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무지개를 보았다면 다행입니다
정시마
편의점 하나 없는 볼트로 꽉 쪼인 골목만 있어요
사방 흩어진 골목으로 장미를 봤어요
당신은 하얀 피부의 어린 남자를 위한 의자를 서너 개쯤 두고
비를 기다리는 무지개 너머 지천의 천일홍 빗방울 세고 있어요
단 하나 발자국 없는 의자는 바다로 흘러들어 혼자 남게 되지요
긴말 늘리는 벤치는 파란대문 쓰다듬듯 지나치고
당신은 바람의 껍질을 벗겨 거대한 비늘 벗은 바다 위로 마당을 원하는지요
아직 누구도 앉을 수 없는 빈 의자 앞으로 별 무덤 언덕을 들여놓지요
구르는 돌맹이처럼 겨울은 오고
골목은 건조한 목소리 갈라지는 허기로 가득해요
마치 낡은 계절 앞으로 긴 스카프 풀려 날아가고
흰 구름 머금은 남자를 캔버스 새겨 넣고 기다리는 중인가요
흔히 죽고 싶어 혼자 말하는 막다른 길에서는 시간 없다는 뜻으로 읽을게요
섣불리 도착한 외기러기 날개 접은 시간 세찬빗줄기 골목을 쥐어짜요
그러니 예의바른 우울은 멀리하고 유쾌한 자작나무결의 남자는 내려놓아요
아무도 모르게 그 발랄한 그늘아래 빛은 사라져 아프리카 무지개라도 기다리나요
피부는 태양만큼 하얀 이마아래 날선 콧잔등 붉은 입술사이로
무지갯빛 휘파람 굴리는 진심의 의자하나 기다려요
허연 외로움은 구석진 지구를 돌아 해골처럼 환희 웃는 입속으로
늙은 생쥐 들끓는 습한 뒷길 끝에서 몇 초간의 무지개를 보았나요
골목을 빠져나온 깊은 연못하나 은행나무로 둘러싸여
당신은 빗소리 머금은 쪽으로 건너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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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시마
2010년 『현대시학』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