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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보이카 &밀양 &손양원
synopsis
세계 최고 파이터 '보이카: 언디스퓨티드 파이널'의 주인공 '유리 보이카'는 챔피언 벨트를 노리는 세계 최고의 파이터 이다. 그는 부다페스트에서 열리는 유럽지부 챔피언십에 나가기 위해 필사적으로 경기를 하던 중 사고로 상대 선수(빅터)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 보이카는 죽은 선수의 유품에서 아내와 다정한 모습의 담긴 사진과 여권을 보고 죄책감을 느끼며 괴로워하다. 급기야 그녀를 돕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러시아로 떠난다. 그러던 중 남편이 남기고 간 빚 때문에 범죄 조직에게 팔려간 여자(알마)를 구하기 위해 보이카는 링에서 위험한 적들과 끝없는 결투를 벌이게 된다.
영화적 요소로는 리얼하고 흥미진진한 범죄 액션 시리즈로 관객들에게 특별한 재미를 선사한다. 월드 챔피언을 노리는 세계 최고의 파이터 보이카가 사고로 한 선수를 죽음에 이르게 했고 죄책감으로 인해 그의 아내를 지키려 치열한 사투를 벌이는 과정은 관객들에게 짜릿한 긴장감과 극강의 즐거움을 안겨 주는 비교적 단순한 플롯. 허지만 위험천만한 적들과의 결투에서 그가 과연 살아남아 여자를 지킬 수 있을지 호기심을 자아내며 영화의 몰입도를 높인 주인공 보이카는 러시아에서 탈옥범이었음로 그가 러시아로 재입국한 다는 것은 사지에 뛰어드는 위험천만한 모험이었고 위조 여권으로 잠입한 그가 그녀를 찾았을 때는 이미 범죄조직에 팔려가게 된 상황.
보이카가 이처럼 그녀를 구하기 위한 목적은 자신의 용서를 구하기 위함이었는데 그러기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링에서 위험한 적들과 끊임없이 싸우게 된다는 설정이 이 영화의 주제 이다. 그래서 범죄조직에서 그녀를 구해내기 위해 어쩔 수 없는 계약을 하고 무려 일주일에 3경기를 감수해야 하는 초인적인 전투 였지만 범죄조직 보스 대표선수를 걲어야 하는 위험한 경기를 자청한다. 당초 보이카는 자신이 꿈꿔왔던 부다페스트 유럽지부 챔피언십 경기도 뒤로 한 채 였기에 용서를 구하기 위해선 그녀를 구하기 위하는 것이 이 영화의 핵심이 되었다.
드디어 보이카의 현란한 발차기와 가공할만한 핵주먹 기술로 리얼 액션의 극치를 보여주며 모든 경기를 승리로 거둔 보이카에게 범죄조직 보스인 조랍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오히려 교도소장과 비밀거래를 통해 다시 탈옥범 보이카를 교도소로 보낼 계획을 짜고 있지만 보이카는 알지 못 한다.
모든 경기를 승리로 장식한 후에도 그녀(알마)를 풀어주지 않고 오히려 보이카를 죽이려드는 범죄조직. 보이카는 마지막으로 보스인 조랍을 죽이고 다시 러시아 교도소로 들어 간다. 보이카는 알마에게 자신의 영혼을 다해 용서를 구함으로서 용서를 얻게 되었고, 이로써 보이카는 알마에 의해 자신을 얽매었던 죄에서 벗어나게 된다. 다시 지하 감옥 세계에서 파이터 보이카로 돌아간 보이카. 멋진 몸과 화려한 액션을 보여준 그는 마음의 감옥을 탈출하여 음습한 지하 감옥에서 자유를 찾았던 것이다.
<보이카: 언디스퓨티드 파이널>vs 밀양
“죄를 지은 상대자에게 용서받지 못했다면 하느님께서 마음 아파 하실 것 아닌가?
밀양이라는 영화에서 여자 주인공이 자신의 아들을 유괴하고 살해한 죄인을 용서하려고 감옥에 찾아가는 장면과 막상 감옥에 찾아갔을 때, 그 남자의 태도에 실망하는 전도연을 보면서 용서와 화해가 다르구나 느꼈습니다. 용서는 하나님의 소관이고 화해는 인간이 하는 것이 아닌가? 순간 떠 올랐음을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르는 장면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모든 죄를 용서하셨고 용서받았다고 정말 너무도 죄의식 없이 피해자 앞에서 정말 기름진 얼굴로 앉아서 아무런 주저감도 없이 되 뱉는 그 남자의 그런 모습 앞에 내가 용서하지 않았는데 하나님께서 용서하실 수 있냐고 울부짖던 그 여자분의 울부짖음이 지금도 귀에 생생하게 들리는 것 같아 무엇이라고 말해야 좋을지 모른 성직자로써 당혹스러움이 있었다“ 고 털어 놓았다.
