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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상속자 경(M3) Dhammadāyāda Sutta
- 대림스님 옮김 『맛지마니까야』 제1권 193-202쪽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싸밧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원림(급고독원)에 머무셨다.
거기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이여”라고 비구들을 부르셨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응답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내 법의 상속자가 되지 재물의 상속자가 되지 마라. (*1)
나는 그대들에 대한 연민이 생겨서 ‘어떻게 나의 제자들이 재물의 상속자가 아니라 법의 상속자가 될까?’라는 생각을 했다.
비구들이여, 만일 그대들이 내 법의 상속자가 되지 못하고 재물의 상속자가 된다면 그대들은 그 때문에 ‘스승의 제자들은 법의 상속자가 아니라 재물의 상속자로 머문다.’라는 비난을 받을 것이다.
나도 역시 그 때문에 ‘스승의 제자들은 법의 상속자가 아니라 재물의 상속자로 머문다.’라는 비난을 받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만일 그대들이 재물의 상속자가 아니라 내 법의 상속자가 된다면 그 때문에 그대들은 ‘스승의 제자들은 법의 상속자이지 재물의 상속자로 머물지 않는다.’라고 비난을 받지 않을 것이다.
나도 역시 그 때문에 ‘스승의 제자들은 법의 상속자이지 재물의 상속자로 머물지 않는다.’라고 비난을 받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대들은 내 법의 상속자가 되지 재물의 상속자가 되지 마라.
나는 그대들에 대한 연민이 생겨서 ‘어떻게 나의 제자들이 재물의 상속자가 아니라 법의 상속자가 될까?’라는 생각을 했다.
3. 비구들이여, 만약 내가 공양하여 먹을 만큼 충분히 먹고 끝내어서 원하는 만큼 배불리 먹었는데 음식이 남아서 버리려고 할 때,
그때 배고프고 기운 없는 두 비구가 왔다하자. 그들에게 나는 말할 것이다.
‘비구들이여, 나는 공양하여 먹을 만큼 충분히 먹고 끝내어서 원하는 만큼 배불리 먹었는데 음식이 남아서 버리려고 했다.
만일 그대들이 원한다면 먹도록 하라. 만일 먹지 않는다면 나는 이제 자라는 풀이 없는 곳에 버리거나 생물이 없는 물에 던져버릴 것이다.’
그러자 한 비구는 이렇게 생각했다.
‘세존께서 공양하여 드실 만큼 충분히 드시고 끝내시어 원하는 만큼 배불리 드셨다.
그런데 세존의 음식이 남아서 버리게 되었다.
만일 내가 먹지 않는다면 세존께서는 지금 자라는 풀이 없는 곳에 버리시거나 생물이 없는 물에 던져버리실 것이다.
그러나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내 법의 상속자가 되어라. 재물의 상속자가 되지 마라.’라고.
그러나 이 음식은 일종의 재물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 음식을 먹는 대신 배고프고 기운 없는 상태로 이 밤과 낮을 보내리라.’
그는 그 음식을 먹는 대신 배고프고 기운 없는 상태로 그 밤과 낮을 보내었다.
두 번째의 비구는 이렇게 생각했다.
‘세존께서 공양하여 드실 만큼 충분히 드시고 끝내시어 원하는 만큼 배불리 드셨다.
그런데 세존의 음식이 남아서 버리게 되었다. 만일 내가 먹지 않는다면 세존께서는 지금 자라는 풀이 없는 곳에 버리시거나 생물이 없는 물에 던져버리실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 음식을 먹고 배고픔과 기운 없음을 떨쳐버리고 이 밤과 낮을 보내리라’.
그는 그 음식을 먹고 배고픔과 기운 없음을 떨쳐버리고 이 밤과 낮을 보내었다.
비구들이여, 비록 그 비구가 그 음식을 먹고 배고픔과 기운 없음을 떨쳐버리고 이 밤과 낮을 잘 보냈다 하더라도
나는 처음의 비구를 더 존중하고 칭송한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비구들이여, 그 비구는 오랜 세월 소욕하고 지족하고 [오염원들을] 지워 없애고 공양하기 쉽고 열심히 정진할 것이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그대들은 내 법의 상속자가 되지 재물의 상속자가 되지 마라.
