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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영환 시집
지리적 공간에서 만난 총체적 서정성
-차영한 시집 『산은 생각 끝에 새를 날리고』을 중심으로
김지숙(문학평론가 시인)
1. 서론
루카치에 따르면 총체성(totality)이란 가치 평가의 기준이므로 결정적 중요성을 지니는 동시에 현실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그는 인간이 현실을 포착할 수 있는 위대한 도구 중 하나가 예술이라고 본다. 다른 어떤 예술보다도 시는 다양한 의미 관계를 통해 삶을 형상화해 왔다. 그래서 시의 현실은 실제보다 더 현실적이기도 하고 때로는 시에서 묘사된 미지의 세계를 동경하면서 현재의 고통은 상쇄되기도 한다. 또한 기대하지 않았던 존재를 확인하며 기뻐하거나 혹은 슬픔에 잠기는 감정의 소용돌이 속을 헤매기도 한다. 우리는 시를 읽으면서 미처 깨닫지 못한 자아를 발견하기도 하고 혹은 부조리한 현실을 깨닫고 이를 되돌아보거나 새로운 삶의 활력을 충전하기도 하며, 이를 매개로 스스로의 삶에 대한 증언 또한 가능하게 된다. 따라서 시는 시인의 내면에서 사회와의 소통을 전제로 하므로 삶과 상호 수용 관계에 놓이거나 등가 관계로 발전하기에 이른다. 시인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현실적 삶에 대한 의미를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시가 탄생한다. 이는 사회적 존재 여부 속에 개인의 감각과 의식을 두고 이루어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통영에서 태어나고 살아온 차시인의 삶과 시를 들여다보면 통영과 그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다는 점을 바로 알게 된다. 그는 여섯 권의 시집과 두 권의 평론집을 상재한 탄탄한 필력을 가진 시인이다. 첫 시집『시골햇살』(시문학사 1988)에서는 통영의 풍물과 향수를 가장 응집된 시어로 정감 어린 이미지들을 축약하여 독자에게 전달하고 있다. 사물을 천천히 여유롭게 바라보고 또 사랑 어린 눈길을 서로 주고받는 소박하고 따뜻한 시를 담아낸 이 시집에서는 정(情)의 원형과 회복성에 중심을 두고 있으며, 삶의 여유에서 오는 겸허함이 시를 통해 차분하게 전달되고 있다.
두 번째 시집이자 최초의 연작시집인『섬』(시문학사 1990)에서는 통영 앞바다에 있는 한려 해상의 섬이 고향이라는 현장성 있는 공간으로 다가와 의미화 과정을 거치면서 초극 절제의 세계관을 보여준다. 어떤 가식적 기교도 넘어선 채 스스로를 정화하는 한편, 자연 속의 진정한 삶과 영원한 생명성을 서정적 감수성으로 시화 하고 있다. 세 번째 시집『살 속에 박힌 가시들』(시문학사 2001)에서는 일상의 삶 속에서 느끼는 좌절과 시대적 상황 속에서 절실한 분노를 풍자와 고발로 표현하고 있다. 허세와 허영을 질타하는 해학성을 지니는가하면 신랄한 독설도 서슴없이 세상을 향해 날리는 시어에는 자연스럽게 날이 서 있다. 이 시집에서는 특히 구어체와 토속어 관용구를 잘 활용하여 그의 시가 당대 현실의 삶과 깊이 밀착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네 번째 시집『캐주얼 빗방울 』(한국 문연 2012)에서는 차시인의 다른 시에서 볼 수 없는 언어 질서에 대한 우수성과 독창성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시들이 뿜어내는 강한 생성 에너지가 보여주는 무한한 가능성을 확인하는 계기가 된다. 다섯 번째 시집『바람과 빛이 만나는 해변』(한국 문연 2016)에서는 바다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방법론을 모색하였으며, 특히 초현실주의 기법을 사용하였기에 앞서 쓰인 바다를 소재로 한 다른 시들과는 차별성을 두고 있다. 병치 통사론적 비문 환상 등의 낯설고 환상적인 방식으로 언어의 상식을 전복시키는 이미지의 충돌을 일으키는 난해한 바다, 그리고 음악적 메시지가 가미된 시적 연상과 상상을 들여왔다. 여섯 번째 시집이자 두 번째 연작시집인『무인도에서 오는 편지』(도서출판 경남 2017)에서는 바다가 화자에게 보내온 메시지를 읽고 그 바다에 답신을 보내는가 하면 우주를 순환하는 생명체의 의인화에 역점을 두었으며 섬은 시인의 삶에서 쉼표가 되어 있다. 지금껏 상재된 각각의 시집들은 서로 다른 방향성을 표출하고 있으며, 그의 시세계역시 쉽게 단정내릴 수 없는 다양한 특성을 지닌다.
이번 시집『산은 생각 끝에 새를 날리고』에 실린 시들은 현실 속에서 살아온 그간의 삶의 여정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이를 외부와 내부가 균열되지 않은 상태의 형이상학적 원을 뜻하는 총체성이라는 관점에서 그의 삶을 표출하는 시를 대상으로 살펴보았다. 일상적 삶이 녹아 있는 시들의 주제는 ‘토박이말’과 ‘길’을 중심으로 논의하고 하며, 자연을 중심으로 표출된 내면적 서정에서는 ‘불교적 가치관’과 ‘자연일체’의 가치관을 중심으로 논의하고자 한다.
2. 일상적 삶의 두 얼굴
2-1 통영 지역 토박이말
한 지역의 토박이말은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의 삶을 표상하며 동시에 언어 표현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난다. 이는 사람 사이에서 거리감을 없애주는 동시에 공동체적 결속감을 높여주는 정감 있는 의사소통 수단이 된다. 그의 이번 시집에서는 특히 통영지역 토박이말을 드러내는 특성을 보인다. 국립국어원에서는 그 지역 토박이말을 사투리로 표현한다. 흔히 토박이말은 J. Séeguy식의 구획 방법에 따라 경상도권을 부산 대구 마산 등을 중심으로 나눈다. 하지만 같은 경상도라고 해도 통영은 고성 거제와 더불어 통상적인 경상도 토박이말과는 또 다른 특성을 지닌다.
