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늘의 땀방울 혹은 별들의 침
-신들의 양식을 음미하며 생명공학의 미래를 바라보다-
꿀과 그 생산과정을 둘러싼 신비로움을 바탕으로 형성된 신화, 혹은 전설들은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다. 이러한 믿음들은 신기하게도 최초의 과학적 근거들이 발견된 근대까지도 존재했다. 하지만 그 신화의 일부는 태곳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뿌리를 지닌 것이어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밀랍’은 꿀벌이 꽃을 이용해 만들지만 꿀은 별이 떠오를 때나 무지개가 펼쳐질 때 떨어지는 것” [<동물사> 제5권, 22] 이라고 했고 플리니우스는 꿀은 ‘하늘의 땀방울, 혹은 별들이 내뱉는 일종의 침이거나 대기가 맑아지면서 나오는 액체’ 라고 했다.
또한 꿀은 신들의 음식인 동시에 신이 인간에게 내린 선물이었다. 마야인들은 자신들의 신을 거대한 꿀벌로 표현하고 신들을 찬양하는 축제에서 엄청난 양의 벌꿀주를 소비하였다. 이집트에서는 아몬 레의 눈물이 꿀벌로 변한다고 여겨 꿀은 신들의 양식이라 믿었다. 프랑스에서는 비교적 최근까지도 양봉과 벌꿀 가공에 관한 한 많은 부분이 오래된 규정과 금기에 영향을 받았는데, 이것은 벌꿀이 가지는 오랜 종교적 영향력의 잔재라고 여겨진다.
다시 떠오르는 바이오 리소스
신의 선물이자 헌상물(獻上物) 이던 꿀은 오늘에 이르러 최첨단 바이오 공학(BT) 의 주역으로 거듭나고 있다. 꿀은 상처를 소독할 뿐만 아니라 치료를 빠르게 하고 흉터를 감소시킨다고 한다. 꿀의 치료능력에는 효소가 부분적으로 관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것이 상처부위의 수분과 반응하면 표백제의 역할을 하면서 세균을 죽인다는 것이다.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병의 종류에 따라 다른 종류의 꿀을 처방했다고 한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외용제로서 뉴질랜드의 마누카 꽃에서 만들어진 벌꿀이 가장 효과적인 항균성분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호주의 한 회사는 이 마누카 꿀을 세계에서 유일하게 치료제로 인가 받은 꿀로 등록하는데 성공했다. 현재는 호주 이외 16개국에서도 꿀, 혹은 꿀 제품의 의료용 등록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꿀이 오래 전부터 피부를 탄력 있게 가꾸는데 사용되어 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오늘날에도 꿀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화장품의 활성물질로서 화장크림, 팩, 비누, 로션, 샴푸, 오일, 화장수 등 많은 제품의 주요성분으로 쓰인다. 화장품 제조자들은 때로 꿀이 부드럽기 때문에 피부도 부드러워질 것이라는 ‘심리적 동질화’를 이용하기도 하지만 실제로 꿀은 무기염과 각종 희소성분, 단백질, 비타민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으며 효소의 일종인 ‘그루코스 산화제’는 살균과 피부 진정효과를 가졌다고 한다.
신화에서 식탁으로
중세 이전에는 꿀이 단맛을 내는 유일한 재료였기 때문에 단맛을 내야 하는 모든 요리에 꿀이 사용되었다. 꿀은 주로 겨자알갱이에 섞어 맛을 내는데 이용되었고 이로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양념 중의 하나인 ‘허니머스터드 소스’ 의 원형이 되기도 했지만 겨자가 들어가지 않는 수많은 요리에서도 꿀이 사용되었음을 볼 수 있다. 아테네의 에라시스트라토스나 로마의 아키피우스 등 고대의 유명한 미식가들은 꿀을 주 원료로 한 수많은 요리법을 남겼다. 그러나 사탕수수에서 나온 설탕 때문에 양봉은 사양길에 접어들었고 16세기부터 설탕이 대중화 되면서 꿀을 사용하지 않는 중산계층의 요리가 사회 모든 계층으로 조금씩 퍼져가면서 꿀은 식탁과 주방에서 영영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현대요리에서 꿀은 무척 독특한 소재이다 오늘날 꿀을 이용한 수많은 조리법 중에는 아키피우스 의 요리법인 꿀을 넣은 오리요리와 같이 전통이 오래된 것들도 있고 미셀 게라르와 같은 현대 프랑스 요리사의 기발한 상상력에서 나온 조리법들도 있다. 예를 들면 앙트레(오렌지 꿀을 바른 닭고기 샐러드), 생선요리(꿀과 양념을 바른 아귀구이), 갑각류요리(대하의 꿀 사프란 찜), 가금류요리 (꿀과 후추로 속 채운 대추를 넣은 모로코 식 닭 요리) 등이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꿀의 가장 좋은 쓰임새는 후식류와 벌꿀술 (Hydromel/Mead) 등의 음료다.
