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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극합니다.
송달지 뭐…… 괜찮습니다.
김의원영구 모신 데가……
송달지 저 방이올씨다.
이중건 그리 급할 게 있습니까. 우리 술이나 한잔 나누시구…… 게 누구 없느냐?
김의원 그럴 시간이 없습니다. 소향을 했으면 좋겠는데요.
송달지 네, 이리 들어오시죠.
김의원 그럼 잠깐…… (2인 옆방으로 들어간다. 우씨 뛰쳐나오며)
우씨 임선생이 왔다지, 응. 관가에서 나왔다지? 어서 우리들 얘기를 좀 그럴 듯하게 해요. 과히 억울치나 않게 돼야 할 게 아니요. 영감두 돌아가신 거루 됐구.
최변호사 쉿.
우씨 에그 참 정신두 없어라. 영감일랑 완전히 돌아가셨으니 남은 식구들일랑 어떻게 굶주리지나 않게 돼야 할 게 아니요?
임표운 마님께선 들어가 계십쇼. 최선생님이 요량해서 잘 처리허실 테이니.
최변호사 쓸데없는 걱정일랑 덮어 놓십쇼, 헛헛. 모두가 수완나름이죠. 천재일우의 기회를 만만히 놓치겠어요. 헛헛.
우씨 그럼 꼭 믿습니다. 술일랑 얼마든지 있으니 애들에게 일르슈. 삐루두 있구 영감 자시는 양국 술두 아직 몇상자 남았다우.
임표운 어서 들어가십쇼, 나오십니다.
우씨 그럼 최선생님, 꼭 믿구 있습니다. (우씨 들어가자 송과 김, 다시 나온다)
최변호사 이리 앉으시죠. 주안상이 나왔으니 목이나 축이시구.
김의원 아니올씨다. 곧, 실례허겠습니다.
최변호사 상가에 오셨다 그냥 가시는 법이 어딨습니까?
김의원 그럼 잔칫집처럼 뛰다니구 놀아야 합니까?
최변호사 헛, 헛, 그런 게 아니와요. 저, 어서 한잔 드십쇼.
김의원 (마지못해 술잔을 든다) 고인의 아들루 해방에 학도지원병 간 이가 있었죠? 아직 소식이 없습니까?
최변호사 그러니 말씀입니다. 영감두 삼대 독자로 눈에 넣어두 아프지 않을 귀여운 자식인데 십년100안이나 화태에서 억류되었다가 오늘이야 돌아온다는 소식이 어제서 왔습죠. 며칠간 더 참으셨던들 이런 변이 없었을지도 모를 게 아닙니까.
이중건 죽는 순간까지 우리 하식이 우리 하식이 허문설랑 차마 눈을 못 감더군요.
김의원 그럼 영감께서는 운명하시는 걸 보셨구먼요?
이중건 그럼요, 내가 눈을 감겼죠. 경동맥으로 면도칼을 싹둑 잘러 버렸는걸.
김의원 경동맥으로 면도칼을 잘러요?
최변호사 헛 헛…… 취하셨군. 면도칼로 경동맥을 끊었지.
이중건 어 참……
최변호사 그래서 여기가 왼통 피바다가 됐더랍니다. 유설랑 고시란히 책탁 위에 놓여 있었죠. 송선생…… 유서는 벌써 전에 꾸며 놓으셨죠, 네?
김의원 유언엔 전 재산을 송선생께 양도하기루 됐다죠?
최변호사 글쎄 이 점이 또 고인이 대범하시구 출중허신 점이죠. 보통 인간같구 볼 지경이면 제 아무리 열 사위 미운데가 없다구한들 아들 딸을 한 구둘 두구 어떻다구 사위에게 전 재산을 양도헌답니까? 들어보십쇼. 돌아가신 어른의 의견이…… 돈이란 건 그걸 잘 이용할 줄 알구 나라에 유익되게 쓸 줄 아는 사람이 가져야 하는 법이다. 저 혼자 잘먹구 흥청거리구 놀라구 돈이 필요한 게 아니라 국가적인 사업을 하자구 귀하기두 하구 필요두 한 것이란 말이죠. 그러니깐 돈이란 벌기보담 쓰기가 힘든 물건이라…… 하식 군으로 볼 지경이면 살아 돌아온다 해도 아직 입에 젖비린내 나는 삼십 살 풋내기야 나라를 위해 적당히 쓸 줄 알리 없을 터이구, 백씨 영감이니 세상 물계를 아실리 없으니 이루 두말할 필요조차 없구 보니, 예라 모르겠다, 그래두 믿을 만한 위인은 문중을 둘러봐두 여기 계신 송선생밖엔 없으려니…… 그래서 유서두 그렇게 쓰셨죠. 그렇습죠? 고인의 유지가…… 송선생……
송달지 네 ― 글쎄 뭐 그렇겠죠.
이중생, 병풍 위로 머리를 내밀고 극이 진행하는 동안에 후수막까지 나와 귀를 기울인다.
최변호사 그나 그뿐이겠습니까. 유언엔 가로되 「황천은 굽어살피소서.」이랬겄다요.「소생은 죽음으로써 전생의 모든 과오를 청산하나이다.」이랬겄다요.「개과 천선은 고 성현도 용납하시는 바이오니 황천은 이중생을 긍휼히 여기사 용서, 용서하옵소서……」 이 정신이야말루 과연 결백하다구 하겠습니까요, 숭고하다구 허겠습니까요.
이중건 내가 초잡은 게 어떻소?
김의원 네? 뭣이라구요. (옆방의 이중생 기절하듯)
최변호사 (당황해서) 영감께서는 사랑으로 나가 계시죠.
이중건 옳지 옳지…… 그런 게 아니었다! 저 저 사랑 손님이 있어서 전 실례합니다. (후원으로 나가면서 독백) 어 참 큰 코 다칠 뻔했군. 기와 집과 삼백만환이 제물에 살짝 녹을 뻔했지. 달지, 아범더러 후원으로 한상 채려 오라구 이르게.
최변호사 영감이 동생 잃은 후론 그만 뒤죽뒤죽입니다.
김의원 그러실 테죠.
