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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개냐? 심판이냐? (1) (시 7:12)
11.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
12. 사람이 회개하지 아니하면 그가 그의 칼을 가심이여 그의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하셨도다.
"사람이 죄를 회개치 아니하면 하나님께서 그의 칼을 갈으심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칼을 가지고 계셔서 부정한 것을 들어 인간을 벌하십니다. 이 사악한 세대는 하나님의 손에 있는 정의의 칼을 빼앗아 버리려고 무던히 애를 써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용서하시지 결코 "불의와 범법"은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스스로 애써 입증하려 하고 있습니다. 20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설교단은 하나의 두려움의 상징이었습니다. 이는 마치 시내산과 같아 여기에서 하나님의 두려운 분노의 뇌성벽력이 발하였고 박스터(Baxter)나 번연(Bunyan)의 입으로부터 사람들은 앞으로 올 심판에 대하여 공포에 찬 설교를 듣고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아마 어떤 청교도의 조상들은 이와 같이 그들의 선교활동에서 지나치게 주님의 존재를 두렵게 인식시켰을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또한 우리가 살고 있는 현 세대는 이러한 두려움을 한결같이 잊으려는 방안을 찾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벌하신다고 말하면 이는 마치 이들에게 겁을 주어 종교로 귀의케 하려 한다는 비난을 받게 되고, 또한 죄의 삯은 파멸을 초래할 뿐이라고 진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 우리가 저들을 을러서 선을 행하도록 한다고 비난을 받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조롱하여 말하더라도 우리는 개의치 않으려 합니다.
인간들이 범죄하면 이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고 일러주는 것을 우리의 의무로 느끼고 있을 뿐이며 세상이 죄를 포기치 않는 한 우리의 경고를 그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시대의 외침은 "하나님은 자비하시고 사랑이시다"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누가 그렇지 않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며 엄위하시고 굴하지 않으신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만일 그가 공의로우신 분이 아니면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공의롭지 않으시다면 자비로울 수가 없습니다. 악한 자의 처벌은 기타 인류에 대한 가장 큰 자비에 의해서 요구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며 이제 읽어드리고자 하는 그의 말씀은 진실한 것이므로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악인이 음부로 돌아감이여 하나님을 잊어버린 모든 열방이 그리 하리로다"(시9:17).
"하나님은 의로운 재판장이심이며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 "사람이 회개치 아니하면 저가 그 칼을 갈으심이여 그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하셨도다. 죽일 기계를 또한 예비하심이여 그 만든 살을 화전이로다"(시7:12,13).
그렇습니다.
이 세대는 사악하여서 지옥이 없다고 합니다. 위선적이기 때문에 형벌을 망각하려 합니다. 이러한 사상이 너무 만연하였기 때문에 형벌을 망각하려 합니다. 이러한 사상이 너무 만연하였기 때문에 심지어 복음의 사역자들조차 진노의 날을 주장하는 자신들의 사명을 주춤하기까지 이르렀습니다.
다가올 심판에 대해서 엄숙히 말해 줄 사람이 몇이나 있습니까? 이들은 하나님의 명령하심에 따라 의무로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전파하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악한 자의 말로를 전파하지 않고 하나님의 자비만을 전파한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만일 "사람들이 회개치 아니하면 하나님께서 칼을 갈으신다"고 경고하지 않는 한 우리가 어떻게 우리 전도의 효과를 기대할 수가 있겠습니까? 나는 여러곳에서 장차 형벌에 관한 이론이 버림을 받고 하나의 공상으로서 조소를 당할 것을 우려하고 있습니다만 반드시 이 말씀이 실현될 날이 오고야 말 것입니다.
아합은 미가야가 다시는 살아서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리라고 말할 때 그를 비웃었습니다. 노아시대의 사람들도 이 세상이 물에 잠길 것이라고 경고하는 이 어리석은 늙은이(그들의 판단에 의하면)를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나무 꼭대기로 오르고 홍수가 그들의 뒤를 따라 차 오를 때 노아의 예언이 거짓이었다고 말하였겠습니까?
