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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페.톡Cell)회원에게 함께 있을 지어다💖
甲辰年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德을 선포하는 해(前⇨❀) † 使徒바울 ☆ (獄中書信)
5월 *가정의 달* ☞가족과 친족 전도로 아름다운 가정의 달☜
☆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골3:20)
엡6:1-9절) 관계(關係)의 회복(回復)
예수님은 산상설교(山上說敎) 중에서 마7:16절)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고 하셨습니다. 과일 나무가 아닌, 보통 나무에서 과일이 맺히는 것은 불가능(不可能)한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기독교(基督敎) 신앙(信仰)을 가지게 되었을 때, 가시나무와 같던 우리 자신(自身)이 포도나무로 변(變)했고, 엉겅퀴와 같은 우리가 무화과나무로 변(變)한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世上)사람들은 다른데서 열매를 한 두 개 빌려서 자기 나무에 달아 놓고*열매를 맺었다'고 자랑하고, 또한 사람들은 그것을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자신(自身)을 우선 철저히 변화(變化)시켜, 좋은 열매 맺는 나무가 되게 하십니다. 물론 겉으로 보기에는 아직 가시나무와 엉겅퀴 같지만, 속에서 흐르는 진액(津液)은 포도의 잔액(津液)과 사과나무의 진액(津液)이 흐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 열매를 맺는 나무가 되었을 때, 우리는 도대체 무슨 열매를 맺게 될까? 그것은 곧 *사랑의 열매요, 겸손(謙遜)의 열매'입니다.
세상(世上)사람들은 권력(權力)을 갖고, 돈을 많이 모으면, 축복(祝福)받은 것이라고 자랑하지만, 그것은 진정한 열매가 아닙니다. 겉으로 보기에 멋없게 보이는 *개살구'에 불과합니다.
성경(聖經)에서 참 행복(幸福)이란? 부부(夫婦)간의 진정한 사랑과 신뢰회복(信賴回復)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열매는 사랑의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사춘기(思春期)나 청년기(靑年期)가 되면, 이성(異性)을 사모(思慕)하고 사랑하게 됩니다. 어떤 경우에는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미칠(狂)것 같고, 죽을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이런 사랑의 열병(熱病)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이런 사랑의 열병(熱病)마저 없으면, 인간은 죽을 때까지 자기(自己)밖에 모르는 철저한 이기적(利己的)인 짐승으로 살다가 죽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젊었을 때, 사랑의 열병(熱病)을 앓으면서 비로소 자신(自身)의 껍질을 깨고, 다른 사람을 자신(自身)의 삶속에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그러나 젊었을 때의 사랑은 정욕적(情慾的)인 사랑이요, 이기적(利己的)인 사랑입니다. 즉 상대방(相對方)을 차지하고, 빼앗으려는 욕심(慾心)에서 나온 사랑입니다. 이런 사랑의 열정(情慾)은 시간이 지난 후에는 점점 식어지고, 다시 자기중심적(自己中心的)이 되고, 다른 사람을 정욕적(情慾的)인 사랑을 찾아 불륜(不倫)을 저지르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크리스천이 되었을 때, 이런 정욕적(情慾的)이며, 이기적(利己的)인 사랑에 옷을 벗고, 진정(眞正)한 사랑에 헌신(獻身)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사랑의 열정(熱情)이 지나간 후, 자기중심적(自己中心的)이 되고, 정욕적(情慾的)인 사랑을 하려는 것에 제동(制動)을 걸고, 끝까지 이 사랑에 헌신(獻身)하는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남편(男便)이나 아내의 부족한 점을 채워 주고, 자신(自身)을 온전히 실현(實現)할 수 있도록 도와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때 사람은 진정(眞正)한 꿈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즉 아내는 남편(男便)을 자신(自身)의 머리로 받아들여, 순종(順從)과 지혜(智惠)로 남편(男便)이 아름다운 사람으로 성공(成功)하도록 섬겨주는 것입니다.
또 남편(男便)은 아내를 자신(自身)의 몸으로 받아들여 물로 씻고, 말씀으로 깨끗하게 해서 가장 아름답고, 존귀(尊貴)한 귀부인(貴夫人)의 모습이 이루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비싼 옷과 보석(寶石)으로 꾸며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세상적(世上的) 으로 성공(成功)한 사람의 부인(夫人)도 아닙니다. 정말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안과 밖이 모두 온전한 귀부인(貴夫人)이 되도록 합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에서 살펴보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열매는 이런 부부(夫婦)사이의 사랑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열매는 사회(社會)속으로 계속 확대되어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몇 가지 모델(model)을 우리에게 제시(提示)해 주고 있습니다.