김택구(1991)에 따르면 음운(‘ㅅ:ㅆ ,에 애’의 대립 ,ㄹㄱ>ㄹ, ㄹㄱ>ㄱ, ㄹㅎ〉ㄹㄱ, 어중 ‘ㅂ, ㄱ’, ‘ㄱ’의 경음화, > 아, > 오 에>이) 어휘(부추,그제 前前日]), 어법(‘하라체’ 의문종결어미 ‘노,내)을 기준으로 토박이말을 동부권과 서부권으로 나눈다. 동부권에는 울산 양산 밀양 창녕(동북권)과 합천 의령 함안 창원 김해(중부권)둘로 나누었으며, 서부권에는 거창 함양(서북권) 하동 사천 진양 산청(서부권) 남해 고성 통영 거제(서남권)로 나눈다. 서남권에 속하는 통영은 전라권과 일부 섞인 후 다시 이 지역의 고유한 토박이말로 정착하기에 이른다.
오뉴월 쏟아지는 딸구비 받아 물 잡는 품앗이
논갈이 써레질에 흙탕물 철벅이는 달구지들
<중략>
물 자배기는 잘 알고말고. 나란 여에서 물숭 여 걸어
그물 내던져 대리 듯 윷가락 방질 ‘신 걸에 사 륫’
뿐이겠나. 세 모 떼로 잡는 섧은 만큼이나
시래기 뚝배기에 남은 딸꾹질로 이겼나니
<중략>
사투리 한마당 먼 널 궂니 잡고 숭어 모치 떼몰이
탁탁 무릎 치는 엉덩이춤에 어깨춤사위에도
물 자배기는 잘 알고 말고. 나란 여에서 물숭 여 걸어
그물 내던져 대리 듯 윷가락 방질 ‘신 걸에 사 륫’
뿐이겠나. 세 모 떼로 잡는 섧은 만큼이나
<중략>
풍어기 올린 징 캥수 소리 선창 골에 되 받쳐
소풀개 먼 당을 짚어 이망 먼 당으로 올라 그만
<중략>
시루바우 굼턱 굼턱 도다리는 넙치보고 눈 흘겨도 어찌 그리 딱 맞아떨어지는 눈깔! 썰물도 모래밭에 숭어
-「양지리 사람들」일부
시인의 당대 현실 속에서 사용하는 언어로 자신이 느낀 감흥을 시 속으로 들여오기 때문에 시가 곧 당면한 현실 그대로일 수는 없지만 그 본래의 모습은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따라서 시인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을 시라는 거울을 통해 형성하거나 내면의 자아를 단련하고, 또 편협한 시야에서 벗어나 진실한 세계를 경험하는 삶을 유지하며 살아간다. 설령 그것이 지역 토박이말이라고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통영 지역 토박이말의 대표적 특성으로는 ‘축약’을 든다. 이 지역 사람들은 주로 바다를 생업으로 삼은 어업종사자로 이루어지므로 간략하게 의사전달을 하기 위해서 불필요한 단어와 어구를 줄이는 의사전달방식을 택하는 단어의 경제성을 보여준다. 또한 한려해상의 각 섬들은 저마다 다른 토박이말을 사용하기도 한다. 특히 주로 어업과 관련된 뱃고동 소리나 높은 파도 소리에 쉽게 소통되지 못한 지역적 특성 속에서 자연스레 생겨났으며 쉽고 빠르게 전달하려는 의도에서 단축시켜 표현하는 특징으로 사용되었으리라고 본다.
위의 시를 읽으면서 통영 토박이말에도 통역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지역 토박이말이 지닌 본래의 뜻을 알고 나면 그 언어들이 지니는 의미들이 한층 정겹게 와 닿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인내로 읽어내어야 하는 고층이 뒤따르기도 한다. 통영 지역 토박이말은 육지의 언어들과 달리 독특한 억양이 있다. 그 한 예로 이 지역 사람들은 통영을 ‘토영’으로 발음한다. 'ㅇ'을 탈락시키는 경우로 발음의 경제성이 드러난다. 또한 그 어원을 쉽게 짐작조차 할 수 없는 토박이말에는 ‘이야’는 ‘언니 누나’를 정겹게 이르는 통영에서만 소통되는 언어이다. 이는 ‘아’모음을 ‘이’ 모음으로 단순화하여 발음하기도 한다.
그의 시는 정감 있는 토박이말을 사용하여 통영지역의 특징과 문화, 지역민의 고유한 정서와 정체성을 담아낸다. 통영의 독창적인 토박이말을 살려 시어로 정착시키려는 노력이 그의 시에서도 엿보이는데, 첫째, 격음화 경음화 현상으로 변화된 강하고 억센 경우를 접하게 된다. 예를 들어 ‘머라 쿠 것노(뭐라고 하겠어)’에서는 섬사람들의 거센 기질이 보이는 ‘쿠’ 와 같은 격음화 현상과 ‘것노(겠어)’에 해당되는 축약에서 이 지역 토박이말의 특성이 나타난다. 마찬가지로 굼턱 굼턱(군데군데) 캥수( 두레패나 농악대 따위에서, 꽹과리를 치면서 전체를 지휘하는 사람. 상쇠의 지역 토박이말)에서도 격음화현상이 나타난다. 캥수 소리는 상쇠를 뜻하는 이 지역토박이말로 깽수 깽맹이 등으로도 사용되며, ‘떼’ 역시 ‘도’의 의미를 지닌 강한 쌍디귿 발음으로 의사전달이 어려운 지역의 자연 환경 속에서 자연스레 생겨난 의사소통방식으로 소리가 높고 거센 발음방식의 특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이는 의사전달을 위해 강하고 큰 소리를 하거나 먼 거리에서도 짧은 소통을 위해 생겨난 것으로 격음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볼 수 있다.