“먼저 용서에 대해서 묵상해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용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마태 18,22) 우리가 누군가를 용서한다고 결심했을 때 그렇게 단 한 번의 용서하겠다는 결심으로 용서가 온전하게 되겠는가? 그렇게 단 한 번의 용서한다는 결심으로 온전한 용서가 되지 않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때마다 다시 미움과 분노의 감정이 쉴 새 없이 반복되어 올라옴을 알 수 있었기에 예수님은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하라고 했지 않았나 생각 됩니다. 그리스도 교회는 매주 성찬식으로 그리스도 몸과 피를 음미하는 것으로 예배를 진행하고 말씀을 받으라며 전성도가 기립하여 복창하고 마음에 새기도록 합니다.” 이와 같은 반복을 통해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를 하라는 가르침(십자가의 통로)을 실행하는 것이라고 그리스도교회(담임목사 임성택)는 강조 했다.
<그 사람, 그 사랑, 그 세상>
영적 거목의 부재한 이 시대 죽음도 뛰어넘은 사랑과 용서를 그린 이 시대의 성화(聖畵)를 자막을 통해 보면서 사랑, 용서, 순교. 사랑과 용서까지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순교는 엄두도 안 난다고 하는것이 목회자들의 솔직한 반응이고 용서와 화해에 대한 짙은 화두가 바로 밀양이라면 십자가를 극명하게 한 영화가 손양원 목사의 삶과 신앙을 다룬 영화 <그 사람, 그 사랑, 그 세상>이 아닐까?
손양원 목사가 양자로 삼았던 안재선 씨의 아들인 안경선 목사, 어린 시절 아버지와 두 오빠를 잃은 손동희 권사의 회고와 함께 그의 일대기를 보여 준 다큐멘터리식 영화는 평생 손 목사가 섬겼던 여수 애양원 생존자들의 육성 증언, ‘연탄길’ 이철환 작가의 일러스트로 주요 장면들이 그려진다. 제작진은 애양원에 근무했던 선교사 등을 찾기 위해 은퇴한 선교사들의 마을인 미국 ‘블랙마운틴’을 찾기도 했다고 전해 진다.
한센병 환자의 아버지로 불리며 사랑과 헌신의 삶을 살다간 손양원 목사 ! 1902년 독립운동가 손종일 장로의 장남으로 경남 함안에서 출생을 알린 것은 이 메마른 땅에 한 영적 거목의 탄생을 알렸다. 1938년 평양신학교를 졸업한 뒤 이듬해 한센병 환자 복지시설인 여수 애양원의 교회에 부임해 가족들에게조차 버림받은 한센병환자의 상처에서 피고름을 빨아내고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며 그들과 함께 생활한 것은 예비된 하나님의 아들의 수행 모습 그 자체 였다. 1942년 손양원 목사는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에 맞서다 투옥, 피압박민의 고난을 몸으로 체험토록한 선지사의 예비된 길을 걸은듯하다. 일제치하 옥문에서 전향하면 출옥할 수 있다는 담당 검사의 위협과 교화를 뿌리치고 광주 형무소에서 경성 구금소, 청주 구금소 등으로 덩들고 찌기운 육신을 옮겨 다니며 광복 때까지 옥고를 치렀다. 그의 삶의 노정순리는 해당이후 또 한번 이땅위에 이데오로기의 순교가 기다리고 있었다. 1948년 여순반란 사건 때 두 아들을 잃은 손양원 목사는 그 범인을 용서했을 뿐 아니라 그를 양아들로 삼아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던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을 몸소 실천하면서 살아 있는 성경의 말씀을 성취 시켰던 것이다. 1950년 9월 한센병 환자들과 함께 교회를 지키다 공산군에 체포돼 48세의 짧은 생을 마감한 그를 우리는 순교자 손양원이라 부른다.
9가지 감사
두 아들 동인과 동신 형제를 잃은 후 손양원 목사는 ‘아홉 가지 감사’를 고백함으로써 감사가 은혜였음을 실증해 보였다.
1. 나 같은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의 자식들이 나오게 하셨으니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2. 허다한 많은 성도들 중에 어찌 이런 보배들을 내게 맡겨 주셨는지 주께 감사합니다.
3. 3남3녀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두 아들 장자와 차자를 바치게 된 나의 축복을 감사드 립니다.
4. 한 아들의 순교도 귀하다 하거든 하물며 두 아들의 순교이리요. 감사합니다.
5. 예수 믿다가 누워 죽는 것도 큰 복이라 하거든 하물며 전도하다 총살 순교 당함이리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6. 미국 유학가려고 준비하던 내 아들, 미국보다 더 좋은 천국 갔으니 내 마음 안심되어 감사합니다.
