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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하시는 하나님
마태복음 1:18-25. 누가복음 1:26-38
하나님은 범죄 한 인류에게 복음의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복음의 약속을 어떻게 이루어가셨습니까?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서 범죄 한 인류에게 주신 복음의 약속을 이루어 가시는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 사람들을 어떻게 설득해 나가셨는지도 살펴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1. 복음의 약속을 주신 하나님
하나님은 창세기 3:15 절에서 원시 복음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여자의 후손으로 인류를 죄에서 구원해 주실 메시아를 보내주실 것’이라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창세기 4:1절 말씀을 보면 이 약속의 말씀을 받았던 하와가 잉태하여 첫아들을 낳은 후에 한 고백이 무엇입니까? ‘아담이 그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하나님께서 여자의 후손으로 메시아를 보내줄 것이라고 약속하셨는데, 하와는 첫아들을 낳고 그가 하나님이 약속하신 메시아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 이름을 ‘가인’이라고 지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가인’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 메시아가 아니었습니다.
하와는 가인의 동생 아벨을 낳았는데 그도 메시아가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이 가정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가인은 그 동생 아벨을 죽이는 첫 살인자가 되었습니다.
이후에도 하와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메시아의 탄생을 기대하며 자녀를 낳았습니다.
그리고 하와 이후 모든 믿음의 여인들도 모두 다 자기가 메시아의 어머니가 되고자 하는 소원을 가지고 자녀를 낳았습니다.
그러면 믿음의 여인들은 그 자녀 중에 누가 메시아인지, 누가 메시아가 아닌지를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오늘 우리가 가장 먼저 살펴보려고 하는 것은 바로 이 문제입니다.
첫째, 메시아와 메시아가 아닌 사람을 구분하는 방법입니다.
하나님이 아담을 흙으로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심으로 아담은 살아 있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아담이 흙으로 지음을 받은 모습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사람의 육체적인 아름다움은 다 흙일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그 주어진 생애를 다 살고 죽게 되면 그 육체는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범죄 한 아담에게 하신 말씀도 이것이 아닙니까?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을 닮은 모습으로 창조함을 받은 사람들도 흙으로 무엇인가를 만듭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만드시는 것과 사람이 만드는 것에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생명을 가지신 분이시기 때문에 그 만드신 것에 생명을 주실 수 있으십니다. 그러나 사람은 생명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무엇인가를 만들기는 하지만 생명을 주지는 못합니다.
아담을 흙으로 만드신 하나님께서 하와는 어떻게 만드셨습니까?
아담을 잠들게 하신 후에 그 갈비뼈 하나를 취하여 하와를 만드셨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결혼의 원리가 나왔습니다.
이후 모든 사람들은 결혼한 아담과 하와를 통해 태어났습니다.
이후 모든 인류는 너나 할 것 없이 그 부모를 통해 태어납니다. 여기에는 한 사람도 예외가 없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정해놓으신 법입니다.
그러나 메시아의 출생은 다릅니다.
메시아는 여자의 후손으로 태어나시되, 셋의 후손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습니다.
그러면서 여자의 후손으로 사람으로 태어나시는 그 메시야는 신적인 존재라고 전해 주고 있습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서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이 보내주실 메시야는 여자의 후손으로 사람으로 이 세상에 오시지만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이시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런 예언의 말씀대로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그 신성과 영광과 존귀를 다 비우시고, 성령을 통해 갈릴리 나사렛에서 살았던 마리아라는 처녀의 몸을 빌려서 사람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과 같이 아버지를 통해 태어나신 것이 아니시고, 성령을 통해 마리아에게 잉태되셔서 인성을 취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아담으로부터 내려오는 그 부모의 죄에서 자유 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죄의 저주 아래 살아가고 있는 인류를 그 죄에서 구원해 주시는 메시아가 되실 수 있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인류의 구세주가 되실 수 있으신 유일한 근거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다양한 종교가 있고 그중에는 고등한 종교라고 알려진 종교들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고등한 종교라고 말하는 불교와 이슬람교를 보면 그 종교의 시조가 모두 다 아담의 후손입니다. 석가모니나 마호메트는 다 우리와 같이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사람입니다.
이뿐 아닙니다.
요즘 극성을 부리고 있는 이단의 교주들도 다 아담의 후손입니다. 이들이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났다는 이 말은 이들이 아담의 죄를 물려받은 죄인으로 태어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죄인으로 태어난 사람들은 인류의 구세주가 될 수 없습니다.
