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연희쉼터 – 안산둘레길(봉원동장수길) - 천년고찰봉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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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년 사찰 봉 원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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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제천 인공 폭포를 지나고 징검다리를 건너 물레방아를 보며 연희숲속쉼터로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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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숲속쉼터를 가로질러 청소년 수련관 앞에서 언덕을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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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자연사박물관 앞에 있는 자연학습장을 간단하게 구경하고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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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둘레길(봉원동장수길)을 지나가다 보면 큰 부처님이 아카시아 향과 함께 내려다 보고 있고 늦게 나마 천 년 고찰로 가는 사람들과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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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원동 장수길이 시작되는 곳에 드디어 봉원사 주차장이 보인다.
이날 만은 부처님을 모르는 사람도 반갑게 맞아주는 것이 석가모니의 뜻이라고 했다. 크리스마스를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도 즐기는 것과 같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성철 큰 스님이 그렇게 말씀 하셨는데도 중생은 산을 물이라고 한다.
특히 정치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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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왕(文武王)이 남산성을 쌓고 백성들의 원성을 자초했을 때 의상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대왕이 덕이 높으시면 땅 위에 금을 긋고 ‘넘지 말라’ 하실 때 개미 한 마리 넘지 못하는 법입니다. 그러나 덕이 없으시면 만리장성을 쌓는다 하더라도 하루 저녁에 무너지는 법입니다.”
이 말을 듣고 문무왕은 곧 성 쌓는 일을 멈추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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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생, 老노, 病병, 死사
우리가 여기에 태어났다는 것은 바로 아픔의 뿌리이다 (生).
태어나서 늙게 되는 것은 또한 아픔이다 (老).
살아가면서 병이 들면 아픔을 뼈저리게 깨닫는다 (病).
삶을 언젠 가는 마무리 지어야 한다는 것에 아픔을 깨닫는다 (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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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緣起)
“이것으로 생하면 저것이 생하고, 이것이 멸하면 저것이 멸한다.”
너와 나와 만남도 바로 깊은 인연의 까닭이다. 네가 있으니 내가 있는 것인 만큼 자타가 불이(不二)함을 깨달아 머무름이 없는 자비를 실천할 것을 가르치는 것이다.
“연기(緣起)”란 말 그대로 “모든 것이 인연으로 인하여 생겨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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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란, 연기를 깨달을 때 나타나는 포괄적이고 보편적인 사랑. 다시 말해 자타불이(自他不二)를 전제로 한 무조건적인 사랑을 뜻한다. 진정한 자비란, 인간에게만 국한시키지 않고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 즉 미물에까지 미치는 사랑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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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만물과 타인들과의 불가피한 인과 관계를 깨닫게 되면,내가 소중하듯 남도 소중함을 알게 되고,나의 기쁨을 같이 기뻐하게 되고, 남의 슬픔도 같이 슬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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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원사(奉元寺)는
한국불교 태고종의 종본산이다. 서울 서대문구 봉원동 산 1번지의 안산 자락에 있다.
신라 말기 진성여왕 3년인 889년에 도선이 처음 지은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의 이름은 반야사(般若寺)였다. 이후 고려 공민왕 때 보우(普愚)가 크게 중창하였다. 조선 태조가 불교에 심취했을 때 삼존불을 조성해 봉원사에 봉안하였고, 사후에는 태조의 초상이 봉안되기도 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다시 짓는 등 조선 영조 때까지 지금의 연세대학교 자리인 연희궁 터에 있었다. 영조 24년인 1748년에 지금의 터로 이전하였고, 영조는 친필로 봉원사라는 글씨를 쓴 현판을 내렸다. 영조의 친필 현판은 한국 전쟁 때 소실되었다. 이때부터 새로 지은 절이라 하여 신도들 사이에서는 '새절'이라 불렀다. 정조 때 전국 승려의 풍기를 바로잡기 위한 8도승풍규정소(八道僧風糾正所)가 세워질 정도로 사세가 컸다.
조선 말기에는 승려 이동인이 머물러 갑신정변의 요람이 되었다. 이동인은 이 곳에서 박영효, 김옥균, 서광범 등 개화파 청년들과 교류하였고, 일본을 내왕하면서 이들에게 개화 문물을 전해주었다.
1954년부터 시작된 오랜 불교계 분규 과정에서 사찰 운영은 태고종이, 토지 소유권은 대한불교조계종이 갖게 되어 순천 선암사와 함께 대표적인 분규 사찰로 꼽힌다.
- 위키백과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