長江(양자강)은 흘러가도 詩는 남아

장강 삼협
옛날 중국에서는 江이란 長江(양자강)만을 일컫는 고유명사였고, 河는 黃河를 지칭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쪼맨한(?) 강들은 그냥 **水를 붙여서 불렀다네요^^. 長江은 중국 내륙 깊숙한 칭하이(靑海)에서 발원하여 스촨(四川)성을 거쳐 충칭(重慶), 우한(武漢), 난징(南京) 등 대도시를 지나 상해로 이어지는 6천 킬로미터가 넘는 말 그대로 긴 강(長江)입니다.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黃河를 읊은 시는 그리 많지 않지만 長江과 그 주변을 노래한 시는 필자가 아는 것만해도 수십 수나 됩니다. 이것은 장강 주변에 명승지가 많은 것도 이유겠지만, 강 자체의 풍광이 뛰어나고 더욱이 黃河에 비해 남쪽에 위치하여 물이 차지않기에 사람들의 접근이 용이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요.
특히 李白과 杜甫가 사랑한 江
이백(李白, 701~762)과 두보(杜甫, 712~770)의 시에는 長江과 주변 명승지에서 지은 주옥같은 작품이 많아 당대는 물론 후세에도 각별한 사랑을 받고 있읍니다. 시가 쓰여진 장소가 확실한 것도 있지만, 어떤 것은 시인들의 행적으로 부터 추정한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다만, 옛시 특히 당나라 시절에 쓰여진 시의 경우 내용 중에 江자가 들어갔다 하면 대부분 長江을 지칭한다 해도 그다지 틀리지 않습니다. 그럼 長江의 상류로 부터 출발하여 구비마다 남겨진 시들 중 몇수를 골라 소개해 볼까 합니다. 애독자님들(?)의 편의를 위해 여기 한글 중국 지도와 長江 주변도를 붙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여기 소개한 시와 내용 일부는 일본 NHK가 감수한 '漢詩の繪本'에서 발췌했음을 밝혀 둡니다.).
長江의 상류 四川省에서 삼협(三峽)까지
長江의 최초 발원지 부근에서 쓴시가 있는지는 몰라도, 두보가 지은 '객지에서 밤을 지새며(旅夜書懷)'가 四川성 서북 깊숙한 강가에서 쓰여진 것으로 알려져 가장 상류에 해당된다 할 것입니다.
細草微風岸(세초미풍안) 가는 풀들이 미풍에 날리는 강 언덕
危檣獨夜舟(위장독야주) 높다란 돗달린 배 혼자 밤을 지새운다
星垂平野闊(성수평야활) 별은 드넓은 벌판에 드리우고
月湧大江流(월용대강류) 달은 출렁이며 큰 강(長江)물에 흘러간다
(일부)
두보는 안록산의 난을 피해 가족들과 함께 전란의 피해가 적은 사천성 청두(成都) 부근 長江 지류로 피난해 살았읍니다. 이때쯤 지은 시로 알려진 '강마을(江村)'은 그래도 처자식과 평화롭게 살고 있는 모습이네요.
淸江一曲抱村流(청강일곡포촌유) 맑은 강물 한굽이 마을을 감싸 흐르는
長夏江村事事幽(장하강촌사사유) 강마을의 긴 여름 일마다 한가롭다
自去自來堂上燕(자거자래당상연) 제비는 지붕위를 마음대로 날아다니고
相親相近水中鷗(상친상근수중구) 갈메기는 물가에서 서로 가까이 지낸다
老妻畵紙爲碁局(노처화지위기국) 늙은 아내는 종이에 바둑판을 그리고
稚子敲針作釣鉤(치자고침작조구) 어린 아들은 바늘을 두들겨 낚시를 만드네
多病所須唯藥物(다병소수유약물) 병이 많으니 필요한 건 오직 약이라
微軀此外更何求(미구차외갱하구) 미구의 이 몸 이것 외에 무엇을 바랄까
그리고 봄비의 고마움을 노래한 두보의 '春夜喜雨'도 청두 피난살이 시절 지은 시라네요.
好雨知時節(호우지시절) 기특한 비 시절을 알아
當春乃發生(당춘내발생) 봄을 맞아 마침내 내리누나
随風潜入夜(수풍잠입야) 바람 따라 밤에 몰래
潤物細無聲(윤물세무성) 가늘게 소리 없이 만물을 적시네
그러나 장안으로 돌아가고 싶은 두보의 간절한 마음은 어쩔 수가 없네요.