신의 음료에서 사랑의 음료로
인류 최초의 알코올성 음료는 아마 벌꿀술일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어원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이 벌꿀술을 지칭하는 '미드(mead)'라는 말은 과실주 ‘빈(vin)’과 더불어 그리스 어와 산스크리트 어에서도 나오는 가장 오래된 알코올성 발효 음료를 가리키는 말로서 석기시대의 혈거인들 도 이 술을 마셨을 것이라고 한다. 그리하여 이 말은 18세기까지 세계 전역에서 음주행위의 대명사로 쓰여졌다고 한다.
벌꿀술은 물과 꿀의 혼합물은 발효시켜 만든 것인데 전통적으로 신들의 취기를 느낄 수 있는 술로 여겨지며 많은 민족들의 제의와 축하행사에서 사용되었다. 영국 관습에 의하면 신혼 1개월간은 매일 잠자리에 들기 전에 벌꿀술을 마시는 풍습이 있다 하며, 단맛(Honey), 달밤(Moon)의 의미로 허니문(Honey Moon)이란 말이 여기에서 전래되었다고 한다. 전통적으로 바이킹 국가들, 즉 덴마크,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등 포도의 북방제배한계선 이북에 위치한 북유럽 국가들에서는 벌꿀술이 가장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다. 북구전설에 의하면 신들은 벌꿀술을 마시며 그들만의 詩(시)를 노래하였는데, 인간은 신들만의 전유물이었던 시를 짓기 위하여 벌꿀술을 훔쳐내었다고 한다. 이후, 비로소 인간은 시를 지으며 사랑을 노래하게 되었고 벌꿀술은 신의 음료에서 시인의 음료, 지혜의 음료, 그리고 정열적인 사랑의 음료로 여겨지게 되었다.
미래에 더 각광받을 자연물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꿀은 양식으로서뿐만 아니라 치료약, 향유, 불로장생 약, 화장품의 원료 등으로 널리 이용되어 왔다. 그러나 과학이 발달하면서 기적의 양식이나 불로장생 약으로 여겨지던 꿀에 대한 인식은 사라져 가고 있다. 하지만 꿀과 벌집의 다른 생산물들을 분석한 가장 최근의 결과들을 바탕으로 이제까지 전설이나 전통을 통해 비유적으로 혹은 시적인 형태로 수 세기 동안 전해 내려온 꿀의 효능을 증명하고 나아가 미래에 더욱 각광받을 의료, 미용 및 산업 제 분야에 걸친 여러 가지 제품들을 개발하기 위한 노력은 더욱 박차를 가하여 이루어지고 있다.
세계각국이 자연자원의 확보에 나서 이를 통한 부가가치 확보에 나서고 있는 지금, 우리 전통식품과 그 조리법도 한걸음 앞서나간 관점으로 새롭게 재조명 되어야 하지 않을까? 세계적으로도 사례가 흔치 않은 곡물계 감미료인 조청이나 엿기름 등을 건강 감미료로 개발해 보급할 수는 없을까? 꿀에 대한 각국의 다양한 효용 재창출 사례를 보며 떠나지 않던 생각이었다. 이에 미래에 무한한 부가가치와 국가 경쟁력을 안겨줄 전통 식 문화 자원에 대한 발굴, 정의, 분류사업을 정부와 학계, 산업계가 공동으로 진행할 것을 제안한다. 더불어 한낮의 무더위가 식지 않는 긴 여름 밤, 신화의 세계를 맛보며 다가올 무한한 미래를 상상해 보는 것은 어떨지. 우리 모두의 꿈을 응원하며 여름철 피로회복과 기력충전을 위한 칵테일 한잔 소개한다.
[출처] 하늘의 땀방울 혹은 별들의 침|작성자 히라메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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