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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태시인의음악사랑이야기 (80)
《비극을 노래한 폭발적 열정, 톰 존스의 '딜라일라'가 남긴 음악적 유산》
1968년 영국의 명작곡가 '레스 리드'와 작사가 '배리 메이슨'이 함께 만든 이 노래는 작사가 자신의
풋풋했던 첫사랑과 배신의 기억에서 출발했다고 하는데, 제목부터 구약성서 속 삼손을 유혹해 파멸로 몰아넣었던 데릴라의 이름을 가져옴으로써, 시작부터 잔혹한 비극의 복선을 강렬하게 깔아놓는다.
성서 속 데릴라가 삼손을 유혹하여 힘을 빼앗고 비극으로 몰아넣었듯, 팝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요부(팜무 파탈, Femme Fatale)의 대명사로 자리 잡은 이 이름은 곡 전체에 감도는 잔혹하고도 슬픈 복선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딜라일라(Delilah)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영웅 삼손(Samson)을 배반한 창녀 데릴라의 영어식 발음이다. 데릴라는 삼손의 괴력이 머리칼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삼손에게서 듣고 잠자는 삼손의 머리털을 잘라 신통력을 잃게 함으로써
삼손으로 하여금 페리시데인들에게 붙잡혀 시력을 잃고 감옥에 갇히도록 한 배신녀이다. 이 배신녀 데릴라를
주제로 한 노래, '딜라일라(Delilah)'를 영국의 유명가수 톰 존스(Tom Jones)가 불러 세계적으로 히트를 하였는데, 1968년 경 한국에서는 조영남씨가 이 곡을 번안 곡으로 불러 일약 유명가수의 반열로 데뷔시킨 곡이 되었다.
하지만 이곡은 그후 박정희 군사정권에 의해 20년간 금지곡이 되었는데, 그 금지된 이유는 가사내용
이 건전하지 못하여 젊은이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88년도에 해금되어 위 노래는 다시 빛을 보았다.
조영남씨의 번안곡 가사에는 애인인 딜라일라가 다른 남자와 밀회를 즐기다가 주인공에게 발각되었으나 부정한 딜라일라를 원망하며 절규하면서도 결국 포기하고 뒤돌아서는 것으로 끝을 맺었으나, 톰 존스가 부른 영어 원곡에서는 주인공이 밀회를 나눈 남자가 사라지는 것을 기다렸다가 비수를 품고 들어가 부정한 연인 딜라일라를 살해하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유명 평론가는 말하는 "조영남의 한국어 버전의 딜라일라는 톰 존스의 원곡과 멜로디는 공유하지만, 그 안에 담긴 정서적 밀도는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서구의 원곡이 근대적 개인주의를 배경으로 한 치정과 소유욕의 서사였다면, 조영남의 딜라일라는 한국인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잡은 한(限)과 억압된 정서의 폭발이라는 독특한 렌즈를 통해 재해석 된다. 한국적 정서에서 한은 슬픔을 안으로 삭이고 참아내는 수동적 감정이지만, 이것이 임계점을 넘어가는 순간 걷잡을 수 없는 격렬한 분노와 파격성으로 분출되는 두가지의 성격을 띤다. 조영남 그가 부르는 딜라일라는 서구식 로맨스의 실패를 슬퍼하는 노래가 아니라, 식민지와 전쟁, 그리고 압축성장이라는 혹독한 역사를 지나며, 내면에 거대한 정서적 억압을 쌓아온 한국 남성들이 지르는 '한풀이'의 사우팅으로 들렸다"는게 정설로 들린다.
이 곡의 가사는 이렇다.