①신앙 안에서 *아버지와의 관계를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수직적관계 회복(回復)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를 만난 후, *이전(以前) 육신(肉身)의 아버지와의 관계(關係)를 회복(回復)할 필요'가 있습니다.
②자식과의 *새로운 관계를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사회(社會)속으로 들어가는 기초(基礎)'입니다.
③세상(世上)속에서 *상전과의 관계를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④자기 아래 *부하들과의 관계를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Ⅰ.아버지와의 관계 회복(상)
우리에게 아버지는 참으로 어려운 분입니다. 물론 아버지에게 사랑을 받고. 경제적(經濟的)도움을 받아 이렇게 성장(成長)한 것은 틀림이 없지만, 때로는 아버지는 *무서웠던 분'이고, 때로는 *우리 마음에 상처(傷處)를 준 분'이기도 합니다.
특히 예수를 믿지 않고, *신앙(信仰)을 반대(反對)한 아버지의 경우는 더욱 어려운 분'입니다. 한때는 *아버지*라는 단어(單語)가 대단히 비난(非難)을 받던 단어(單語)였습니다. 즉 집에 매일 늦게 들어오고, 그나마 술에 취해 들어오고, 자식(子息)들의 고이자는 모습을 보지도 못하고, *새벽같이 출근(出勤)하는 사람이 아버지'였습니다.
그러나 경제(經濟)가 어려워지면서 *실직(失職)하거나, 명예퇴직(名譽退職)을 하여 더욱 불쌍해진 아버지'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요즘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 중,*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라는 노래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6:1-2절)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새 사람이 된 후, *아버지를 새로 발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네 부모(父母)를 공경(恭敬)하라'고 할 때,*공경(恭敬)한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 그것은 부모(父母)의 말이라면, *무엇이든지 무조건 복종(服從)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여기서 *공경하라.'는 뜻은 그분의 존재(存在)를 인정(認定)하고, 감사(感謝)하며, 진정(眞正)으로 존경(尊敬)하는 위치(位置)에 두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부모(父母)를 공경(恭敬)한다.'고 할 때, 그 안에는 중요한 의미(意味)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世上)에 태어나 오늘까지 이렇게 살아 있게 된 것은 오직 부모(父母)의 도움이 절대적(絶對的)으로 필요했다는 것을 인정(認定)해야 합니다. 우리는 부모(父母)의 도움 없이 아무도 이 세상(世上)에 태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창세전(創世前)에 우리를 계획(計畫)하셨고, 이 세상(世上)에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세상(世上)에 태어나는 데는 부모(父母)가 하나님을 대신(代身)하여 그 역할(役割)을 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어렸을 때, 부모(父母)는 거의 하나님처럼 우리를 돌보아 주셨습니다. 즉 우리가 어렸을 때, 부모(父母)의 헌신적(獻身的)인 도움 없이는 생존(生存)할 수 없는 연약(軟弱)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렸을 때는 아버지를 보면, 무섭고, 그의 권위(權威)가 절대적(絶對的)인 것을 보게 됩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연세(年歲)가 들면서 그의 권위(權威)가 차차 없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나중에 많이 늙었을 때는 오히려 자녀(子女)가 돌보아 주어야 할 정도로 허약(虛弱)해 집니다.
그 이유는 부모(父母)속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榮光)은 영구적(永久的)이지 않기 때문입니다.마치 모세의 얼굴에 있던 하나님의 영광(榮光)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희미(稀微)해졌던 것처럼, 부모(父母)에게 있던 하나님의 영광(榮光)도 시간이 지나면, 점점 희미(稀微)해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때, 아버지에게 절대적(絶對的)인 하나님의 영광(榮光)이 있었던 것은 틀림이 없고, 그의 사랑과 헌신(獻身)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살아남게 된 것을 감사(感謝)해야 합니다.
우리는 부모(父母)의 도움을 받게 된 것, 하나님께도 감사(感謝)하고, 그렇게 순종(順從)한 부모(父母)에게도 감사(感謝)해야 합니다. 우리 속담(俗談)에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것도 모를 때는 아버지를 경쟁(競爭)의 대상(相對)이나, 대결(對決)의 상대(相對)로 생각(生角)할 때가 많았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언제나 나를 자신(自身)의 어린 아들로 생각(生角)하고, 명령(命令)만 하지, 한 인격체(人格體)로 생각(生角)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 아버지에게 반발(反撥)하고, 아버지와 대결(對決)해서 이기는 것이 나 자신(自身)의 정체성(正體性)을 찾는 것이라고 착각(錯覺)했습니다. 또 어렸을 때, 아버지에 대한 반발심(反撥心)으로 가출(家出)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린 자식(子息)이 집을 나가 봤자, 죽도록 굶고, 고생(苦生)스러우니까 결국은 자기(自己) 집으로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심지어 예수님도 육신(肉身)의 아버지와 갈등(葛藤)이 있었습니다. 그가 12살 때, 성전(聖殿)에 올라갔다가 집에 가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일종(一種)의 가출(家出)인 셈입니다. 집에서는 한 바탕 소동(騷動)이 일어났고, 예수님은 어머니 마리아에게 야단을 맞고 난 후에 갈릴리로 따라가 말없이 순종(順從)하셨습니다.