최변호사 암 그렇구 말구요. 고인의 생전에는 모리배이니 인색가이니 많은 시비두 받았지만 하나밖에 없는 동기간에는 각별했습죠. 이번 유서에두 당신의 백씨 일을 가장 걱정했습니다. 훌륭허시죠. 보통이 아니에요. 자기가 과오를 범했다구 자결하는 그 용기만 보아두 범인이 아닙네다.
김의원 양심의 가책대루 행동허신 게죠. 그래 송선생의 희망이라구 헐까, 의견이라구 헐까, 어떻습니까?
송달지 의견이요?
최변호사 희망? (이중생 긴장한다)
김의원 (달지에게) 조용히 선생을 찾아 말씀드릴 일이지만 고인의 유지두 그러시다니, 우리두 그 유지를 존중하는 의미루 송선생의 의사를 충분히 참고하여 행정 당국과 사법 당국에게도 댁에 유리하도록 의견서를 제출할 아량이 있습니다. 돈이라든건 필요하게 쓰구 유익하게 써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최변호사 아량?
김의원 (그냥 달지에게) 보건 시설 같은 것은 어떻습니까, 선생이 의사라구허시니 말씀입니다만……
최변호사 보건 시설?
김의원 네, 우리나라처럼 보건 시설이 불충분한 나라도 없지요. (이중생 펄펄 뛴다) 그야 그럴 것이, 지금꺼정은 저마다 도회지서만 개업할랴했구 주사 한 대두 돈 있는 이만 맞게 생겼구, 돈 몇환 있구 없구루 귀중한 생명이 왔다갔다하지 않었습니까. 무료루 치료해 주는 국립병원이 있지만, 아주 시설이 불충분하거든요.
송달지 (의외로 흥분해서) 그렇습니다. 내가 의사공부를 시작한 것두 그런 의미에서 한 것이죠. 의사랑 상업이 아닙니다.
김의원 잘 알겠습니다. 판결 결과가 이렇다 저렇다 경솔히 말할 수 없으나 송선생의 생각을 관계당국에 보고해서 고인의 재산을랑 특별히 이방면에 쓰지게 하시죠? (이중생 곤두박질한다)
최변호사 고, 고인의 재산을 어데다써요. 헤헤…… 아, 아니올씨다. 고인의 생각은 그렇잖습니다. 좀더 찬찬히 의논해 가지구설랑 결정허시지…… 헤헤!
김의원 그야 물론 당국에서 가부간 집행할 일이지 여기서 결정지를 성질의 것이 아니죠.
최변호사 아, 아니올씨다. 그런 의미가 아니구 고인의 가족, 이를테면 고인의 마누라…… 그러니까 바루 여기 앉은 상속인의 송선생의 장모두 계시구 그의 딸, 다시 말할 것 같으면 송선생의 부인두 있꾸, 아들두 있구 안 그렇습니까. 그 가족들의 생각두 알아봐야죠. 그렇게 됐지, 아마 송선생?
송달지 네, 제 의견만으룬……
최변호사 암 그렇구 말구. 가족의 의사두 참작해야지.
김의원 잘 아실 분이 일부러 오해하시는 것 같구먼요. 사기, 배임, 공급횡령, 탈세, 공문서 위조 등을 법적으로 청산하면 고인에게는 아무런 재산두 남지 않는 것을 잘 아실 텐데……
최변호사 그렇겠지만 개인 재산이야 침해할 수 없잖아요? 더욱이 이 양반에게 양도된 이상……
김의원 그렇기에 우리는 이중생 자신이 이미 자기의 죄를 자각하고 국민으로서의 모든 권리와 의무를 포기하였으므로 고인의 소유였던 재산을 법적으로 처리하기 전에 우선 상속자인 송선생의 의견을 참고하겠다는게 아닙니까? 만일 가족 가운데 불만이 계시면 자기 죄과를 자인하고 입증하는 고인의 유설랑은 없애버리구 이중생을 다시 살려내가지구 상속자인 송달지 씨를 걸어 고소라두 하시죠.
이중생, 옆방에서 「그럴 법이.」하고는 제 손으로 입을 틀어 막는다. 송과 최, 어쩔 줄을 모른다.
김의원 ……
최변호사 아, 아니올씨다 제 목소리가 갈려서…… (헛기침을 하고) 그럴 법이 있습니까, 헤헤. 그럼 이중생이가 다시 살아나야 상소라두 해볼 여지가 있단 말씀이죠?
김의원 다시 살아날 수도 없지만 기적적으로 부활한다해두 유서를 자신이 번복할 수야 있겠소? 저지른 자기의 죄과는 어떻구? 사기, 배임, 횡령, 탈세……
최변호사 가, 가 가만.
김의원 농담은 그만하시구, 하하…… 그럼 송선생님의 의견이 그러시면, 진정서라구 할까 의견서라구 할까, 특위에 한통 제출해 주십쇼. 참고하겠습니다. 무료병원 설립은 정부의 방침과도 합치되니까요, 그럼.
최변호사 잠, 잠깐만…… 김선생.
김의원 매우 불만이신 모양이군요. 선생은 상속법의 권위이시니까, 법적으로 따지고 싶은 모양이시니 그럼 법적 장소에서 정식으로 뵙죠, 실례합니다. (최, 어안이 벙벙해 있다. 임표운, 전송한다. 김이 하수로 나가자 이중생 튀어나온다)
이중생 달지!