"I saw the light on the night that i passed by her window
나는 한 밤중에 불빛을 보았네 그녀의 창문을 지나치면서
I saw the flickering shadows of love on the her
나는 브라인드에 흔들리는 사랑의 그림자를 보았네
She was my woman
그녀는 내 여인이었어
As she deceived me i watched and went out of my mind
그녀가 나를 속이는 것을 바라보면서 나는 제 정신이 아니었다네
My my my Delilah
나의 나의 나의 딜라일라
Why why why Delilah
왜 왜 왜 딜라일라
I could see that girl was no good for me
그녀가 나에겐 필요가 없으리라는 것을 알았지만
But i was lost like a slave that no man could free
나는 노예 같았었지 그 누구도 나에게 자유를 줄 수 없어서
At break of the street to ger house and she opened the door
나는 길을 건너 그녀의 집으로 향했고 그녀는 문을 열었어
She stood there laughing
그녀는 서서 웃고 있었지
I felt the knife in my hand and she laughed no more
나는 손에 칼이 들린 것을 느꼈고 그녀는 더 이상 웃지 않았어
My my my Delilah
나의 ~~ 딜라일라
Why why why Delilah
왜 ~~ 딜라일라
So before they come to break down door
그들이 와서 문을 부수기 전에
Forgive me Delilah
나를 용서해 주오 딜라일라
I just couldn't take anymore
나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오
/repeat/
Forgive me Delilah
나를 용서해 주오 딜라일라
I just couldn't take anymore
나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오"
사랑은 소유와 분리될 수 없다. 인간의 사랑은 본질적으로 상대를 내 영역 안에 묶어두려는 이기적인 소유의 논리를 내포한다. 소유는 필연적으로 불안을 동반한다. 상대는 결코 완벽히 통제할수 없고 독립된 존재이기에, 소유하려는 주체는 늘 상실의 불안과 질투에 시달리게 되는 것이다. 불안은 마침내 파괴충동으로 이어진다. 소유의 좌절을 견지지 못한 자아는, 상대를 파괴하거나 나 자신을 파멸시키는극단적인 폭력으로 폭발할 잠재력을 품고 있다.
이 노래는 딜라일라라는 여성을 비난하는 노래가 아니다. 그녀라는 투명한 거울을 통해, 사랑이라는 고귀한 단어 뒤에 숨어있는 인간의 지독한 이기심과 나약함, 그리고 스스로를 파멸로 이끄는 인간 정신의 어두운 미로를 적나라하게 투사하고 있는 주체의 가련한 자화상이다.
이것은 단순히 치정극이나 이별 노래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인간이 가진 가장 원초적인 에너지인 에로티즘(Erotisme)이 어떻게 소유라는 제도적 욕망과 충돌하고, 그 충돌의 끝에서 어떻게 잔혹한 폭력성으로 변절되는지를 보여주는 한편의 거대한 '정신분석학적 보고서'라고 주장하는 평론가도 있다.
'딜라일라'는 음악이 단순히 청각을 자극하는 소일거리를 넘어, 인간 내면의 가장 깊고 어두운 밑바닥을 어떻게 위대한 예술로 끌어올리는지를 보여주는 정직하고도 강렬한 작품
이다. 이 노래가 단순히 통속적인 비극으로 떨어지지 않고 위대한 명곡의 반열에 올랐던 진짜 까닭은, 역설적이게도 그 서글픈 가사를 품어 안은 6/8박자의 정열적인 왈츠 리듬 덕분일 것이다. 스페인의 플라멩고 풍을 떠올리게 하는 강렬한 트럼펫과 브라스 사운드, 그리고 쿵작이는 라틴 비트는 슬픔을 그저 주저앉아 눈물짓게 두지 않는다. 오히려 주인공의 격동하는 심장 박동처럼 거칠게 고조되며, 그 절망을 하나의 폭발적인 에너지로 승화시켜 버린다. 슬픔과 분노라는 어두운 정조를 흥겨운 라틴 왈츠 비트에 담아낸 이 작곡적 아이러니야말로 명곡이 가진 진짜 묘미다.
실로폰의 섬뜩하도록 절제된 떨림과 서늘한 A마이너 코드로 시작되는 이 곡은 도입부에서부터 예사롭지 않은 긴장감을 자아낸다. 창문에 비친 연인의 배신을 목격하는 주인공의 고독한 시선, 그리고 사막의 비바람처럼 귀전을 때리는 웅장한 브라스 세션은 발표된 지 반세기가 넘은 지금까지도 대체 불가능한 '서사적 올드 팝'의 정수로 평가받는다.
이 곡은 전형적인 크레센도(Crescendo, 점점 크게)와 텐션 앤 릴리즈(Tension &release, 긴장과 이완의 법칙)를 극한까지 밀어붙인다.