이 지역 토박이말의 특성 중 하나로 성조가 높고 쌍시옷 쌍기역 쌍디귿 등의 경음화 격음화 현상들이 드러나며 발음이 높고 세서 다른 지방의 사람들이 들으면 싸우는 것으로 오인하기도 한다. 이 역시 바다를 배경으로 하여 먼 곳까지 잘 들리도록 의사소통을 위한 방편으로 생겨난 언어사용의 특성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경음화의 경우로는 ‘깝지는’(깝치는, 다그치는 재촉하는)(「낙목산방」)에서 ‘깝’과 같은 쌍기역은 그와 유사한 의미로 사용된 경음화의 경우로 볼 수 있다.
둘째, 그의 시에서 토박이말은 축약의 방식으로 나타난다. 이는 지역적 특성상 쉽게 의사전달이 용이하도록 하기 위해서 사용되었던 토박이말로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딸구비(굵고 거칠게 쏟아지는 비, 작달비「양지리 사람들」)에서 ‘딸’은 표준말 ‘따라-붓다’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으며 ‘아주 세게 따라 붓듯이 퍼붓는 비’라는 의미를 지닌다. 나란여(나란히 있는 여礖)에서는 ‘나란히’와 ‘여’의 합성어로 ‘히’가 탈락된 채 ‘나란’은 관형사의 형태로 명사인 ‘여’를 꾸며주는 형태로 형성되어 있다. 물숨여(떨어지거나 내뿜는 물의 힘을 지닌다는 의미의 礖)에서는 ‘물이 숨쉬는’와 ‘여’가 동등한 명사로 합성어 형태로 축약 방식이 나타난다. 그 밖의 다른 작품에 나타나는 토박이말에는 거는(거기에는)(「오수」)에서는 ‘겠’이 ‘것’으로 표현되는 탈락과 ‘거기’가 ‘거’로 축약이 나타난다.
셋째, 전혀 그 본래의 의미를 짐작할 수 없는 토박이말을 사용한 경우가 있다. 이에는 방질(그물을 잡아당기듯 던지는 행동) ‘신(상대방)걸에 사 륫’ 뿐이겠나. 세 모 떼(윷놀이의 도)로 잡는 섧은 만큼이나‘ 등에서도 ‘방질’ ‘신’ 은 전혀 원래의 뜻을 짐작할 수 없는 독특한 통영 지역 토박이말의 한 형태로 볼 수 있다. ‘굼턱 굼턱’은 ‘굽은 터⟶굽 터⟶굼터⟶굼턱’으로 ‘은’이 탈락되고 대표소리현상으로 ㅂ⟶ㅁ으로 변형되어 갔으며, ‘터’에서는 ‘ㄱ’이 첨가된 것으로 유추해 볼 수 있으며, 이는 이 지역의 지방색이 강하게 나타나는 토박이말로 바닷가의 갯바위의 구석구석의 모양새를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밖에도 그의 시집에는 원래의 뜻을 쉽게 짐작할 수 없는 토박이말을 사용한 경우가 나타난다. 이마배(아주 작은 배) 열래(긴 작대기, 삿대)(「찾았다, 1억4천만 년 전 내 안경알」)에서, ‘더품(거품)’ ‘대질리(그릇끼리 닿는 것)’(「바닷가 가을소리」)에서, 감풀다(거칠다)(「한여름 소나기」)에서, ‘닛살(파도결)’(「오수」)에서, 무중우(잠방이, 농번기에 허드레로 입는 바지 류의 옷)(「가실은」)에서는 가신(닿을 듯 말 듯)했구나(「리빙포인트」) 더우(겨우)(「달을 태우는 눈발」)에서는 원래 의미를 짐작할 수 없는 토박이말이 통영 지역에서 통용되고 있다.
넷째, 발음의 편이성을 위해서 자음자가 변형을 일으키는 경우와 모음자가 변형을 일으킨 경우를 들 수 있다. 예를 들어 ‘더품(거품)’ (「바닷가 가을소리」)에서는 초성 ‘ㄱ’이 ‘ㄷ’으로 변형되어 발음 되는 현상으로, 눈구정(눈구멍)(「한여름 소나기」)에서는 ‘멍’이 ‘녕’이나 ‘정’으로 변화된 모습을 보인다. 가실(가을「가실은」)은 통영 지역의 토박이말이기도 하지만 경남 타 지역을 비롯하여 강원도 지역에서도 사용되는 말이다. 가실(가을)은 어휘 형태에서 ‘ㅅ’ 음가의 역사적 변화는 ‘ㅅ ˃ ㅿ ˃ ㅇ’와 같다. 중세 국어에서 ‘ㅿ’으로 실현된 것은 대개 그 이전에 ‘ㅅ’ 음가를 가진다. 통영뿐만 아니라 부산 지역에서도 중세 국어 이전에 존재하였던 ‘ㅅ’ 음가를 가진 어휘 형이 그대로 존재한다. 또한 ‘파이야 파이로라(썩 별로 좋지 않다)는 의미의 ’파‘자는 마칠 파(罷)자에서 온 것으로 파장(罷場) 틀렸다는 의미로 사용되며, 이 역시 경상도 타 지역을 비롯하여 경북 동해안지역에서도 흔히 사용하는 지역 토박이말이다.
모음이 변형을 일으킨 경우에는, ‘엉딩이(엉덩이「우포늪」)’는 ‘덩’이 ‘이’를 닮아가는 ‘딩’의 모양을 취하고 있으며 이는 오디가 이 있노(어디가 있어)(「리빙포인트」)에서 ‘이’ 의 뒷 글자 ‘있노’에서 ‘있’을 닮아가는 형태로 취한다. 뿐이것나(뿐이겠냐)(「한여름 소나기」)에서는 ‘ㅅ’ ‘l’의 탈락 현상이 나타난다.