송달지 ……
이중생 (두 팔을 휘두르고 두발을 궁그르며) 달지! 자네는 누구의 허락을 받었길래 독단적 행동을 헌달말야? 응. 누가 자네더러 무료병원 세워달랬어? 응. 대답 좀 해봐. 나느 그래 무료병원 세울 줄 몰라서 이 지경인 줄 아나? 내가 뭐랬어. 유산이니 재산문제는 일체 함구불언하라구…… 자네 그래 무슨 원한이 있어서 우리 집안을 망치는 게야. 응, 천치면 천치처럼 말 챙견이나 말 것이지, 뭐이 어쩌구 어째? 내 의견은 그렇습니다만, 의견이 무슨 당찮은 의견이란말야. 내 재산, 내 돈가지구 왜 염치없이 제 의견을 말해…… 응. 의견이 또 도대체 자네 같은 위인에게 무슨 의견이야. 일껀 의견이랍시구 내세운게 장인 재산 물에 타버리는 종합병원? 예끼 고약한 놈 같으니라구, 어디서 배운 의견이야? 자넨 살아 있는, 아니 죽어있는! 아니, 아니 살아 있는 이중생…… 죽어 있는 이중생의 재산 관리인의 이외는 아무것도 아닌 걸 왜 몰라, 응. 이 천치! 어서 없어져! (달지 묵묵히 일어난다) 어딜가! 앉어 있지 못허구. 그래 어떡헐셈인가, 응, 나는 그래 어떡허면 좋단말야. 이집은 토지는 현금은 어떡허란 말이야. 그래 자네 의견대루 배라먹을 무료병원에 내놓으란 말인가? 어디 의견 좀 말해 보겠나. 응? 이 재산이 내 재산이 어떤 건 줄이나 알구 그래. 이 사람 왜 말이 없어. 일 처리 그렇게 잘하니 끝을 맺어야지.
최변호사 영감, 그만두십쇼. 또 좋은 방법이 서겠죠. 철머리가 없어서 그렇게 된걸.
이중생 (최에게) 뭣이 어쩌구 어째? 그래 자넨 철머리가 있어서 일껀 맹글어 논게 이모양인가?
최변호사 고정하십쇼. 저보구꺼정 왜 야단이슈.
이중생 자네가 뭘 잘했길래 왜 날더러 죽으라고 해, 응. (면도칼을 휘두르며) 여보, 최변호사. 내가 뭘 잘못했길래 이걸로 목따는 시늉까지하구 나흘 닷새를 두고 이 고생, 이 망신을 시키는 거냐아! 유서는 왜 쓰라구 했어! 내 재산을 몰수하는 증거가 되라고! 고문변호사라구 믿어온 보람이 이래야만 옳단 말야. 이 일을 다 망쳐버린게 누구 탓야, 응? 유서는, 저 사람에게 책잡힐 유서는 왜 쓰랬어! 왜 내 입으로발명 한마디 못하게 죽여놨냐말야, 나를 왜 죽여! 이 이중생을……
최변호사 영감 왜 노망이슈. 누가 당신 서사구 머슴인 줄 아슈. 누구게 욕설이구 누구게 패담이야!
이중생 예끼 적반하장두 유만부동이지. 배라먹을 놈 같으니라구! 은혜도 정리두 몰라보구 살구도 죽은 송장을 맨들어 말 한마디 못하구 송두리째 재산을 빼앗기게 해야 옳단 말인가!
최변호사 헛 헛…… 영감 말씀 좀 삼가시죠. 영감이 환장을 해두 분수가 있지, 내게다 욕지거리라니 당찮은 짓 아닌가 말일세, 임군!
이중생 (벌벌 떨며) 예끼 사기꾼 같으니라구, 아직두!
최변호사 사기꾼? 영감은 무엇이구 응, 영감은 뭐야!
독경소리 처량히 들려온다. 일동 무거운 침묵과 긴장한 공기 가운데 싸였따. 용석 아범 륙색을 손에 총총히 등장.
용석 아범 영감 마님! 도련님이 돌아오십니다, 도련님이. 이런 경사로울데가 어딨습니까. 어서 좀 나가 보십쇼. (달지, 방에서 뛰쳐 내려와 하수에서 등장하는 하연과 하식과 만난다)
송달지 오! 하식이!
하식 형님…… 아버지.
임표운 하식 씨.
하식 임선생.
최변호사 영감, 내일 사무원에서 청구서를 보내드릴테니 잘 생각허슈. 괜히 그러시단 서루 좋지 않지! 살구두 죽은 척하는 죄는…… 헛 헛 참, 이거 무슨 죄에 해당하누? 형법인가 민법인가! (퇴장)
이중생 하식아!
하식 (비로소 아버지의 의상을 보고) 아버지, 이게 웬일이십니까?
이중생 하식아, 네가 살아왔구나. 네가…… (상수로부터 우씨, 하주, 옥순 등장)
우씨 에그 네가 웬일이냐. (운다)
하주 하식아!
하식 어머니! 누나 잘 있었수?
우씨 에그…… 네가 살아 돌아올 줄야……
하주 얼마나 고생했니? 자, 어서 들어가자…… 아버진 나와 계셔두 괜찮수?
이중생 다 틀렸다, 틀렸어! 네 남편 놈 때문에 다 뺏기구 말았어. 네 남편 놈이 내 돈으로 종합병원 세우고 싶다구 했어.
하주 네?
이중생 하식아, 최가 놈의 말을 들었지. 내가 죽어서라두 집 재산이나마 보전하려던게 아니냐. 그런걸 예끼, (달지에게) 내가 글쎄 자네에게 뭐랬던가, 응? 난 무료병원 세울 줄 몰라 자네 내세웠나? 자네만 못해 죽은 형지꺼정 하는 줄 아나? 하식아, 글쎄 그놈들이 나를 아주 모리꾼, 사기횡령으로 몰아내는 구나. 그러니, 죽은 형지라두해야만 집 한 칸이라두 건져 낼 줄 알았구나. 왜 푼푼이모아 대대로 물려오던 재산을 그놈들에게 털꺼덕 내 주냐말이다. 그래 갖은 궁리를 다 했다는 게 이꼴이 됐구나. 에이 갈아 먹어두 션치 않을 놈! 최변호사 그 놈두 그저 한몫 볼 생각이었지. 하식아, 인제 집엔 돈두 없구 아무것두 없는 벌거숭이다. 내겐 소송할 데두 없구 말 한 마디 헐수도 없게 됐구나. (흐느낀다) 네 매부놈이, 매부놈이 다 후려먹었다. 저놈들이 우리 살림을 뒤짚어 엎었어! 하식아.
하식 아버지!
이중생 오냐, 하식아.
하식 제가 하식인 걸 아시겠습니까? 제 이 얘긴 왜 하나도 묻지 않으십니까?
이중생 오 참! 그래 얼마나 고생했니?
