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반 채아는 직관적인 언어감각이 있다.
이야기 들을때 가장 좋아하는 친구이기도 하고
가끔 깜짝 놀랄만한 ㅡ 천부적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지혜로운 말들로 담임을 깜짝 놀라게하기도 하고,
아직 저학년이라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들을
쉽게 이해해 말하기도 한다.
그래서 연극을 할 때
상황에 따른 어조로 대사를 잘 읽어
우리 반에서는 '연극 잘 하는 채아'로 불린다.
때로는 아주 빵터지는 이야기도 하는데
기억나는 일화 중 하나를 얘기할까 한다.
1학년 3월달,
아직 글씨를 하나도 모르는 1학년들과
기나긴 아침시를 외워야 했다.
칠판에 써 놓긴 했으나,
까만 것은 칠판이요,
하얀 것은 글자니...
소리를 듣고 외워야하는 지난한 과정을 보내야 했다.
한 달이 넘게 열심히 반복하니
4월 말쯤 되서 아침시를 다 외울 수 있었다.
담임으로서 기쁜 마음에
"(온 몸으로 칠판을 가리며) 이제 칠판 안 보고 외워보자" 했더니
채아가 하는 말,
"(손가락으로 선생님을 가리키며) 으흐흐흐, 선생님 바보. 우리 글자 읽을 줄 모르는데~~ 바보. 헤헤헤 "
그 이야기를 듣고 한참을 웃었다. ㅋㅋ
정말 누가 바보인지.... 이것참...헤헤헤
2.
지난달 말,
날이 좋아 아이들과 면앙정을 갔었다.
언제가도 면앙정은 좋았다.
아이들과 잠시 시간을 보내고
옛날 신령스런 나무 뒷길에서
절 쪽으로 내려가는 길을 잡았다.
면앙정까지는 사람이 많이 다니지만,
그 뒷길로는 사람이 안 다녀서인지
(하긴 동욱이가 삼을 발견할 정도였으니 ^^)
길도 다시 뚫어야 하는 상황인지라
거칠었고, 특히 거미줄이 심각했다.
앞에서 교사가 길을 뚫는다고 뚫어도
앞 쪽 사람들은 힘들어 소리도 지르고 짜증도 내고 그랬는데,
뒷쪽 사람이 뭐 그렇게 짜증내고 궁시렁 거리나며
앞 쪽을 타박했다.
그때 듣고있던 채아가 하는 말...
"앞사람이 힘들면, 뒷사람이 편하다."
난, 무릎을 탁 쳤다.
아!
요즘 말글시간에 속담 수업을 신나게 하고 있어서
아이들이 자주 속담을 즐겨 묻고 답하며 노는데,
채아는 오히려 직관적으로 속담을 만들어 내는 것 아닌가?
그 속담이 그럴듯 했는지
아이들 모두 이구동성으로
그 속담을 외치며 내려왔다.
그치, 앞사람이 힘들면 뒷사람이 편하지.
뒷사람이야 앞사람이 왜 그리 짜증내는지
뭐가 불편한지 알기 어렵지.
그래서 조용히 가라, 화내지 말고 가라 하는 거겠지.
살면서 늘 편한 뒷사람으로 가기보단
먼 어느날, 앞사람으로 걸어보며
누군가 앞서 걸었던 길에 대한 고마움도 느끼며 살았음 좋겠구나..
3.
그리고는 날이 선선해 국수집 가서 국수를 먹는데,
젓가락을 놓다가 갑자기 뜬금없이 채아가 하는 말. . .
"우리 반이 9명이 될 거에요~"
응? 갑자기? 왜...?
좀 뜬금없는 얘기지만,
반 아이들이 좀 더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컸는데...
무언가를 또 본 걸까, 우리 채아가?
채아의 말은 힘이 있으니까
꼭 그랬으면 한다. 꼭!
첫댓글 저학년 속담놀이가 학교 전체에 퍼진 영향이었군요. 그저께 8학년 우리집 학생이 한마디 하더라고요.
"참는 자에게 복이 온다"
뒷사람으로서 앞사람의 힘듦을 더 살피지못한 저에게 채아의 말이 박히네요.
채아 말대로 꼭 이루어지길요!
행운의 숫자 "9"
아홉!
꼭~~!!
친구들이 더 늘어나길…
이 글 덕에
앞사람들을 생각해 보는
요즘이네요.
기록으로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