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7일 추석을 맞아 나의 두번째 고향인 영동의 광평리에 갔다. 그곳에는 아직도 큰누나 혼자 살림을 꾸려가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온 탓인지 집안의 모든 풍경이 새롭게 보였다. 마당에는 단감나무가 붉게 익어 가지가 찢어질듯하고 가꾸지 않는 허름한 화단에는 꽃들이 듬성듬성 피었다. 쏟아지는 가을빛에 취해 뒷마당으로 돌아가는데 그 곳에도 가을냄새가 지천이었다. 줄을 맞춰 대열이룬 배추들과 파들이 텃밭이 터지도록 실하게 자라 탐이 날 지경이었다. 몇 해전 매형을 하늘나라로 보내고 누나 혼자 채소들을 가꾸며 가슴이 짓눌러오는 쓸쓸함을 이겨낸 듯햇다. 그러나 그것은 나만의 생각이었을까. 풀들이 솟아난 텃밭가를 살펴보니 눈곱만한 야생화들이 지천으로 피어 한동안 눈길을 잡아끌었다. 어쩌면 이렇게 고울까. 농염하게 익은 꽈리는 잔뜩 부풀어 터질듯한데 이름모를 꽃들은 그 속도 모르고 쏟아지는 햇살을 받고 있었다. 눈에 잘 띄지 않는 풀속에서도 꽃들이 화사하게 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아마도 허리굽혀 자세를 낮추는 나의 겸손함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렇다. 눈곱만한 꽃들은 겸손하게 바라볼 때만이 제 모습을 보여주는 아량을 베풀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