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랑 산사람] 밀양 위양지 트레킹
연극의 도시로 화려하게 변신하는 경남 밀양에 역사와 자연과 문화가 어우러진 테마코스가 생겼다. 밀양 고가(古家)`연극 탐방로가 전국 트레커들을 유혹하고 있다. 발길 닿는 곳마다 눈길 닿는 곳마다 품격 있는 아름다움이 살아 숨 쉰다. 한번 걸어 본 사람들은 누구나 반할 만큼 아름다운 길이다. 연극촌과 고가촌인 퇴로마을, 그리고 전국의 사진작가들이 탐내는 위양지까지 모든 것을 한꺼번에 아우르고 있다. 영화 ‘밀양’으로 유명해진 밀양은 대구에서는 이제 이웃 마을처럼 돼버렸다. 신대구부산고속도로 개통 후 1시간이면 갈 수 있다. 연극촌에서는 다양한 야외 공연장과 성벽 무대 등 종합예술의 현장을 생생하게 만나볼 수 있다. 운이 좋을 때는 연극의 리허설을 참관하는 행운도 누릴 수 있다.
◆가산저수지 수면 위로 화악산, 옥교산이 아늑히
가산마을, 용호정, 전망대 안내판 앞에서 길은 시작된다. 연극촌 주변엔 연꽃단지가 조성돼 있다. 조금 걷다보면 심재(心齋) 설광욱의 효자각과 만난다. 설광욱은 설총의 후예로 옥천부원군 설계조의 11대손이다. 9세에 부친을 여의고, 자신의 손가락에 피를 내 모친의 입 속에 흘려 넣어 연명하게 한 효자로 알려져 있다.
가산저수지 왼쪽 전망대에 올라선다. 거대한 호수 전체가 한 눈에 들어오고 중앙 너머로 퇴로마을이 보인다. 그 뒤로 청도의 명산 화악산과 산자락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전망대를 다시 내려서서 저수지 왼쪽을 휘감아 돈다. 길가에는 조팝나무 꽃이 흐드러지고 저수지 너머 용호정을 호위한 옥교산이 춤을 춘다.
퇴로한옥마을 입구에 들어선다. 밀양 중심부에 세거하던 여주 이씨 종가가 이곳으로 옮겨 오면서 집성촌이 되었다. 퇴로(退老)의 본래 이름은 ‘무리체’였으나 ‘물리치’가 되었다가 한문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퇴로가 되었다. 마을 입구의 고가 한 채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대문 앞에는 느티나무 고목 한 그루가 서있고 마당에는 동백과 홍매화, 자목련, 소나무가 심어져 있다.
한적함과 여유로움이 넘치는 마을 안쪽으로 접어든다. 뒤쪽으로 오르면 서고정사(西皐精舍)가 반긴다. 아담한 분위기의 일본 정원을 연상시킨다. 여느 고가와 달리 마당에 섬이 딸린 연못까지 갖추고 있다. 1898년쯤 항재(恒齋) 이익구가 건립한 건물이다. 이익구는 1899년 민족교육기관인 화산의숙을 건립한 인물. 부속 한옥은 조선조 한옥이 한말로 접어들면서 어떻게 변화했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자료다.
◆주말 퇴로마을엔 ‘고가체험촌’ 관광객 북적
퇴로마을은 2009년 ‘고가체험촌’으로 바뀌었다. 2003년 이곳 마을에서 영화 ‘오구’가 촬영되었다. 마을회관 옆에는 밀양 치즈학교가 새로 생겨 주말이면 가족 단위의 관광객들이 다녀간다. 마을회관 뒤편으로 길을 잡아 들어간다. 작은 개울가에 소나무 한 그루가 눈에 띈다. 세상의 모진풍파와 박해를 한 몸으로 막아선 듯한 그 기품에 전율이 일 정도다. 마을 입구를 통과하면 성황당이 나오고 용처럼 승천하는 몸짓으로 지팡이를 짚고 서있는 소나무가 맞아준다. 수령이 120년이라고 알려졌으나 언뜻 육안으로 보기에는 200년도 훨씬 넘어 보인다.