江碧鳥逾白(강벽조유백) 강이 파랗니 새는 더욱 희고
山靑花欲然(산청화욕연) 산이 푸르니 꽃이 불타는 듯 하다
今春看又過(금춘간우과) 올 봄도 건듯 보고 그냥 지나가는가
何日是歸年(하일시귀년) 그 어느 날이 내 돌아갈 해인고
이백(李白은 고향이 四川의 오지로 2십대 중반까지 그곳에서 살았는데, 그가 자라고 여행한 곳이 대부분 長江의 상류 지역과 그 지류(支流) 쪽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아미산(峨眉山)은 長江 지류인 평강강(平羌江) 가에 위치한 명산으로 청두에서도 그리 멀지않습니다. 그의 '아미산 달노래(峨眉山月歌)'
峨眉山月半輪秋(아미산월반윤추) 아미산(峨眉山)에 반달이 뜬 가을
影入平羌江水流(영입평강강수류) 달그림자 평강강(平羌江)의 물 따라 흘러간다.
夜發淸溪向三峽*(야발청계향삼협) 밤중에 청계(淸溪)를 떠나 삼협(三峽)으로 향하다,
思君不見下渝州(사군불견하유주) 그리운 임 보지 못하고 유주(渝州=重慶)에서 내린다
*삼협(三峽)은 양자강 상류 사천성의 백제성(白帝城)에서 시작하여 湖北성의 의창(宜昌)의 남진관(南津關) 사이를 통과하는
대협곡의 총칭으로, 구당협(瞿塘峡), 무협(巫峡), 서릉협(西陵峡)을 포함하여 귀협(歸峽), 우동협(右洞峽), 명월협(明月峽),
온탕협(溫湯峽) 등 오백리에 달하는 협곡으로 중국에서도 손꼽히는 절경.
백제성(白帝城)~악양루(岳陽樓)~황학루(黃鶴樓)~여산(廬山)~
윗 시를 쓴 시기가 2십대 젊은 시절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상당한 역동감이 느껴지네요. 그러나 이백이 중년 이후에 지은 시로 長江의 절경 중의 절경이라는 삼협(三峽) 상류에 있는 백제성을 떠나며 지은 시(早發白帝城)는 거의 숨을 돌릴 수 없을 정도의 긴박감마저 듭니다.
早辭白帝*彩雲間(조사백제채운간) 아침 일찍 채색 구름 속 백제성을 떠나
千里江陵一日還(천라강릉일일환) 천리 강릉 가는 길을 하루에 돌아 간다네
兩岸猿聲啼不住(양안원성제부주) 강 양편 낭떨어지 원숭이 울음소리 그치지 않는데
輕舟已過萬重山(경주이과만중산) 가벼운 배는 이미 만겹 산들을 지나왔네
*백제성(白帝城)은 삼국시대 촉(蜀)의 근거지 중 하나로 유비가 생을 마감한 곳으로 유명함
황학루(黃鶴樓), 등왕각(滕王閣)과 함께 3대 명루(名樓)라는 악양루에 올라 지은 두보의 시(登岳陽樓),
今上岳陽樓*(금상악양루) 오늘 악양루에 오르니
乾坤日夜浮 (건곤일야부) 하늘과 땅이 밤낮으로 떠 있고
老病有孤舟 (노병유고주) 늙고 병든 이 몸 외로운 배처럼
憑軒涕泗流 (빙헌체사류) 난간에 기대어 눈물을 짓노라
(일부)
*악양루(岳陽樓)는 후난(湖南)성과 후베이(湖北)성 사이에 위치한 동정호(洞庭湖)의 북동쪽 호반에 악양이라는 고을이 있고
그 고을을 에워싼 성의 서문 위에 악양루가 있는데 풍광이 수려하기로 정평이 나 있음
이백이 황학루에 올라 그 벅찬 감동을 시로 읊고자 했는데 시상이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답니다. 그런데 우연히 옆을 보니 최호(崔顥, 704~754)의 시가 쓰여 있는데, 이보다 더 잘 수는 없다하여 황학루를 시제로 시를 짓지 않겠다고 한 일화가 유명합니다. 최호의 '黃鶴樓' 라는 제하의 시,
昔人已乘黃鶴去 (석인이승황학거) 옛 선인 이미 황학을 타고 떠나고
此地空餘黃鶴樓*(차지공여황학루) 이곳엔 부질없이 황학루만 남았구나
黃鶴一去不復返 (황학일거불부반) 황학은 한번 가고는 돌아오지 않는데
白雲千載空悠悠 (백운천재공유유) 흰 구름만 천년을 유유히 떠도는구나.
(일부)
*황학루(黃鶴樓)는 우한(武漢)에서 가까운 장강 가에 세워진 명루이다. 기록에 의하면 황학루는 삼국시대 오나라의
손권이 유비와의 싸움에 대비해서 223년에 세운 것이라고 한다.원래 3층 건물이었으나 세월의 흐름과 함께 퇴락하여
증개축을 거듭한 것으로 지금의 황학루는 1985년에 재건한 철근 콘크리트의 5층 건물로 높이가 51m나 되며 엘리베이터
가 설치된 최신식 누각이다.