슬픔과 분노라는 정조를 신나는 라틴 왈츠 비트에 담아낸 작곡적 아이러니
는 듣는 이에게 묘한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여기에 더해진 톰 존스의 목소리는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서사이자 생명력이다. 절제된 음성으로 사연을 읊조리듯 노래를 시작하다가, 후렴구에 이르러 "My, my, my, Delilah!" 하고 사자후처럼 토해낼 때 들려오는 것은 단순한 가창이 아니다. 그것은 질투와 회한, 그리고 파멸 끝에 찾아온 인간의 원초적인 비가(悲歌)
이자 생생한 음성 연극이다. 진성(眞聲)과 가성(假聲)을 넘나들며 폭발하는 그의 성량은 가사 속에 담긴 잔혹한 비극조차도 거대한 예술적 카타르시스로 바꾸어 놓는 마법을 부린다.
잘못하면 통속적인 신파극으로 떨어질 수 있었던 가사가 클래식의 반열에 오른 것은 전적으로 톰 존스라는 위대한 보컬리스트가 가진 압도적 표현력 덕분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음악의 아름다움에 취해, 상대가 저지르는 데이트 폭력과 살인이라는 엄연한 물리적 폭력의 잔혹함을 '지독한 사랑의 대가'로 오인해서는 안될 일이다.
근간에 매스컴에 회자되는 끔찍한 치정범죄 등을 보면서 노파심에서 하는 말이다.
이성간의 사랑이 윤리라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잃어버렸을 때 그것이 문명을 찢고 나오는 야만성과 폭력이 괴물이 될 수 있음을 이 곡은 그 어떤 사회학 논문보다 더 섬뜩하게 증언하고 있다.
세월이 흐르고 세대가 바뀌며, 세상에는 수많은 음악이 태어났다 또 조용히 사라져 가지만, 인간이 느끼는 사랑과 배신, 그리고 그 뒤에 찾아오는 뜨거운 열정의 본질은 예나 지금이나 그리 달라지지 않은 듯하다.
음악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그 감동을 글로 풀어내는 일은, 이처럼 흘러간 명곡의 멜로디 너머에 숨겨진 인간의 뜨거운 숨결을 다시금 불러내는 일일 것이다.
음악은 단순히 아름다운 멜로디의 나열에 그치지 않는다. 위대한 음악은 인간 본연의 밑바닥에 도사린 어둡고 뜨거운 감정을 집요하게 파헤치며, 듣는 이를 한 편의 밀도 높은 서사극 한가운데로 안내한다.
발표 당시 영국 차트 2위, 전 세계적
으로 50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폭발적인 사랑을 받은 '딜라일라'는, 시간이 흐르며 가사의 자극성과 묘사의 파격성으로 인해 현대적 문화 논쟁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실제로 일부 스포츠 경기장이나 방송 매체에서 가사의 윤리성을 이유로 금지곡 논란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음악 평론의 중립적이고 깊이 있는 시선에서 본 '딜라일라'는 비극을 미화하는 노래가 아니라, 인간 내면에 도사린 어두운 본성과 비극적 열정을 극적으로 담아낸 하나의 고전적 음악극이다. 톰 존스 스스로도 언급했듯, 이 노래는 현실의 선동이 아닌 인간 희로애락의 이면을 연기하는 강력한 음성 연극이다.
음악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평론한다는 것은 눈부신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이처럼 인간의 고독과 파멸마저 예술로 승화시킨 명곡의 이면을 헤아리는 일일 것이다. 웅장한 트럼펫 소리 뒤에 숨겨진 그 서늘하고도 뜨거운 비극의 멜로디는, 앞으로도 음악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의 가슴속에 오래도록 강렬한 울림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문화칼럼니스트 최진태
*Tom Jones "Delilah" on The Ed Sullivan Show
https://youtube.com/watch?v=MIIU9xkGAMs&si=HFt9EYP8Z9EOXk4R
**#딜라일라(A#,B)/톰존스 #하모니카^^
https://youtube.com/watch?v=t6j4uI_6jMM&si=bB8T0-nIaI6aIi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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