그러나 누가 뭐라 해도 퇴로마을의 압권은 삼은정(三隱亭)이다. 일정이 아무리 빡빡하더라도 놓치지 말아야 할 곳이다. 성황당 앞쪽 임도를 따라 북쪽 화악산 쪽으로 20여 분 접어들면 대각정사 왼쪽 숲속에 숨겨져 있다. 은둔처사 이명로가 1904년 지은 정자로 ‘삼은’은 물고기, 나무, 술을 의미한다고 한다.
연못에는 식물연구가들에게 귀한 대접을 받는 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다.
미국 남부 대서양에서 자라는 대왕소나무는 솔잎의 길이가 30㎝가 넘는다. 일본에서 들여왔다는 금소나무와 붉은소나무도 볼거리다. 몇 년 전까지 흰소나무도 있었는데 몇 해 전 말라죽었다. 회양목과 염주재료도 사용되는 무환자나무, 고약한 가시가 돋보이는 주엽나무, 비자나무, 팽나무, 편백나무, 곰솔 등도 볼 수 있다.
◆사진작가들 필수 코스 위양지
마지막 목적지인 위양지는 삼은정에서 걸어 40여 분 거리에 있다. 둘레 166m. 저수지 안에는 5개의 섬과 휘휘 늘어진 버드나무, 그리고 이팝나무 등이 어우러져 빼어난 풍경을 그려낸다. 저수지의 축조 시기는 신라시대로 당시엔 둘레가 4.5리(약 2㎞)에 달할 정도로 컸다. ‘양민을 위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고 저수지 가운데에 5개의 인공섬을 만들었다. 주위에 왕버들과 이팝나무 등을 심었다.
못 가운데 세워진 정자 완재정은 1900년에 안동 권씨 후손들이 지었다고 전해진다. 최근엔 전국 사진작가들의 발걸음이 부쩍 잦아졌다. 근래에 배수지 공사를 하면서 절개지를 흉물스럽게 방치해 위양지의 운치가 훼손돼 안타깝다.
저수지를 돌아 나오면 길은 왼쪽 산자락으로 이어진다. 임도를 만나 왼쪽으로 걸어 나오면 가산저수지다. 용호정 이정표를 표지 삼아 걸으면 솔밭이 나타나고 용두산 머리 위 용호정에 이른다. 함평 이씨 일문이 입향 선조인 이선지의 부모님을 추모하여 세운 정자인데 정자라기보다는 주택에 가깝다. 정자 앞쪽에 작은 산길이 나있다. 오른쪽으로 뚝 떨어지는 길로 내려서지 말고 직진하면 저수지 아래쪽으로 내려서게 되고 연극촌에 닿게 된다.
총 걷는 거리와 시간은 7.5㎞에 3시간 정도라고 알려져 있으나, 실제 서고정사와 삼은정을 포함시키면 약 9㎞에 4시간 이상 걸린다. 특별히 험한 코스는 없으나 연극촌 입구를 제외하면 이정표가 거의 없는 게 흠이다. 길을 떠나기 전에 전체 개념도를 내려받아 길을 충분히 숙지하고 머리로 그리면서 걷는 것이 좋을 듯하다.
연꽃이 피는 9월 이후가 트레킹의 적기겠지만 5월에 떠나면 더 좋을 것 같다. 탐방로 곳곳에는 이팝나무 꽃들이 운치 있게 피어 탐방객들을 화사하게 반겨주기 때문이다. 고색창연한 고가들이 모여 있는 퇴로마을에서는 시간도 멈추고 발길도 느려진다. 그러다 어느새 마음까지 내려놓게 된다. 옛것과 근대의 풍경이 어우러진 풍경을 따라 흙길을 걷는 맛은 각별한 재미를 안겨 줄 것이다.
밀양시 문화관광과(055-359-5643)에서 안내를 받을 수 있으나, 아직 초창기이고 자료가 미비해 만족할 만한 자료를 구하기 힘들다. 코스 문의 011-818-0786.
◆교통=신대구부산고속도로에서 밀양으로 빠져 나온다. 시내로 들어가 부북면으로 진입한다. 밀양 연극촌 안내판이 잘 정비되어 있다. 이정표에 따르면 된다.
글`사진 지홍석(수필가`산정산악회장) san327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