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 할퀸 조선학교…‘몽당연필’이 희망쓴다
가수 안치환·감독 김명준 등 피해돕기 공연
도호쿠·후쿠시마 조선학교, 벽 무너지고 방사능 ‘먹구름’
모금·재능기부로 지원 손길…27일 웰컴시어터서 첫 공연
»(사진) 동일본 대지진으로 피해를 본 조선학교를 돕기 위해 ‘몽당연필’을 발족한 배우 권해효씨, 영화감독 김명준씨, 가수 이지상씨(왼쪽부터)가 4일 서울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앞에서 만나 사진촬영을 위해 자세를 취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상처 난 땅은 봄도 춥다. 교실 바닥은 들려 올라갔고, 교원실(교무실) 벽은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방사능 피폭 우려로 학생들은 ‘피난’을 떠났고, 졸업식과 입학식은 한 달 가까이 늦춰졌다.
동일본 대지진 피해 지역 조선학교들을 위해 작은 ‘몽당연필’ 하나가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쓴다. ‘희망’.
한 남자가 세 남자에게 거푸 전화를 돌렸다. 지난달 일본 지진 발생(3월11일) 직후였다.
다큐멘터리 영화 <우리 학교>(재일 조선학교 이야기)를 찍은 김명준(1970년생) 감독의 제안에 1965년생 뱀띠 친구 세 남자는 기다렸다는 듯 화답했다.
가수 안치환·이지상씨와 배우 권해효씨는 지난달 20일 김 감독과 만나 지진으로 고통받는 재일 조선학교를 도울 방법을 모색했다.
긴급 모임을 결성하기로 뜻을 모으고 ‘몽당연필’이라 이름 붙였다. ‘연필을 깎아내고 깎아내서 더 이상 짧아질 수 없을 때까지 아껴 쓰는 마음’으로 돕자는 의미였다. 한민족복지재단과 지구촌동포연대, 어린이어깨동무 같은 여러 단체들도 동참했다.
» (사진) 재일 조선학교 가운데 동일본 대지진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본 ‘도호쿠 조선초중급학교’(미야기현 센다이시)의 교무실 한쪽 벽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교원실 유리창은 모두 깨졌고, 책상도 여기저기서 나뒹굴고 있다. 몽당연필 제공
이들이 발 빠르게 움직인 까닭은 조선학교들의 상황이 그만큼 급박해서다. 미야기현 센다이시의 ‘도호쿠 조선초중급학교’의 피해가 가장 컸다.
학교 건물들엔 금이 쩍쩍 갔고, 교실 바닥이 통째로 치솟았으며, 음악실 바닥은 거꾸로 가라앉았다. 교원실 벽은 무너졌고, 주차장 바닥은 갈라졌다.
윤종철 교장은 5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기울어진 학교 건물들이 위험해서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는 상태”라며 “급한 대로 기숙사를 임시 교실로 사용하고 있지만 교실 건물을 다시 짓지 않고선 수업하기가 쉽지 않다”고 전했다. 3월 초로 예정됐던 졸업식도 27일에야 치를 수 있었다.
원전 폭발 지역인 후쿠시마현 고리야마시의 ‘후쿠시마 조선초중급학교’는 방사능 피폭 우려로 학생들을 다른 지역으로 대피시켰다. 불안감 때문에 아예 다른 현으로 이사하는 집들도 생겨나고 있다. 정송철 교무주임은 “우리 학교는 건물이 무너진 정도는 아니지만 방사능 우려가 가시지 않고 있다”며 “지난해까지는 전교생이 23명이었지만 피난 간 학생들이 빠지면서 15명으로 새 학기를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몽당연필을 만들기까지 네 명은 각자의 자리에서 오랜 기간 조선학교와 인연을 맺어왔다. 권해효씨는 2002년 금강산에서 ‘재일본 조선대학교’ 학생들과 만난 뒤부터, 이지상씨는 2000년 오사카 공연 때 그의 노래를 듣고 눈물을 쏟던 학생들을 접한 뒤부터, 안치환씨와 김 감독도 각각 1991년 조선대학교 공연과 2007년 <우리 학교> 제작 뒤부터 조선학교들을 틈틈이 찾으며 교류해왔다. 권씨는 올 10월에도 홋카이도 조선학교 방문 계획을 세워두고 있었다.