어느 날 정오 더우 잡는 화개 골 짬에
마악 굴러 온다 카이 수레바퀴들이
산을 밀며 되올라가던 햇덩이 하나를
귀고리 한 여자가 손짓으로 몰래 빼돌려
물레방앗간으로 웃으며 들어가는 거
아무도 안 봤다 카이 허지만 안다 카이 나는
<중략>
지금도 쌩쌩 살아서 차바퀴 없는 차가 벌써 수박밭 농막에 와서 자꾸만 방앗간 쪽을 흘금거리며 마시고 마시는 녹차… 은자* 알것다! 인자*는 말 안 해도 알것다!
-「산 수박냄새 나는 하동 땅」일부
인간은 언어로 사유하므로 흔히 언어는 살아 있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지역이나 사회의 정도에 따라 변화되고 사라지며 의미가 달리 변형되어 사용되기도 한다. 이러한 지역 토박이말을 시어로 사용하는 경우에는 그 지역의 지방색이 강하게 드러나므로 그 고장 사람들만의 결속력을 다지기도 하지만 타지방 사람의 경우에는, 인내심을 가지고 읽어야 하므로 공감대 형성에 있어서는 다소 불리하다. 하지만 적재적소에 꼭 알맞게 쓰인 지역 토박이말이라면 또 어휘가 갖는 시적 어감이나 분위기에 제대로 사용된 경우라면, 시를 읽는 재미를 더하게 된다.
위의 시에서는 더위를 일컫는 ‘더우’에서는 ‘l’생략의 방식으로 축약된 토박이말의 형태가 나타나고, 화개골 즈음을 뜻하는 ‘골 짬‘에서는 된소리 ' ㅉ '을 사용하여 화개골에 대한 의미를 강화하는 효과가 있다. 또한 ’온다니까‘를 의미하는 ‘온다 카이’ 안다는 의미를 강조하는 뜻으로 ‘안다카이’로 표현된 격음화 현상을 시용하여 ‘오거나 안다’는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또한 이제 혹은 지금의 의미를 뜻하거나 인자(仁者)의 의미로 사용된다는 ‘인자’를 통해서는 그 지역만의 발성법에 독창적 시어의 특성을 읽어낼 수 있다.
이렇게 그의 시에 사용된 토박이말은 통영이라는 지역적 공간 속에서 살아 숨 쉬는 화자의 생동성 강한 정서를 고스란히 드러내기 위한 방편으로 사용된다. 따라서 현장성을 지니고 향토적 서정성이 강한 지방색을 불러일으키면서 동시에 공동체적 의식을 공유한다는 충격을 가져오는 효과를 누릴 수 있다. 또한 시적 화자가 지니는 개성적 성격을 새롭게 구현해 나가는 장점도 지닌다. 그의 시에서 시어들은 바닷가를 배경으로 형성된 만큼, 투박하고 생략이 많은 언어의 특성을 지녔다. 사라져가는 토박이말들을 시어로 사용하는 부분은 매우 의미 깊은 일이고 정성과 노력이 들어가는 소중한 작업이라고 볼 수 있다.
2-2 길의 상징성
흔히 시에서 길은 다양한 상징성을 띤다. J. 쿠퍼의 상징어 사전에 따르면 통상 길은 시공과 주야를 초월하는 능력 정신과 영혼에 의해 초월되고 극복되는 현세적인 것을 극복하는 과정으로 본다. 또한 목적지가 없는 길은 순례자나 진정한 내면적 고향을 찾아나서는 여행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가는 걸음에 몇 마디 얹어본다. 피로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불빛을 찾아나서는 눈빛에 끼우도록 신신 당부한다. 몇 마디는 귀에 넣지 말고 친숙한 글씨이니 눈에 새겨 발걸음과 의논하면 저절로 먼 길은 오후의 긴 여름햇살 발걸음이 짧아지나니 보이지 않는 생소한 것들이 함께 나서면서 일러주는 방향을 잊어서는 안 된다. 사내웃음이라고 쩡쩡 소리치면 새들마저 숨어버린다. 다 얼리고 얼려서 저녁불빛을 먼저 찾아야한다. 마중하는 사람은 없나니 투정부리면 잠이 오지 않는다. 항상 발을 믿고 발을 씻어 반듯한 걸음으로 재촉하지 말고 온 길을 묻지 말고 눈웃음치면 먼저 꽃이 나서서 웃어 가름해 준다. 절대로 꺾지 말고 향기를 받아들여야 다음날 가는 길 가리키나니 걸어갈 수 있다. 확연하게 올 수 있다.
-「걸음에 몇 마디 부치나니 」전문
인간은 누구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옷차림 표정 말 등으로 자기만의 내면 심리를 밖으로 드러내 보인다. 즉, 마음과 정신력처럼 종종 타인에게는 전혀 드러나지 않는 부분들이 몸짓이나 표정 혹은 다른 무엇으로도 은연중 표현되기도 한다. 위의 시에서 이 점은 바로 ‘길'을 대하는 화자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다. 시에서 ’길‘은 화자에게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면서 나타나는 다양한 감정들 가운데 긍정성 등이 혼재되어 나타난다. ’발걸음과 의논하면 저절로 먼 길은 오후의 긴 여름햇살 발걸음이 짧아지나니 보이지 않는 생소한 것들이 함께 나서면서 일러주는 방향을 잊어서는 안 된다‘에서 보면 발걸음과 의논하면 먼 길도 짧아지기도 하고 잘 보이지 않던 것들이 앞서 나아갈 길을 일려주는 안내 표지판이 되기도 하므로 걸음을 걸을 때에는 매사에 살펴 걸어야 한다는 의미들을 담고 있다. 그리고 스스로가 선택하여 믿고 가는 길에 대해 확신하는 화자의 내면이 진솔하게 드러난다. 시의 화자는 길을 걸으면서 상념에 잠긴다. 사소한 여러 생각들을 스스로 정리하면서 걷는다. 그런데 그 길은 일상 속에서 걷는 길이 되기도 하지만, ‘마중하는 사람은 없나니 투정부리면 잠이 오지 않는다.’에서처럼 인생의 소소한 여정 속에서 일어날 법한 일이라는 의미를 담은 ‘길’의 상징성 속에 옮겨 놓기도 한다.
