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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주님이 부활하셨습니다. 옆 사람과 인사하겠습니다.
들으셨어요? 예수님이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부활과 관련된 기사들이 기록이 되어 있어요. 오늘 본문에 가장 핵심적인 내용이 뭐냐 하면 예수님이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는 거예요. 이게 가장 핵심이고 이 핵심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있는데 예수님이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는 것을 증언할 수 있는 증인들이 오늘 본문에 이렇게 기록되어 나옵니다.
왜 성경이 증인을 제시하냐 하면 부활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 지금 증인을 제시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다른 말로 하면 부활을 부인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는 거죠.
그렇다면 예수님의 부활은 어떤 의미일까요? 또 무슨 의미가 있길래 부활을 강조하고 부활의 증인이 있다고 이렇게 증인까지 세우고 또 증인을 강조하고 있을까요?
부활의 가장 큰 의미는 인류가 죽음을 극복했다는 거예요. 예수님의 부활은 인류가 사망 권세를 죽음뿐만 아니라 사망의 권세들로부터 온 인류를 자유케 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인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더 이상 사망의 종 노릇하는 데서 여러분과 저를 벗어나게 했고 우리를 영원히 사는 존재가 되게 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에는 부인할 수 없는 증인들이 있다고 강조하는 거예요.
부활이 이런 의미를 있기 때문에 이 부활에 증인이 있고 그렇다면 부활은 사실이고 부활로 통해서 여러분과 저에게 주어진 혜택도 사실이라는 것을 본문이 우리에게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이 제시하는 부활의 증인들은 먼저는 무덤을 지키는 병사들, 두 번째로는 무덤을 보려고 온 여인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 제자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본 많은 사람들, 마지막으로는 부활하신 예수님 자신이 부활의 증인이었던 거예요. 예수님이 살아나신 것을 많은 사람이 봤기 때문에 예수님 자신 또한 부활의 증인이었습니다. 부활하셔서 스스로 부활의 증인이 되신 거예요.
이 말은 만약에 이 문제로 다툰다면 예수님이 부활했느냐 부활하지 않았느냐고 법정에 다툰다면 절대로 질 수 없는 일이라는 거예요. 어떤 일이 있어도 이 싸움에서는 질 수가 없다는 겅예요. 부활의 증인이 명백하게 있기 때문입니다.
법정에는 증인이 있으면 질 수 없어요. 반드시 이겨요. 그래서 증거가 증인이 무서운 거예요. 요즘은 유추해서 증인을 추적하기도 하고 가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증인이 있으면 부인할 수는 없어요.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증인이 있다는 것을 밝힘으로 말미암아 부활은 사실이고 이걸 법정 싸움한다 할지라도 절대 질 수 없는 일이라는 거예요.
오랫동안 이스라엘에서 성지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님들이 계셔요. 연구를 해서 한국교회를 돕는 분들도 있고, 거기서 복음 전하기 위해서 계시는 분들도 있고, 제가 가끔 그분들이 부러운 게 한 가지가 있어요. 그분들이 예수님의 흔적이 담긴 도시 도시를 다 방문하고 예수님의 기록과 이 성경의 기록과 관련된 역사적인 증인들을 증거들을 캐내고 이것을 연구하는 그분들을 보면 되게 부러워요.
물론 저는 그분이 연구해낸 자료를 보긴 하지만 눈으로 생생하게 그 자리를 본다는 건 어쩌면 말로 듣는 것보다는 훨씬 더 효과적이고 실제적일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들이 느끼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여러분과 제가 느끼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좀 차이가 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도 증인이 있고 예수님 자신도 부활의 증인이고 더 나아가서 또 지금도 살아계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언하는 분이 계신데 이분을 우리가 성령이라고 해요. 성령님은 예수님이 살아계시다는 것을 입술로 고백하게 하고 그분이 부활의 주인 것을 여러분과 저의 입술을 통해서 고백하게 하시는 분이 성령이신 거예요. 그러니까 지금은 성령이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했다는 사실을 증거하고 계신 것입니다.
성령의 부활을 고백하심으로 말미암아 부활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됐어요. 부활의 증인이 있죠? 예수님이 친히 사셔서 또 한 부활의 증인이 되셨죠. 또 성령께서 친히 예수님이 부활했다는 사실을 여러분과 저의 입술을 통해서 증언하고 계시기 때문에 예수님의 부활은 사실인 겁니다. 성령이 부활을 고백하게 함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여러분과 제가 부활의 증인이 된 거예요.