황학루에는 이런 이야기가 전해 온다.오나라 때 신씨라는 사람이 경치 좋은 이곳에 주막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한
노인이 찾아와 술을 청하기에 내다주었더니 여러 잔을 마시고도 돈을 내지 않고 그대로 가버렸다.그 후에도 노인은
돈도 내지 않고 술만 마셨고 후덕한 주모는 노인을 잘 대접해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노인은 귤껍질로 벽에다 학을
그려놓고는‘손뼉을 치며 노래를 부르면 학이 춤을 출 것’이라고 하면서 이것이 그동안의 술값이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그 후로 사람들이 모이는 술자리마다 노래를 부르면 벽에 그려진 학이 나와 춤을 추었고 이러한 소문이 나자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서 술을 마시는 바람에 주인은 큰 부자가 되었다. 그런데, 10년 후에 다시 나타난 노인은 술을
대접하려 하자 필요 없다면서 자기가 그렸던 황학을 타고 피리를 불면서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는데..그후 그 자리에다
정자를 짓고 황학루라 불렀다고 한다.
장강의 하류에 위치한 여산(廬山), 이백은 이렇게 말했답니다 "내가 천하를 유람해 봤지만 아름다움과 웅혼함 그리고 기이함과 특별함이 이곳 만 한 곳이 없다. 천하의 절승이다." 그의 호방한 시 '여산폭포를 바라보며(望廬山瀑布)'
日照香爐生紫煙(일조향로생자연) 향로봉에 햇살비쳐 보라색 안개 피어 나는데
遙看瀑布掛前川(요간폭포괘전천) 멀리서 폭포를 바라보니 냇물이 앞에 걸렸네
飛流直下三千尺(비류직하삼천척) 곧바로 아래로 날아 흘러 삼천자
疑是銀河落九天(의시은하락구천) 하늘에서 은하수가 쏟아지는 것 같구나
*여산(廬山)은 강서성(江西省) 북부에 있는 높이 1600m의 산. 3면이 長江과 포양호에 연해 있는데 경치가 뛰어난 명산이다.
주(周)나라 무왕(武王)때 광속(匡俗)이라는 仙人이 산 깊숙이 조그마한 오두막집을 지어 은거하면서 선도(仙道)를 닦고 있었다.
왕이 소문을 듣고 사람을 보내어 그를 찾아 벼슬을 시키려고 했으나, 그거 거처하던 오두막집만 찾아냈을 뿐 광속의 행방은
묘연했다. 사람들은 광속이 살던 띄풀집이란 뜻으로 산 이름을 광려산(匡廬山)이라고 불렀으나 뒤에 그냥 여산이 되었다.
이 산 곳곳에는 명승과 고적들이 감추어져 있는데 특히 불교에 관련한 유적이 많은 걸로 유명하다. 한여름에도 서늘하여
중국에서 손꼽히는 피서지이기도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늘 구름에 싸여있어 좀처럼 그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여산을 노래한 시인은 이백 이외에도 백거이(白居易) 등 당나라 사람 그리고. 송(宋)나라의 대문호 소동파(蘇東坡)도 여산을
찾아 안타까운 마음을 칠언절구 로 남긴 바 있다
시인들은 이백이나 소동파 처럼 다 관운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당나라 왕창령(王昌齡, 698~756)도 그런 사람 중의 하나로 중앙 정치무대에서 물을 먹고(?) 강령(江寧, 지금의 南京)에 좌천되어 있었읍니다, 이때 낙양(洛陽)으로 길 떠나는 친구 신점(辛漸)을 진강(鎭江) 부용루에서 송별하며 쓴 시(芙蓉樓送辛漸)가 명문입니다 이 시에 나오는 '옥항아리 속의 한조각 어름' 같은 쿨한 우정이 느껴지는지요.
寒雨連江夜入吳 (한우연강야입오) 찬 비 강에 연이어 내리는 밤 오나라 땅에 들어와서
平明送客楚山孤 (평명송객초산고) 새벽녘 그대를 보내니 초산이 홀로 외롭구나
洛陽親友如相問 (낙양친우여상문) 만일 낙양의 친구들이 내 소식을 묻거든
一片氷心在玉壺 (일편빙심재옥호) 한 조각 굳은 마음 옥호에 들어있다 전하시게나
(일부) *平明 : 날이 새는 새벽을 가리킴
*부용루(芙蓉樓)는 원래 이름이 서북루이고 장강 하류에 위치한 장쑤(江蘇)성 진강(鎭江) 서북에 있는데 이곳에 오르면 長江이
두루 잘 보이며 특히 장강의 북쪽 멀리까지도 볼수 있다고 한다.
옛시인의 노래 한자락 붙입니다
첫댓글 장강 구경 잘 했네.
북경대학 국문과로 유학갈 필요없섬다 달그림자거 열씨미 따라가면 어느듯 듕귁교수 빰치는 실력이....
삼협이 그 유명한 삼협댐???
환경 파괴와 개발을 위한 불가피성이라는 항상 똑 같은 논제의 표본이 되었던......
변옹 아니면 변 선상님 말씀대로 훈장님 글만 잘 읽어도 석사 정도 논문은 거뜬히~~~
그 三峽이 맞고요^^ 좌판 걷기 전에 長江변 명승지들을 한번 가봐야 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