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헛된제물
6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버지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버지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
(말라기 1:6 RKB)
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가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말라기 1:10 RKB)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예수님을 남편이자 주님으로 모시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공경함과 두려워함을 잃은
그리스도인이 너무 많습니다.
말라기서는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공경하고 두려워한다면
그런 희생제물을 드릴 수 없다구요.
하나님께 드린 그 제물을 대통령에게
드렸을때 기뻐할까요?!!
그런데 전지전능하신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대통령보다 못한 제물을
드리고 있습니다.
# 두 렙돈
43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44 그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마가복음 12:43-44 RKB)
많은 간증들을 우리는 접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시선은 물질적으로 대단한 업적이 보일때에만 반응을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양이 아니라
그 중심을 보십니다. 내 일부를 드리는 것과 전부를 드리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이 됩니다.
# 진정한 예물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로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미가 6장 6~8절 말씀)
# 은화 한 므나
11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에 비유를 더하여 말씀하시니 이는 자기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고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함이더라
12 이르시되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갈 때에
13 그 종 열을 불러 은화 열 므나를 주며 이르되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 하니라
(누가복음 19:11-13 RKB)
16 그 첫째가 나아와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의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나이다
17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
18 그 둘째가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의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만들었나이다
19 주인이 그에게도 이르되 너도 다섯 고을을 차지하라 하고
20 또 한 사람이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보소서 당신의 한 므나가 여기 있나이다 내가 수건으로 싸 두었었나이다
(누가복음 19:16-20 RKB)
예수님 시대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곧 오실 줄 알고 기대를 하고 있었지만 예수님은 이미 말씀하신다.
왕위를 받아가지고 올때까지 너희는 이 세상에서 네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분명 우리의 시간개념과 하나님의 시간 개념은 다를 것이다.
언제 오느냐만 생각하고 손놓고 있기보다 지금 내 사명을 충성스럽게 수행하는 것이 관건이다.
# 십일조에 대한 정확한 해석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마태복음 23장23절)
십일조는 내돈의 10분의 1을 드리는 개념이 아니라
모든것이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라는 인정이며
10분의 9를 내가 감사함으로 받겠다는 뜻이다.
그래서 십일조를 내라고 교회마다 당연히 말을 한다.
그러나 당연하지만 강요해서는 절대 안된다.
그로인해 실족케 한다면 그것은 큰죄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실족케하기보다 차라리 연자맷돌을
목에 걸고 바다에 빠지는 것이 낫다고 강하게 말씀하셨다.
사도바울도 하나님일을 맡아서 하는 자로써
성도들의 십일조를 받아 생활비로 사용함이 마땅하나 그로인해 사람들을 실족케 할 수 있으므로 매우 조심스러워하며 스스로 천막치는 일을 하며 생활비를 자족한 적도 있었다.
성도들에 대한 조심스럽고 귀하게 대하는 그 마음을 잃지 말아야 할것이다.
# 복의 약속 (십일조)
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말라기 3:10 RKB)
마중물을 생각하여 보라
손으로 펌프질 할때 조금의 물(마중물)을
먼저 넣고 펌프질을 하면 곧 물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믿음이 시작되면서 십일조를 기쁜마음으로
드리며 살아왔다. 하나님은 말씀에 약속하신 부분을 한번도 빠짐없이 넘치도록 채워주셨다.
믿음으로 실천해 보라~ 경험할 것이다.
13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완악한 말로 나를 대적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무슨 말로 주를 대적하였나이까 하는도다
14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니 만군의 여호와 앞에서 그 명령을 지키며 슬프게 행하는 것이 무엇이 유익하리요
15 지금 우리는 교만한 자가 복되다 하며 악을 행하는 자가 번성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화를 면한다 하노라 함이라
16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
(말라기 3:13-16 RKB)
2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말라기 4:2 RKB)
5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6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말라기 4:5-6 RKB)
# 향유옥합
귀한 것을 분별할 수 있다면 우선순위를 확실히 알 수 있을텐데요.ㅠ.ㅠ
가룟 유다는 향유 옥합을 가난한 자에게 나눠주었더라면 좋았겠다고 말을 했지만
그의 속마음은 가난한 자들을 위한 마음이라기보다 향유 옥합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ㅜ.ㅜ
또 그의 생각을 정확히 엿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육적인 사람으로 스스로를 증언한 것입니다.
수많은 기적을 예수님 곁에서 체험했으면서도 말이지요.ㅠ.ㅠ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시고 가장 두려워하십시요.
믿음의 크기만큼 우리는 순종할 수 있습니다.
# 형유옥합이 예수님께 가야하는 이유
우선순위 문제다.
하나님이 계실때 사랑도 구제도 나자신도
의미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안계신다면 모든 것은 아무것도 아무것도 아닌것이다.
가룟유다는 그것을 놓쳤다.
마리아가 향유 옥합을 깨뜨리며 예수님의 발을
씻어냈던 것을 보고 제자들이 마리아를 나무랬던
장면을 보며 예전에 나도 그 향유옥합이 참 아깝고 낭비하듯 사용되어진 향유(아로마)가 더 효용적으로 사용되었더라면 좋았겠다고 생각했었다. 물론 예수님도 그렇게 생각하셨으리라..
