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편에는 보살이 왜 결코 화를 내지 않는지에 대한 내용이였고,
지금의 내용은 보살이 왜 결코 다른 사람의 칭찬/찬탄/칭송에 동요 없는가에 대한 내용입니다.
비방과 칭찬등 세속팔풍에 흔들리지 않는 모습에 대한 설명입니다.
아래에 정말 웃긴 내용이 나옵니다. 웃기지만, 사실 그대로라는 걸 알수 있습니다.
보살이 왜 다른 사람들의 칭찬/칭송/찬탄에 결코 그걸 좋아하지 않는가 하면,
지금은 자신에게 어떤 이득이 있고, 또 좋은 까닭에 그 중생이 보살을 찬탄하지만,
나중에 또 다른 안좋은 인연이 되면 반드시 그 보살을 못살게 굴고 때리고 욕할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무상하여 항상 변화함을 아시고서, 보살은 이런 칭찬에조차 집착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엽기적이지만, 사실은 사실입니다. 중생은 항상 번뇌에 이끌려 이기적으로 사니까요.
우리가 사는 현실에선 이런 부류들 투성이잖습니까.....
평상시 사이 좋다가도 자신에게 조금만 손해가 가면 철천지 원수로 돌변하는 사람들.....
또 하나의 아주 대단히 중요한 내용이 나오는데,
보살이 만약 다른 사람의 칭송/칭찬/찬탄에 기뻐하면, 둘 다 손해라는 것 입니다.
특히 칭송하는 중생에게 돌아가는 공덕도 적어지고, 자신에게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왜냐면 시주 받는 자가 번뇌에 이미 휘둘린 상태이기 때문인거죠.
그래서 보살은 시주자나 칭송자/찬탄자들의 공덕을 증장시켜주기 위해서,
평정을 유지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스님들이 시주를 받을 때, 이런 점을 유의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얼굴 표정이야 밝게 드러내더라도, 결코 그런 시주나 칭찬에 동요되지 말아야 함을 뜻 합니다.
이렇게 스님들이 마음을 청정하게 할 때,
그 시주자/찬탄자에게 크나큰 공덕이 쌓이게 됨을 알 수 있습니다.
시주하시는 분들도 이러한 사실을 아셔야 하고,
설사 시주받는 스님들이 크게 기뻐하지 않는다고 해서 결코 섭섭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게 오히려 자신에게 큰 이익며, 큰 공덕이 돌아온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불경을 보면 부처님께서는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그리고 온갖 신들로부터 공양을 받으셨지만,
항상 평정을 유지하고 계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문] 이미 보살이 성내지 않는 갖가지 인연은 알았다.
그렇다면 진실로 공덕을 찬탄함을 알지 못한 채 기뻐하지 않는다는 것인가?
[답] 갖가지 공양과 공경이 모두가 무상한 줄 아는 것이다.
지금은 까닭이 있어서 와서 찬탄하고 공양하지만 나중에 다른 인연이 있으면
다시 성내거나 때리거나 혹은 해하려 할 것이기에 기뻐하지 않는 것이다.
또한 보살은 이렇게 생각한다.
‘나에게 공덕과 지혜가 있는 까닭에 찾아 와서 찬탄하고 공양하는 것이다.
이는 공덕을 찬탄하기 위함이지 나를 찬탄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어찌 기뻐하겠는가.’
또한 이 사람이 스스로의 과보를 구하는 까닭에 내가 만든 인연에 대해서 공양하는 것이다.
마치 사람이 곡식을 심고 물을 대고 다듬는다고 해서 땅이 기뻐하지 않는 것과 같다.
또한 어떤 사람이 나에게 공양할 때,
내가 기꺼이 받는다면 나의 복덕은 엷어지고 다른 이의 복덕 역시 적어진다. 그러므로 기뻐하지 않는다.
또한 보살은 온갖 법이 꿈같고 메아리 같은 줄로 관찰한다.
그러니 찬탄하는 이가 누구이며, 기뻐하는 이가 누구이겠는가.
나는 삼계 안에서 해탈을 얻지 못했고, 모든 누가 다하지 못했고,
불도도 얻지 못했거늘 어떻게 찬탄을 얻었다 해서 기뻐하겠는가.
만일 기뻐할 수 있는 이가 있다면 오직 부처님 한 사람뿐일 것이다.
왜냐하면 부처님은 일체의 공덕이 이미 모두 충족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보살은 갖가지로 찬탄 받고 공양 받는다 해도 기뻐하는 생각을 내지 않나니,
이러한 모습을 입음성(入音聲)다라니라 한다.
- 대지도론/용수보살 지음/구마라집 한역/김성구 번역/동국역경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