아담의 후손으로 죄인으로 태어난 사람들은 자신도 구원을 받아야 할 죄인으로 살아갑니다. 오직 성령으로 잉태되어 죄 없이 태어나신 예수님만 인류의 구세주가 될 수 있습니다.
둘째, 그러면 메시아는 언제 오시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창세기 3:15 절에서 원시 복음을 주신 이후에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메시아를 기다리며 살았습니다. 하와는 첫아들 가인을 낳고 ‘내가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 아들을 낳았다.’라는 생각을 하며 그 이름을 가인이라 지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약속하신 메시아가 이 세상에 오실 때는 메시아의 도래를 위한 모든 준비가 무르익어야 합니다. 이것은 장차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도 같습니다. 재림하실 때가 무르익으면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오실 때가 되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예수님은 약 2,000년 전에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당시에는 인류의 구세주가 오실 때가 무르익어 있었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다.
다양한 관점에서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첫째, 당시는 알렉산더를 통해서 헬라어가 세계 공용어로 통일되어 있었습니다.
둘째, 로마가 지중해 세계를 하나의 제국으로 통일하고 있었습니다.
셋째, 로마는 로마를 중심으로 전 지역에 이르는 도로망을 완성하였습니다.
넷째, 로마가 다스렸던 전 지역에 플라톤 철학이 융성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다섯째, 유대인들을 로마제국 곳곳으로 흩어져서 그곳에 회당을 세웠었습니다.
만약 알렉산더 대제에 의한 언어의 통일이 없었다면, 그래서 각지역 마다 서로 다른 언어가 사용되고 있었다면, 그 언어의 장벽이 복음 증거에 큰 걸림돌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을 쉽게 전하고 또 사람들이 복음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시기 전에 세상 언어를 통일해 놓으신 것입니다.
또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로마로 하여금 지중해 세계를 통일하게 하시고, 로마로 통일된 각 국가 들은 이후 로마의 지배 아래서 약 200년 동안 평화를 누리며 살게 하셨습니다.
로마 황제 시저는 통일된 제국을 원활하게 다스리기 위하여 도로망을 확충하는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이것 또한 복음 전도자들이 이 길을 이용하여 복음을 원활하게 전할 수 있도록 하신 하나님의 섭리의 역사이셨습니다.
당시 지중해에 있었던 각 나라들이 분열되어 있었더라면 국경을 넘어가서 복음을 전파하기가 상당히 어려웠을 것입니다. 또 당시가 평화의 시대가 아니라 전쟁 중이었다면 복음 전파는 불가능하였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하심으로 아들의 복음이 원활하게 전파될 수 있도록 로마제국이 지중해 세계를 통일하게 하시고 또 평화의 시대를 주신 것입니다.
플라톤의 이데아 사상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시 세계는 범신론에 젖어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융성했던 철학 플라톤의 이데아 사상은 사람들이 현실의 세계와 신의 세계를 구분하여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기초가 되어 주었습니다.
또 당시 유대인들은 로마제국 곳곳에 흩어져 살면서 그곳에 회당을 세웠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먼저 유대인들이 세운 이 회당을 중심으로 전하였습니다. 그래서 그곳에서 최초의 회심자들을 얻고 이 사람들을 통해 교회를 세우게 하고 그 세운 교회들을 통해 그 지역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복음이 로마 전역에 아무런 장애도 없이 퍼져나갈 수 있도록 섭리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모든 준비를 완벽하게 갖추어 놓으시고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4:4절 말씀에서는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셨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멘.
2. 설득하시는 하나님
메시아가 여자의 후손으로 세상에 오시려면 반드시 육신의 부모가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메시아의 부모로 선택받은 사람은 마리아와 요셉이라고 합니다. 이제 남은 시간 동안에는 누가복음 1장과 마태복음 1장을 통해서 하나님이 메시아 약속을 어떻게 이루어 가셨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신 만유의 주권자이십니다.
우주 전체가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주인이십니다. 하나님께는 만물을 그 뜻대로 하실 수 있으신 권한이 있으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준 그 자유로운 결정권을 존중해 주고 침해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사람이 무슨 결정을 하든지 그 결정을 존중해 주셨습니다.