하식 일본놈에게 끌려가 죽을 고생을 하다가 그것두 모자라 우리 나라가 독립된 줄도 모르고 화태에서 십년이나 고역을 치르고 돌아온 하식이 올시다. 화태에서는 아직두 아버지같은 사람이 떠밀다시피 보낸 젊은 이와 북한에서 잡혀온 수많은 동포가 무지막도한 소련 놈 밑에서 강제 노동을 허구 있어요.
하주 (달지에게) 여보, 당신은 뭣이 잘났다구 챙견했수.
송달지 누가 하겠다는 걸 시켜 놓구 이래? 이런 탈바가지를 억지로 씌여논건 누군데? (상복을 벗어 내동댕이친다)
하주 누가 당신더러 무료병원 이얘기 하갰소?
송달지 하면 어때? 난 의견두 없구 생각두 없는 천치 짐승이란말야? 난 제 이름 가지구 살 줄 모르는 인간이구? 왜 사람을 가지구 볶으는 거야.
하주 그러구두 잘했다구 되려 야단이야. 우리집 망치구 뭣이 부족해서, 천치!
하식 누님!
하주 천치지 뭐야. 바본 바본 척 입이나 다물구 있으문 좋지 않어!
송달지 (하주의 뺨을 갈기며) 이것이!
하연 어마 형부가!
송달지 하식이, 내가 왜 자네 집 재산을 물에 타버리겠나. 재산두 귀하구 아버님의 명예와 지위두 소중하지만 어떻게 나라를 속이구 법을 어긴단 말인가. 옳다구 생각하는 처사를 돕지는 못할망정 방해까지해서야 되겠나 말일세. 우리가 그러면 누가 국가의 사업을 돕구 우리들의 후배는 어떻게 되느냐 말일쎄. 아버지일만 해두 한사람의 욕심과 주변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젠가? 더구나 나 같은 위인이 가운데서 무은 일을 하구 묘한 꾀를 부리겠나? 또 아무리 내, 내 장인이래두 그럴 필요가 어딨겠나? 나는 구변이 없어 말을 잘 못 하네만 하옇든 아버지 같은 사람들이 나서서 떠들 때도 아니구 장차로두 어떤 세력을 믿구 저 혼자의 이익을 위하여 날뛰어서는 안 될 게 아닌가? 그 사람들은 좋겠지만 진정으루 나라를 걱정하는 사람은 어떻게 되는냐 말이지. 하식이, 자넨 내가 장인을 두호허지 않는다구 나를 미워할텐가. 그렇다구 장인을 고발 할 수도 없는 놈이지만. 하식이, 난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잘못이 있거들랑 기탄없이 일러주게나. 광대같이 상복을 입구 꾸벅꾸벅 조을수 있는 내 신세가 가련허구두 미련하지?
하식 형님, 고정하십쇼. 잘 알겠어요. 아버지 시대는 이미 지났어. 형님두 이미 지나간 과거의 일을 가지구 번민할 게 뭐 있수. 형님, 우리 앞엔 우리를 새로운 권력과 독재자에게 팔아 먹으려는 원수가 있어요. 나는 골고루 보고 왔어요. 할빈, 장춘, 홍남, 그러군 화태! 어 몸서리가 칩니다. 형님, 우리 나라가 독립된 줄두 모르구 있는 친구들…… 어서 들어갑시다. 할 이얘기가 산더미같이 쌓였어요. 집안일은, 아버지일은 순리대로 돼 나갈 테죠.
우씨 (중생에게) 여보, 당신은 어떻게 할테유? (우씨와 하수도 망설이다가 들어간다. 사이, 이중생. (묵념)
이중생 하식아.
하식 ……네?
이중생 나는 어쩌란 말이냐. 네 애빈 그럼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이냐?
하식 ……아버지, 어서 그 구차스러운 수의를 벗으십쇼, 창피하지 않아요?
하식 퇴장. 무대에서는 이중생 혼자 넋잃은 사람처럼 서 있다. 독경소리 커진다.
후원에서는 「아범, 아범! 아까부텀 술상 봐오라는데 뭣하구 있어?」하는 중건의 소리와 지껄이는 조객의 소리. 박씨, 혼자 중엉거리며 하수로부터 등장.
박씨 내가 뭐라구 했수. 형님은 참 유복두 허시지, 자기 아버지 장사 전에 생시조차 모르던 아드님이 돌아오셨다가 천우신조로 하느님이 인도하였지.
박씨 귀, 귀신, 귀신이야! (온 길로 달아뺀다. 이중생, 다시 나와 사방을 살피고 방안에 떨어져 있는 면도칼을 무신코 들여다본다)
이중생 귀신? 헛헛! 그럼 내게는 집두 없구 돈두 없구 귀신이란 말이냐. 하식아…… (이윽고 후면으로 살아진다. 독경소리와 달빛이 처량하다. 무대는 잠시 비었다)
용석 아범 (술상을 들고 후원으로 가며) 용석이가 우리 나라 광복군으로 가다가 일본놈들에게 맞어 죽었다구…… 그럴 테지, 그래야지. 용석아, 잘했다, 잘했어. 도련님이 인젠 네 대신 날 돌보아 주시구 네 몫까지 나랏일을 하신다는구나. 용석아…… 그래야 허지. 우리들 늙은 것들은 다아 죽어두 좋아, 암 어서 죽어야지. 서방님이나 도련님 같은 분들이 씩씩허게 일해야지, 헛 우리들이야 뭐 관속에 한 발 들여 놓은 송장들인걸, 헛헛…… (후원으로 가자마자 「악!」소리와 함께 「영감마님!」「영감마님!」하며 아범 뒷걸음질쳐 나온다)
용석 아범 영감마님, 영감마님, 시첼 누가 널을 헤치고 뜰루 끌구 나왔어요. 마님, 아이구머니, 이런흉변이……
술상을 땅에 떨어뜨린다. 전 가족이 놀라 뛰어나와 못에 박은 듯이 한 곳에 정립한다.
후원과 사랑에서도 중건이와 조객들이 뛰어나온다. 달빛은 유난히 밝고 독경소리 점점 커진다.
― 막.
살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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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이 중생 각하 전문 오영진
1
제 2 막
제 2 장
다음날 저녁.