그런데 뜻밖에도 예수님은 그런 마리아를
꾸짖기보다 칭찬을 하시며 제자들에게 본질?을 깨닫기를 바라셨다.
예수님의 다른이름은 세상의 빛이시다. 빛이 세상에 오셔서 사랑을 가르치시고 선을 알려주셨다.
빛이 오셔서 거룩함을 친히 보여주셨다. 빛이 없었을 때에는 우리는 거룩함이 무엇인지도 모른채 동물처럼 내 목숨을 위해서 내 가족의 생존을 위해서만 살아왔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조차 말할수 없이 벅차고 힘겨웠다.
예수님의 등장으로 우리는 빛을 깨닫게 되고
그 빛을 힘입어 이웃사랑까지 할 수 있는 존재로 성장해왔다.
예수님의 그 엄청난 존재가치를 제자들이 깨달았다면 향유옥합을 예수님께 드리는 것조차
너무도 송구스럽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눈멀고 귀멀어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보지도 못하고 그 귀하신 말씀조차 깨닫지 못하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어둠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세상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전하면 믿지않고 외면하면서 정작 그들의 삶은 어둠속을 내달린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이 어둔세상에 미련이 없는듯 생을 포기하기까지 한다.ㅠ.ㅠ
나도 곰곰히 생각하면 하나님(빛)이 계시지 않는 세상이라면 정말 미련없이 떠날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님이 말씀하셨던 내세가 없는 현세만 존재한다면 이 구차하고 고통만이 존재하는 세상에 무슨 미련이 있다고 하루하루 버티며 살아갈까?!! 의미없다.
현세의 복이란 것을 누리기위해?!!
그 복?을 누리기위해 치뤄야 되는 엄청난 댓가는
어쩌란 말인가?!! 그냥 포기하는게 현명할 것같다.
그런데 하나님의 영적인 부분을 조금이나마 체험하게 되면 함부로 그렇게 살아갈 수 없게 된다.
세상에 어둠이 분명히 존재하듯 빛도 분명히 존재해서 늘 우리에게 비춰지고 있음을 깨달아알아야 한다.
사실은 인간스스로 영적인 존재임을 이미 알고 있다. 그렇기때문에 어느 시기가 되면 왜 우리가 세상에 왔는지를 스스로 묻기시작한다. 인간말고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아니 하지 못한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영적인 존재가 영적인 존재가 아닌듯 동물처럼 살다보면 삶은 암울해 질 수 밖에 없다.
우리의 영적인 눈이 떼어지면 향유옥합이 전혀
아깝지 않게 되고 자연스럽게 빛을 향하게 된다.
교회에 가서 우리는 부지런히 헌금을 낸다.
믿음이 있든 없든 상관없이 헌금을 낸다.
믿음이 없이 어떻게 그럴 수 있지?!!!
교회에 온다고 해서 모두 참 믿음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헌금후 기도 내용을 들어보니
기도 내용이 저기 다른 동네 기도같았다.ㅠ.ㅠ
하나님의 자녀는 이미 공급해주시고 은혜주신 것으로 감사하지만 이방인들의 기도는 내가 헌금을 내었으니 그정성을 보시고 복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었다.ㅠ.ㅠ
.
신학을 하지않아도 말씀 한구절이나 찬송한구절 붙잡고도 얼마든지 하나님뜻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에겐 큰사역, 작은사역 따로 구분짓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에겐 사람들이 말하는 크기가 큰 의미가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두렙돈의 헌금을 낸 여인과 여인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헌금을 낸 부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그 부자는 헌금을 내고도 본인에게 어떠한 불편함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여인은 두렙돈이 생활비의 전부였으므로 헌금을 내고나면 상당한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그 여인은 두렙돈을 드렸다기보다 더 값진 것을 드린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여인을 더 귀히 여기셨습니다.~.~
#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은
진짜를 원하신다.
두렙돈을 내고 아주 작은 허드렛 일을 한다고 해도 진짜 내 마음을 원하신다.
어마어마한 헌금을 해도 세상을 뒤바꿀 만한 엄청난 업적을 이루었더라도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가짜라면 하나님은 받지도 않으실 뿐더러 기뻐하시지도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작다고 하는 일이든 크다고 하는 일이든 그 기준으로 보시는 것이 아니라 진짜인지 가짜인지만 보시기 때문이다.
# 헌금봉투에
교회에서 헌금봉투에 이름과 금액을 적도록 한다.
별로 달갑지 않은 말처럼 들렸다. 적는 이유를
헌금이 허튼곳에 쓰이지 않기위해 또 누가 횡령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말해 주었다.
그런데 예수님 시절 성전에서도 하지 않는 것을 하고 있다. 그 정당함에 비해 부작용이 너무나 크다.
돈의 액수에 따라 본의아니게 힘이 들어가면서 교만해지는 사람들..세상에서 뿐만이 아니라 교회에서조차 고개 숙여지는 사람들 그래서 교회를 떠나게 하는 상황까지...또 횡령의 문제도 돈을 잃을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그 횡령한 자의 귀한 영혼에 초점을 맞춰야 되는 것인데...
너무 갔다. 우리 교회들이....ㅠ.ㅠ
https://youtu.be/A6P5jyKGrc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