먼저 하나님이 천사를 마리아에게 보내셔서 마리아가 메시아의 모친이 되는 것을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주의 사자를 요셉의 꿈속에 현몽시키셔서 요셉도 메시아의 아버지가 되는 일을 자유롭게 스스로 결정하도록 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게 되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사람들을 설득하셔서 사람들이 스스로 결정하도록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 마리아를 설득하신 하나님
누가복음 1장을 보면 가장 먼저 등장하는 인물은 샤가랴와 엘리사벳 부부입니다.
이 부부는 노인이 될 때까지 자녀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가랴가 그 반열의 차례대로 성전에서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다가 천사를 만나고 아들을 잉태하게 된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예수님의 잉태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가랴에게 자녀를 낳게 될 것이라는 소식을 알려주었던 천사 가브리엘이, 이번에는 다윗의 자손 요셉과 약혼한 상태에 있었던 마리아를 찾아가서 ‘네가 아들을 낳게 될 것’이라고 전해 줍니다.
이때 마리아가 천사에게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이까?’라고 묻습니다. 아이를 갖는 일은 아직 처녀인 자신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천사는 ‘네가 임신하게 될 아이는 사람의 자녀가 아니라, 성령으로 잉태되실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알려줍니다.
그러면서 두 가지 증거를 전해 주었습니다.
첫째는 노인이 될 때까지 자녀가 없었던 네 친족 엘리사벳이 하나님의 은혜로 임신하여 벌써 여섯 달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다.’라는 것입니다.
첫 번째 주신 증거는 마리아가 엘리사벳의 집에 가서 그 눈으로 확인해 볼 수 있는 증거입니다. 두 번째 주신 증거는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를 믿는 믿음이 필요한 내용이었습니다. 마리아는 천사가 전해 준 말씀을 듣고 어떤 믿음의 고백을 하였습니까?
누가복음 1:38 절입니다.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이 말씀은 ‘나의 삶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니 하나님의 뜻대로 하십시오.’라는 의미입니다. 마리아는 성경이 증거 해 오고 있는 구세주에 대한 약속이, 조상들로부터 전해 들으며 자라온 메시아의 탄생에 대한 약속이 자신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라는 천사 가브리엘의 말을 듣고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믿음으로 그 몸과 생애를 하나님께 바친 것입니다.
마리아가 믿음으로 하나님의 일에 그 자신을 바친 후에, 곧바로 그 친척 엘리사벳의 집으로 갔습니다. 거기서 천사가 자신에게 전해 준 그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리아는 석 달을 엘리사벳의 집에 머물다가 엘리사벳이 해산할 때가 되었을 때 집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이때 마리아는 임신 3개월이 된 상태로 돌아오게 됩니다.
이런 마리아를 통해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마리아는 하나님과 그 뜻을 따르는 것을 요셉과의 파혼보다, 사람들의 정죄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자신의 명예보다 하나님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으며 자신의 안일한 삶보다 하나님을 위해서라면 고난받는 삶까지 각오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마리아가 가진 신앙의 위대성이 여기에 있습니다.
마리아는 ‘너를 메시아의 모친으로 쓰려고 한다.’라는 하나님의 뜻을 전해 들었을 때, 자발적인 선택으로 메시아의 모친이 되는 일에 자신을 드렸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게 되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우리 하나님은 자유의지를 주신 사람들에게 무슨 일을 주시거나, 그 사람들을 통해 무슨 역사를 이루고자 하실 때, 사람들이 스스로 자발적인 마음으로 순종하도록 설득하고 기회를 주시는 분이시지, 반강제로 혹은 억압적으로 강요하시는 분이 아니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비록 사람들이 하나님이 창조한 피조물이지만 그 사람들에게 주신 자유의지를 침해하지 않고 존중해 주시는 분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둘째, 요셉을 설득하신 하나님
요셉이 하나님의 뜻을 수용한 것을 알려고 하면 먼저 마리아가 하나님의 뜻을 수용한 것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또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수용하는 것과 상관이 있습니다.
그러면 마리아는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수용하게 되었습니까?
우리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시고, 또 사람들을 그 모양과 형상을 따라 인격적인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무슨 일을 하시든지 강제로 억압적으로 하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신앙 때문에 순교한 사람들을 보십시오.
그 사람들이 ‘나는 순교 당하고 싶지 않은데 하나님이 강제로 순교자가 되도록 하시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순교자 폴리 갑을 보십시오.