7. 나의 두 아들을 총살한 원수를 회개시켜 내 아들 삼고자 하는 사랑의 마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8. 내 두 아들의 순교로 말미암아 무수한 천국의 아들들이 생길 것이 믿어지니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9. 이 같은 역경 속에서 이상 여덟 가지 진리와 하나님의 사랑을 찾는 기쁜 마음, 여유 있는 믿음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 감사 합니다.
끝으로 나에게 분수에 넘치는 과분한 큰 복을 내려 주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용서
하지만 우리가 나약해서 세상이치에 쉽게 빠진다 어찌해야 하는가 ? 그 답은 예수 그리스도께 다가가 그분의 자비를 청하는 것이다. 간음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을 묘사하는 성경 속의 장면은 예수님의 자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른 아침에 예수님께서 다시 성전에 가시니 온 백성이 그분께 모여들었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앉으셔서 그들을 가르치셨다. 그때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간음하다 붙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에 세워 놓고,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이 여자가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혔습니다. 모세는 율법에서 이런 여자에게 돌을 던져 죽이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였습니다. 스승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그들은 예수님을 시험하여 고소할 구실을 만들려고 그렇게 말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몸을 굽히시어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 쓰기 시작하셨다. 그들이 줄곧 물어대자 예수님께서 몸을 일으키시어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그리고 다시 몸을 굽히시어 땅에 무엇인가 쓰셨다. 그들은 이 말을 듣고 나이 많은 자들부터 시작하여 하나씩 하나씩 떠나갔다. 마침내 예수님만 남으시고 여자는 가운데에 그대로 서 있었다. 예수님께서 몸을 일으키시고 그 여자에게, “여인아, 그자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단죄한 자가 아무도 없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 여자가 “선생님, 아무도 없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 요한 8,2-11
이로써 보이카 : 언디스퓨티드 파이널에서의 용서를 위해 자신의 육신을 불태운 구애. 전도연의 열연으로 밀양의 던진 용서의 역 반향. 완벽한 용서의 십자가 극명케 한 <그 사람, 그 사랑, 그 세상> 영화는 올 한해 각종 사건과 사고로 상처와 고통가운데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힘들고 지친 모든 이들에게 위로와 치유와 소망을 전해줄 것이다. 라는 것이 임성택 목사의 평가 였다.
성경적 의미의 용서
그러면 성경에서 용서는 어떻게 쓰여 졌나?
1. 시편 78편 38절에 나오는 "코팔"이라는 용서는 "덮는다"(to cover)는 뜻이다. 우리의 더럽고 추한 허물과 죄를 덮어버리는 의미에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피로써 우리 죄를 용서하시되 그리스도의 의로 덮어서 깨끗하게 해 주신다는 말이다. 마치 포도주에 취해 벌거벗고 있는 노아에게 두 아들이 덮을 것을 가지고 아버지의 추한 모습을 보지 않으려고 뒷걸음질해서 덮어주는 장면을 연상케 한다.(창 9:18-29)
2. 시편 25편 18절에 "나사"라는 용서는 "들어서 없애버린다"(to lift up or away)는 뜻이다. 우리들의 악하고 추한 것을 들어서 없애 버린다는 의미로 마치 냄새나는 물질을 치워버리는 것과 같다. 우리 눈에 보이는 것 보다 더 더러운 것은 우리들의 마음이다. (예레미야 17:9, 마태복음 15:19)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속에 담겨 있는 각종 오물들(시기, 질투, 분냄, 탐욕 등)을 그 자취도 없이 치워버려 주시고 생각이 나지 않게 하신다.
3. 레위기 16장 10절에 "샬라크"라는 용서는 "보낸다"(send away)라는 뜻이다. 아사셀 양에게 죄를 전가시켜 광야로 보냄과 같이 아주 멀리 우리 죄를 보내버리는 은총을 말한다. 신약에서 주기도문에 나오는 "용서"(빚을 탕감하다)는 “아피에이미”라는 단어가 동일한 해석이다. 선교라는 단어가 이런 단어에 의해 파생되었다. 주님의 구원의 은총으로 인해 용서받는 은혜를 반드시 전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해 줬듯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용서하는 법칙을 가르쳐 줘야 한다. 용서를 가장 잘 실천하고 전할 수 있는 사람을 선교사로 보내야 한다.
4. 누가복음 7장 43절에 "카리조마이"라는 용서는 값없이 주다, 은혜를 베풀다, 탕감(레위기 25:8-10)하다는 뜻이다. 반드시 갚아야 하는 빚을 아예 갚지 않도록 없애 버리는 것이다. 이런 빚진 자가 된 분을 선교사로 보내야 한다. 꼭 멀리 보내야만 선교사가 아니다. 하나님과 멀리 떨어져 있는 광야와 같은 영혼들에게 보내져야 한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엄청난 빚을 진자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