이전에는 성경의 역사에 기록된 사람들이 부활의 증인이었다면 지금은 성령께서 여러분과 저의 입술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하게 하셨기 때문에 여러분과 제가 이 땅의 교회가 곧 부활의 증인인 것입니다.
부활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부활을 고백함으로 말미암아 부활을 증거하고 증언하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성령께서 오늘도 이렇게 다 모여서 한 자리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하고 증언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인류 역사상 혁명과 같은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생애 자체가 혁명적이었어요.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으로 이 땅에 오신 것도 혁명이었고, 그 아들이 우리의 죄를 죄 없으신 분이 우리 죄를 지으시고 지고 부활하신 것도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도 혁명적이고 또 예수님이 영원한 우리의 왕이 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시기 위해서 부활하신 것도 승천하신 것도 혁명적인 것이고, 또한 여러분과 저는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기대하며 사는 이 인류의 믿음의 이 역사도 이 믿음도 또한 혁명과 같은 사건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러분과 저를 부르셔서 이 혁명적인 사건의 주인공이 되게 하셨어요. 여러분과 저를 이 구원의 사건에 변두리에 두신 것이 아니라 주인공이 되게 하시려고 우리를 부르셨고, 이제는 우리의 입술을 통해서 예수님이 살아계시다는 것을, 그분이 부활하셨다는 것을, 그분이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를 통치하고 계시다는 것을 증거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원으로의 초대 우리가 예수 믿게 된 것은 단순한 초대가 아니고 간단한 초대가 아니라는 거예요. 예수를 믿으십시오. 하나님의 자녀가 되십시오라는 이 말은 단순한 오늘 밤 나랑 같이 부패해 올래 내 결혼식에 올래라는 이 어떤 세상의 초대보다 더 영광스러운 초대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주변에 누구에게나 예수 믿으십시오 저와 함께 신앙생활을 하시겠습니까라고 이렇게 권면하고 고백하는 것은 세상에 그 어떤 초대와도 비교할 수 없는 초청이라는 거예요.
제가 좀 비싼 부페를 한번 먹어봤어요. 그렇다고 아주 비싼 건 아니지만 그 당시에 지금은 그 부페가 비싼 건 아니지만 제가 전도사 시절에 그 부페는 되게 비싼 곳이었고 서울에 좋은 호텔에 있는 뷔페였어요.
근데 저희가 모셨던 담임 목사님이 교육자들을 데리고 가끔 이렇게 갔어요. 같이 가서 먹자라고 초대해줬는데 그게 절대 빠지고 싶지 않더라고요. 왜냐하면 그러니까 사진으로 봐도 맛있게 보였어요.
이 초대는 내가 거절할 수 없는 초대구나. 그런데 영생으로 초대에는 예수 믿으십시오라는 이 초대는 세상의 부페와 결혼식과 어떤 행사에 초대하고는 비교할 수 없는 초대라는 거예요. 왜냐하면 생명으로의 초대이기 때문이에요. 부패는 잠깐의 우리의 삶을 연장시키지만 영원한 삶을 살게 해줄 수 없잖아요. 예수 믿으십시오라는 이 초대는 생명으로 초대이기 때문에 세상에 그 어떤 초대와는 비교할 수 없어요.
그리고 영원으로의 초대예요. 단순간에 어떤 재미와 흥미로운 초대가 아니라 영원한 삶으로의 초대, 영원한 환유로의 초대이기 때문에 이 구원의 초대는 그 어떤 초청과 초대와는 비교할 수 없다는 겁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얻은 이 구원을 지금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여러분이 예수 믿는다는 이 사실을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여러분이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이 사실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구원은 인생의 최악 상태에서 인생을 최상의 상태로 옮긴 사건이에요. 왜냐하면 구원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되게 하는 사건이고요. 부활의 증인 되게 하는 사건이고, 우리를 구원받은 자 되게 하는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구원으로 말미암아 여러분과 저의 아내는 성령이 내주하기 시작하셨고, 구원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의 사명을 받은 하나님 나라의 대사가 되었어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이며 하나님의 몸인 거룩한 교회의 일꾼이 되었어요.
그러니까 구원은 세상에 그 어떤 체대와도 견딜 수 없는 비교할 수 없는 초대인 거예요. 근데 우리가 이 사실을 깨닫는 데는 엄청난 시간이 걸린다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가치를 깨닫는 건 시간이 걸리잖아요. 함께 사는 아내의 가치, 남편의 가치를 깨닫는 건 정말 많은 시간이 걸려요. 어리석은 사람들은 죽을 때가 돼서야 남편과 아내의 가치를 깨닫고 후회하는 사람이 있어요.