폴리 갑을 아끼고 존경했던 로마 관리가 폴리 갑에게 ‘예수를 공개적으로 부인하여서 이 위기를 넘기고 다른 곳에 가서 숨어서 계속 예수를 믿으면 되지 않겠느냐?’라고 하며 회유하였다고 합니다. 그런 관리에게 폴리 갑이 한 말이 무엇입니까? '나는 86년 동안 그분을 섬겨왔는데 그동안 그분은 한 번도 나를 부당하게 대우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내가 어찌 이제까지 섬겨온 나의 왕 그리스도를 모독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며 스스로 자원하여 신앙을 지키는 순교의 길을 갔다고 합니다.
그러나 악령의 역사는 그렇지 않습니다.
악한 영들은 강제로 사람에게 들어가서는 그 사람의 인격을 무시하고 인격을 억누르고 강압적으로 억압적으로 역사합니다. 이런 사단의 역사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어떤 사람이 자신이 하나님께 속한 신령한 사람이라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삶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시고 간섭하고 계신다.’라고 하면서, ‘하나님은 내가 오늘 누구를 만나야 할지 만나지 말아야 할지라는 세세한 일까지도 일일이 다 지시해 주신다.’라고 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사람들이 ‘언제 한번 만나자.’라고 약속을 정하려고 하면 ‘그 사람을 만나는 것이 하나님 뜻인지 아닌지를 물어봐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만나도 좋다는 하나님의 사인이 오면 내가 연락을 줄 것이고 사인이 오지 않으면 만날 수 없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이 누구를 만나고 어디에 가야 할 것인지까지 하나님이 다 지시해 주신다.’고 합니다.
이 사람이 이렇게 말하는 의도가 무엇이겠습니까?
자신이 그만큼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고 있는 사람이고 신령한 사람이라는 것을 드러내고자 함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이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람에게 자유의지를 주신 하나님께서 이렇게 사람들을 통제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이것은 약한 영이 그 사람을 사로잡고 역사하고 있다는 증가이겠습니까? 그 대답은 여러분의 자유로운 판단에 맡깁니다.
우리가 꼭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은 우리 하나님은 강제로 우리 삶을 간섭하시고 억압하시는 분이 아니시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인격적인 존재로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인격적으로 대우하시며 이성적이고도 논리적으로 설득하시는 분이십니다.
이것은 우리 구원의 과정을 보아도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사람들이 어떻게 구원받도록 하십니까?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서 사람들을 설득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도자들을 보내셔서 설득하도록 하십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그 놀라운 사랑 즉 성자 하나님이 사람들을 위해 대신 죽어주신 그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사랑으로 사람들을 설득하십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설득당한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담 때부터 같았습니다.
하나님이 아담을 어떻게 설득하셨습니까? 아담이 죄를 지었는데 하나님은 죄지은 아담을 정죄하고 심판하시지 않으시고, 여자의 후손으로 메시아를 보내주셔서 사람들의 죄를 대속해 주실 것이라는 복음의 말씀을 전해 주시고, 그 증거로 짐승을 대신 죽이시고 그 가죽으로 옷을 지으셔서 죄의 수치를 가려 주신 속죄의 사랑으로 설득하지 않으셨습니까?
이렇게 복음 안에서 설득당한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입니다.
복음의 사랑 안에서 설득당한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요한복음 3:16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요약된 복음의 말씀을 통해 그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사랑으로 사람들을 설득하십니다.
십자가 사랑 앞에서 사람들은 어떤 경험을 하게 됩니까?
자신이 하며 살고 있는 제한된 사랑과 달리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한 사랑, 완전한 사랑, 그 높이와 깊이와 넓이와 길이를 알 수 없는 사랑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나 같이 비천한 사람을 개인적으로 찾아오셔서 만나주시고 사랑해 주심을 경험하면서 설득당하기도 합니다. 사도바울이 바로 그런 사람이 아닙니까? 바울은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오려고 다메섹으로 가고 있는데 그런 자신을 찾아와서 만나주시고 구원해 주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설득당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의 일은 다 이렇습니다.
심지어 사가랴는 천사의 방문을 받고 놀라고 무서워하고 있을 때 천사로부터 아들이 있을 것이라는 말을 전해 듣게 됩니다. 노인이 된 사가랴가 그 말을 믿지 못해 하자 벙어리가 되어 지내게 역사하심을 통해서 설득하셨습니다. 그래서 사가랴는 구약성경에 나오는 기드온이 하나님의 역사와 보여주신 증거를 통해 설득당했던 것처럼 그렇게 설득당한 것입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달랐습니다.