이와 유사한 ‘길’의 심상은「그래도 걸어야 보이네」에서도 읽을 수 있다. 이에서 ‘길’은 ‘새소리들이 해방될수록 나는 나의 걸음에서 자유로워지네.’ 화자가 ’어디를 향해 길을 걸어가든지 편안한 발걸음으로 걷는 화자와 만난다. 그렇지만 그 길은 ‘맨발이 웃어대는 길 따끔 따끔거리도록 하는 나를 잘 보이게 앞서서 날고 있네.’ 화자가 가식 없이 걷는 길이요 그러한 길을 걷다 보니 주변의 환경들은 비록 자신의 몸을 괴롭게 하더라도 그것은 궁극적으로는 화자에게 많은 도움을 주는 길을 내어 준다고 볼 수 있다. 그의 시에서 길은 일상에서의 걸음을 의미하거나 혹은 인생길을 의미한다.
어느 날 바다 해물전시장 입구에서
방명록에 서명하는 손 떨림 앞에
떨어지는 나비넥타이를 얼른 주어
뻣뻣한 목에 다시 거는 그 사람의 콧물
슬쩍 훔치는 내 눈물 보다 서투른 글씨네
쳐다본 이들은 왜 나를 보고 웃었을까
아무리 손발톱을 깎고 향수를 뿌려도
계단마다 밟히는 겨울 비린내 때문일까
-「해명」전문
우리는 인생이라는 길 위에 스스로의 발걸음을 묶고 가까이에서 서로를 바라보면서 살아 있다는 사실은 확인한다. 또, 길 위에서 마주치고 만나는 사람들을 통하여 사회의 부조리에 분개하기도 하고 아름다움에 감동하는 등 자신의 내면적 질서와 현실의 삶을 반추하며 재조정을 하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한 존재의 삶을 이해하거나 손수 체험하는 장소로서 ‘길’을 만들어 가면서 다양한 삶의 꿈을 만들고 실현한다. 위의 시에서는 인생의 무상함을 ‘길’로 표상한다. 길을 걷다가 방명록에 서명하는 나비넥타이를 한 사람을 보면서 자신의 모습을 반추한다. 인간의 삶을 4계절에 비유하여 4단계 가운데서 마지막 시간에 머물러 있는 자신의 삶이 뿜어내는 ‘겨울 비린내’에 대하여 표현한다. 자신이 맞이한 뒤늦은 삶의 시간들을 의미심장하게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하고 있다.
빛나는 유언장을 쓰는 것은
나무이파리들 몫이 아니네. 햇살들이네.
종이에 쓰듯 연필소리 내는
나의 발자국에서부터 그 속의 탄소알들이
지나간 길을 만나고 있네.
때론 마추픽추의 숨결에 살아있다는
잉카 라마의 눈에서 4만㎞는
나타나도 신의 발자국은 없네.
다만 새들은 그곳을 잘 알기 때문에 구태여
우리는 마감되는 입살(口煞)로 임종의
불안을 알아볼 필요 없네.
잘려나간 매듭은 이어지게 마련이네.
내 목도리도 버려진 근심에서 다시 돌아오는
바로 지금 햇살이 쓰는 편지 자네 읽어 보게.
-「문득, 햇살이 쓰는 편지 보다 」전문
셀리그만(2002)에 따르면 행복한 삶이란 긍정적 정서를 많이 경험하는 즐거운 삶(pleasant life), 즉 과거를 수용하고 ‘지금 이 순간’에 몰입하여 즐거움을 경험하는 것이라 한다. 그리고 개인의 장점을 바탕으로 자신의 일에 몰입하는 적극적인 삶(engaged life)이 있는데, 이는 자신이 선택한 활동에 열정적으로 참여하고 몰입하여 자신의 강점을 발휘하여 자기실현을 이루어가는 진정한 자기가 되는 느낌을 아는 것이다. 끝으로 자신에서 확장하여 가족 직장 사회를 위해 봉사하고 공헌하는 의미 있는 삶(meaningful life)을 드는데, 이는 자신보다 더 큰 범주의 삶과 행위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이에 봉사하고 공헌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존재가치를 느끼는 것이라고 한다.
위의 시에서 화자는 종이에 글을 쓰면 연필 자국 속에서 탄소알들이 지나간 길을 만나고 있다고 한다. 화자는 자신이 한 평생 살아온 시작(詩作)의 길을 그렇게 만나고 있다. 삶의 길목에서 긍정도 부정도 아닌 현재의 순간 속에서 햇살이 쓰고 있는 편지를 읽어보라고 한다. 가슴을 따뜻하게 만드는 것은 햇살 한줄기면 충분하고 따뜻한 햇살 한줌이 있어 얼마나 행복한지를 화자는 이미 다 알고 있다. 구체적이고 체험적인 삶에 기초한 섬세한 감각과 스스로의 내면을 다독이는 자의식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햇살은 화자의 시야에서 그냥 보내 버리지 않고 민감하게 받아들여 자신의 내면을 구축하는 내면과 외면의 상호 작용을 돕는 매개가 된다. 탄소알들이 지나간 길은 바로 화자 자신이 살아온 길과 유사한 의미맥락을 지니는 긍정적인 성향을 지니는 고마운 존재로 표상된다.
