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거듭남을 기약하는 물방울
성경절 중에 가장 짧은 성경절은 요한 복음 11장 35절에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셨다 (표준 새번역 성경)라는 구절이다. 영어로는 두 단어 Jesus wept 이다.
하나님이시지만 인간이셨던 인성을 쓰신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사실 때 우리처럼 눈물을 흘리셨다. 예수님께서 눈물을 흘리시고 우셨다는 표현은 우리에게 많은 위안을 준다. 멀게 느껴지기 쉬운 예수님이, 우리 처럼 기쁨과 슬픔을 느끼시고, 우리처럼 눈물을 흘리시고, 우리와 똑같이 이 땅 흙 위를 걸으시고, 우리와 함께 삶을 호흡하시던 분이라니!...
눈물의 화학물질
눈물은 아름답다. 참으려고 애를 쓰다가, 무너지기 싫은 자존심 때문에 버티다가, 그리스도인이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자책감에 스스로를 벌주다가, 우리처럼 슬픔을 느끼시고, 우리처럼 우셨던, 그래서 우리를 도우실 줄 아시며, 모든 것을 이해하시는 예수님 앞에 다 포기하여 내려 놓고, 가장 가난한 마음이 되어 흘리는 눈물은 참으로 아름답다. 눈물을 흘리며 울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우리 자신으로 돌아올 수 있다. 그리고 그 눈물은 우리를 다시 태어나게 만드는 약속의 물방울이 된다.
분석심리학자들의 말을 빌리면, 인간은 눈물을 흘림으로써 카타르시스(정화작용)로 인한 일종의 쾌감을 느낀다고 한다. 사람이 강한 감정에 휩싸이게 되면, 그때 받은 스트레스가 몸에서 화학변화를 일으키기 때문에 특수 화학물질이 생기게 되며, 이것이 눈물에 섞여 분비된다고 한다. 따라서 눈물은 스트레스를 배출하는 도구라고 할 수 있다. 울고 난 후에는 누구나 대개 기분이 좋아지는데 이것은 스트레스로 생긴 화학물질들이 체외로 분비되었기 때문이다.
눈물을 구성하는 화학물질의 요소를 보면, 단백질, 프로락틴(황체 자극 호르몬), ACTH(부신피질 자극 호르몬), 엔돌핀의 중간체인 로이신 엔케팔린, 그리고 망간 등이다. 이 중 ACTH는 스트레스에 대한 저항력을 강화하는 스테로이드 호르몬의 분비를 촉진하며, 로이신 엔케팔린은 고통을 없애는 뇌 속의 마약 물질 이라고 알려진 엔돌핀의 중간체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생겨서 면역계를 변화시킴으로써 불안, 발작 등의 신경반응을 없애주는 물질이다. 눈물의 화학작용을 통해, 사람이 너무 슬프거나 힘들 때, 고통스럽거나 괴로울 때, 눈물을 흘리며 울게 만드신 하나님의 창조의 지혜와 사랑은 정말 놀라우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눈물의 정화작용
때때로 우리가 눈물을 흘리는 것은 우리에게 유익한 것 같다. 눈물은 우리의 영혼이 씻음을 받기 위한 정화작용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므로, 그리고 이 정화작용을 통하여 새로운 거듭남이 피어나므로... 이런 이야기가 있다. 뇌종양으로 아홉 살짜리 큰 딸을 잃은 한 엄마가 있었다. 참혹한 슬픔을 당했지만, 아직 돌봐야 할 어린 두 아이가 있었으므로 마냥 어딘가로 빠져나가 울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그러나 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참기가 힘들어 가끔씩 남아 있는 아이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곤 했다.
막내가 엄마를 울지 못하게 하려고 웃기는 재롱을 떨며 애쓰는 일이 잦아지자, 그 엄마는 아이의 마음을 보호해 주고 자기를 웃게 하는 것이 그 아이의 임무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 주고 싶었다. 그리고 마음을 청소하기 위해 눈물을 흘릴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도... 그래서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언니를 잃었기 때문에 슬퍼서 눈물을 흘리는 것을 너도 알지?... 너 넘어져서 다치면 반창고 붙이기 전에 무엇을 하지? 씻어요. 맞아, 엄마가 눈물을 흘리고 울 때, 그건 하나님이 엄마의 마음을 씻어주시는 것과 비슷한 거란다. 그 다음 하나님이 반창고를 붙여 엄마가 나을 수 있게 도와주시거든.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우리를 눈물을 흘리며 울게 하신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 숨겨져 있는, 가만히 놓아두면 곪아버릴 상처를 드러내시어 우리를 당황하게 하시며... 그래서 그 숨겨져 있던 것들이 발진으로 돋아나도록 하시며... 그렇게 해야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모른 채, 그런 상황을 연출하신 주님이 야속해서 사람들은 운다. 그러나 드러난 자신의 진정한 형편 속에서 눈물을 흘리다간, 문득 그 눈물이 가슴 속 깊이 있는 건드려지기 싫어하던 상처를 파헤쳐 치료하는 하나님의 자비의 안약이었음을 알게 된다.
