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인도는 영국의 지배를 받았지만 왜 가톨릭이 소수일까요?>
“인도는 영국으로부터 300년 이상 직간접적으로 지배를 받았는데
영국의 국교라 할 수 있는 가톨릭은
왜 인도에 뿌리내리지 못했을까요?
그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답변 : 법륜스님>
“인도 사회는 카스트 제도로 구성되어 있고,
자신들의 신앙인 힌두교의 믿음이 굉장히 강합니다.
믿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브라만을 믿으나 비슈누를 믿으나 예수를 믿으나 다 같은 믿음이고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느껴지기 때문에
굳이 기존의 믿음을 바꾸려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반면에 기존의 믿음이 없는 곳,
예를 들어 공산주의 국가에 갑자기 종교가 들어간다거나
민속 종교를 믿는 곳에 새로운 종교가 들어가서 막 전파를 하면
개종이 쉽게 이루어지는 편입니다.
첫째,
인도 사람들은 자기들이 이미 믿고 있는 신앙이 있기 때문에
다른 종교를 잘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인도 사람들은 종교들이 서로 크게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예를 들어 부처님의 가르침은 힌두교와 다르지만,
인도 사람들은 부처님도 그냥 힌두교의 여러 신들 중에 한 명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기존의 힌두교 안으로 불교를 받아들이는 데 아무 거부 반응이 없었어요.
하지만 힌두교를 버리고 불교를 온전히 받아들이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불교와 힌두교가 다르지만,
인도 사람들은 부처님이 비슈누 신의 여덟 번째 화신이라고 봅니다.
아마 예수님도 인도에 가면 그냥 여러 신들 중의 한 분이라고 받아들여질 거예요.
이런 특징이 하나 있습니다.
둘째, 영국이 종교적인 강요를 크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인도가 워낙 큰 나라이기 때문에
영국은 종교보다 정치나 경제적인 면에서의 통치를 우선했어요.
그렇다고 해서 인도 내 기독교 인구의 수 자체가 적다는 뜻은 아닙니다.
인도 안에서 기독교를 믿는 인구가 2% 정도 되는데,
인도 전체 인구가 14억이니까 2%만 해도 3천만 명이 됩니다.
그래서 기독교를 믿는 사람의 수가 적은 것은 아니에요.
그런데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은 대부분 불가촉천민입니다.
최근에 인도에서 불교로 개종한 사람도 대부분 불가촉천민이에요.
인도는 카스트 제도가 아직도 공고하기 때문에
그에 따른 차별도 일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불가촉천민은
기존의 신앙인 힌두교 안에서는 천대를 받고 살고 있기 때문에
어떤 혜택이 주어진다면 종교를 바꾸는 게 크게 어렵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천민 해방운동을 벌였던 암베드카르(Bhimrao Ramji Ambedkar)가
불교로 개종하자 그를 따라 그 카스트 전체가 불교로 개종을 했던 거예요.
기독교든 불교든 인도 안에서 대부분의 개종 운동은
이렇게 천민들 사이에서 일어났습니다.
이는 계급 해방적 관점에서 보면 굉장히 좋은 측면도 있지만,
인도의 주류 계층에서 볼 때는
불교나 기독교는 대부분 천민이 믿는 종교라는 인식이 되어 버리는 문제가 있어요.
이런 인식 때문에 불교나 기독교가 더 퍼져나가지 못하는 측면도 있습니다.
셋째,
새로운 종교를 전파하려는 사람들이 물질적 지원을 하는 것도
가난한 사람에게만 호응을 얻을 확률이 높습니다.
인도의 상위 계층은 모두 그 사회 내에서 지배 계급이에요.
그러니 뭘 좀 지원받았다고 해서 그 사람들이 굳이 종교를 바꿀 이유가 없습니다.
지배 계층이 바뀌는 게 아니니까
새로운 종교가 들어가 전파를 해도 사회 전체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꼭 인도만 이런 것이 아니에요. 일본은 더합니다.