3. 자연을 소재로 내면적 서정성
3-1 불교적 가치관
그의 시에는 미륵이 자주 등장한다. 흔히 불교에서 말하는 미륵은 미래불로 석가모니가 열반에 든 후 56억 7천만년이 되면 도솔천에서 하생하는 보살을 미륵이라 한다. 이 미륵이 나타나면 세상에 가르침을 펼쳐 깨달음으로 경지에 들게 된다.(석가모니와 미륵의 경쟁담 2013) 미륵경은 팔만대장경과 선불가진 수어록 격암유록에 실린 내용 중 미륵불과 관련된 부분만을 발췌하여 만든 경전이다.
늘 내 어깨에 닿아 있는 바다에서 피어오르는
하얀 구름 불태우며 어딘가 있는 용화세계를
찾고 있어 벽발산 가섭존자가 미륵경 읽으며
오늘은 바다에 빠진 새소리 건져 올려 나무에
매달고 있어 비참한 바다혼백 부활을 위해 먼저
본래적 심과 함께 땅속 깊이 내려 설 수 있는
그 초능력을 터득하는 귓바퀴와 동거해온
풀꽃들의 이야기부터 신비스럽게 귀담아주며
조그마한 것도 만다라세계가 있다는,
나의 심오한 기대감을 감발한 채 내딛고 있는
지금까지 간작한 마그마 위로 뛰고 있는
원력으로 발원하는 탁발소리 용화기둥에 닿고 있어
<중략>
여섯 개의 용화기둥이 치솟아 미궁들이 수수께끼를
풀고 있어 나를 먼저 쳐다보고 윙크하지만…
더디더라도, 친숙한 길일수록 항상 더 내려서서
고개 숙이기만 하라고 윽박질러 에코 힐링 하는
로고스와 뒤섞은 파토스여 낯선 산봉우리 찾아
걸을수록 긴 그림자만 꿈틀거리는 애벌레여
-「트레킹, 미륵산」일부
‘용화세계’는 중생이 사는 사바세계를 벗어난 안락하고 행복한 삶이 보장되는 세계이다. 벽발산은 고성군 거류면과 통영 광도면을 경계로 삼은 산으로 마치 가섭존자가 벽발(바리때, 공양그릇)을 받쳐 든 모습과 같다하여 생긴 이름이다. 가섭존자는 부처님 12제자 중 최고의 두타(dhutanga)수행자로 존숭된다. 만다라 세계(Mandala 제불, 보살 신)를 총합한 만신전으로 우주적인 심리도이다. 상호공양과 상호예배의 세계가 부처의 법계, 우주의 본질을 의미한다. 즉 선 부처 우주의 일체성역 공간을 신성시 여긴다. 시의 화자는 ‘용화세계를 찾고 있어 벽발산 가섭존자가 미륵경 읽으며’ ‘조그마한 것도 만다라세계가 있다는’ ‘지금까지 간작한 마그마 위로......용화기둥에 닿고 있어’ ‘더디더라도 친숙한 길일수록 엎드린 하심으로 발원하나니’에서 그가 찾는 세계는 분명 중생의 세계를 벗어난 미륵이 사는 세계인 도화천으로 그 곳에 있는 용화수 아래에 미륵불이 하생한다고 해서 미륵부처를 모신 곳은 용화전이라고 한다.
화자 역시 그 세계를 찾기 위해 가섭존자처럼 미륵경을 읽고 또 작은 풀꽃 속에서도 만다라의 세계를 찾는다. 더디더라도 고개 숙이고자 하나 마음과는 달리 그렇지 못한 자신에 대해 마음을 내려놓는 연습을 하고 또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다. 잎사귀를 밟으며 산기슭을 오르는 화자는 길을 걸으면서 여러 감정을 느낀다. 발아래 집중하거나 혹은 길가의 불개미 정도에 정신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그래서 화자가 염원하는 곳에 오르고자 희망하므로 힘차게 정진한다. ‘신갈나무 이파리를 깔며 내 짚신 벗겨질수록 나를 달아오르게 불개미 몸짓은 가당찮다 뿐이겠어! 더 찰싹 붙이는 반복이 구불구불 길 보여주는 중심’에서 화자는 나무 잎사귀를 밟으며 산길을 오르면서 길이 가져다주는 다양하고 복합적인 감정들을 느끼게 된다. 자신의 발아래에 마음을 집중하거나 혹은 길가의 불개미 정도에는 정신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쉽지 않은 일념으로 산길을 오른다. 그래서 이 길은 화자에게는 스스로의 마음을 정복하는 길이고 오르기 위한 희망이 있는 힘찬 걸음이 된다. 화자에게 미륵세계는 긍정성을 부여하는 고마운 존재로서 상징된다.