누가복음 1장을 보면 마리아는 천사의 방문을 받고 어떻게 했다고 합니까? 누가복음 1:29절입니다.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가 생각하매’
마리아는 천사를 만나는 이 돌발적인 상황 속에서도 생각할 수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마리아는 이렇게 자기 생각이 뚜렷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처녀가 아기를 낳게 된다는 천사의 말을 듣고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천사가 ‘네가 아들을 낳게 될 것이다.’라고 말하자 마리아는 ‘나는 아직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라고 되물었습니다. 이런 마리아에게 천사는 ‘성령의 능력으로 네가 하나님의 아들을 낳게 될 것이다.’라고 전해 주었습니다. 천사가 전해 준 이 말을 듣고 마리아가 이성적으로 수긍하게 됩니다.
그런데 요셉은 그 입장이 조금 달랐습니다.
마태복음 1:18절 말씀을 보면 요셉은 어느 날 그 친척 집에 갔다가 온 마리아의 몸에서 일어난 변화를 보게 됩니다. 성경은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약혼자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였다고 합니다.
우리는 당시 요셉의 입장에서 그 심정을 이해해야 합니다.
저는 같은 남자의 입장에서 요셉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요셉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는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요셉은 마리아가 임신한 것을 알고도 그 일을 드러내지 않고 알고도 모르는 척 눈을 감고 ‘가만히 끊고자 하였다.’고 합니다. 이런 요셉의 행동 속에서 우리는 자기의 신앙을 지켜 나가려고 하는 요셉의 각오와 결단과 함께, 임신한 마리아를 보는 안타까움과 섭섭함 등등의 갈등과 고민을 함께 읽을 수 있습니다.
이런 요셉이 꿈에 나타난 주의 사자의 말을 듣고 그 모든 의심과 안타까움과 갈등들을 다 덮어버리고, 마리아를 자기 아내로 인정하고 그 아들을 자기 아들로 인정하고 결혼했다고 합니다. 결혼하고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당시 요셉은 천사로부터 무슨 말을 들었을까요?
도대체 무슨 말을 들었기에 약혼을 파기하지 않고 그대로 결혼을 한 것일까요? 이제 남은 시간 동안은 말씀의 행간에 숨겨져 있는 이 문제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마태복음 1장에서 천사는 요셉에게 가장 먼저 마리아가 잉태한 것은 불륜 때문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20절입니다. ‘...그에게 잉태된 것은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을 것이다.’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리고 그 이름을 예수라는 이름으로 불러야 하는 이유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기 때문이라고 부연 설명을 해 주고 있습니다.
일이 이렇게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는 것’이라고 전해 주었습니다.
그러면 선지자로 하신 말씀은 무엇이었습니까? 이사야서 7:14절입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 말씀은 하나님이 인류에게 주신 창세기 3:15절 말씀에 그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이런 내용들은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전했던 말씀과 동일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천사가 전해 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고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고 수용했듯이, 요셉도 천사가 전해 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고 어떤 결단을 하게 됩니까? 24절입니다. ‘요셉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의 아내를 데려왔으나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라고 전해 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해 볼 수 있습니다.
마리아는 하와 이후 모든 믿음의 여인들이 메시아의 어머니가 되겠다는 믿음으로 자녀를 낳아왔는데 마리아는 그 당사자가 자신이라는 말씀을 전해 듣고 믿음으로 수용하게 됩니다. 그리고 엘리사벳을 통해 천사의 말이 사실임을 확인하고, 자신이 수태한 것을 확인하고 확고한 믿음을 가지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무엇에 근거하여 마리아를 향한 의심을 접고 그 일들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고 믿을 수 있었겠습니까?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천사가 그렇게 전해주었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천사의 말이 참됨을 확인할 수 있는 또 다른 말씀이 있었던 것일까요?
그래서 나온 견해가 요셉이 천사에게 설득당한 다른 말씀이 있다는 설입니다.
요셉과 약혼한 마리아가 예수님의 모친이 되기로 선택되는 은혜를 입었듯이, 요셉도 예수님의 아버지가 될 것이라는 예언이 성경에 있다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천사로부터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받은 자’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천사는 마리아에게 너는 구약성경이 예언해 오고 있는 메시아의 모친이 되는 특별한 은혜를 받은 자라는 것을 전해 줍니다. 마리아는 천사가 전해 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를 결단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일들이 사실임을 확인해 보려고 엘리사벳의 집을 찾아갑니다.
