람들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지금 조금 자세하게 읽어보니까 누구 이야기 같으세요?
그럼 진짜 내 이야기인지 아닌지 한번 모의 재판을 좀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재판을 하겠습니다. 여러분 준비되셨습니까? 제가 판사입니다.
여러분들이 피고세요. 제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재판정에 서 있기 때문에 오직 진실만을 말하기를 선서하셔야 됩니다.
아시겠죠? 나는 여태까지 태어나서 한 번도 거짓말을 해본 적이 없다.
손 한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한 번이라도 거짓말 해본 적이 있다.
한번 손 한번 들어보시길 바랍니다. 네 고맙습니다.
거짓말하는 사람을 뭐라고 부르죠? 거짓말 하는 사람 뭐라고 부르죠?
아니요 거짓말하는 사람을 겉자로 시작하는데 거짓말쟁이라고 부르잖아요.
그렇죠 그러면 나는 누구죠? 옆에 있는 분들 악수 한번 해보시기 바랍니다.
서로 거짓말쟁이
근데 왜 이렇게 좋아하십니까? 내가 거짓말쟁이를 할 땐 별로 안 좋아하는데 옆 사람 거짓말쟁이를 하는 걸 되게 좋아하시는 것 같아
그게 어떤 마음일까요? 두 번째 신문입니다. 두 번째 신문입니다.
여러분은 한 번이라도 아주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남의 물건을 훔쳐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네 어렸을 적에 하셨죠? 맞습니다. 그러면 남의 물건을 훔친 사람을 뭐라고 부르죠?
그럼 여러분은 무엇이에요? 아니시죠? 거짓말쟁이 도둑이죠.
거짓말쟁이 도둑 그러면 여러분 여러분 성경에 남을 미워하고 용서하지 않는 것을 뭐 한다고 그랬죠 그럼 여러분 한 번이라도 남을 미워해 보신 적 있으십니까?
그러면 그 사람을 뭐라고 부른다고요? 아니죠 거짓말쟁이 도둑의 살인자 여러분은 한 번이라도 다른 사람을 보면서 음욕을 품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없다고 지금 손을 드시면 거짓말죄가 추가되는 겁니다.
거짓말쟁이에 도둑에 살인자의 가늠하는 자 제가 지금 10가지 계명 중에 4개만 들었어요.
4개만 우리가 어떤 사람들이죠? 우리는 죄인이에요.
근데 여러분 지금 말씀드린 이런 죄는
정로의 계단에 보면 하나님께서 작게 여기시는 죄라고 그랬어요.
작게 여기시는 죄 죄의 사실은 죄의 경중을 따지는 게 의미가 없긴 한데, 왜냐하면 죄는 작은 것이나 큰 것이나 결국은 죽음이에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모든 죄를 다 동일하게 보시지 않는다 그랬어요.
그러면 하나님이 보시기에 큰 죄는 뭐고 작은 죄는 뭘까요?
어떤 죄가 큰 죄고 어떤 죄가 작은 죄일까요? 지금 말씀드린 이 죄는 제가 작은 죄라고 말씀드렸어요.
그럼 큰 죄는 뭐죠? 회개하지 않는 죄 또 성령을 다 성령을 거스르는 죄예요.
어떤 죄냐 하면 교만 이기심 탐심 이 죄가 하나님 보시기엔 더 큰 죄라고 정로에게다는 분명하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근데 우리는 그런 죄는 삶에서 별로 크게 여기지 않아요.
여러분 우리가 이기적인 마음 가졌는데 내가 살인자보다 내가 이기적인 마음을 가진 걸 더 큰 죄라고 여깁니까?
아니에요.
근데 외부적으로 드러난 죄를 우리는 훨씬 더 크게 여기지만 하나님은 그런 죄를 크게 여기시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은 우리 마음속에 드러나지 않은 이기심과 교만과 자기를 높이는 정신과 자랑하는 마음들과 이런 마음들을 훨씬 더 크게 여기세요.
왜냐하면 그런 죄들이 훨씬 더 회개하기 힘들기 때문에 그래요.
그 교만의 정신과 이기심의 정신으로부터 나오는 죄가 있는데 그게 뭐냐 하면 비판의 정신이에요.
비판의 정신 비판의 정신 남을 비판하고 정죄하는 그 정신이 왜 나오냐 하면 우리 마음속에 교만과 이기심이 들어차 있기 때문에 나오는 거예요.
근데 남을 정죄하고 비난하는 것은 무서운 죄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가요. 술 마시고 담배하고 마약하고 이런 어떤 남을 때리고 사기치고 속이고 이런 죄는 큰 죄라고 생각해요.
여러분 이런 죄는 큰 죄가 아닙니다. 이런 죄를 마태복음 7장에 보면 뭐라고 부르냐 하면 t와 같은 죄라고 불러요.
t 남의 눈속에 있는 뭐예요? 티
근데 우리는 남들이 잘못하는 그런 모습을 보면 엄청나게 크게 그런 죄를 부풀려가지고 큰 죄를 지은 것처럼 얘기를 해요.
근데 정작 하나님이 보시는 큰 죄는 뭐예요? 내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뭐라고요?
피난의 정신이에요. 교만의 정신 그게 하나님 보시기에는 훨씬 더 큰 죄예요.
우리 마음속에 근데 그 마음이 없는 사람은 없잖아요.
우리 마음속에 다 그 마음이 있잖아요. 조금만 솔직하게 정직하게 들여다보면 우리가 얼마나 교만하고 이기적이고 그런 사람인지 우리 분명하게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시간이 30분인데요. 5분만 더 주시겠습니까?
