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화경은 대자대비의 베품 = 광선유포
작성자:세계광선유포
작성시간:2023.05.05 조회수: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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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대국(大國)의 왕(王)은 백성(百姓)을 어버이로 삼고, 백성(百姓)은 식물(食物)을 천(天)으로 한다고 쓰여져 있다. 식(食)에는 삼(三)의 덕(德)이 있으니, 一에는 명(命)을 잇고·二에는 색(色)이 늘어나고·三에는 힘을 더함이라. 남에게 물품(物品)을 베풀면 자신(自身)에게 도움이 되는 법인데 , 비유하면 남을 위해 불을 밝히면 내 앞이 밝아지는 것과 같다.
식물삼덕어서(食物三德御書) 미노부에서 1598쪽
세간출세(世間出世)의 재물(財物)을 일분(一分)도 베풀지 않은 사람으로 법화경(法華經)만을 일자(一字)·일구(一句)·일게(一偈)를 수지(受持)하는 사람과 상대(相對)하여 공덕(功德)을 논(論)하건대,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의 공덕(功德)이 뛰어남이 백천만억배(百千萬億倍)이니라. 천태대사(天台大師)는 이보다 뛰어나기가 오배(五倍)이니라. 이러한 사람을 공양(供養)하면 복(福)을 수미산(須彌山)처럼 쌓는 것이라고 전교대사(傳敎大師)가 단언(斷言)하시었소. 이러한 일을 부인(夫人)에게 말씀하시라, 공공근언(恐恐謹言).
다이후노사칸전답서(大夫志殿答書) 미노부에서 60세에 술작 1104쪽
의포(衣布) 및 단의견포(單衣絹布) 받았소이다. 대저 식(食)은 명(命)을 잇고 의(衣)는 몸을 감싸준다. 식(食)을 유정(有情)에게 베푸는 자(者)는 장수(長壽)의 과보(果報)를 초래(招來)하고, 남의 식(食)을 빼앗는 자(者)는 단명(短命)의 과보(果報)를 받는다. 의(衣)를 남에게 베풀지 않는 자(者)는 세세(世世)·존생(存生)에 나형(裸形)의 과보(果報)를 받게된다. 육도(六道)의 중(中)에 인도(人道)·이하(已下)는 모두 모습이 알몸으로 태어나며 천(天)은 수생의(隨生衣)이니라. 그 중(中)의 사슴 등(等)은 무의(無衣)로서 태어날 뿐 아니라 남의 옷을 훔쳤기 때문에, 몸의 가죽을 사람에게 벗겨짐으로써 훔친 옷을 보상(報償)하는 과보(果報)를 득(得)하였다. 사람 중(中)에도 선백비구니(鮮白比丘尼)는 태어났을 때 옷을 입고 태어났다. 불법(佛法) 중(中)에도 나신(裸身)으로 법(法)을 행(行)하는 도리(道理)는 없다. 그러므로 석존(釋尊)은 마하대모비구니(摩訶大母比丘尼)의 옷을 얻어 정각(正覺)을 이루시었다. 모든 비구(比丘)에는 삼의(三衣)를 허용(許容)했으며, 둔근(鈍根)의 비구(比丘)는 의식(衣食)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증득(證得)하지 못한다고 쓰였느니라. 특히 법화경(法華經)에는 유화인욕의(柔和忍辱衣)라고 해서, 의(衣)야말로 본(本)이라고 햇으며, 또한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를 의(衣)를 가지고 덮어 주신다고 하는 것도 자상한 의(義)이니라.
법의서(法衣書) 미노부에서 59세에 술작 1296쪽
지금 또 이 산(山)에 오개년(五箇年)있었소. 북(北)은 미노부산(身延山)이라고 해서 하늘에 다리를 세우고·남(南)은 다카토리(鷹取)라고 하여 계족산(鷄足山)과 같도다. 서(西)는 시치멘산(七面山)이라고 하여 철문(鐵門)을 닮았으며, 동(東)은 덴시악(天子嶽)이라고 하여 후지(富士)의 산(山)의 태자(太子)로다. 네 개의 산(山)은 병풍(屛風)과 같으며, 북(北)에 대하(大河)가 있는데 하야카와(早河)라고 부르며 빠르기가 화살과 같다. 남(南)에 강(江)이 있으니 하키라카와(波木井河)라고 부르며 대석(大石)을 나무의 잎처럼 흘려버리고, 동(東)에는 후지카와(富士河)가 북(北)에서 남(南)으로 흐르며 천(千)의 창(槍)으로 찌르는 것 같고, 안에 폭포(瀑布)가 있어 미노부(身延)의 폭포(瀑布)라고 하여 백포(白布)를 하늘에서 드리운것과 같다. 이 안에 협소(狹小)한 땅이 있는데 니치렌(日蓮)의 암실(庵室)이니라. 심산(深山)이기에 낮에도 해를 볼 수 없고 밤에도 달을 바라볼 수 없으며 산정(山頂)에는 파협(巴峽)의 원숭이가 소란하고 계곡(溪谷)에는 물이 흐르는 소리가 북을 치는 듯하며, 땅에는 깔지 않아도 대석(大石)이 많고 산(山)에는 와력(瓦礫) 이외(以外)는 아무것도 없으며, 국주(國主)는 미워하시고 만민(萬民)은 찾아오지 않는다. 겨울엔 눈이 길을 막으며 여름엔 풀이 무성(茂盛)하여 멀리 들리는 사슴소리가 원망스러우며 매미 우는 소리가 시끄럽고 찾는 사람이 없으니 목숨도 잇기 어려우며, 살갗을 가릴 옷도 없는데 이러한 옷을 보내주시니 뭐라고 말할 나위가 없나이다.
