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대지진 이후 일본인들 사이에서 마음을 풍요롭게 하자는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일본 경제지 <주간다이아몬드>는 이런 흐름을 반영해 일본에서는 유서처럼 적어 내려가는 책 ‘엔딩 노트’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고 전했다. 이른바 ‘엔딩 붐’이 일고 있다.
2011년 12월 31일에 일본에서는 특이한 사건이 벌어졌다. 1995년 지하철 독가스 테러 사건을 일으킨 옴진리교 교단 간부 ‘히라타 마코토(46)’가 자수를 했다. 그는 자수하기 위해 몇 번씩이나 경찰에 거부당하는 헤프닝까지 겪으면서 자수를 했다. 변호인 측은 “사람들이 지진으로 죽는 것을 보고 생각이 바뀌어 자기 죄를 뉘우친 것”이라고 밝혔다.
히라타의 심경에만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대지진과 쓰나미를 겪고 달라진 이들이 많아졌다. 이 때문에 생긴 신종 트렌드 중 하나가 ‘엔딩 노트’다.
버킷리스트와 비슷한 엔딩 노트에 자신이 먹고싶었던 음식, 해보고 싶은 일, 가보고 싶은 여행지를 모두 기록한다. 남은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 자신의 생애에서 즐거웠던 추억을 적기도 하고, 자신이 죽은 뒤 장례식에 부르고 싶은 사람과 연락처 리스트도 써둔다. 살면서 한번쯤 인생을 정리해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깨닫게 하는 지혜를 갖추자는 뜻이 담겨있다.
이 노트를 쓰는 법을 알려주는 강좌가 문화센터나 복지센터에 생겼고, 상속 절차와 이행을 돕는 세미나가 열리기도 한다. 70~80대 노인이 많이 수강했지만, 요즘에는 50대가 강의를 듣는 경우가 늘었다.
그런가하면 나이든 노인들이 편안한 온천 여행지에서 유서나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는 여행상품인 ‘유서투어’, ‘유언투어’도 인기다. 1박2일에서 2박3일간의 투어 기간 동안 세무사, 법무사, 작가, 심리상담사 같은 전문가가 동행한다. 유서 내용의 법률상담과 편지를 다듬어 주기도 하고, 사진사가 영정사진을 찍어 주기도 한다.
죽은 이의 집을 찾아가 유품을 정리해주는 유품정리사라는 이색 직업도 늘어나는 추세다. 유품정리사는 민간자격증이지만 정년 후 제2의 직업을 찾는 60대들에게 인기다. 이들이 하는 일은 고인이 남긴 유품에서 쓰레기와 추억이 담긴 물건을 구분하는 일이다. 고인이 생전에 애착을 갖고 모아놓은 것은 버리지 않고, 가족이나 친구에게 나누어 주거나 인터넷에 내놓아 팔기도 한다.
민간신앙에 대한 관심도 커져서 액을 쫓고 행운을 준다고 믿는 순무를 지진 피해지역으로 보내는 시민운동도 일고 있다. 2월에 싹을 틔워 피해지역 주민들이 노란 순무꽃을 볼 수 있게 하자는 취지다.
이런 엔딩 붐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사회 분위기가 지나치게 어두워진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일본 심리학자들은 꼭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며, 죽음을 강하게 의식하면 앞으로 남은 생을 더 열심히 살 수 있는 순기능이 있다고 설명했다.
<글: 강은실/(whoimarticle@naver.com)/인터넷신문 후아이엠(whoim.kr)> 2012년02월02일 12시5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