네 죄송합니다. 지금 2장 1절부터 밑에까지는 이제 고 이야기를 해요.
왜 유대인들이 정말 죄인이냐 가장 죄인인 이유가 뭐냐 그 교만의 정신 때문에 그렇거든요.
죄인이라는 깨닫지 못하는 거예요. 유대인들은 그러니까 이 로마서가 유대인들에게는 아무 유익을 끼치지 못해요.
만약 오늘 우리가 우리가 정말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라는 걸 철저하게 인식하지 못하면 우리가 앞으로 공부하는 로마서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여러분 율법이 뭐죠? 율법 율법이 뭐가 율법이죠?
하나님의 법이 율법이에요. 그렇죠 근데 하나님의 그 법을 어떻게 만들었냐 하면 그 기준이 뭐냐면 우리 대한민국의 법은 국회의원들이 만들잖아요.
근데 하늘의 법은 그 기준이 뭐냐면 하나님의 품성이에요.
그래서 그 하나님의 품성을 글로 표현해 놓은 게 하늘의 법이에요.
하나님의 품성과 일치하지 않는 모든 것이 다 죄가 되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하나님이 맛있는 거를 저처럼 혼자만 먹는 분이시다.
저는 맛있는 거 있으면 애들 안 주고 혼자 먹거든요.
그래서 맨날 집사람한테 혼나는데 만약 하나님이 그런 분이다 그러면 어떻게 율법을 잘 지키는 거예요?
맛있는 걸 혼자 먹어야 율법을 잘 지키는 사람인 거예요.
그게 하나님의 품성과 일치하니까. 근데 하나님은 절대로 혼자 먹지 않으시고 나눠 먹는 분이다.
그럼 어떻게 율법을 잘 지키는 거예요? 나눠 먹는 게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
이 말은 하나님이 그런 분이라는 걸 품성을 설명해 놓은 거예요.
지금 그러니까 성경 전체는 하나님의 품성이 자세하게 기록돼 있는 거예요.
단순히 10가지의 그 자구적인 의미를 가지고 율법을 지키느냐 안 지키느냐를 판단하는 게 아니고, 성경에 나와 있는 전체적인 하나님의 품성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고 그 품성이 나의 품성과 일치하면 나는 뭘 소유한 사람이에요?
의를 소유한 사람이에요.
근데 내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과 같지 않으면 그러면 내가 율법을 어떻게 하고 있는 거예요?
어기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품성이 뭔지를 알아야 되는데, 하나님의 품성이 뭔지를 알려면 뭘 보면 가장 확실하게 알 수 있을까요?
예수님을 보면 알 수 있는 거예요. 예수님이 글로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는 글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대하시고 용서하시는 그 하나님의 모습을 끊임없이 끊임없이 예를 통해서 많이 보여줬단 말이에요.
하나님 이런 분이야 용서하시는 분이야 끝까지 사랑하시는 분이야 쭉 다 보여줬는데 이걸 보여줘도 인간이 못 깨달아요.
그러니까 누가 오신 거예요? 우리가 볼 수 있는 사람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셔서 여기에 기록되어 있는 이 율법의 말씀 그대로 예수님이 사신 거예요.
예수님의 삶 중에 여기에 기록된 것과 불일치하는 것이 단 한 개도 없었던 거예요.
그러니까 예수님의 삶을 딱 보면
율법이 뭔지를 명확하게 아는 거예요. 그분의 표정, 그분의 눈빛, 그분의 어투, 그분의 감정 턴 제스처 눈빛만 봐도 우리가 그 사람 어떤 사람인지 대충 알잖아요.
그쵸 내 눈빛이 예수님의 눈빛 같지 않으면 그게 뭐라고요?
죄예요? 내 생각 속에 있는 생각이 예수님의 생각 같지 않으면 그게 뭐라고요?
죄예요 그럼 여러분 우리는 어떤 사람들입니까? 우리는 정말 죄인이 맞습니까?
성경은 죄의 싹슨 사망이라고 얘기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이렇게 죽는 죽음은 죽음이 아니에요.
그것은 잠이죠. 언젠가 반드시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죄는 온 인류를 영원한 죽음 가운데 가둬버린 거예요.
그래서 여기 있는 우리는 그 어떤 사람도 영원한 생명 가운데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거예요.
모든 인류가 죄를 범하였음에 영원히 죽음을 당할 수밖에 없는 그 처지와 형편 가운데 우리가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복음이 있는 거예요. 그런 우리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우리를 갑없이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저는 이 사실을 못 믿었어요. 안 믿겨지는 거예요.
저는 오랫동안 이것이 내 마음속에 받아들여지지가 않는 거예요.
그래서 너무나 힘들었어요. 그리고 제가 이렇게 보니까 우리 많은 재림교회 성도님들이 이것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믿지를 못하는 분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제가 깨닫게 됐어요.
그래서 그분들에게 이것들을 설명해 주고 어떻게 우리가 이것을 믿을 수 있는지 왜 믿을 수 있는지 그 근거가 무엇인지 이것들을 로마서의 말씀을 통해서 함께 나누게 될 때 그렇다면 이거 분명히 믿을 수 있네요 하고 받아들이는 모습들을 제가 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먼저 우리가 그 예수님의 분명한 복음을 우리의 마음속에 새기기 위해서 우리가 결코 잊지 말아야 되는 것은 내가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라는 이 한 가지 사실을 우리가 결코 잊지 않게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제 우리가 일주일 동안 계속 살펴보면서
그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은혜가 우리를 죄 가운데서 어떻게 구원해 주셨는지에 대한 확신과 기쁨을 누리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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