식은 커피를 마시다 보는 찻잔 속에
고여 있는 어느 날 콱 막힌 산 기포가
일렁이나니 연이파리들로 흔들리는
미륵산 아래 용화사 해월루(海月樓) 연못
물방울들과 줄넘기 하다
안경알을 닦는 청개구리 한 놈
문고리 잠그듯이 지 눈 속으로 숨는
집달팽이 물바람 깃을 발끝으로
끌고 뛰고 있어 나 온몸마저 벗겨놓고
초저녁달 걸음걸이로 되러 부끄러워
덮어주듯 진흙탕을 씻어대고 있어
가피의 미소 다 주고도 남은 꽃밭 등
개펄 안 눈곱빼기만 한 것도 녹색 줄무늬
에, 올려놓고 있어 우리네 실핏줄마저
인드라 그물망에서 보도록 하고 있어
-「연꽃무늬」전문
미륵산 용화사는 신라 선덕여왕때 은점(恩霑) 스님이 창건한 남해 지역 최고의 미륵도량이다. 그중에서도 보광전은 경남 유형문화재 제249호로 용화권 해월루 해마루 등이 있다. 용화사를 중심으로 한려해상공원에는 한산 습득(거제) 보리암 앞에 세존도 미륵도 연화도 같은 불교 용어를 사용한 섬들이 더 있다. 「연꽃무늬」에서의 화자는 ‘가피의 미소 다 주고도 남은 꽃밭’이라 하여 가피를 마다한 꽃인 연꽃을 든다. 가피란 부처나 불보살들이 자비를 베풀어 모든 중생을 이롭게 하는 힘을 뜻한다. 기도나 원력을 이루도록 하는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불가사의한 힘을 부여하여 이익을 주는 한편, 중생의 신심이 부처에 감응되어 어울리는 것을 뜻한다. 그런 만큼 연꽃밭을 바라보는 화자의 시각은 섬세하고 남다르다. 또 ‘우리네 실핏줄마저 인드라 그물망에서 보도록 하고 있어’에서 인드라(Indra)는 인도의 신으로, 우주만물은 한 몸 한 생명이라는 가치관을 가진다. 이는 불교의 연기법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말로 불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잘 드러나는 부분이다. 마찬가지로 화자가 개펄의 작은 푸른 줄무늬조차도 놓치지 않고 바라보는 자연관 또한 이러한 불교적 가치관에 기인된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3-2 자연일체
노자에 따르면 도라는 우주의 본체는 가장 크고도 유일한 무극으로서 모든 삼라만상은 이 무극의 세계에서 생겨난다고 하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삶, 무위로 사는 것만이 인간을 구제한다고 보았다. 그는 자연적인 도를 절대적으로 강조하였으며, 감각적 인식과 편견에 사로잡힌 인간이 우주 만물을 상대적으로 인식하고, 인위적으로 가치를 판단하여 도와 자연으로부터 멀어졌으며 타고난 자연의 덕을 망각하였고, 그 결과 사회적 도덕적으로 쟁탈과 욕심이 생겨났다. 따라서 그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인간이 살아가야 할 삶이란 인위적 문화를 거부하고 자연 그대로의 모습과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며 살아가는데 있다.
지리산 중산리쯤 오르면서
귀에 익은 톱질소리‥ 아니
소낙비소리 밟고 몇 걸음 늦추면서
두 귀 막아 봐도 가름 안 되네.
눈으로는 가름이 어림없네. 분간도
아시기 굽 돌아 산 너울에 얼버무려
발 담그게 하네. 탁족 할수록 그 시린
물소리 더욱 깊어져 서글서글한 그대
찾아 나선 여기까지도 산 미역 씻는
청량한 그대로의 소리네.
그 음성 따라 어디서 스친 옷깃소리에
점잖게 쓰다듬는 하얀 수염이 닿는
웃음으로 등물 치며 등 밀어주는
생생한 그 목소리도 뜨뜻해서 정 드네.
-「지리산 물소리」전문
무위자연이란 꾸밈이 없이 자연에서 모든 백성으로 하여금 천지만물의 생성자인 도의 뜻을 체득하여 자연의 순리대로 따르며 살아가는 한다. 노자가 주장하는 자연무위에서 말하는 가장 인간다운 삶이란, 인간이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면서 살아가는 소박한 삶을 말한다. 시의 화자는 ‘소낙비소리 밟고 몇 걸음 늦추면서 두 귀 막아 봐도 가름 안 되네.’ 라고 하여 물소리의 소란함에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다. 하지만 곧 화자는 자연 본래의 모습대로 사는 것이 무위자연의 도와 겸손의 덕을 갖추는 것으로 여기게 되고 지리산의 물처럼 만물을 이롭게 하고 낮은 곳에 처하는 자세에 이를 수 있어야 비로소 덕에 이른다는 점을 알게 된다. ‘발 담그게 하네. 탁족 할수록 그 시린 물소리 더욱 깊어 서글서글한 그대’에서와 같이 화자는 결국은 지리산의 물소리와 또 계곡을 흘러내리는 물과 일체 되는 과정에서 안도감을 찾고 스스로 자연에 다가서면서 자연과 일체된다.
이렇듯 자연과 다투지 않고 귀하게 여기며, 자연은 늘 화자의 가까이 있어 준다는 것을 깨닫고 난 후에 마음의 혼란이 없어지게 된다. ‘두 귀 막아 봐도 가름 안 되네.’ ‘청량한 그대로의 소리네.’ ‘생생한 그 목소리도 뜨뜻해서 정 드네.’라고 하여 화자가 듣는 지리산 물의 목소리 즉 자연의 소리는 처음에는 두 귀를 막아도 들리는 다소의 부정적인 감정상태가 되지만 그 소리는 점점 화자의 귀에 생생하게 들려오고 급기야는 정이 들 정도로 화자와 가까워지고 있다. ‘그 음성 따라 어디서 스친 옷깃소리에 점잖게 쓰다듬는 하얀 수염이 닿는’에서는 계곡물이 흐르는 모양을 의인화하였으며 마치 점잖은 할아버지 대하듯 스스로는 유약하고 겸손하면서도 자기 존재를 다스리는 이상적인 삶을 살아가려는 모습에서 자연일체의 경지에 이르게 되는 화자와 만나게 된다.