화살이 아합의 가슴을 꿰뚫었을 때에 그는 "내가 부상하였으니 네 손을 돌이켜 나를 군중에서 나가게 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때에 그는 선지자 미가야가 자기에게 거짓말을 한 줄로 생각하였겠습니까?
지금도 역시 그러합니다.
우리가 앞으로 다가 올 심판에 대해서 여러분에게 증거하면 여러분은 우리가 거짓말을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과오가 스스로 드러나고 멸망이 여러분을 휩쓸 적에 우리가 거짓말쟁이였다고 말하겠습니까?
돌아 서서 우리를 향하여 조롱하며 우리가 거짓말을 하였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에 대하여 충실하게 증거한 사람들에게 최고의 영예의 보상이 돌아갈 것입니다. 나는 가끔, 지금 내가 여러분 앞에 서서 선교사업에 종사하지만 만일 내가 죽은 후 여러분의 영혼에 불충실하였음을 깨닫게 된다면 우리의 영적 세계의 장면이 얼마나 슬픈 것이 될까 하는 두려움에 잠김니다. 앞으로 올 세계에서 여러분이 나에게 "선생이여, 당신은 우리의 비위만 맞추었습니다. 당신은 우리에게 영원한 의식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에 대하여 정당하게 강조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어느 정도 우리를 두려워하여 무기력하게 증거하였습니다. 당신은 우리가 영원한 고통에 대하여는 듣지 않으려 하는 줄을 알고 이에 관하여는 덮어두고 언급하지 못했던 것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된다면 이는 실로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만일 이와 같은 것이 나의 태도라면 여러분께서는 아마도 영원히 나를 쳐다보며 저주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기도하노니 이와 같은 일이 없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내가 죽을 때 누가 무어라고 말하든 하나님의 도움으로 "이 사람들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랄 뿐 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진리를 알고 있는 한 이 진리를 전하는데 진력할 것이며, 나에게 어떠한 오명이나 악평이 이전보다 10배나 더 주어질지라도 이 불안정한 세대에 충성을 다하게 되고 하나님과 나 자신의 양심에 거리낌이 없게 된다면 이를 기꺼이 감수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은혜로 엄숙하며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한 부드러웁게 여러분 중 회개치 아니한 사람들에게 미래의 운명을 상기시키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고자 합니다.
첫째, 대지에서는 회개가 무엇을 의미하는가 알아보고,
둘째 대지에서는 인간이 회개해야 되며 그렇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 벌하신다고 하는 사실을 숙고해 보고,
세번째로는 인간이 회개하는 방법과 그들의 연약하고 취약한 성격이 하나님의 성스러운 은혜로 말미암아 변화한다고 하는 것에 대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Ⅰ. 첫째 대지로 회개의 성격에 관하여 말씀 드리겠습니다.
"사람이 회개치 아니하면 저가 칼을 갈으심이여"(시7:12). 이곳에서 의미하는 회개는 실질적인 것으로서 어떠한 약속이나 맹세와 더불어 끝나는 허구적인 것이 아니요 실질적인 삶의 생활을 다루고 있습니다. 아마 여러분 중 어떤 사람은 오늘 아침에 "주여, 내가 하나님을 향하여 나아가겠나이다. 이제부터 죄를 짓지 아니하고 거룩한 삶을 영위하며 살아가겠나이다. 타락한 행위를 버리며 나의 범죄함을 바람에 흩날려 버리고 마음을 굳게 하여 하나님을 따르겠나이다."라고 말하고는 내일이면 이를 잊어버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을 듣고 눈물을 흘리지만 내일쯤이면 그 눈물은 말라붙고 심지어 교회에 나아갔다고 하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어버릴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는 거울을 통해 자기의 얼굴을 보되 돌아서면 곧장 그 모양을 잊어버리는 그러한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아,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이러한 태도는 여러분들을 구원할 수 있는 회개의 약속이 아닙니다. 이것은 여러분들의 맹세가 아니며 또한 엄숙한 선언이 아닙니다.