나는 그대들에 대한 연민이 생겨 ‘어떻게 나의 제자들이 법의 상속자가 되고, 재물의 상속자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4.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선서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원림(園林)으로 들어가셨다.
세존께서 떠나신 지 얼마 되지 않아 사리뿟따 존자가 "도반 비구들이여"라고. 비구들을 불렀다.
“도반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사리뿟따 존자에게 응답했다. 사리뿟따 존자는 이렇게 말했다.
5. “도반들이여,
어떻게 하는 것이 스승께서 끊임없이 한거(閑居, pavivitta)하여(*2) 머무실 때 제자들이 한거를 따라 공부짓지 않는 것이며,
어떻게 하는 것이 스승께서 끊임없이 한거(閑居)하여 머무실 때 제자들이 한거를 따라 공부짓는 것입니까?”
“도반이시여, 우리는 이런 말씀의 뜻을 알기 위해서라면 멀리서라도 사리뿟따존자의 곁으로 올 것입니다.
그러니 사리뿟따 존자가 직접 이 말씀의 뜻을 설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비구들은 사리뿟따 존자로부터 듣고 잘 호지할 것입니다.”
“도반들이여, 그렇다면 듣고 마음에 잘 잡도리하십시오. 설할 것입니다.”
“그러겠습니다. 도반이시여.”라고 그 비구들은 사리뿟따 존자에게 대답했다. 사리뿟따 존자는 이렇게 말했다.
6. “도반들이여, 어떻게 하는 것이
스승께서 끊임없이 한거하여 머무실 때 제자들이 한거를 따라서 공부짓지 않는 것(*3) 입니까?
여기 스승께서 끊임없이 한거하여 머무실 때 제자들이 한거를 따라 공부짓지 않습니다.
스승께서 버려야한다고 설한 법들(*4) 을 버리지 않습니다.(*5)
그들은 사치스럽고 부주의하며 퇴보에 앞장서고 한거를 멀리 내팽개쳐버립니다.(*6)
도반들이여, 여기에 대해 장로 비구들은 세 가지 이유로 비난받아야 합니다.
스승께서 끊임없이 한거하여 머무실 때 제자들이 한거를 따라 공부짓지 않는
이 첫 번째 이유로 장로비구들은 비난받아야 합니다.
스승께서 버려야한다고 설한 법들을 버리지 않는
이 두 번째 이유로 장로비구들은 비난받아야 합니다.
사치스럽고 부주의하며 퇴보에 앞장서고 한거를 멀리 내팽개쳐버린
이 세 번째 이유로 장로비구들은 비난받아야 합니다.
도반들이여, 여기에 대해 중진 비구들은 세 가지 이유로 비난받아야 합니다.
스승께서 끊임없이 한거하여 머무실 때 제자들이 한거를 따라 공부짓지 않는 이 첫 번째 이유로 중진비구들은 비난받아야 합니다. 스승께서 버려야한다고 설한 법들을 버리지 않는 이 두 번째 이유로 중진비구들은 비난받아야 합니다. 사치스럽고 부주의하며 퇴보에 앞장서고 한거를 멀리 내팽개쳐버린 이 세 번째 이유로 중진비구들은 비난받아야 합니다.
도반들이여, 여기에 대해 신참 비구들은 세 가지 이유로 비난받아야 합니다.
스승께서 끊임없이 한거하여 머무실 때 제자들이 한거를 따라 공부짓지 않는 이 첫 번째 이유로 신참 비구들은 비난받아야 합니다. 스승께서 버려야한다고 설한 법들을 버리지 않는 이 두 번째 이유로 신참 비구들은 비난받아야 합니다. 사치스럽고 부주의하며 퇴보에 앞장서고 한거를 멀리 내팽개쳐버린 이 세 번째 이유로 신참 비구들은 비난받아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스승께서 끊임없이 한거하여 머무실 때 제자들이 한거를 따라 공부짓지 않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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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 법의 상속자가 되지 재물의 상속자가 되지 마라.’라고 하셨다.
법(dhamma)과 재물(āmisa)에는 각각 두 종류가 있다. 비방편적인 것과 방편적인 것이다.
[네 가지] 도와 [네 가지과]과와 열반으로 분류되는 9가지 출세간법은 비방편적인 법이다.
어떤 이유나 핑계가 붙지 않는 법이다.