하나님이 요셉에게도 꿈에 천사를 보내셔서 요셉에게 전해준 말씀이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요셉이 메시아의 아버지가 될 것을 성경에 미리 예언해 놓았다는 것입니다. 요셉은 천사로부터 하나님이 자신에 대해 성경에 미리 예언해 놓으신 그 말씀을 전해 듣고, 그것이 자기에 대한 말씀임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예수님과 그 모친 마리아의 보호자가 되기를 자처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요셉이 예수님의 부친이 될 것이라는 예언은 어디에 있습니까?
첫째, 야곱은 그 아들 요셉을 통해 메시아가 태어난다고 전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야곱에게는 12명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창세기 49장에서 야곱이 12 아들을 축복하는 것을 보면, 유대 지파에서 메시아가 나올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야곱은 유다 지파에 대해 ‘사자 새끼, 홀과 통치자의 지팡이가 실로가 오시기까지 떠나지 않으리라. 그 나귀를 포도나무에 맬 것이며 포도주에 그 옷을 빤다는 것’ 등등을 보면 메시아가 유다 지파에서 나온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왜 메시아가 유다 지파에서 태어나게 되었습니까?
그 이유는 장자인 르우벤이 계모와 동침함으로 아버지의 침상을 범해서 장자에서 탈락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다음인 시므온과 레위는 디나 사건 때 세겜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할례를 받으면 한 백성이 될 것이라고 약속을 해 놓고 그 약속을 어기고 세겜 성 사람들을 다 죽이는 죄를 지음으로 또 탈락되었습니다.
그다음이 바로 유다였습니다.
그래서 넷째 아들인 유다가 장자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메시아는 장자인 유다 지파를 통해 오신다는 것입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둘 다 유다 지파였습니다.
그런데 창세기 49장에서 야곱이 12 아들을 축복하는 것을 보면, 요셉 지파에 대해서 ‘그 가지가 담을 넘었다. 그로부터 반석인 목자가 날 것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들을 보면 요셉에게서도 메시아가 탄생할 것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메시아의 약속이 유다 지파와 요셉 지파에 동시에 주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첫 번째 풀어야 할 난제입니다.
또 야곱이 요셉에게 약속하고 있는 복을 보면,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땅의 복 즉 깊은 샘의 복, 젖먹이는 복, 태의 복’ 등등을 약속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야곱이 약속하고 있는 이 복은 요셉에게 가지지 못했습니다.
왜요.
요셉이 낳은 두 아들 아브라임과 므낫세를 야곱은 요셉에게서 빼앗아서 자기 아들로 삼았습니다. 창세기 48:5절입니다. ‘내가 애굽으로 와서 네게 이르기 전에 애굽에서 네가 낳은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내 것이라 르우벤과 시므온처럼 내 것이 될 것이요.’ 그래서 요셉은 그 기업을 이어갈 자식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요셉에게 주신 복은 유보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왜 야곱은 요셉에게서 두 아들을 빼앗은 것입니까?
그 설명은 이렇습니다. 야곱은 메시아가 요셉을 통해 나와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미 요셉에게 있었던 두 아들을 자신의 기업으로 빼앗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후에도 요셉에게는 자식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후 이스라엘 12지파에서 요셉은 빠지게 되고, 레위 또한 제사장 지파로 빠지게 됨으로 그 자리에 요셉의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대신 들어가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는 요셉과 레위 지파가 빠지고 에브라함과 므낫세 지파가 들어가는 변경이 있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이 야곱을 통해 말씀해 주신 약속 즉 요셉에게서 약속하신 메시아가 날것이라는 약속과 요셉이 하늘의 복과 땅의 복을 받을 것이라는 약속은 유보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요셉에게 약속하신 이 약속은 자녀가 없기 때문에 육신 적으로는 성취될 수 없는 약속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약속은 육신 적인 성취에 대한 약속이 아니고, 영적인 성취에 대한 약속으로 유보되고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리해 보면, 육신 적인 메시야 지파는 유다 지파가 되고, 영적인 메시아는 자식이 없는 요셉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외형적으로 장자는 유다가 되고, 실재적인 장자는 요셉이 된다는 것입니다.