아침 햇살에 말라버리는 이슬방울 보다도 더욱 쉽게 말라 버리는 것이 진정 흘려야 할 눈물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진정한 회개는 순간적인 마음의 감동이 아닙니다. 참으로 죄를 버리고 일상 생활에 있어서 의로운 변화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참회개입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머리를 숙이고 "주여, 나의 죄를 뉘우치고 회개하나이다" 하고서는 얼마 후에 다시금 죄를 짓는다면 여러분의 회개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이며 여러분의 파멸은 이전보다 더욱 확실할 뿐입니다.
왜냐하면 자기의 창조주에게 맹세를 하고 이를 지키지 않는다는 것은 또 하나의 죄를 범하는 것이며 전능하신 하나님을 속이고 거짓말을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참된 회개란 진정 우리의 외부에 나타나는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그러한 회개라야 합니다.
다음으로 참된 회개는 순수한 것이어야만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선생님, 저는 이 죄와 저 죄만큼은 버리겠습니다만 어떤 것만큼은 버릴 수가 없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오, 여러분들이여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하거니와 참된 회개는 한가지의 죄를 버린다거나 50가지의 죄를 버린다고 하는 따위의 것은 아닙니다. 모든 죄를 엄숙하게 버려야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만일 이 저주받을 죄를 한가지 만이라도 마음 가운데 숨기신다면 여러분의 회개는 단지 부끄러운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한가지의 죄만을 지속하면서 다른 모든 죄악을 버린다고 하더라도 그 한가지 죄악은 마치 배의 어느 부분에 구멍이 뚫린 것과 같아서 여러분의 영혼을 침수시키고 말 것입니다. 여러분의 외양적인 부도덕을 버린다 해서 만족히 생각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생활의 부패된 죄를 다소 버렸다 해서 흡족해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전부냐 아니면 전무냐 하는 것입니다.
"회개하라"고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그가 회개하라고 말씀하심은 여러분의 모든 죄를 회개하는 것을 의미하시며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의 회개를 진실되고 순수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참된 고해자는 죄 그 자체를 미워하고 죄를 범한 인간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오, 죄여, 네가 아무리 아름답게 변장을 하여도 나는 너를 멸시하노라.
네가 기쁨으로 위장을 하고 청색 비늘로 둘러싸인 뱀과 같이 눈부시게 보일지라도 나는 너의 독아(毒牙)를 알고 있기 때문에 증오하며 모양 좋은 옷을 입고 나에게 접근할지라도 나는 너로부터 달아나겠노라"라고 말합니다. 모든 죄는 버려져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소유하지 못합니다. 모든 범죄가 근절되지 않으면 여러분을 향해 하늘의 문은 굳게 닫혀 집니다. 그러므로 진실된 회개란 완전한 회개라야 하는 것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말씀에 "사람이 회개치 아니하면 저가 그 칼을 갈으심이여"라고 하는 것은 즉시 회개하라고 하시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혹 이 세상에서 이 생명이 다하고 내세라고 하는 암흑의 국경을 넘을 무렵에 태도를 바꾸어야겠다고 하실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것은 하나의 망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오랫 동안의 범죄생활을 한 후 그 곳에서 헤어나온 사람이 얼마나 있습니까? 검둥이가 그의 살갗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까? 표범의 그 반점이 변할 수 있습니까? 변할 수 없을 때 죄에 물들려는 사람은 현명하게 처신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임종의 자리에서 회개하겠다고 말씀하신 것에 믿음을 덧붙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건강한 중에 회개치 않으면 건강을 잃은 후에도 결코 회개치 못할 것이라고 하는 한가지 사실에 수천가지 논쟁이 있습니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기 전 적당한 시기를 골라 죄를 고백하겠노라고 다짐을 합니다만 그러한 휴식의 시간을 찾은 사람은 거의 없는 일입니다. 사람들이 길에 쓰러져 죽기도 하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교회에서도 죽고 작업을 하다가 숨을 거두기도 합니다. 죽음이 서서히 오는 것이라면 여유가 있겠으나 회개에 적합한 시기는 아닙니다. 많은 성도들과 같은 사람들이 임종의 자리에서, "오, 내가 지금 하나님을 찾고 자비를 구한다면 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 임종의 고통만으로 회개의 고통 없이 족하지 않은가? 후회로써 영혼의 아픔을 당함이 없이 이 육체적인 고통으로 충분한 것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죄인이여!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오늘날 그의 음성 듣기를 원하거든 너의 열조가 나를 시험하며 나를 탐지하듯이 너희 마음을 강퍅하게 말지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성경이 인간의 죄를 깨닫게 하시면 결코 지체하여서는 안됩니다. 죄를 회개할 또 다른 날은 있지를 않습니다.