윤회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면서 보시를 하고 계를 지키고, 포살을 준수하고, 법을 듣고,
禪의 증득을 일으키는 등을 하면서 서서히 비방편적인 열반을 얻는 것이 방편적인 법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옷 등 네 가지 필수품은 비방편적인 재물이다. 어떤 이유나 핑계가 붙지 않는 재물이다.
윤회하기를 바라고 성취를 바라면서 보시하고, 계를 지키고, 포살을 준수하고, 법을 듣고,
禪의 증득을 일으키는 등을 하면서 서서히 천상과 인간의 성취를 얻는 것이 방편적인 재물이다.”(MA.ⅰ.189)
(*2) ‘끊임없이 한거(閑居)하여’는 pavivitta를 옮긴 것이다. (MA.ⅰ.101)
pavivitta = adj. 1) 멀리 떨어진, 2) 홀로 있는, 독거하는, 한거하는, 3) 한적한, 고독한
주석서에 의하면 스승께서는 세 가지로부터 한거하여 머무신다.
세 가지는 몸과 마음과 재생의 근거로부터의 한거(kāya-citta- upadhi-viveka)이다.(MA.ⅰ.100)
스승께서 이처럼 세 가지로부터 한거하여 머무실 때 제자도 이 세 가지 가운데 어떤 한 가지라도 따라서 공부짓는지,
아니면 단지 재물의 상속자(āmisa-dāyāda)만 되고 마는지에 대해서 사리뿟따 존자는 여기서 비구들에게 묻고 있다.
(*3) “'한거를 따라서 공부짓지 않는 것’은 [몸과 마음과 재생의 근거로부터의 한거라는]
세 가지 한거(viveka) 가운데서 몸으로부터의 한거를 공부짓지 않는 것이다.
즉 충족하지 않는다는 말이다.”(MA.ⅰ.101)
(*4) “‘스승께서 버려야한다고 설한 법들’은 탐욕 등의 법을 말한다.”(MA.ⅰ.101)
(*5) “버려야 한다고 설하신 법들을 버리지 않음‘은 마음으로부터의 한거를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MA.ⅰ.101)
(*6) “‘사치스럽고 부주의한 것’ 등은 재생의 근거로부터의 한거를 행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
여기서 ‘사치스러운 것’은 옷 등에 사치스러운 것이고,
‘부주의한 것’은 교법에 태만한 것이고,
‘퇴보에 앞장서는 것’은 쇠퇴한다는 뜻에서의 다섯 가지 장애를 말한다. 그러므로 다섯 가지 장애에 앞장선다는 말이다.
‘한거를 멀리 내팽개쳐버린’에서 ‘한거’란 재생의 근거로부터의 한거인 열반을 말한다.”(MA.ⅰ.101)
7. “도반들이여, 어떻게 하는 것이 스승께서 끊임없이 한거하여 머무실 때 제자들이 한거를 따라서 공부짓는 것입니까?
여기 스승께서 끊임없이 한거하여 머무실 때 제자들이 한거를 따라 공부짓습니다.
스승께서 버려야한다고 설한 법들을 버립니다.
그들은 사치스럽지 않고 부주의하지 않으며 퇴보를 멀리하고 한거에 솔선수범합니다.
도반들이여, 여기에 대해 장로 비구들은 세 가지 이유로 칭송받아야 합니다.
스승께서 끊임없이 한거하여 머무실 때 제자들이 한거를 따라 공부짓는 이 첫 번째 이유로 장로비구들은 칭송받아야 합니다.
스승께서 버려야한다고 설한 법들을 버리는 이 두 번째 이유로 장로비구들은 칭송받아야 합니다.
사치스럽지 않고 부주의하지 않으며 퇴보를 멀리하고 한거에 솔선수범하는 이 세 번째 이유로 장로비구들은 칭찬받아야 합니다.
도반들이여, 여기에 대해 중진 비구들은 … (중략)
도반들이여, 여기에 대해 신참 비구들은 세 가지 이유로 칭송받아야 합니다.
스승께서 끊임없이 한거하여 머무실 때 제자들이 한거를 따라 공부짓는 이 첫 번째 이유로 신참비구들은 칭송받아야 합니다.
스승께서 버려야한다고 설한 법들을 버리는 이 두 번째 이유로 신참비구들은 칭송받아야 합니다.