송달지, 화초분의 잎사귀를 하나하나 뜯으며,
송달지; 줄까, 말까 줄까 말까 줄까 말까, 줄까…… 안 됐어. 다시 한 번 말까, 줄까 말까, 줄까, 줄까, 헛 그럴 테지. 이름 석 자를 빌려줄 수야 있나, 어디 다시 한 번…… 줄까 말까, 어, 어렵쇼. (하연, 하수로 등장)
하연; 형부, 혼자 무슨 장난이셔요.
송달지; 장난이라니? 내겐 큰 문제야, 그래 취직 제 일일의 감상이 어때?
하연; 배고파 죽겠어.
송달지; 연앨 허는 게로군.
하연; 연애하면 소화가 잘 돼요?
송달지; 암.
하연; 호호…… 형부두, 우리 산보겸 운동장에 가셔요, 네. 시민대회를 굉장히 크게 연대요.
송달지; 무슨 시민대횐데?
하연; 모리배 타도, 우리 아빠 같은 것 숙청 데모, 우리 회사에서두 참가헌대나요. 돌아오는 길에 내 청요리한턱 낼께요. 취직 기념으루.
송달지; 집에 걱정이 있는데 그런 구경 다니 문 쓰나.
하연; 에그, 걱정이 무슨 걱정예요. 언니헌테 짜증 들을까 그러시지. 누가 모를 줄 알구.
송달지; 무섭긴 뭐 무서워, 집에 일이 있으니까 그렇지.
하연; 형부가 있으문 무슨 일 하셔요. 형부나 내다 이 집에선 되려 귀찮은 존잰걸.
송달지; 아냐, 내가 있어서 끝장을 줘야 할 일이 있어. 왜 하연인 못 들었어, 아버지가 내게 부탁하는 일.
하연; 몰라요. 형부께 부탁할 일두 뭬 있을라구.
송달지; 개똥두 약에 쓴다구…… (주위를 돌아보고) 아무 보고두 얘기 말어. 저, 아버지가 내 이름을 가시시겠다구.
하연; 형부 이름을 가지시다뇨? 아버진 이름이 없어요, 뭐.
송달지; 쉬잇, 다시 말하자면 이중생씨는 없어지구 아버지가 송달지가 된단 거야.
하연; 그럼 형분?……
송달지; 난 나대루 있지.
하연; 호호…… 그게 무슨 연극이야. 그럼 형부가 내 아버지두 되구, 언닌 내 엄마가 되구? 어마, 형분 그러구 우리 엄마 남편도 되시네…… 호호……
송달지; 헛헛…… (하주, 안방에서 나온다)
하주; 뭣이 우스워 야단들이유.
하연; (그냥 웃으며) 에그 엄마 나오시네요, 형부.
하주; ……?
하연; 호호……
하주; 어서 들어가 저녁 처먹어.
하연; 네에 어머니! 형부 그럼 안가요?
하주; 어딜 간다고 그래.
하연; 구우경, 형분 집안에 대사가 있어 못 가신다우. 라라라…… (콧노래를 부르며 안방으로)
하주; 기집애가 인젠 아주 판에 박은 난봉이야. 밤낮을 쏘다니구 도시 집에 붙어 있질 않는구려.
송달지; 집에 마음이 붙지 않으니깐 그렇지.
하주; 누가 부엌일을 하랩니까? 제소를 허랍니까, 번둥번둥 놀기 싫어 저 꼴이니 참.
송달지; 놀기야 싫지.
하주; 그러게 당신두 인제 아버지 대리를 좀 봐요. 놀기 싫은데 쌀값두 안 되는 병원 같은 건 그만 집어치구 떡 들어앉어서 아버지 대신에 출입두 허시구 유지 신사와 교제두 허시구, 좀 좋소. 생각할 게 뭐란 말요?
송달지; 그래두 이름을 뺏기문 미상불 불편해질 건 사실이거든.
하주; 빼기긴 왜 뺏긴다구 그러우 아버지 돌아가신 후 그 이름 어디 가겠소? 뒤루 찾으시면 그뿐 아니에요.
송달지; 아버지 돌아가시는 날엔 송달지란 세상에서 아주 그림자두 못 찾게. 그러구 그뿐인가? 아버지가 일 서툴게 허시다 다시 때가는 날엔 귀신도 모르게 죽어나는 건 이 송달지거든, 그렇지 않소? 천성 아버지 대신에 내가 들어가게 생겼지.
하주; 상서롭지 못하게 때가는 소리만 허구 계시유. 어서 작정해요. 아버지께선 벌써 유서두 써놓으시구 인제 이름 석 자만 기입하면 그만이래요.
송달지; 우리 친구들은 어떡허구? 단데 빵구 나구 말걸.
하주; 그따위 바둑 친구들 상종 안하시면 그만 아니우. 당신은 우리 아버지 때문에 그만 일두 못하시겠수.
송달지; 글쎄 사정은 딱하지만…… 아버지가 출입허시는 동안은 난 꼼짝 못할 것이구, 위선<송달지내과의원>이란 간판두 떼 버려야 할 게구 좀 더 시중히 생각해 봐야겠어.
하주; 에그 답답하기두…… 하루 이틀 생각했으문 그만이지. 인제 와서 또 생각 여부가 어딨수. 힘들게만 생각 허시니깐 그렇지…… 여보, 몇 년 만집에 꾹 들어앉아 있음 그만 아녜요. 그동안 아버지가 송달지 행셀 하시겠지만 당신 이름으루 말이에요. 그렇다구 늙으신 아버지가 영 앉아 계시겠수? 몇 년 만 지나 구보우. 아버지의 명예와 사업이 어디루 가겠수? 거기다가 송달지 이름으로 쌓아 놓은 모든 업적두 몽땅 당신 것 아녜요. 이런 불로소득이 어디 있수. 에그머니, 기다리시다 못해들 나오시는군. (이중생, 최 변호사, 안방에서 나온다)
이중생; 그래 결정됐느냐?
하주; 네, 인제 곧 결정한대요.
최 변호사; 그야 송선생두 깊이 생각하셔야겠죠. 말하자면 생사문제요, 인생 문제라구두 할 수 있으니까.