그러므로 지혜의 말씀은 "곧장 회개하라"라고 하십니다. 유대교 선생들은 말하기를 "모든 사람이 죽기 하루 전에 회개토록 하라 내일 그가 죽을지 모르므로 오늘 악의 행위에서 벗어나도록 하게 하라"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곧바로 회개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이라고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회개하라고 말씀하신 외에 여러분께서 회개해야 할 어떤 기간을 약속하신 바 없습니다.
더욱이 절대적인 필요로서 이곳에 기술된 회개는 마음으로부터 우러나는 진정한 회개인 것입니다.
이는 가공적인 눈물이 아닙니다. 이는 슬픔의 깃발을 내걸고 그 사이에서 여러분의 마음이 흥겨움을 지니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니며, 내부에 조명을 가지고 거짓 회개자에 의해서 모든 창문을 닫아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참된 회개는 마음의 촛불을 꺼버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는 참된 회개자의 영혼의 슬픔 입니다. 사람은 모든 외부적인 죄와 절연하면서 참된 회개를 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진정한 회개는 생활은 물론 마음의 변화를 말합니다.
이는 자기의 영혼을 주께 맡기고 영원히 그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생활의 범죄는 물론 마음의 죄를 버리는 것입니다.
아! 여러분, 우리들 중 누구도 거짓이나 허구적인 회개를 했다고 해서 우리가 완전히 회개를 한 것으로 착각하지 맙시다. 단지 가냘픈 인간성의 역사인 것을 성경의 역사인양 취급하지 맙시다. 아마도 우리 자신의 본연의 태도로 돌아오고 만 것을 마치 구원을 받은 양 회개하였다고 생각지 맙시다. 그리고 하나의 악에서 다른 악으로 또는 악덕에서 미덕으로 전환하였다고 해서 만족한 것으로 여기지 맙시다. 영혼 전체가 변화 되어 옛사람이 그리스도 주 안에서 새롭게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하나님께 회개한 것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회개는 영원한 것이라야 합니다.
오늘 내가 참된 회개를 했다 해서 하나님께 전향한 것은 아닙니다. 내가 무덤에서 잠들 때까지 나의 전 생애를 통하여 죄를 단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한 주일 동안 정직한 생활을 하는 것이 구원을 얻는 증거로 공상하여서는 안됩니다. 악을 영원히 증오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변화란 덧없이 무상한 것도 아니요. 피상적인 변화를 말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씀 드리자면 잡초를 깎아 내는 것이 아니라 뿌리째 뽑아 버리는 것입니다. 하루의 먼지를 털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불결하게 하는 원인을 없애버리는 것입니다. 옛적에 부유하고 호화스럽게 군주들이 자기들의 고향에 오면 샘에서 술과 우유가 넘쳐 흐르게 합니다. 그러나 이 샘은 항상 술과 우유가 흐르지는 않습니다. 내일이면 이전처럼 물이 흐르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도 여러분은 집에 가셔서 기도를 합니다. 오늘은 진지하고 내일은 정직하며 그 다음날은 경건한 것같이 행동합니다. 그러나 만일 여러분이 다시금 이전의 상태로 돌아 간다면 성경에서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라고 하는 것과 같이 여러분의 회개는 여러분 마음 가운데 성스러운 은혜의 증거가 되는 대신 여러분은 지옥 밑바닥으로 가라앉고 말 것입니다.