거듭남을 기약하는 눈물
하나님께서는 슬픔을 당해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에게 결코 무심하지 않으시다. 다윗이 감람산에 올라가 머리를 가리우고 맨발로 울며 행 (사무엘하 15장 30절)할 때, 하나님께서는 동정 어린 눈으로 그를 보고 계셨다. 베옷을 입은 다윗은 심한 양심의 가책을 느꼈고, 그의 눈물과 겉으로 나타난 겸손의 행동은 그의 회개를 증거 하였다. 다윗은 눈물을 흘리며 울먹이는 말로 자기의 사정을 하나님께 고백했다.
하나님께서는 눈물을 흘리는 다윗을 버리지 않으셨다. 아니, 다윗이 무한한 사랑의 하나님께 가장 사랑스러워 보인 때는 바로 그 때였다. 자기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그의 아들과 함께 반역에 가담한 원수들을 피해 도망가면서 마음에 찔림을 받은 그때... 마음에 가득 찬 회한과 슬픔이 눈물이 되어 그의 뺨에 흐른 그때...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눈물이 다윗을 전혀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나게 만들 전주곡임을 아셨기 때문에...
생애의 모든 계획이 좌절되고, 삶이 자신이 의도했던 대로 꼴 지어지지 않고, 실패와 외로움과 어쩔 수 없는 자신의 연약함과 죄됨에 눌리어 신음할 때, 눈물은 치료하기 위하여 눈에서 흘러나온다. 마음을 정화시키는 회개의 눈물에 의해 육신의 눈에 끼어있던 안개가 벗겨지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적나라하게 보게 될 때, 그때, 사람들은 그 눈물 속에서 진정한 거듭남을 체험하게 된다. 그 다음 눈물이 걷힌 뒤에, 우리는 맑아진 눈으로 하나님의 자비로우심과 사랑 많으심, 그리고 그분의 지혜로운 섭리와 계획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예수님의 눈물
예수님께서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 (히 5:7)다. 예수님의 눈물 속에는 우리를 위한 거듭남의 삶의 모본이 들어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육체의 본성으로 인해 죄의 유혹들을 느끼셨으나, 마음으로나 생각으로 한 번도 죄를 짓지 않으셨다. 대신 그것들을 저항하고, 하나님 아버지와 하나가 되어 죄 없는 삶을 사시기 위해, 그리하여 우리에게 흠 없는 모본을 남겨주시기 위해 심한 통곡과 눈물 의 삶을 사셨다. 한없이 눈물을 쏟는 정화 작용과 자아가 죽는 장렬한 장례의식을 통해 진정한 새로운 삶이 탄생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기 위하여...
우리처럼 우셨던 예수님께서는 눈물로 앞이 가리워 당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 곁에 서 계신다. 예수님의 마음은 인간의 슬픔과 비애와 시련을 향하여 항상 열려 있다. 그분께서는 영원한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시며, 자애로운 손길로 우리를 감싸 주시며, 우리에게 닥치는 어려움을 얼른 해결해주고 싶어 하신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가 시련과 아픔을 통해 깨달아야 할 생애의 공과들을 다 배우고, 눈물을 흘리며 겸손하게 당신 앞에 굴복하기까지 기다리신다. 그리고 그 회개의 눈물의 치료의 역할을 통해 우리를 거듭나게 하신다. 그러면, 그때, 우리는 맑고 명료해진 마음의 눈으로 늘 곁에 서 계셨던 예수님을 보게 된다.
눈물은 아름답다. 자신을 하나님 앞에 적나라하게 쏟아 놓으며 흘리는 회개의 눈물은 위대하다. 하나님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그 순간, 그 사람은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제사인 상한 심령을 드리는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때 흘리는 진정한 회개의 눈물은 치유를 약속하는 물방울, 거듭남을 기약하는 아름다운 물방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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