이중생; (방으로 올라가며) 뭐 그리 심각히 생각할 게 없지. 에에또 최 선생이 어디 유서 한번 다시 읽어보슈. 누락된 점이나 없나.
최 변호사; (낭송조로) 「황천은 굽어 살피소서. 소생은 죽음으로써 전생의 모든 과오를 청산하나이다. 개과천선은 고 성현도 용납하시는 바이오니 황천은 이중생을 긍휼히 여기사 널리 용서, 용서하옵소서. 각설…… 소생의 동산, 부동산, 가옥, 유가증권을 불문하고 소생 소유의 전 재산을 모모에게 양도하오니.」영감, 이 이름 석 자가 문젭니다그려…… 「소생 소유의 전 재산을 모모에게 양도하오니 모모는 마땅히 다음의 사항을 처리할지니라. 제일은 현금 삼백만환과 서린동 XX번지 소재 가옥 일백오십 평을 가형 이중건 씨에게 양도할 거싱요, 제이는 소생이 신임 존경하는 고문변호사……」제이에게두 한 구절 넣습니다. 백씨 영감께서 꼭 넣야 한다시길래.
이중생; 그야 그럴 것이지.
최 변호사; 「소생이 신임 존경하는.」……헤헤, 존경은 뺄까요?
이중생; 어서 읽으슈.
최 변호사; 「고문 변호사 최영후에게 대한 적당한 사례금을 망각치 말 것이요, 제삼은 고문 변호사 최영후는 온갖 수속상 추호도 법률적으루 미비 상이함이 없기를 기할지어다. 년, 월, 일, 이중생.」이만하면 만족 허십니까?
이중생; 완고한 형님이 지으신 걸루썬 엥간하군그래. 그럼 내가 친필루 쓰지. (책상 앞으로 간다)
최 변호사; 날짜는 훨씬 옛날루, 말하자면 본 사건이 발생하기 퍽 이전으루 하십쇼. 그래야만 법적 효과를 발생할 수 있습니다.
하주; 여보, 귀가 있으문 당신두 들었겠구려. (귓속) 아버지가 앉아계신들 몇 년이나 더 생존해 계시겠수. 왜 그걸 생각 못허우. 어머니 말씀 못들었수. 이것저것 아주 헐가루 쳐두 십억 만 환은 된다는구료. 거기다 집이 몇 채구 현금이 얼만지나 아시구나. 이러우. 그까짓 제재회사, 임업회사 다 갖다 바쳐두 우리 일생은 걱정 없어요. 아버지가 생전에 그걸 다 쓰시겠수? 굴러들어오는 복을 왜 발길루 차 버린단 말유. 이름 빌려주는 게 뭐이 밑천 드는 게라구, 어서 생각 좀 돌이켜요, 네. 당신더러 누가 살구 죽구 하는 것까지 생각허랍니까? 그저 아버지께서 마지막 가시는 길에 당신에게 전 재산을 주신다구만 생각 허시구려. 네? 네? 그럼 그렇게 작정하구 맙니다. 작정해요, 네?
송달지; 투 - 비 - 오, 낱 투 - 비 댓쯔 더 퀘스츈. ( to be or not to be question)
하주; 그건 또 무슨 소리유?
송달지; 「햄릿」야, 유명한 모놀로 - 그.
하주; (방으로 가며) 아버지.
이중생; 오냐. 결정했느냐?
하주; 그럼 뉘 영이라 거역하겠어요.
이중생; 그러면 그럴 테지.
최 변호사; 그럼 송달지라구 이름꺼정 써넣으시죠. 지금이 몇 시더라, 다섯 시 삼십분, 시간꺼정 써 넣으십시오. 유서란 그래야 하는 법입니다.
이중생; (글을 쓰며) 유서 작성 날짜는 지금으로부터 멀찍이 삼년 전…… 이면…… 충분하겠지…… 자살 집행은 오늘 다섯 시 이십분.
송달지; 살아가느냐 없어지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이중생; 그럼 제 이차루 들어가 자살허면 어떤 방법으로 헌다요.
최 변호사; (목을 싹둑 자르는 시늉을 하고) 물론 면도칼이 제일이죠. (하주에게) 마님두 나오시라구 하십쇼.
하주, 안으로 들어간다. 극이 진행하는 동안에 하주, 그리고 훨씬 뒤떨어져 하연도 등장.
최 변호사; 면도칼이 뒤탈두 없구 제일입네다. 자, 이리 누십쇼. 면도칼을 오른손에 쥐시구, 이젠 이 순간부텀 영감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유서는 이렇게 고스란히 책탁 위에 놓였구 방안은 왼통 피바다…… 붉은 잉크 없나? 없으면 씻쳐버렸다 허구, 피비린 냄사가 코를 찌르는 피바닥이 올씨다. 자, 그럼 여러분, 놀래서 뛰어오십쇼. 마님의 남편 되시는 이, 아가씨의 아버지, 송 선생의 장인, 아니 일찍이 우리 한국이 낳은 위대한 사업가 영웅 이중생씨의 최후올씨다.
우씨와 하주는 방안으로, 송달지는 툇마루 앞에 엉거주춤하고 어쩔 줄 모른다.
최 변호사; 제이차루 장삿날을 결저해서 부고를 인쇄헙시다. 성복장두 상스럽고 그저 칠일장이 상식적이죠. 법률상은 이십사 시간만 지나면 내다 묻어두 괜찮지만 어디 이런 대가에서야 그렇습니까? 어떻습니까, 상주께선? 그럼 칠일장 결정했소. 발인은 오전 다섯 시, 아침 일찍이 해야만 조상객이 없을 게니……
이중생; (벌떡 일어나며) 최 선생, 한주일 동안이나 어떻게 죽은 시늉을 허우? 그 좁은 속에서…… 삼일장으루 허지.
최 변호사; 그럼 절충해서 오일장, 영감께설랑 움직이지 말구 누워 계십쇼. 결정헙니다. 상주께선 이의가 없으시겠지. 영결 장소는 자택. (종이에다 일일이 적으며) 묘지는 명성골, 장지를 칠십 리 밖이나 되는 명설골루 정하는 것두 이유가 있읍죠, 헛헛…… 누가 진새벽 탈것두 없는 칠십 리 길을 따라 나옵니까? 헛헛…… 명설골, 상주두 이의 없으시겠죠. 그럼 결정헙니다. 송 선생, 이걸 어서 인쇄소에 돌리슈. 한 천 장만 곧 백이라구.