부모의 가치, 자녀의 가치도 마찬가지예요. 빨리 깨달으면 행복해지는데 늦게 깨달으면 최악이 되잖아요. 어떤 사람은 부모의 가치를 너무 늦게 깨달아요. 땅속에 묻히고 나서야 엄마, 아버지의 가치를 깨닫고 엉엉 울어요. 여러분 가치는 빨리 깨달아야 누리게 되는 거예요.
그처럼 구원의 가치도 빨리 깨닫는 자가 구원을 누리게 되는 거예요. 여러분 하나 자녀님의 자녀의 삶을 누려보셨습니까? 하나님 나라의 대사의 삶을 여러분이 한번 누려보셨습니까? 여러분의 영원한 삶이 있다는 사실을 한번 즐기고 기뻐하고 행복해 보셨습니까?
이 모든 것은 가치를 깨닫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교회가 세상과 다른 것은 세상에 줄 수 없는 가치를 주기 때문인 거예요.
근데 성도들이 이 가치를 깨달아야 교회의 가치도 깨닫게 돼요. 여러분은 언제 교회의 가치를 깨달으셨습니까? 교회가 얼마나 소중한지 얼마나 영광스러운 공동체인지 한번 진심으로 깨달아보셨습니까? 우리가 길거리에서 전도하는 일이 영혼 구원을 하는 일이 얼마나 멋진 일이고 아름다운 일인지 한번 여러분 느끼고 깨달아보셨습니까?
피곤하지만 교회에서 봉사하고 섬기고 수고하는 일들이 얼마나 멋진 일이라는 것을 여러분 깨달아보셨습니까? 저는 좀 시간이 걸리더라고요. 한 번 말씀드렸던 것처럼 제가 목장교회에 오니까 교회 주변이 되게 지저분해요. 그래서 교회 주변을 치우기 시작했어요. 그랬더니 일단 우리 교회 쪽으로 모아놓던 쓰레기들이 다 주변에 집 앞으로 다 가져가시더라고요. 죄가 깨끗하니까 버리지 않기 시작하고 그리고 공원까지도 이제 구미시청과 계약을 맺고 제가 청소하기 시작했어요.
근데 조금 청소를 해도 기분이 나빠요. 일단 제가 청소하는데 그냥 가는 교인들이 있더라고요. 속으로 아니 담임이 청소하면 그래도 빗자루질을 하는 척이라도 그럴 텐데 왜 그냥 가지 막 속에서 막 막 화가 날 때도 있었어요. 옛날 이야기예요. 지금 아니고
어떨 때는 이분들이 교회가 돈이 없는 줄 알고 밤새 먹은 이 술과 음식물들을 다 이렇게 기부하고 가셔요. 교회 마당에도 기부하시고 화장실도 기부하시고 이렇게 헌금을 기부하시면 좋을 텐데 그런 걸 기부하고 가셔요.
여러분 치우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에요. 어떤 분들은 더 큰 걸 기부하셔요. 엉덩이를 보이시고 우리 교회 CCTV가 다 있는데 그걸 모르시나 봐 다 찍히거든요. 엉덩이고 뭐고 다 찍혀요. 근데 기부하고 가셔요.
처음에는 기분이 너무 나쁜 거예요. 냄새도 나쁘고 목사가 왜 이런 짓을 해야지라는 생각도 있고 내가 이 시간에 앉아서 책을 읽고 이 시간에 뭘 했으면 하지라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그냥 자연스럽게 왔어요. 이 일이 저한테 되게 행복한 일이 되더라고요. 남의 일이라고 아멘 하지 안 하지 마시고 남의 일일지라도 아멘 좀 해주세요. 할렐루야
오늘날 이렇게 행복한 일이 되더라고요. 지금은 여러분이 쌩하고 가셔도 기분 나쁘지는 않아요. 고민은 해요. 그래도 권사님 정도 되면 제 수준은 취할 텐데 고민은 하지만 옛날처럼 막 속에 천불이 나거나 이러지는 않습니다. 그분들이 기부한 것도 요즘은 천불나지 않아요. 그냥 치우면 되니까 다른 것도 마찬가지 치우면 돼요.