율법상의 회개와 복음적인 회개를 구별하기란 매우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구별되는 일정한 표시가 있습니다. 여러분을 심심치 않게 함으로써 한 두 가지를 주목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자신의 영혼에서 이들을 발견하도록 하나님께 기원합니다!
율법상 회개는 처벌을 두려워 하는 것이고 복음적 회개는 죄짓는 것을 두려워 하는 것입니다.
율법상 회개는 하나님의 분노를 두렵게 여기지만 복음적 회개는 분노 또는 죄의 과정을 두려워하게 합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성령이 그의 안에서 역사하시는 회개의 은혜로 말미암아 회개할 때 죄의 대가인 처벌이 두려워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죄 그 자체를 회개하게 되며, 그는 또한 비록 악인을 위하여 파놓은 무덤이나 구더기도 타지 않는 불이 없다 할지라도 그는 죄를 미워하게 됩니다. 이러한 회개야말로 여러분 모두가 해야 할 회개이며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은 잃은 사람이 될 것입니다.
죄는 증오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죽음에 이르러서 영원한 고뇌를 두려워하게 되는 것을 회개로 생각지 마십시오. 모든 도적들은 형무소를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만일 여러분이 그를 놓아주면 내일 또 도적질을 할 것입니다. 살인을 범한 사람들은 교수대를 바라보고는 벌벌 떱니다. 그러나 그들이 살아 남을 수 있다면 그들은 또 살인을 하게 됩니다. 회개라고 하는 것은 처벌을 증오하는 것이 아니라 범죄 그 자체를 증오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와 같은 회개를 하고 있다고 느끼십니까? 만일 그렇지 않다면 이 무서운 말씀이 여러분에게 다시금 전해져야 할 것입니다. "사람이 회개치 아니하면 저가 그 칼을 갈으심이여."
여기에 또 한가지 암시하는 바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영혼을 구원할 참되고 복음적인 회개를 하고 있다면 죄 그 자체에 대하여 미워할 뿐만 아니라 그 죄를 극단으로 미워한 나머지 자기 자신의 회개가 이 죄를 씻어낼 수 없고 다만 탁월하신 주님의 은혜의 활동만이 자기의 죄를 씻어 없게 할 수 있다고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만일 여러분 중 누가 죄를 회개하되 거룩한 생활의 과정에 의해서 죄를 지워 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며 또한 미래에 있어서 올바른 생활을 함으로써 과거의 죄를 지워버릴 수 있다고 상상한다면 여러분은 참된 회개를 한 바가 되지 않습니다. 참된 회개란 인간으로 하여금
"너희가 죄를 뉘우치기 위하여 영원히 수고하고
눈물을 흘려도 죄를 사함 받지 못하나 오직 그리스도만이
너희를 죄로부터 구원할 수 있느니라."
라고 느끼게 하며 또한 죄가 여러분 마음 가운데서 부패하고 지겨운 것으로 혐오를 받아 죽임을 받고 여러분 눈 밖에서 묻어버리고자 하나 그리스도께서 무덤을 파 주시지 않으면 결코 묻어버릴 수 없다고 느끼면 여러분은 죄를 회개한 바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노여움을 받아 마땅한 것을 겸허하게 고백하고 우리를 자신의 어떠한 행위로서도 이를 피하지 못함을 알고 혼신의 노력을 다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공로만을 의지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회개하지 못하였다면 다윗의 말씀을 다시 한번 상기해야겠습니다. "사람이 회개치 아니하면 저가 그 칼을 갈으심이여."
----- 2부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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