보던 사람 듣던 사람조차도 가엾다 하지 아니하고, 오래 전부터의 제자(弟子)와 시중들던 하인(下人)들까지도 모두 도망가 버리고 찾지 않는데, 듣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한 사람의 후의(厚意)가 기특합니다. 오로지 이는 헤어진 나의 부모(父母)가 바꿔 태어나심인가. 십나찰(十羅刹)이 사람의 몸에 바꾸어 들어가 베풀어 주심인가.
묘호비구니답서(妙法比丘尼答書) 미노부에서 57세에 술작 1414쪽
니치렌(日蓮)의 제자(弟子)인 쇼우보(少輔房)라든가 노토보(能登房)라든가 나고에(名越)의 이(尼) 등(等)이라고 하는 자(者)들은 욕심(慾心)이 많고, 마음은 겁쟁이고·우치(愚癡)이며, 게다가 지자(智者)라고 자칭(自稱)하는 것들이기에 일이 일어났을 때는 기회(機會)를 얻어 많은 사람을 퇴전(退轉)시켰느니라. 귀하(貴下)도 설복(設伏) 당(當)하신다면 스루가(駿河)에서 다소(多小) 믿는듯한 자(者)도 또 믿으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모두 법화경(法華經)을 버릴 것이로다. 그러므로 이 가이(甲斐)의 지방(地方)에도 다소(多少) 믿겠노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분명(分明)치 않고서는 입신(入信)시키지 않고 있노라, 어설픈 사람이 믿고 있는듯한 모습으로 깔보고 함부로 말하면 사람의 신심(信心)을 파(破)하고 마느니라.
그래도 놓아두시라, 범천(梵天)·제석(帝釋) 등(等)의 계책(計策)으로써 일본국(日本國)의 사람들이 일시(一時)에 믿는 일이 있으리라, 그 때 나도 본래(本來)부터 믿었노라, 믿었노라 하고 말하는 사람이 많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우에노전답서(上野殿答書) 미노부에서 56세에 술작 1539쪽
엽전(葉錢) 일관문(一貫文) 보내시어 받았소이다, 신심(信心)이 있으시기에 말하겠소·욕심(慾心) 많은 승려(僧侶)라고 생각하시지 말지어다.
쉽게 부처가 되는 길이 있으니·가르쳐 드리겠소, 사람이 무엇을 가르친다고 하는 것은 수레가 무겁지만 기름을 칠해서 돌게 하고·배를 물 위에 띄워서 가기 쉽게 하는 것처럼 가르치는 것이외다. 부처가 되기 쉬운 길은 다른 방법(方法)이 없습니다. 한발(旱魃)에 목마른 자(者)에게 물을 주고, 한빙(寒氷)에 얼은 자에게 불을 주는 것과 같으며, 또한 둘도 없는 것을 남에게 주면, 목숨이 끊어질터인데 타인(他人)에게 베푸는 것과 같으니라.
금색왕(金色王)이라고 하는 왕(王)은 그 나라에 십이년(十二年)의 대한발(大旱魃)이 있어서 만민(萬民)이 아사(餓死)하는 일이 헤아릴 수 없었는데, 하천(河川)에는 사인(死人)을 다리로 삼고·육지(陸地)에는 해골(骸骨)이 무덤을 이루니, 그 때·금색대왕(金色大王)·대보리심(大菩提心)을 일으켜서 크게 보시(布施)를 하시었다, 베풀 것이 모두 동이 나서 곳간 안에 단지 쌀 오승(五升)만이 남았었다. 대왕(大王)의 하루의 수라이외다 라고 신하(臣下)가 아룄더니·대왕(大王)은 오승(五升)의 쌀을 끄집어내어 모든 굶주린 사람에게 혹은 한 톨·두 톨·혹은 세 톨·네 톨 등(等)·골고루 나누어 주신 뒤에, 하늘을 우러러 보시고 짐(朕)은 일체중생(一切衆生)의 기갈(飢渴)의 괴로움에 대신(代身)하여·아사(餓死)하겠노라고·소리를 높이어 외치시니·하늘이 들으시고 감로(甘露)의 비를 수유(須臾)에 내리시었다. 이 비가 몸에 닿고 얼굴에 맞은 사람은 모두 먹을 것이 포만(飽滿)하여 일국(一國)의 만민(萬民)이 찰나(刹那) 동안에 목숨을 소생(蘇生)시켰습니다.