이중생; (다시 일어나며) 천장으룬 모자라지. 관청관계만 해두.
최 변호사; 허…… 돌아가신 인 가만 계시라니까요, 어디 섞갈려 일이 됩니까, 온. 그럼 이천 장 결정했습니다. 상주께서두 이의가 없으시겠죠. 그럼 송 선생은 상주구 또 헐게 있어. 이리 올라와서 진단서 한장쓰슈. 경동맥 절단, 다량 출혈이 사인입니다. 그러구 아범, 아범.
아범 안에서 나온다. 하연이도 뒤따른다.
최 변호사; 아범은 이 종이를 가지구 인쇄소로 가서 제일 좋은 종이루 이천 장만 백여 와. 돈은 많이 낼 테니 오늘 중으루 찾아오기루 맡기란말야. 그러구 오는 길에 널을 한 틀만 사 오우. 백자두 좋구 추목두 좋으니.
용석 아범; 널 입쇼?
이중생; 비싼 것 살 게 없어. 백자두 좋으니 제일 싼 걸루……
용석 아범; 널은 갑자기 뭣에 쓰십니까?
최 변호사; 아랑곳할 게 아냐. 자 이걸 가지구, (돈지갑에서 지전 몇 장을 뽑아 준다. 아범, 머리를 설레설레 저으며)
용석 아범; 마님, 이게…… 정말 사오랍쇼?
우씨; 최 선생 분부대로 할 게지 웬 참견야.
용석 아범; 네에. (아범 나간다. 하연 깔깔대고 웃는다)
최 변호사; 아씨, 웃을 일이 아닙니다.
하연; 호, 호…… (송을 제외한 일동 눈을 흘긴다)
최 변호사; 송 선생 사만진단선 됐소?
송달지; 그걸 어떻게 제가 씁니까, 뻔히 살아 있는 사람을.
최 변호사; 못 쓰신다구요?
송달지; 뻔히 살아 있는데……
이중생; (벌떡 일어나며) 뭐이 어쩌구 어째. 못써?
송달지; 거 위반입니다. 사기죄두 되고……
이중생; 그럼 자넨 내가 정말 죽어야만 진단서를 쓰겠단 말인가? 내가 죽어야 위반이 아니란 말이지.
송달지; ……
하주; 지금 와서 그게 무슨 소리유, 그게.
우씨; 아무리 원수 치불했끼로소니 제 장인보구 아주 돌아가시라니 정신이 있어 하는 소린가.
이중생; 응, 괘씸허군 그래.
하주; 여보! 대담해요.
이중생; 못 쓰겠나? 그래.
최 변호사; 송 선생, 끔벅 눈 한번 감어요. 쯧쯧……
하주; 뭘 멍청허구 있어요, 여보!
최 변호사; 송 선생.
송달지; 그것만은…… 안 됩니다.
하주; 에그……
멀리 행진곡 들린다.
하연; 벌써 지나가네요. 형부, 시민대회에는 안 가셔요? 네, 난 아까부텀 기다리고 있었는데.
송달지; 어! 어!
하연, 하수로 나간다. 달지도 꿈에서 깬 듯 뒤를 따른다. 일동, 멍청이 바라보고 있다. 애국가가 고요히 들려온다.
최 변호사; …… 영감, 어떡하실 작정이슈?
하주; 못난 녀석.
이중생; 뭣을 어떻게 해? 이 이중생이가 한번 허기루 결심했던 걸 변하는 위인인 줄 알어? 그래 내 사위 놈이 사망진단서에 도장 안 찍었다구 까딱할 내야? 한 번 내쳤던 걸은은 촌보두 물러서지 않는 게 이중생의 주의 주장이야, 내 결심을 누가 꺾는단말야. 결행해야지. 암 결행허구말구. 얘, 하주야, 너 냉큼 병원에 가서 <송달지 내과의원> 도장과 네 남편 도장을 가뎌 오너라.
하주; 네.
하주, 하수로 나간다. 행진곡 점점 높이 들려온다.
일동 저도 모르게 귀를 귀울인다.
2-2부에 이어
제 3 막
전막에서 삼, 사일 후 저녁, 같은 장소. 다다미방에는 거꾸로 둘러친 병풍 한끝이 보인다.
항연이 피어오르고 북소리와 함께 봉사들의 독경소리가 높으락낮으락 들려온다. 경은 우리들이 일상 레코드로 들어오던 저 경쾌하고도 유머스러운 축원경이다.
바깥사랑과 후원 정자에서 이따금 들려오는 웃음소리가 도무지 초상집답지 않다.
막이 열리면 굴건제복을 한 상주 송달지가 혼자 온돌방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다. 동리 부인 박씨, 우씨와 함께 안에서 나온다. 박씨는 무엇인지 가득 넣은 이남박을 들었다.
박씨; 그럼 형님, 집엣 것들 저녁상이나 차려주군 곧 오리다. 집에서 들은 명일날이나 온 줄 알겠군. 호호…… (다다미방을 들여다보고) 그저, 세상 떠난 분 하나 불쌍하지. 조곰만 참으셨던들 아드님두 만나실 걸. 그래두 천도가 무심치 않지. 돌아가신 아버님이라두 한번 보라구 장례 전으로 들어서게 되니 이게 하느님 인도가 아니구 뭐유. 에그 저 사위 양반은 얼마나 고단하길래 저렇게 앉은 채 꾸벅꾸벅 조을구 있을까.
우씨; 그럼 곧 다녀와요. 난 아우님 없인 못 살어. 내 이 은혜는 꼭 갚을 테니.
박씨; 에그 형님두 ― 그런 말 허실 테면 난 아주 발길 안하겠수. (하수로 퇴장, 우씨 방으로 올라가서 송을 깨운다)
송달지; 어? 어…… 경읽는 소리가 맹랑한데. 슬그머니 졸음이 오니.