6일 활동을 공식화하는 몽당연필의 조선학교 돕기는 주로 모금과 재능기부 형태로 꾸려진다. 권씨는 “가수와 연주자, 배우와 다큐멘터리 감독, 공연기획자들이 매달 셋째 주 수요일 다양한 공연과 행사를 열어 수익금 전액을 조선학교 지원금으로 쓸 방침”이라며 “조선학교 현실이 금방 잊히지 않도록 최소 1년 이상 긴 호흡으로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음악공연은 물론 토크쇼나 강의, 바자회를 진행하고, 지진 피해 조선학교를 담은 안해룡 다큐멘터리 감독의 영상도 틀 생각이다.
이씨는 “조선학교는 동포 사회의 중심이다. 같이 잔치하고, 같이 울며, 같이 밥을 나누는 곳인 학교가 무너지면 마을 전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며 “학교가 재건될 때 기둥뿌리 하나라도 올려줄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 감독도 “지진 후 도호쿠 조선학교 교사들이 학교 식당에 한 글자씩 써붙인 문구가
‘대지는 흔들려도 웃으면서 가자’였다.
우리 활동을 보고 힘든 상황에 놓인 동포들이 외롭지 않다고 느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몽당연필의 첫 모금공연은 27일 저녁 8시 서울 중구 ‘웰컴시어터’에서 열린다.
모금계좌 1005-501-812567(우리은행), 문의 070-8613-5903.
이문영 기자, 도쿄/정남구 특파원 moon0@hani.co.kr
오랜만에 찾아뵙습니다 아고라 논객여러분.
다름이 아니라 3월 11일 발생한 동일본 지진으로 인해 고통받고있는 우리 형제들에 대해서 이야기 하려고합니다. 아시다시피 올해 3월11일 일본에 규모 9.0 강진이 발생했고, 그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났습니다. 이에 발빠른 대처로 언론과 한류의 주역들이 앞장서서 일본에 대한 성금모금을 진행했고 많은 분들이 모금에 참여 하고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우리 동포들은 무관심속에 지금도 고통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우리의 무관심 속에 고통받고 있는 우리 형제들은 먼 타국땅에서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우리말과 우리역사를 배우는 조선학교 아이들입니다. 그들은 일제 식민지 시절 추악한 일본인들에 의해 강제로 끌려가 가축보다도 못한 생활을 하며 죽음의 노동을 해야 했습니다. 이코마 터널에서 강제노동을 하던 한 조선인은 터널 벽에 "죽어서라도 이곳을 나가고 싶다"라며 그 당시의 참혹한 상황을 충분히 가늠할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1939년 부터 1944년 말까지 아소탄광으로 강제 징용된 조선인 1만여명이 일본인 현장감독의 구타, 굶주림, 중노동으로 숨지거나 도주했습니다. 일본측 한 기록에 따르면 일제강점기에 강제 동원된 한국인은 70만 여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그렇게 개 돼지보다 못한 생활을 하며, 곧 조국으로 갈수 있다는 믿음 하나로 버텨온 조선인들은 해방이 되어 조국으로 돌아 간다는 꿈을 안고 첫 귀향선 배에 발을 딛었지만 일본 바다에서의 의문의 폭발사고로 모두 수장 시켜버립니다. 바로 원폭 피해복구로 인한 노동자가 필요했던 탓입니다. 해방이 되어도 조국에서 귀향선은 오지 않았고, 개 돼지처럼 일하였지만 임금을 주지 않은 탓에 조선인들은 배를 타고 갈 돈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곳에 남을수 밖에 없었던 그들은 일본의 차별과 핍박속에 살아 남아야 했습니다.
그렇게 어려운 생활을 하지만 우리 아이들에게는 조국의 역사와 우리말을 가르켜야 겠다고, 언제일지 아무도 모르지만 언젠가는 조국으로 돌아가겠다는 꿈을 안고 우리역사와 우리말을 지켜온 우리 형재들 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도와주어야 합니다. 철천지 원수인 일본인은 도우면서 우리 형제를 나몰라라 해서는 안됩니다. 여러분들의 작은 성의가 모이면 그들에겐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는 주춧돌이 될 수 있을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부탁드리고 '몽당연필'에 대한 홍보도 많이 해주시기 바랍니다.
(본 글을 베스트로 올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족
현재 저는 민바사라는 까페에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관심이 있으시다면 오전 10~저녁11시에 방문하시어 가입하시면 새로운 정보들을 접하실수 있으실 겁니다.(링크)
원문: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5&articleId=1397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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