야곱은 이 내용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요셉의 육신 적인 후손인 두 아들을 빼앗아 자기 기업으로 삼고, 하나님이 요셉에게 주신 약속은 영적인 약속으로 남겨지게 했다는 것입니다.
둘째, 그 후에 하나님은 이 내용을 모세에게도 계시를 주셔서 알려 주셨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유다 지파의 후손 중에서 요셉이라는 사람을 통해 메시아가 태어날 것이라는 약속을 창세기 49장에 기록하여 전해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셋째, 창세기 49장에서 예언된 말씀을 성경에 정통한 학사였던 에스라도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스라는 역대 서를 기록하면서 이렇게 기록하였다는 것입니다.
역대 상 5:2절입니다. “유다는 형제보다 뛰어나고 주권자가 유다에게서 났으나 장자의 명분은 요셉에게 있으니라.”
이 말씀은 야곱의 실재적인 장자는 유다가 되어서 메시아가 유다의 후손으로 태어나게 될 것이지만, 그러나 실재적인 장자의 명분은 요셉에게 있어서 메시아가 요셉을 통해 태어나게 될 것이라고 전해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의 족보를 보면 형식상으로는 유다로부터 메시아가 나옵니다.
마태복음 1:2절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고’ 그런데 영적으로는 이 메시아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의 아들로 나옵니다. 16절입니다.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예수님은 요셉의 법적인 아들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사실 이 요셉은 예수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왜요 요셉이 받은 복은 영적인 복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셉은 영적으로 예수님의 아버지가 된 것입니다.
요셉이 천사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무엇이겠습니까?
아마 천사는 성경의 이런 말씀들을 요셉에게 설명하면서, 메시야는 이렇게 유다의 혈통에서 나올 것이기 때문에 성경에는 유다 지파에서 나올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요셉에게서 나와야 한다고 해석해 주지 않았겠습니까?
그리고 그 당사자가 바로 ‘요셉 너다.’라고 천사는 하나님이 너를 예정해 두셨다고 설명해 주지 않았겠습니까? 그래서 네 아내 마리아가 성령으로 메시아를 잉태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해 주지 않았겠습니까?
이렇게 하나님은 천사를 통해 구약성경에서 약속하신 영적인 복이 요셉 너에게로 이어졌으며, 지금 그 메시아에 대한 약속이 너를 통해 이루어지기 위해서 성령을 통해 마리아가 잉태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려주며 설득하지 않았겠습니까?
이런 이해를 가지고 마태복음 1:20절 이하의 말씀을 다시 읽어보면,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일렀으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요셉은 천사에게서 하나님께서 구약성경을 통해 인류의 메시아가 자신의 아들로 올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는 예언의 말씀을 전해 들으면서, 내가 하나님에 의해 메시야의 양 아버지가 되도록 예정되었다면 나는 하나님이 네게 주신 그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해 나가야겠다고 결단하지 않았겠습니까?
이런 결단을 한 요셉이 곧 바로 한 일이 무엇입니까?
마태복음 1:24-25절입니다. ‘요셉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의 아내를 데려왔으나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이렇게 예수님은 육신 적으로는 유대 지파의 후손으로, 영적으로는 유대 지파의 후손이었던 요셉의 아들로 성육신 하셨습니다. 성경은 아주 분명하게 메시아는 유다 지파의 후손 중에서 요셉이라는 사람을 통해 태어나시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아멘.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어떻게 인도하십니까?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인격적인 존재로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인격적으로 대우하시면서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인격을 존중하시면서 이해시키시고 설득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하나님께서는 사가랴를 표적을 통해서 이해시키시고 설득하셨고, 마리아와 요셉을 예언의 말씀으로 이해시키시고 설득하심으로 그 뜻을 이루어 가졌습니다.
오늘날은 영적으로 아주 혼란한 시대입니다.
악한 영의 역사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시대입니다. 여기저기에서 이것이 하나님이 주신 계시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이 일어나서 각종 예언들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바로 알고 또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역사하시는 분이신지를 바로 알고 섬기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래야 장차 어떤 미혹의 역사가 우리 앞에 다가올지라도 우리는 바른 분별력을 가지고 하나님이 은혜로 선물로 주신 이 믿음을 그 주신 말씀에 기초해서 끝까지 지켜 나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믿음을 끝까지 바로 지켜 나가게 되는 이런 은혜 이런 믿음을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충만하게 부어주시기를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