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성문이 부처님의 신통변화를 보지 못하는 까닭
비유하자면, 어떤 사람이 이름이 때를 여의는 광명이라고 하는 청정한 눈을 얻었다면, 일체의 모든 어두움에서 어떤 물체를 보고자 할지라도 어둠이 능히 장애가 될 수 없는 것이로다.
그 때, 저 사람이 밤의 어둠 가운데 한량없는 백천 만억의 무리 속에 있으면서도, 행하거나, 머물거나, 앉거나, 눕는 저 모든 사람들의 형상과 위의를 이러한 눈이 밝은 사람은 볼 수 있는 능력을 구족한 까닭으로 보지 못함이 없도다.
부처님 또한 이와 같이 지혜의 청정한 눈을 성취하여 걸림없이 모두 분명하게 일체의 모든 세간에서 그 나타나 보이는 바 신통한 변화들을 모두 분명하게 볼 수 있지만, 대 보살의 무리들과 함께 주위를 함께 둘러싸고, 모시는 모든 대제자들은 모두 능히 볼 수가 없는 것이로다.
비유하자면, 어떤 비구가 대중들 가운데 있으면서 공무변처정에 드는 도다. 이른바 지변처정, 수변처정, 화변처정, 풍변처정, 청변처정, 황변처정, 적변처정, 백변처정, 천변처정, 종종중생신 변처정, 일체어언음성 변처정, 일체소연 변처정의 선정이로다.
이러한 갖가지의 변처정에 든 이들은 그 반연하는 바를 볼 수가 있지만, 그 나머지의 대중들은 모두 능히 볼 수가 없나니, 오직 이러한 변처의 삼매에 머문 이들은 제외하는 도다.
여래께서 나투시는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는 모든 부처님의 경계 또한 다시 이와 같나니, 보살들은 구족하게 볼 수가 있지만, 성문들은 듣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는 도다.
그러면 위에서 언급한 변처정이란 어떠한 경지를 말하는 것인가.
변처정은 다음과 같은 구차제정 가운데 무색천의 공무변처, 식무변처에 속하는 것으로 다음과 같다. 구차제정이란, 초선정, 이선정, 삼선정, 사선정에 들어가고 나서, 다음으로는 차례로 공무변처정, 식무변처정, 무소유처정, 비상비비상처정으로 나아가 멸진정에 드는 수행법을 말한다.
1. 사선정
초선정은 이생희락지로서, 욕계의 오욕락을 떠나, 천상인간의 희락과 안락을 맛본다는 경지이다.
이선정은 정생희락지로서, 후퇴 없는 기쁨이 오는 선정의 행복이 온다는 경지이다.
삼선정은 이희묘락지로서, 묘락, 즉 신묘한 안락을 받는 다고 하는 경지이다.
사선정은 사념청정지로서, 생각을 떠난 청정한 자리에 머무는 경지를 말한다. 선정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른 셈이다.
2. 무색천
무색계의 공무변처, 식무변처, 무소유처, 비상비비상처을 말한다.
공무변처정은 무한한 허공 같은 마음 작용을 체득한 무색계 제1천 선정의 경지이다.
식무변처정은 무한한 마음 작용을 체득한 무색계 제2천 선정의 경지이다.
무소유처정은 존재하는 것은 없다고 주시하는 무색계 제3천 선정의 경지이다.
비상비비상처정은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닌 무색계 제4천 선정의 경지이다.
3. 멸진정
멸진정은 성자가 무심위의 열반적정을 희구하여 일체의 번뇌와 습기를 멸진하는 삼매를 말한다.
사선정까지는 정도와 외도가 모두 다 닦을 수 있는 경지이지만, 아상의 뿌리마저 뽑아 버리는 멸진정은 정도를 닦는 이들만 도달할 수 있는 수승한 참다운 도인의 경지이다.
그래서 멸진정을 성취하여야 누진통이 되고, 누진통을 해야 참다운 도인이 되는 것이다. 아상과 법상을 모두 다 끊어 없애 버리는 것이 멸진정이기 때문에 성자와 범부의 분수령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단계가 멸진정이다.
비유하자면, 어떤 사람이 몸이 보이지 않게 하는 약을 스스로 그의 눈에 바르고, 대중 가운데 있으면, 오거나 가거나 앉거나 서있거나, 능히 그 사람을 알아 볼 수 있는 이가 없지만, 능히 그 사람은 대중의 모임 가운데 일어나는 일들을 모두 다 볼 수 있는 것과 같도다.
마땅히 알지나니, 여래의 아시는 바 또한 다시 이와 같이 모든 세간을 초월하여 두루 세간사를 두루 볼 수 있지만, 모든 성문들은 능히 볼 수 없나니, 오직 모든 일체지의 경계를 향하여 나아가는 대보살들은 제외하는 도다.
사람이 태어나면 곧 두 천신이 항상 서로 따라 다니는 도다. 하나는 이르기를 동생 천신이라 하고, 둘은 이르기를 동명 천신이라 하는 도다. 이 두 천신은 항상 사람을 볼 수 있지만, 사람들은 천신을 보지 못하는 도다. 마땅히 알지나니, 부처님 여래 또한 다시 이와 같도다.
여래는 모든 보살들의 대중 법회 가운데서 대신통을 나타내지만, 대성문들은 모두 능히 볼 수가 없도다.
비유하자면, 어떤 비구가 마음에 자유 자재함을 얻어서 멸진정에 들어가려 하지만, 육근으로 작업을 모두 다 행하지 못하는 도다. 모든 언어를 알지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면서 선정의 힘이 유지되는 까닭으로 마음대로 반열반에 들지 못하는 도다.
모든 성문들 또한 다시 이와 같이, 비록 기원정사 가운데 있으면서 육근을 모두 구족하였지만, 여래의 자유 자재하신 보살 대중들의 대중 법회에서 지으시는 바 모든 불사들을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고, 이해하지도 못하고, 들어가지도 못하는 도다.
무슨 까닭인가 하면, 여래의 경계는 매우 깊고 광대하여 보기도 어렵고, 알기도 어렵고, 측량하기도 어렵고, 헤아리기도 어렵고, 모든 세간을 뛰어 넘었나니,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고, 능히 파괴할 수 없나니, 이는 일체의 모든 이승의 경계가 아니로다.
이러한 까닭으로 여래의 자유 자재한 신통력은 보살 대중 법회와 기원정사에서 모든 청정한 세계가 두루 가득하지만, 이와 같은 갖가지의 불사들을 모든 대 성문들은 모두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나니, 그 그릇이 아닌 까닭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