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보고
27기 정창영
배고파서 내려왔어. 배고파서.
공무원 시험에 떨어지고 서울 생활에 지쳐 고향으로 내려온 혜원. 친구가 왜 내려왔는지 묻자, 덤덤히 그렇게 답했다. 노량진의 쪽방생활로 편의점 알바를 병행하며 식사비라도 아끼기 위해 기간이 지난 편의점 도시락으로 끼니를 해결해야만 했던 그녀다. 그녀가 필요한 건 충분한 휴식과 영양가 있는 음식이었다.
“리틀 포레스트”의 등장인물은 취업 준비를, 직장에서 고군분투하는, 직장을 그만두고 자신의 삶을 찾은 각 젊은이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한국의 젊은이들의 현 상황을 보여준다..
나 또한 훗날 농촌에서 한적하게 농사짓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농사 짓는다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고, 그저 집 안뜰에 조그마한 텃밭을 갈아서 갖가지 채소를 심고 자급자족하며 살고 싶었다. 그러나 문제는 “외로움”일 것이다. 사람의 왕래가 없다면 무인도나 마찬가지니깐. 그러나 리틀포레스트는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삶의 부족함을 채워줬다. 바로 가까운 친구와 함께 하는 조용한 시골생활이라는 것이다.
킨포크 라이프라는 것이 알려져 있다. 킨포크는 Kinfolk ‘친척 혹은 가까운’을 뜻하는데 텃밭에서 직접 재배한 유기농 재료로 친환경 식단을 만들고 여기서 중요한 것은 친구 혹은 가까운 이웃과 함께 식사를 나누거나 함께 한다는 것이다. 밥상에 둘러 앉아 서로의 삶을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각자 삶의 활력소가 되는 것, 그것이 행복 아닐까.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커다란 밥상에 산해진미가 놓여있다 하더라도 혼자서 먹는다면 그 신세가 얼마나 처량할까. 요즘 청년들 사이에서 혼밥문화가 형성되고 있다. 카페, 식당, 심지어 고속도로 휴게소에서도 혼자 먹는 것에 거리낌이 없도록 혼밥용 자리가 마련되어 있다.
어른들이 말한다. 요즘 3포 4포 8포 세대에서 거기에 이제는 혼밥 문화까지 형성되었다고. 그런 문화에서 어서 탈피해야 한다고 말한다. 정말 모르고 하는 말이다. 왜 혼밥 문화가 형성될 수밖에 없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낼께” 문화 속에서 자라온 이들이 “내가 낼 수 없기” 때문이다. 각자 돈 내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로서 각자 내는 것이 정 없게 느껴지고 어색하다. 또한 유교문화의 영향 때문인지 동생들과 먹는 자리는 체면 또한 안 선다. 식사를 끝마치고 계산할 때쯤 암묵적으로 미묘하게 고민하게 된다. 인색할 것인가. 굶주릴 것인가.
그렇다고 서양 문화는 다른가? 다시 말하지만 킨포크 문화는 미국에서 건너온 문화다. 그들도 혼자 먹는 생활에 염증을 느꼈기 때문에 그러한 문화가 형성 된 것이리라. 하지만 그들과 한국의 차이를 두자면 문제의 뿌리가 다르다. 서양에서는 혼자 먹는 식사와 각자 내는 것에 전혀 거리낌이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오랜 시간동안 자유와 독립이 여러 모양으로 두루 발달하여 고독한 시간을 갖는 것과 함께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자연스럽게 병행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조금 다르다. 유교의 영향으로 우리 가족, 우리 집, 우리 가문을 챙기는 것에 익숙해져서 아래로는 동생과 자식을 돌보아야 하고 위로는 어른들을 모셔야하는 혼자 있는 시간보다는 가족을 돌보아야하는 정신이 이어져 있다. 물론 그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너무 한 쪽으로 치우쳐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혼자 휴식을 취한다던지, 밥을 먹는 것이 어색하다. 돈 내는 것 또한 연대적인 문화로 각자 내는 것이 서로 간에 어색한 기류를 흐르게 한다.
지금은 과거와 다르게 혼자 있는 시간들이 너무나 많아졌다. 물론 생활이 팍팍해서 함께 있는 것보다는 혼자 생활하는 것이 돈을 아끼는 방법이라고 하지만, 요즘 혼자 즐길 수 있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한 휴식이 아니다. 세르티양주의 “공부하는 삶”에서 쾌락은 영혼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소비하는 것이라고 했다. 즉 우리는 휴식이라고 착각하면서 일과 쾌락으로 끊임없이 영혼을 소비하며 죽어가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과거나 지금이나 타의에 의해서 혼자 있게 되었고 타의에 의해서 군중 속에 나를 잃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을 찾지 못하고 영혼은 상실해 간다.
우리의 영혼은 알고 있다. 우리의 결핍이 무엇인지. “리틀 포레스트”를 본 관람객들의 주 된 반응은 “힐링되었다” 이다. 나는 이 말이 간접적으로 만족했다는 뜻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작년까지만 해도 나는 서울에 유통업을 하면서 2주마다 특정 마트를 돌며 각 지역의 여관이나 고시원을 전전했다. 그렇게 1년간 떠돌이 생활은 나의 영혼을 메마르게 했다. 서로 과정은 다르지만 젊은이들이 열심히 취업전선에 뛰어들고 노량진에서 공부하며 자신의 영혼을 소비하지만 그 목적은 사실 큰 것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그저 마음 맞는 이들 혹은 가족이 모여 조그마한 쪽방이 아니라, 넉넉한 공간에서 하하호호 하며 밥 먹는 것이리라.
“배고파서 내려왔어. 배고파서”
극중 혜원의 말처럼 우리 젊은이들은 배고프다. 이 주인공처럼 누구나 실패할 수 있다. 그러나 실패해도 다시 일어서야 한다. 다시 일어서려면 제대로 된 음식을 먹고 휴식을 취해야 한다. 특히 먹더라도 한 쪽으로 치우친 편식이 아니라, “함께 하는 것”과 “고독”, 이 둘을 골고루 취해야 한다. 물론 실제 따뜻한 음식과 자신을 말없이 위로해줄 이들 또한 당연 필요하다.
나와 우리 각자에게 그러한 쉼이 있는 “작은 숲”이 과연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