어느 순간 하나님이 저에게 이 교회를 깨끗하게 하는 것에 대한 기쁨과 가치를 내게 주신 거예요. 그러고 나니까 이게 힘든 일이거나 불평스러운 일은 아니에요. 아내는 항상 그래요. 여보 제발 좀 왜냐하면 청소하고 정리하고 나면 머리에는 붙어 있고 바지는 또 얼룩져 있고 이게 막 집으로 올라가거든요. 근데 이제 아내는 이제 포기한 듯하고 이제 제자가 절대 내려 안 하지는 않으니까 어느 날 이게 기쁜 일이 되더라고요. 가치를 깨달으면 모든 건 다 소중하고 기쁜 일이 되는 거예요.
구원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원의 가치를 깨달으면 전도하는 일에 우리가 목숨을 걸게 되고, 교회의 가치를 깨달으면 교회를 살리는 일에 우리가 목숨을 걸게 돼요. 우리 교회를 한번 이렇게 둘러보십시오. 이제 정말 일부분만 좀 채워지면 우리 교회가 거의 꽉 차게 될 것 같아요. 지금보다 조금의 더 인원만 오고 예배를 함께 드릴 수 있게 되면 이 빈자리가 조금만 채워지면 꽉 차요.
여러분 영원히 많은 성도가 함께 예배하는 것도 우리가 전도한 성도들과 예배하는 것도 영광스러운 일인 거잖아요. 여러분과 제가 이 가치를 좀 깨닫는 시간이 우리에게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거룩한 직분과 소명 신분을 여러분은 어떻게 여기고 있습니까? 전도는 단순히 교회를 소개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도는 새 생명을 선물하는 거예요. 전도는 새로운 삶을 선물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새로운 세계관을 선물하는 거예요. 예수님께서 사흘 만에 살아나신 것은 죽음을 이긴 생명을 인류에게 선물하기 위한 거예요. 우리가 사람들에게 교회를 소개하는 것은 단순히 교회를 소개하는 게 아니라 새 생명을 선물하는 것입니다.
근데 이 생명이 어떤 생명이에요? 사망을 이긴 생명이고 죽음의 권세를 이긴 생명이고 영원한 생명이고 부활의 소망을 가진 생명이에요. 이 생명을 선물하는 것이 전도인 겁니다. 저는 이 땅의 교회들이 부활의 가치를 아는 날이 곧 올 거라고 믿습니다.
저는 이 땅의 교회들이 새 생명의 가치를 아는 날이 올 거라고 기대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부활을 본 사람들에게 천사를 통해서 명령하셨어요. 부활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부활을 전하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가장 먼저는 아직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보지 못한 제자들에게 부활을 알리는 것이고, 다음은 모든 민족에게 예수님의 부활을 알리는 사명을 제자들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교회는 부활을 전해야 되는 사명을 가진 공동체인 거예요.
요즘 이단들이 정말 지혜로워졌어요. 제가 아는 목사님이 이 복지 쪽의 사역을 일을 하고 계신데 그 이단이 접근을 한 대요.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이렇게 소개한대요. 그럼 한 사람이 요양원이나 병원에 오게 되면 수입이 늘어나는 거잖아요. 그 대신 한 번 교회에 와서 그 사람들도 그걸 교회라고 하니까 교회에 와서 한 번 강의를 들으라는 거예요. 이 사람이 자기 수입이 있으니까 받은 게 있으니까 강의를 들어요. 그럼 사람은 당연히 기대감이 생기죠. 또 누군가를 소개해 주지 않나 그때쯤 또 다른 사람을 소개한대요.
그리고 이번에는 반대로 교회에 오면 와서 강의를 들으면 내가 이 할아버지 할머니를 소개해 주겠다. 이렇게 해서 결국 3명, 4명 5명을 소개하고 난 후에는 그 사람을 자기의 성도로 삼아버리는 거예요.
여러분 돈이 2천만 원이 걸렸는데 이단에 가지 않을까요? 예수 안 믿는 사람인데 당연히 가죠. 이 사람들은 교묘하게 해서라도 어떻든 죽을 자기의 교수를 전도하잖아요.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죽은 권세적이신 그리스도를 우리가 전하지 않는다는 건 뭔가 심각한 어폐가 있는 거죠. 오류가 있는 거예요. 내 믿음의 오류 교회는 세상을 이기는 능력을 가진 공동체이고 세상에 그 어떤 공동체보다 더 큰 영광을 가진 공동체예요. 이 가치를 회복해야만 이 가치를 알아야만 이 가치를 전하는 일에도 우리가 동참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병규정 목사님이 자주 사용했던 예화입니다. 김미자 집사라는 성도가 있었는데 이 남편이 말기암 환자였어요. 암세포가 임파선까지 전이가 되어서 이제 의학적으로는 치료가 끝나고 이제 임종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아내 입장에서 남편의 죽음이 두렵지 않을까요? 그리고 진통이 찾아오면 더 두려웠어요. 그렇지만 사람이 할 일은 없잖아요. 그러던 중에 이제 오늘처럼 부활절이 온 거예요. 부활절에 성찬식에 이렇게 참여하다가 남편이 생각났어요.
