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시행한 향아설위의 제사법
해월은 이해 동학의 창도기념일인 4월 5일을 맞아 기념식의 방식을 전격적으로 바꾸었다. 해월은 종교적 수행을 통해 동학적 사유의 제사 방식은 유교적 제사 방식인 향벽설위(向壁設位)와 달리 향아설위로 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지만, 도인들이 교의에 대한 인식이 미흡한 상황에서 급작스럽게 시행하면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실행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71세를 맞은 연로한 자신이 언제까지 교단을 이끌어갈 수 없다고 판단하고 항아설위의 방식으로 창도기념식을 거행했다. 해월은 향아설위의 이치를 묻는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답했다.
나의 부모는 첫 조상으로부터 몇만 대에 이르도록 혈기(血氣)를 계승하여 나에게 이른 것이요, 또 부모의 심령(心靈)은 한울님으로부터 몇만 대를 이어 나에게 이른 것이니 부모가 죽은 뒤에도 혈기는 나에게 남아있는 것이요, 심령과 정신도 나에게 남아있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제사를 받들고 위를 베푸는 것은 그 자손을 위하는 것이 본위이니, 평상시에 식사를 하듯이 위를 베푼 뒤에 지극한 정성을 다하여 심고(心告)하고, 부모가 살아계실 때의 교훈(敎訓)과 남기신 사업(事業)의 뜻을 생각하면서 맹세하는 것이 옳으니라.
해월은 당시 4대까지 치르는 제사와 20~30대의 조상에 대한 시향(時享)으로 이루어지는 유교의 제사법에 대해 “이십 대나 삼십 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반드시 첫 조상이 있으리니 첫 조상의 영(靈)은 받들지 않느냐?
사람은 다 부모가 있으리니 부모로부터 처음 할아버지에게 거슬러 올라가면 첫 할아버지는 누가 능히 낳았겠느냐?
예로부터 한울이 모든 백성을 낳았다고 말하니, 첫 할아버지의 부모는 한울님이니라.
그러므로 한울을 모시고 한울을 받드는 것은 곧 첫 할아버지를 받드는 것이니 부모의 제사를 지낼 때 지극한 정성을 다하는 것이 마땅하며, 시간은 정오(正午)에 베푸는 것이 옳으니라”라고 말하고
사람의 첫 조상인 한울님을 위하지 않는 한계를 지적하며 향아설위의 필요성을 말했다.
해월은 모든 사람이 한울님을 모시고 있는 시천주(侍天主)의 존재이니만큼 조상의 혈기가 나에게 전해져 있기 때문에 벽을 향하고 있는 신위(神位)를 나를 향해 돌려놓아야 한다고 했다.
해월은 향아설위라는 제법이 특별한 것이 아니라 평상시에 식사를 하듯이 위를 베푼 후에 지극한 정성을 다하여 식고를 하는 방식이라고 그 방법을 제시했다. 해월이 제시한 향아설위는 제사라는 의례를 통해 인간과 신, 조상에 대한 개념을 새롭게 정립한 혁명적인 선언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