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면 낙엽들이 아파트 단지내에 수북이 쌓여있다. 점점 나목으로 변해가고 있어 겨울이 멀지 않아구나 생각이 든다. 이번 라이딩은 서울의 중심지인 광화문역에서 출발하여 경북궁, 창덕궁, 혜화동을 거쳐 성북천- 청계천-정릉천,-석계역- 태릉- 퇴계원- 왕숙천- 한강 북단 잠실철교에 이르는 코스로 50km이다. 광화문역에서 바이콜릭스 전사 6명이 경복궁 돌담 자전거길을 따라 신무문, 동십자각을 지나 창덕궁과 혜화동을 거쳐 성북천으로 향하였다. 경복궁은 스머프 차가 1972년 10월부터 1974년 2월 초까지 소대장으로 근무한 곳으로 언제나 정감이 가는 궁궐이다.
청와대 본관 정문 앞인 신무문(神武門)은 위병장교로 근무할 당시 보초와 함께 경계를 담당했던 곳으로, 46년 전 소대장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혈기왕성한 젊은 시절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1972년 유신헌법 제정으로 국회가 해산되어 국회 의사당 파견대장으로 2개월간 근무할 때였다. 비록 중위였지만 권한은 막강하였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파견대장 허락없이는 국회 의사당으로 한 발짝 들어올 수 없었다. 신무문에서 경복궁 돌담 코너에 이를 즈음에 콘닥(종국)은 페달링을 멈추고 춘생문(春生門)과 고종의 아관파천에 관련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고종은 민비가 처참하게 시해된 뒤 궁중에 연금되어 죽음의 공포에 시달렸다. 신변에 위협을 느낀 고종은 언더우드를 비롯해 선교사들에게 도움을 청하였다. 1895년 10월12일 친위대와 함께 춘생문(경복궁 북동문)을 통해 미국대사관으로 피신하려고 하였으나 친위대 2 대대장인 이진호의 밀고로 실패하였다. 그러나 4개월 후인 1896년 2월11일 고종은 변복을하고 신무문을 통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는데 성공하였다. 춘생문은 1930년 일제가 철거하였다. 경복궁은 왕조의 큰 복(福)을 빈다는 뜻이 담겨져 있다. 조선 5대 궁궐 중 북쪽에 자리하고 있어 북궐(北闕)로도 불린다.
임진왜란으로 인해 건물이 불탄 후 270여 년간 폐허 상태로 있다가 1865년(고종 2) 대규모 공사가 시작되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330개의 건물 중 36개의 건물만 남게 되었지만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궁궐의 위엄과 당당함은 지금도 느낄 수 있다. 창덕궁은 조선 궁궐 중 가장 오랜기간 동안 임금들이 거쳐했던 궁궐이다. 현재 남아있는 조선의 궁궐 중 그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창덕궁은 자연과의 조화로운 배치와 한국의 정서가 담겨있다는 점에서 1997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원남동에 이르면 서울대학교 치의과 대학이 있으며, 혜화동 로터리에는 동성중학교가 있다. 바이크 손대장이 학문을 닦었던 추억어린 곳으로 감회가 깊은 학교다. 한성대 입구역에서 성북천으로 진입하고 자전거길을 따라 내려가면 청계천을 만난다. 청계천에서 정릉천으로 진입하기 전에 청계천 판자집 체험관을 둘러보았다. 청계천 판자촌은 1950-1960년대 민초들이 가난하게 살았던 삶의 애환이 녹아있는 곳이다. 그 당시 판자집 모형을 지어놓고 내부에는 추억의 교실, 구멍가게, 공부방, 다방, 학창시절의 추억 등 테마별로 꾸며 놓아 옛 시절의 향수심을 떠올리게 하였다.
청계천에서 정릉천으로 접어들면 제기동역을 지나 홍릉 수목원과 세종대왕 기념관에 이르게 된다. 눈도장만 찍고 유턴하여 정릉천으로 재진입하였다. 정릉천에서 kIST 정문과 상월곡역을 지나면 석계역 음식문화거리가 나온다. 여행의 즐거움은 언제나 입을 즐겁게 하는데 있다. 닭갈비 곱창 전문점에서 닭갈비에 소주와 막걸리를 반주삼아 맛있게 식사하면서 바이콜릭스 역사에 대한 이야기로 파안대소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석계역에서 월릉교를 지나 묵동천(화랑천)을 따라가면 육군사관학교 정문과 화랑대역이 나온다. 바이콜릭스 회원 8명중 4명이 육군사관학교 출신이다.