<일본>
일본은 가톨릭이 들어온 지 400년이 되고,
개신교가 들어온 지 200년이 되었지만,
둘 모두를 합친 기독교 인구는 전 인구의 1%가 채 되지 않습니다.
토착신앙인 신도와 불교가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불교 중에서도 일본 사람들이 믿는 정토진종은
주민들의 일상생활과 매우 결합돼 있어요.
스님도 결혼을 하고,
사람이 죽으면 누구나 그 묘를 사찰 안에 마련합니다.
개인이 자신의 소속 사찰을 정해서 다니는 게 아니라,
조상이 정해놓은 사찰에
그 집안의 자손 대대로 소속되어 내려가도록 사회 시스템이 정착돼 있어요.
일본인 모두가
사찰에서 장례와 제사를 치르는 단가(檀家)라는 제도를 두고 있습니다.
사찰 안에 납골당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 위패를 꽂아둡니다.
미국에 가서 살던 사람도 죽으면 자기 집안이 다니던 사찰로 돌아가는 거예요.
사회 시스템이 이렇게 되어 있다 보니 다른 종교를 받아들이기가 어렵죠.
<한국>
그렇다면 한국은 왜 단시간에 종교 분포가 이렇게 바뀌었을까요?
한국은 식민지 지배를 받으면서 전통사회가 붕괴됐습니다.
그리고 6.25 전쟁을 치르면서 또 한 번 큰 인구 이동이 일어났어요.
사람들이 그 지역에 뿌리박고 살면서 안 움직여야
전통이 유지될 수 있거든요.
예를 들어 경상도 사람들은 왜 지금도 대부분 불교를 믿을까요?
6.25 때도 피난을 가지 않고 그 지역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 자리에 뿌리내리고 있으면서 이동이 없었습니다.
이동이 있으면 새로운 종교가 전파되기 쉬워요.
굳이 전쟁이 아니더라도 노동자나 학생 인구의 이동이 많을 경우
그 계층에 맞추어 도움이나 지원을 해주다 보면
사람들이 그 종교를 쉽게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자기 동네에 오랜 세월을 살아온 사람들은
기존의 것을 쉽게 바꾸지 않습니다.
그래서 문화가 개방적이지 않고 좀 폐쇄적인 특성을 띄어요.
우리나라 안에서는
제일 지역적 폐쇄주의가 강한 곳이 경상도잖아요.
그래서 유교나 불교 같은 전통 사상이 아직도 뿌리를 내리고 있는 편입니다.
이에 비해 서울이나 경기도는 인구 이동이 대규모로 일어나고
계속해서 변화가 일어나니까 경상도에 비해 기독교 인구가 많죠.
그리고 한국은 정치적으로는 일본의 식민지였지만
지금은 문화적으로는 미국의 식민지나 다름없습니다.
모든 지도자가 미국 유학을 다녀오고,
모든 교과 체계며 시스템이 다 미국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예요.
그래서 우리의 마음속에서는
미국이 늘 선진국이고 꿈에 그리는 나라예요.
명나라 때 우리나라가 중국을 가리켜 ‘부모국’이라고 표현한 것과 같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옷도 따라서 입고,
종교도 따라서 받아들이고,
교육도 따라서 하는 거예요.
먹는 음식도 마찬가지죠.
아마 한국이 서양 음식을 받아들이는 속도가 가장 빠른 축에 들 겁니다.
유학 다녀온 사람들은 대부분 아침에 빵을 먹잖아요.
거기서 살면서 경험한 것을 받아들여 여기에서도 그대로 하는 거예요.
서양 풍속을 받아들여 행하는 것이 선진적인 것으로 인식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미국을 통해서,
특히 미국 교회를 통해서 엄청난 양의 구호물자가 들어왔습니다.
또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었을 때 쫓기던 학생들이
가톨릭교회로 들어가면 교회에서 보호를 해주었어요.