우에노전답서(上野殿答書) 미노부에서 59세에 술작 1574쪽
물어 가로되, 여하(如何)히 해서 속(速)히 이 재난(災難)을 멈추게 하겠느뇨, 답(答)하여 가로되, 빨리 방법자(謗法者)를 대치(對治)할지어다, 만약(萬若) 그렇지 않으면 무진(無盡)의 기청(祈請)이 있다 해도 재난(災難)을 멈추지 못하느니라, 물어 가로되 어떻게 대치(對治)해야 하느뇨, 답(答)하여 이르되 대치방법(對治方法)은 또한 경(經)에 있노라, 열반경(涅槃經)에 가로되 부처가 왈(曰), 오직 일인(一人)을 제외(除外)한 나머지의 일체(一切)에게 보시(布施)하라, 정법(正法)을 비방(誹謗)해서 이 중업(重業)을 만드는 오직 그와 같은 일천제(一闡提)의 무리를 제외(除外)하고 그 나머지 사람에게 베풀면 일체(一切)가 찬탄(讚歎)하리라. 이상(已上), 이 경문(經文)과 같다면 보시(布施)를 멈추어서 대치(對治)하라고 설(說)했느니라.
재난대치초(災難對治抄) 가마쿠라에서 39세에 술작 85쪽
잘 비장(秘藏)하여 깊이 이 이(理)를 증(證)해서 삼세(三世)의 제불(諸佛)의 본의(本意)에 꼭 들어맞아 이성(二聖)·이천(二天)·십나찰(十羅刹)의 옹호(擁護)를 받고 막힘 없이 상상품(上上品)의 적광(寂光)의 왕생(往生)을 이루어 수유간(須臾間)에 구계생사(九界生死)의 꿈속에 돌아와서, 몸을 시방법계(十方法界)의 국토(國土)에 편만(遍滿)하고, 마음을 일체유정(一切有情)의 신중(身中)에 넣어서 내(內)로 부터는 권발(勸發)하고 외(外)로부터는 인도(引導)하여 내외상응(內外相應)하고 인연화합(因緣和合)하여 자재신통(自在神通)의 자비(慈悲)의 힘을 베풀어 널리 중생(衆生)을 이익(利益)케 함에 막힘 없을지어다.
삼세제불총감문교상폐립(三世諸佛總勘文敎相廢立) 미노부에서 58세에 술작 574쪽
이제 말법(末法)에 들어와서는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이니라. 보승(寶乘)의 승(乘)의 자(字)는 대백우거(大白牛車)의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이니라. 그러므로 위의 승(乘)은 능승(能乘)·아래의 승(乘)은 소승(所乘)이니라. 보승(寶乘)은 연화(蓮華)요 석가(釋迦)·다보(多寶) 등(等)의 제불(諸佛)도 이 보승(寶乘)에 타셨느니라. 이것을 제바품(提婆品)에 거듭 설(說)할 때·약재불전(若在佛前) 연화화생(蓮華化生)이라고 운운(云云). 석가(釋迦)·다보(多寶)의 이불(二佛)은 우리들의 기심(己心)이니라, 이 기심(己心)이 법화경(法華經)을 만나서 성불(成佛)함을 나타내려고 하여 석가(釋迦)·다보(多寶)·이불(二佛)·병좌(並座)하여 승차보승(乘此寶乘)·직지도량(直至道場)을 나타내시었느니라.
이 승(乘)이란 거(車)이고 거(車)는 연화(蓮華)이며, 이 연화(蓮華)의 위의 묘법(妙法)은 우리들의 생사(生死)의 이법(二法)·이불(二佛)이니라, 직지(直至)의 지(至)는 이곳으로부터 저곳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주처즉적광(住處卽寂光)이라는 것을 지(至)라고 하느니라, 이 보승(寶乘)의 보(寶)는 칠보(七寶)의 대거(大車)이니라, 칠보(七寶) 즉(卽) 두상(頭上)의 칠혈(七穴)·칠혈(七穴) 즉(卽) 말법(末法)의 요법(要法)·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이것이니라. 이 제목(題目)의 오자(五字)는 우리들 중생(衆生)을 위해서는 삼도(三途)의 강(江)에서는 배가 되고, 홍련지옥(紅蓮地獄)에서는 추위를 없애 주며, 초열지옥(焦熱地獄)에서는 양풍(凉風)이 되고 사출(死出)의 산(山)에서는 연화(蓮華)로 되며, 또 목이 마를 때는 물이 되고, 기아(飢餓)에는 밥이 되며 나체(裸體)일 때는 옷이 되고, 처(妻)가 되며 자식(子息)이 되고 권속(眷屬)이 되고 집이 되고, 무궁(無窮)한 응용(應用)을 베풀어서 일체중생(一切衆生)을 이익(利益)되게 하시니 직지도량(直至道場)이란 이것이니라, 따라서 이 몸 그대로 적광토(寂光土)에 있음을 직지도량(直至道場)이라고 하느니라.
어강문서(御講聞書) 미노부에서 59세에 술작 82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