예수님 생각(生角)으로는 성전(聖殿)에서 성경(聖經) 토론(討論)하는 것이 곧 *하늘에 있는 아버지 뜻에 맞는다'고 생각(生角)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겸손(謙遜)히 육신(肉身)의 아버지께 순종(順從)하여 집에가셔서 목수(木手)일을 열심히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늘 아버지를 만난 후, 어떻습니까? 육신(肉身)의 아버지께 받지 못했던 좋은 것들을 하늘 아버지가 채워주심을 알게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은혜(恩惠)를 받고 난 후, 더 여유(餘裕)가 생겼고, 더욱 겸손(謙遜)하게 되어 육신(肉身)의 아버지를 더 존경(尊敬)하고, 불쌍히 여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도 나름대로 아버지의 노릇하느라 고생(苦生)을 하셨습니다. 그것을 이제 우리가 알아주고, 위로(慰勞)해 줄 때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우리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섬기는 자이므로 세상(世上)의 인간관계(人間關係)를 무시(無視)하고, 부모(父母)나 직장(直腸) 상관(上官)들에게 불순종(不順從)하기 쉽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신앙(信仰)이 좋은 것으로 착각(錯覺)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신앙(信仰)은 우리를 광신자(狂信者)로 만들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자신(自身)의 종교적(宗敎的) 열정(熱情)에 사로잡히는 것을 *믿음이 좋은 것이라'고 감탄(感歎)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종교적(宗敎的) 열정(熱情)을 *참 신앙(信仰)'이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는 사람에게 순종(順從)함으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순종(順從) 하도록 하셨습니다. 이것이 곧 기독교(基督敎)의 묘미(妙味)입니다.
우리가 참 신앙(信仰)을 가지게 되면, 더욱 아름다운 인간(人間)의 모습을 갖추게 됩니다. 즉 우리가 신앙(信仰)이 좋아진다는 것은 눈물이 있고, 감정(感情)에 있고, 정상적(正常的)인 분별력(分別力)을 갖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이 부모(父母)를 부모(父母)로 알고, 공경(恭敬)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입니다. 어떤 사람은 신앙(信仰)이 깊어지는 것을 신비적(神秘的) 체험(體驗)에 빠지는 것으로 생각(生角)합니다. 즉 사람들은 황홀경(怳惚境)에 빠지는 것을 깊은 신앙(信仰)의 세계(世界)라고 착각(錯覺)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信仰)이 깊어진다는 것은 정상적(正常的)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즉 세상적(世上的)인 생활에서 약속(約束)들을 잘 지키고, 더욱 아름다운 인격(人格)을 갖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영성(靈性)이란 부모(父母)를 무시(無視)하고, 교만(驕慢)한 영성 (靈性)이 아니라, 부모(父母)를 마음속 깊이 존경(尊敬)하는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더욱 어른 역할(役割)이 어렵다는 것을 이해(利害)하게 됩니다. 즉 어른이 된 후에도 더욱 어른의 필요를 느끼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다 죄인(罪人)이요, 아직도 마음속에 죄성(罪性)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나를 가르쳐 주고, 의논(議論)할 대상(對象)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 (感謝)한지 모릅니다. 사람이 어른이 되고 나면, 이제는 더 이상 야단을 치는 사람도 없고, 자신(自身)의 문제를 가지고, 상담(相談)할 대상(對象)도 없습니다.
모든 것들을 자신(自身)이 결정(決定)해야 하고, 자신(自身)이 책임(責任)을 져야합니다.
또 주위 사람들이 모두 이해관계(利害關係)에 얽히고 설킨 사람들이기 때문에 쉽게 마음을 터놓을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나를 무조건 사랑하고, 변(變)함 없는 애정(愛情)으로 바라보시는 분이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우리는 마음에 큰 위안(慰安)을 얻게 됩니다.