거기는 네트워크가 잘 갖춰져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불교는
이렇게 시스템이 정비되거나 대응을 할 수가 없었어요.
조선조 500년간 탄압을 받다가 탄압에서 벗어나려나고 할 무렵에
바로 일제의 침략을 받았습니다.
불교 탄압이 중지되었지만
바로 일본 불교가 들어와서 주류를 형성한 것도 있고요.
조선 시대 내내 탄압을 받다가
그래도 일본이 들어와서 일단은 탄압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게 해 주니까
승려들 대다수가 친일 행동을 많이 하게 됐습니다.
그러다가 광복이 되자마자
미국 문화가 들어와서 기독교가 사회를 지배하는 주류가 되었고
반면에 불교는 미국에 아무런 ‘연줄’도 없고 문화적 관계성도 없었잖아요.
그러다 보니
노동운동, 학생운동, 여성운동, 농민운동 등에 대한 인식도 없고
사회 변화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도 몰랐어요.
그러나 미국이나 유럽 같은 서구권에는
이미 이런 사회 변화에 대한 인식과 대응 시스템이 다 갖추어져 있었기에,
유학 간 사람들이 그걸 배워 와서 바로 대응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기존의 불교는 농촌을 기반으로 했는데,
농촌이 점점 붕괴되어 지금은 전체 인구의 10%도 안 될 정도에 이르면서
불교는 점점 사회의 리더십을 잃어갔습니다.
이처럼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전통사회가 붕괴되고
서구화된 나라가 한국이에요.
<필리핀>
필리핀도 서구화가 이루어진 나라지만,
필리핀은 한국보다 식민지배 기간이 굉장히 길었고
또 원래부터 전통문화가 약한 상태였어요.
오랜 기간 동안 스페인과 미국의 지배를 연달아 받았기 때문에
그 영향을 크게 받았습니다.
320년이 넘는 스페인의 지배를 거치면서 가톨릭 국가가 되었고,
이후 미국의 지배를 거치면서 오늘날의 모습이 된 거예요.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던 베트남은 인구의 20%가량이 가톨릭을 믿습니다.
필리핀보다는 식민 지배 기간이 짧지만,
한국처럼 큰 사회 격변을 겪으면서 비교적 큰 비율이 개종을 한 사례라고 할 수 있겠죠.
인도는 워낙 나라가 크기도 하고
기존의 믿음이 워낙 강하기도 해서 인구의 2% 정도밖에 종교를 바꾸지 않았습니다.
<스리랑카, 미얀마>
그리고 스리랑카나 미얀마 같은 국가들은
영국의 지배를 받았지만 지배가 끝난 뒤에 지금은 불교가 많이 회복을 했어요.
스리랑카와 미얀마 모두 소수민족 일부는 기독교로 바뀌었지만
그 주류 민족은 불교를 현재까지도 그대로 고수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종교의 전파는
사회의 변화나 전쟁, 식민 지배 등 다양한 요소와 관계가 있어요.
기독교만 놓고 보면 인도가 전통 신앙을 잘 지켰다고 할 수 있지만,
꼭 그런 건 아니에요.
이슬람 세력이 인도를 650년 가량 지배한 역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인도 인구의 30% 가량은 무슬림으로 바뀌었고,
결국은 이들이 분리 독립해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라는 나라를 따로 세웠어요.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인구 2억 명,
방글라데시 인구 1억 5천 명,
인도 내 무슬림 인구 1억여 명을 합치면,
대략 5억 명이 무슬림이라는 뜻입니다.
650년 동안 지배가 이어진 결과
5억 명 정도가 무슬림으로 바뀐 거예요.
영국의 인도 지배는
전면적 지배가 100년 정도 됩니다.
일부를 지배한 것부터 모두 합치면 300년 정도 되고요.
그리고 영국의 지배는
다른 나라에 비해 종교적인 강요는 조금 덜하다는 특성도 있어요.
인도 내 기독교 인구가 적은 것에는
그런 영향도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법륜스님의 강의 대화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