우씨; 어젯밤도 늘어지게 자구 그렇게도 졸릴까. 정신 채리구 있어. 오늘은 관청 손님이 조사 나온다는데.
송달지; 어이 졸려. 하식이 아직 도착 안했어요?
우씨; 하식이야 하연이가 마중 나갔으니 곧 들어슬테지만 관청 손님들이 걱정이군 그래. 말썽이나 없을는지 온. 정신 채리구 있다가 손님들 오시걸랑 지체 말고 알려요. 술상 준빈 다 됐으니.
(상수로 퇴장. 송, 자기 입은 의복을 둘러보고 하품. 이중건 김 주사, 변 주사, 홍주사와 함께 후원에서 나온다. 다들 만취했다)
이중건; 자, 우리들 이리 올라와 마른 안주로 다시 한잔허지.
김 주사; 아 이젠 전 만취올씨다.
변 주사; 그만두시죠. 우리두 가 봐야겠수.
이중건; 어…… 초상난 집에 왔다 그렇게 승겁게 가는 법이 어디 있어. 여봐라. 게 누구 없느냐!
홍 주사; 애련하고 폼이 있게 경을 읽는 중이 아마 저 도렴골서 온 중이지요.
김 주사; 그예 본래 풍성풍성한 댁이니 어디 하나 소홀한 게 있을려구, 아마 저 봉사가 도림골서 왔읍죠.
이중건; 글쎄 소리깨나 하는군…… 여, 아범. (아범, 주안상을 들고 나온다)
용석 아범; 불러 계십쇼?
이중건; 거 어디 가져가는 거야?
용석 아범; 아까부텀 바깥 사랑손님이 찾으십니다.
이중건; 여기도 정갈히 한상 봐 오게.
홍 주사; 아아 온 그만두십쇼, 오늘만 날입니까, 인젠 매일같이 와 뵙겠습니다.
용석 아범; 영감마님, 도련님이 오늘 돌아오신답니다 그려. 저 우리 용석이 놈만 죽었습죠.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하수로 퇴장)
이중건; 그야 팔자소관인걸 너무 상심할 게 아냐.
김 주사; 저번 백참판댁 상가에두 저 중이 왔었어……
변 주사; 백참판 대감이니 이대감이니 아까운 분들이지. 세상에서는 인색하다거 니 모리배라거니 별별 말두 많었구 실없는 사람의 입술에두 오르내렸지만 진실로 국보적 보물이었어. 하옇든 무슨 일을 했던 간에 이만 재산을 벌어 놓았으니 훌륭하지 뭡니까. 모리배라면 어때? 사기꾼이라면 어때? 공범이 어떻구 아님 또 어떻단 말요? 우선 벌고 보는 거지.
홍 주사; 그야 자결허시는 것만 봐두 범상한 어른이 아니지. 누가 이 좋은 세상을 두고 한 번가면 그만인걸 성큼 헌단 말요. 춘추가 몇이더라.…… 송 선생.
송달지; 쉰?……
홍 주사; 갑인 을묘 정유니까 쉰 넷이겠군.
송달지; 쉰넷……
변 주사; 일생을 두구모은 재산을 덤석 이 사위 양반에게 물리구 가신 건 어떻구, 예삿 사람이야 아들이 없으시면 딸에게 물릴 것이구, 마누라에게 줄 게 아니요. 그걸 왼통 사위 양반에게 주셨습니다 그려. 그것두 억 만 환 하나 둘은 내리지 않으리다.
김 주사; 온 정신 없는 소릴…… 가옥만 해도 둘이 되고 남지. 이집 한 채만두 집 지으실 때 구경했지만 건평이 삼백팔십 평이……넘죠?
송달지; 글쎄올시다. 아직 그런데는……
이중건; (혼자말로) 그런 걸 이눔이 단돈 삼백만환.
변 주사; 암 그러실 테죠. 오죽이나 상심하셔서 그럴 여가가 있겠습니까, 쯧쯧……
홍 주사; 그래 자결하시기까지는 별루 태도엔 이상한 점이 없으셨죠.
김 주사; 그야 여부가 있소. 태연자약 허셨겠지.
이중건; (책상 서랍에 면도칼을 꺼내며) 이 면도칼로 경동맥을 싹둑 끊어버렸어.
변 주사; 에그 쯧쯧……
이중건; 그러니 괄괄 솟는 피가 뽐뿌수도 같을 수밖에…… 여기두 피, 저기두 피.
왼통 방안이 피바다가 됐지. 앉은 데가 다 핏자리야.
홍 주사; 이 자리가요…… ?으째 으시시허다. 술이 깨는 모양이군. 이거 으째 두고 보니 좌불안석인 걸……
김 주사; 홍 주사, 인젠 일어서 보지 않으려우. 난 집에 조카 놈이 온다고 한걸.
홍 주사; 어 나두 참 깜박 잊었군. 오늘 반상회가 있는 걸.
이중건; 왜 한잔들 더 안 하시려우?
김 주사, 홍 주사, 변 주사; 네. 다, 다……다시 뵙겠습니다. (하수로 퇴장)
이중건; 어두운데 조심허우.
그때 다다미방을 거쳐 나오던 봉사 이인, 자기에게 하는 말인 줄 알고,
봉사1; 우리는 어둡고 밝은 걸 별루 가리질 않습니다.
이중건; 그야 그럴 테지. 어서들 들어가서 좀 주무시지, 오늘두 밤새 수고 허셔야 겠으니……
봉사2; 소경 잠자기루 그것두 별루 가리질 않습니다. (하고 안으로 들어간다)
이중생, 병풍 위로 목만 내놓고 끼웃끼웃 살피더니 슬그머니 미끄러져 나온다. 수위에 행건 친 차림이 과연 초현실적이다.
이중건; 너 여기가 어디라구 어슬렁어슬렁 기어 나와.
송달지; 손님들이 많으신데! 어쩌실려구……
이중생; 형님, 웬 손님들이 사랑에 두 방 방이구 정자에두 있구 이러시는 거요? 무슨 잔칫집인 줄 아십니까, 누구 쌀을 축내시느라구.
이중건; 삼춘댁부터 십이춘, 사돈의 팔춘, 집안이란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