육군사관학교는 1967년 입교시부터 1971년 3월 소위로 임관하기 전까지 학문과 군사훈련으로 젊음을 불태웠던 추억과 낭만이 깃든 정든 모교다. 화랑대 정문 옆에는 육사 생도들이 외출 외박 때 이용했던 화랑대역이 있다. 그러나 2010년 경춘선 복철 전철화 사업 개통으로 기차가 운행되지 않는 폐역이지만 한 때는 춘천으로 가는 작은 간이역으로 옛 모습 그대로였다.
지금은 화랑대역사관과 철도공원으로 새롭게 변신하였다. 육군사관학교를 지나면 중종왕비 문정왕후릉, 태릉 선수촌, 명종 인순왕후릉을 차례로 거쳐가게 된다.
조선 제11대 중종의 제2계비인 문정왕후(1501-1565)는 명종의 어머니로 중종과 인종,명종의 3대에 걸쳐 왕비와 대비로 있으면서 정권에 개입하는 등 큰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조선을 회오리바람 속으로 몰아넣은 인물이다. 문정왕후는 죽어서 중종의 능(정릉,강남구 삼성동)에 묻히고 싶었지만 정릉은 지대가 낮아 자주 침수되어 할수없이 홀로 태릉에 묻히게 되었다. 명종 인순왕후릉은 조선 제13대 명종(1532-1575)과 인순왕후(1532-1575) 심씨의 능이다. 명종이 어린나이(12세)에 왕위에 오르자 문정왕후가 수렴청정하였으며, 문정왕후의 외척인 윤원형 일파가 정사를 좌지우지 하였다.
왕권은 무너지고 민초들의 삶은 피폐헤져 도둑들이 들끓고 거리에서 굶어 죽어가는 백성들이 많았다. 이때 임꺽정이 등장하였다. 삼육신학대학 캠퍼스를 통과하여 불암동 등산로 입구를 지나면 남양주시 별내면 무궁화 공원에 닿는다. 무궁화 공원의 아기자기한 숲길의 낙엽을 밟으면서 이동하는 재미가 낭만적이었다. 무궁화공원 일대에 구정 남재(南在) 묘가 있다. 남재는 1371년(공민왕 20)에 진사시에 합격해 관직에 올랐으며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시 도움을 준 인물로 성품이 활달하고 도량이 넓었으며, 문장이 뛰어나고 산술에도 능통해 남산(南算)이라고 일컬었다.
조선이 개국되자 개국공신 1등으로 오르고 1396년(태조 5) 도병마사가 되어 대마도 정벌에 참여하여 공을 세웠으며, 정안군 방원(芳遠)이 왕위에 오르는데도 큰 공을 세웠다. 이후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 등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1419년(세종 1) 12월14일 세상을 떠났으며 저서로는 구정유고(龜亭遺稿)가 있다. 덕송천 자전거길과 용암천 자전거길을 따라가면 별내역이 나오고 왕숙천에 이르게 된다. 왕숙천 둔치공원에서 잠시 숨을 고른 다음 구리 시민한강공원에서 마지막으로 휴식을하고 잠실철교 북단에 오후 4시반 이후에 도착하였다.
이번 코스는 바이콜릭스가 처음으로 라이딩한 코스로 모교가 포함되어 있어 감회가 깊었다. 오늘 라이딩은 시간에 구애없이 늘쩡늘쩡거리면서 늦 가을의 정취를 감상하면서 즐긴 뜻깊은 하루였으며, 역사 문화 유적지와 하천을 따라 이동하는 코스로 지루하지 않고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콘닥(종국)은 경복궁내 역사 문화대학교에서 배운 풍부한 전문지식으로 여행시마다 역사 문화유적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어 새롭게 일깨워주었다. 오늘 날씨는 하루종일 잿빛 구름으로 가득하였지만 바이콜릭스 회원 모두가 행복한 얼굴이었다. 바이콜릭스(Bikeholics) 브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