내가 비록 곧 죽을 남편이지만 이 남편에게 떡과 포도주를 성찬식을 남편이 참여할 수도 해야 돼.
근데 남편이 말기암 환자니까 교회에 오지를 못하잖아요. 그러니까 이 집사님이 챙긴 거죠. 떡도 몰래 챙기고 잔도 몰래 이렇게 챙겨서 집에 가져갔습니다. 집에 갔더니 남편이 너무 고통스러워하고 이렇게 쓰러져 있어요. 고통을 못 이겨가지고 이제 쓰러진 채 있었습니다. 쓰러지는 남편을 일으켜 세우면서
여보 내가 오늘 부활절 예배에 갔다가 천상씩 드리고 내 몫의 성찬을 내가 다 당신을 위해서 가지고 왔어.
이렇게 하고는 남편의 입에 떡을 넣어주고 이 잔을 이렇게 먹이면서
이 떡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찢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살입니다. 이 피는 우리를 위해 고통당해서 하나도 남김없이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입니다
라고 하면서 남편에게 떡과 잔을 이렇게 먹였습니다.
여러분 그런 아내의 정성에 울지 않은 남편이 어디 있겠어요? 남편도 영웅 울게 되고 근데 그 순간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몸이 뜨거워지게 하면서 기도 학교ㄸ에도 말씀드렸죠. 몸이 뜨거워지는 건 이렇게 치료의 역사와도 관계가 있어요. 몸이 뜨거워지면서 그렇게 고통스러웠던 고통이 느껴지지 않게 됐던 것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성찬은 상징적인 거예요. 떡은 예수님의 살입니다. 포도주는 예수님의 피입니다. 우리가 상징으로 들려요.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면서 그런데 우리가 이 상징일지라도 우리가 능력을 믿으면 내가 믿음으로 역사 이 자리에 앉으면 이 모든 상징은 우리에게 능력이 되는 거예요.
예배도 상징이잖아요. 믿음으로 예배를 드리면 예배도 능력이 되고요. 성찬도 상징이잖아요. 믿음으로 성찬에 참여하면 성찬의 능력이 돼요. 찬양도 상징이에요. 하나님 우리 앞에 계시지 않잖아요. 온 우주를 통치하고 계셔서 그 하나님께 찬양하는 거지만 상징이지만 내가 믿음으로 찬양하면 찬양도 능력이 돼요. 그런 의미에서 교회가 꼭 회복해야 할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들에게 부활의 능력과 부활의 영광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또한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나의 것 되게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새 생명을 우리에게 선물했습니다. 여러분 교회를 소개한다는 건 생명으로의 초대를 내가 하고 있는 거예요. 물론 저도 개인적으로 우리 교회가 부흥했으면 좋겠어요. 그렇지 않은 목사가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많은 영혼들을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는 이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와 목회자가 되는 건 더 큰 영광인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들이 이 구원의 초대에 다 동참하십시오. 그리고 내가 교회에 대해서 소개할 때 여러분 교회에 지금 우리 교회를 전하는 게 아니라 온전한 교회를 전해야 돼요. 이 땅의 교회는 다 왜곡돼 있고 문제가 있어요. 우주적인 교회만 온전하죠. 그러니까 우주적인 온전한 교회를 전하는 거예요.
근데 사람들이 자꾸 전하면 우리 교회를 전하다 보니까 우리 교회의 문제점을 전하게 되잖아요. 누가 올까요? 우리는 교회를 떠났는데 이 로컬 교회를 전하는 게 아니라 우주적인 교회를 전하는 거예요. 교회는 어떤 곳이다. 생명이 있는 곳이다. 교회는 구원이 있는 곳이다. 교회는 영생이 있는 곳이다. 교회는 평안이 있는 곳이다. 교회는 은혜가 있는 곳이다. 교회는 회복시키는 곳이다라고 우리가 교회를 많은 이웃들에게 소개해야 됩니다.
목장 교회가 많은 사람들을 영원으로 초대하는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좌절에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소망을 선물하는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힘든 많은 사람들에게 그 힘듦을 이겨낼 수 있는 능력을 선물하는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님이 이걸 위해서 부활하셨고, 영생을 여러분과 저에게 선물해 주셨습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