설산에서도 끈질긴 힘줄들
히말라야산맥에서 백두대간으로 날아와
일천구백육십 미터에 칠십칠 센티미터로
치솟은 정수리 천왕봉에 내려앉는 봉황새
·일월란日月卵 품는 청삼靑衫 끝자락
책갈피 넘겨가듯 연방 물바람소리 일으켜
부연 끝으로 몰려오는 은어 떼들
등지느러미물살 난다 시원하게 새떼로
날수록 나는 산사들의 게송소리
들숨*으로 그대로 내맡기면 통쾌한
통천문 개천문 볼수록 물구나무로 서는
장엄한 하늘기둥〔天柱〕 꼭대기로
산천을 끌어 올리는 내 날갯짓…
- 「지리산」전문
노자에 따르면 ‘도는 늘 함이 없으면서도 하지 아니함이 없다’(道常無爲 而無不爲 /37장)고 하여 가식이나 위선에서 벗어나 억지로 무엇을 하지 않으며 본래의 자신의 모습으로 소박하게 살아가기를 바란다. 위의 시 가운데 ‘일월란日月卵 품는 청삼靑衫 끝자락 ...... 하늘기둥〔天柱〕 꼭대기로 …’에서는 마치 지리산이 청삼자락을 걸친 큰 어른으로 여기며, 그 옷자락을 때로는 책갈피처럼 넘긴다고 표현한다. 지리산의 장엄한 풍광은 하늘의 기둥을 연상케 하여 그 하늘 꼭대기로 산천을 끌어올리는 대범함마저 보인다. 자연의 어떤 미물이라도 하잖게 여기지 않고 인간과 마찬가지로 동등한 생명을 지니는 고귀한 존재로 여기며 현실의 모든 존재들을 평등하게 생각하고 있다.
이러한 사상은 노자사상에 기인된 것으로 자신을 현실과 초월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조화로운 삶을 추구하려는 모습으로도 볼 수 있다. 또 산천을 끌어 올리는 내 날갯짓에서 현재의 삶 속에서 자신의 삶의 자리를 소멸시키고 집착에서 벗어나는 초월적 삶을 택하여 자연과의 합일 조화로움을 꾀하려는 몸짓으로 나타난다. 그의 시에서 자연은 높고 낮음이 없고 서로 대립하여 싸우는 것이 없이 모든 것을 초월해서 경지에 도달하기 위한 노력에서 나올 수 있다.
스스로 자란 파란풀밭에서
펄럭이는 자유를 보네
빽빽이 들어서 있는 측백나무
편백나무 참나무 숲에서도 자주
만나는 편안함을 안겨주네.
뭉게구름이 탁 트인
수평선 위로 한 마리 참수리로
날아오르네. 귀 아래는 물소리가
반짝이네. 새소리 겹쳐지면서
나를 부르고 또 손짓하네.
파랑들이 씻어대는 몽돌해안을
휘돌아 나무 둥치를 껴안는
풍만함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네.
마음 비움으로 나를 만져보네.
느림에서 자유의 날개를 보네.
빛나는 땀방울 거울에서 그대 보네.
- 「힐링, 자유」
노자는 작위 없는 그대로의 자연이란 스스로 자유자재하고 무엇에도 의존하지 않는 정신의 독립으로, 사물과 실상의 합일로 얻어지는 정신적 원만성을 일컫는다. 또 무엇을 하지 않는 그 삶이 바로 무위자연의 삶이자 혼란한 자신을 정화하고 자연스러움을 회복하는 방식으로 본다. 위의 시에서 화자는 ‘파랑들이 씻어대는 몽돌해안을 휘돌아 나무 둥치를 껴안는 풍만함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네. 마음 비움으로 나를 만져보.’는 과정에서 자연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그 과정에서 자연과 일체되는 절대적 도리에 따르려고 노력하는 점을 알 수 있다.
또한 속세의 삶에 대한 갈망을 파랑에 씻어내고 세상의 모든 욕망 또한 몽돌해안을 휘돌며 스스로의 마음을 비워버리려는 화자는 세상의 어느 것에도 구애되지 않고 자신마저 비워내고 스스로에게서조차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려는 현실에 대한 관조나 초월을 만끽하는 모습이 나타난다. 욕심을 버리고 지혜마저도 버리는 경지에 이르러 진정한 자유로운 정신과 행복을 추구할 수 있으므로 자연과 일체되고 그러한 삶 속에 무위자연을 꿈꾸는 자세는 행복한 삶의 척도를 가늠한다고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그의 시에서는 통영이라는 지역성은 시인의 내면에서 깊이 우러난 본래적 서정성과 결합되어 있다. 다양한 삶의 외적인 요인을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과정에서 부단히 시를 다듬은 그의 노력은 그만의 고유한 정서를 불러일으킨다. 어떤 현상도 외면하지 않고 시인의 눈에 선별적으로 사물을 선택하여 자신만의 감각적이며 개성 있는 섬세함으로 시화한 결과물이 바로 그의 시이다. 햇살 한줄기마저도 순간적으로 포착하는가 하면 보편타당한 공감대를 이끌어내고, 감각적 보편화를 이끌어낸다. 결국 그의 시는 고유한 서정성이 지적 추상성에 포착되어 더욱 풍부하고 분명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통영은 시 속에서 표출된 삶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 시의 현실 속에서 다양하게 묘사되고 있다. 이는 시인의 부단한 노력이 전제되어야 가능하며, 이러한 노력들은 차후 시인 자신뿐만 아니라 그가 속한 세계도 변화시킬 만큼 끊임없이 강화되리라 생각된다.
그의 시에서 표출된 지역적 서정성은 그가 속한 시대 현실을 철저히 반영하고 있으며 스스로의 개성적인 성향 또한 일상적 삶 속에서 실천하고 있다. 한편, 이러한 서정성은 뿌리 깊은 시적 잠재력에 접목되어 내면 깊이 숨어 있는 자의식을 뿜어내고 일상과 관련된 정신적 충족감으로 만족시킨다. 나아가 그가 속한 사회 집단과의 인간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공통된 통일성을 드러내는 지평의 확장을 시도하고 있다. 앞서 언급된 그의 시에서 표출된 대표적 정서는 어떤 시류에도 편승되지 않은 채 자신만의 삶의 기준과 자신이 처한 현실의 잣대로 스스로를 자리 매김한 총체적 서정성으로 발현되며, 이는 통영의 시인인 그의 내면에서 솟구친 독특한 시적 아우라를 형성하고 있다.
첫댓글 다음에 들어와서 찬찬히 다시 들여다봐야겠어요..열공모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