오늘 성경(聖經)은 우리에게 6:1절)...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부모(父母)의 말씀이 절대적(絶對的)인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즉 부모(父母)가 하나님을 잘 대변(代辯)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으므로 우리는 그것을 잘 분별(分別)해야 합니다.
어렸을 때, 부모(父母)의 말씀은 절대적(絶對的)인 하나님의 말씀일 때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서 *집에 일찍 들어오라'는 말씀,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또 *나쁜 친구들과 사귀지 말라'는 것도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성인(姓人)이 되면서 특히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데, 점점 차이가 있습니다. 즉 어떤 부모(父母)는 자식(子息)이 선교사(宣敎師)나, 목회(牧會)의 길로 가는 것을 절대적(絶對的)으로 반대(反對)하기도 합니다. 또 신앙(信仰)을 가진 자와 결혼(結婚)하는 것을 끝까지 반대(反對)할 때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볼 순 없습니다. 특히 부모(父母)는 우리가 이 세상 (世上)에서 성공(成功)하고, 잘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는 고난(苦難)의 프로그램(program)에 집어 넣으셔서 우리를 훈련(訓鍊)시키십니다.
이때 우리는 육신(肉身) 부모(父母)의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하고, 불효자식(不孝子息)이 되는데, 어쩔 수 없습니다. 많은 경우 자녀(子女)들은 권위적(權威的)인 아버지 때문에 상처(傷處)를 받아 결혼생활(結婚生活)과 사회생활(社會生活)을 하는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 이유는 아버지도 사람이므로 완전(完全)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술 마시는 아버지 때문에 아버지에 대해 마음을 닫고, 살아가다가 나중에 은혜(恩惠)를 받고 난후에 아버지를 찾아가 화해(和解)한다고 합니다.
아버지와 이런 화해(和解)가 필요한 이유는 자신(自身)을 위해서입니다. 아버지를 만나서
*아버지 사랑해요'라고 말할 때, 자기(自己) 자신(自身)의 상처(傷處)가 치료(治療)되는 것입니다. 자라면서 아버지로부터 상처(傷處)받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시27:10절)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그 이유는 육신(肉身)의 아버지는 아무리 잘해 주어도 하나님 아버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즉 육신(肉身)의 아버지가 불완전(不安全)하기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를 만나야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모든 상처(傷處)가 치료(治療)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모(父母)를 공경(恭敬)하는 자에게 놀라운 약속(約束)을 주셨습니다.
6:2-3절)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여기서 약속(約束)이 있는 첫 계명(誡命)이란 십계명(誡命) 중, 제 5계명(誡命)을 말합니다.
출20:12절)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고 약속(約束)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네게 줄 땅이란? *가나안 땅'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하나님의 축복(祝福)을 누리며 사느냐?는 곧 그들이 *부모(父母)를 공경(恭敬)하느냐? 공경(恭敬)하지 않느냐?* 하는 이 계명(誡命)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약속(約束)이 의미(意味)하는 것은 무엇일까?
부모(父母)의 말씀을 거역(拒逆)하지 않고, 잘 공경(恭敬)하여 살면, 오래오래 복을 받으면서 잘 산다는 뜻일까?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부모(父母)를 공경(恭敬)할 수 있을 때, 진정으로 겸손(謙遜)의 미덕(美德)을 가진 것이요, 자신(自身)과 화해(和解)한 것입니다.
세상(世上) 사람들은 이런 겸손(謙遜)한 사람을 신뢰(信賴)합니다. 요즘 사람들은 돈을 최고로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돈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믿음입니다. 즉 *다른 사람이 나를 믿어준다는 것'은 엄청난 재산(財産)입니다.
즉 다른 사람이 나를 볼 때 *저 사람은 괴팍(乖愎)한 사람이요. 언젠가 배반(排班)할 사람이다'라고 한다면, 아마 끝까지 신뢰(信賴)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부모(父母)를 공경(恭敬)하고, 자기(自己)안에 문제가 없는 사람은 신뢰(信賴)가 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世上)에서는 이런 사람을 좋아하고, 하나님도 좋아하십니다. 즉 하나님 앞에서는 이런 사람이 보배(保陪)중의 보배(保陪)입니다. 이런 사람이 모든 복(福)을 다 받게 되어 있습니다.아-멘 찬송가 577장 *낳으시고 길러주신
매일 새벽(夏)4-5시 ✫ 주님께 도움의기도하는 습관. ✫ 저녁엔 주님께 범사에 감사하는 습관(살전517)
5월/페(그물의 비유를 정회원과 비회원 chart로 구별하여 정리하는 달)
아-멘, 댓글은 은혜 받은 성도의 기본, ⟺ 감사와 仲保祈禱는 정회원 될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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