사치스럽지 않고 부주의하지 않으며 퇴보를 멀리하고 한거에 솔선수범하는 이 세 번째 이유로 신참비구들은 칭송받아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스승께서 끊임없이 한거하여 머무실 때 제자들이 한거를 따라 공부짓는 것입니다.”
8. “도반들이여, 여기 탐욕도 나쁘고, 성냄도 나쁩니다.
탐욕도 버리고 성냄도 버리기 위해 중도(中道)(*7)가 있습니다.
그것은 안목을 만들고 지혜를 만들며 고요함으로 인도하고,
최상의 지혜로 (*8) 인도하고 바른 깨달음으로 인도하고, 열반으로 인도합니다.
도반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안목을 만들고 지혜를 만들며, 고요함으로 인도하고,
최상의 지혜로 인도하고 바른 깨달음으로 인도하고, 열반으로 인도하는 중도입니까?
그것은 바로 이 성스러운 팔정도[八支聖道] (*9)이니
즉 바른 견해[正見], 바른 사유[正思惟], 바른 말[正語], 바른 행위[正業], 바른 생계[正命],
바른 정진[正精進], 바른 마음챙김[正念], 바른 삼매[正定]입니다.(*10)
도반들이여, 이것이 중도이니 그것은 안목을 만들고 지혜를 만들며 고요함으로 인도하고,
최상의 지혜로 인도하고 바른 깨달음으로 인도하고, 열반으로 인도합니다.”
9~15 “도반들이여, 여기 분노도 나쁘고, 적의도 나쁩니다. ...
모욕도 나쁘고 얕봄도 나쁩니다. …
질투도 나쁘고 인색도 나쁩니다. …
속임수도 나쁘고 사기도 나쁩니다. …
완고함도 나쁘고 뻔뻔스러움도 나쁩니다. …
자만도 나쁘고 거만도 나쁩니다. …
허영도 나쁘고 방일도 나쁩니다.(*11)
허영도 버리고 방일도 버리기 위해 중도(中道)가 있습니다. 그것은 안목을 만들고 지혜를 만들며 고요함으로 인도하고,
최상의 지혜로 인도하고 바른 깨달음으로 인도하고, 열반으로 인도합니다.
도반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안목을 만들고 지혜를 만들며, 고요함으로 인도하고, 최상의 지혜로 인도하고
바른 깨달음으로 인도하고, 열반으로 인도하는 중도입니까?
그것은 바로 이 성스러운 팔정도[八支聖道]이니 즉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챙김, 바른 삼매입니다.
도반들이여, 이것이 중도이니 안목을 만들고 지혜를 만들며 고요함으로 인도하고,
최상의 지혜로 인도하고 바른 깨달음으로 인도하고, 열반으로 인도합니다.”
사리뿟따 존자는 이와 같이 설했다.
그 비구들은 흡족한 마음으로 싸리뿟따 존자의 설법을 크게 기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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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탐욕(lobha)도 하나의 극단(eka anta)이고 성냄(dosa)도 하나의 극단이라고 생각하면서
이 양극단(dve anta)에 다가가지 않고, 접근하지 않고, 이 양극단으로부터 벗어나기 때문에
‘중도(中道, majjhimā paṭipadā)’라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쾌락에 빠지는 것(kama-sukhalika-anuyoga)도 하나의 극단이고
자기 학대에 빠지는 것(atta-kilamatha-anuyoga)도 하나의 극단이고,
상견(sassata)도 하나의 극단이고 단견(uccheda)도 하나의 극단이라고
이전에 설한 방법에 따라서도 알아야 한다.“(MA.ⅰ.104)
(*8) ‘최상의 지혜’로 옮긴 원어는 abhiññā이다. 니까야에서 abhiññā는 두 가지로 쓰인다.
첫째는 동명사abhiññāya의 축약된 형태이고, 둘째는 육신통(六神通)을 뜻하는 명사이다.
첫째의 동명사abhiññāya는 초기경의 여러곳에서 정형구로 나타나는
“바로 지금 · 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문다.” (「범망경」 (D1)§1.28)를 들 수 있다.
주석서는 abhiññā를 특별한 지혜라고 설명하기도 하고, 뛰어난 지혜로 안 뒤에 라고도 설명한다.
둘째, 명사 abhiññā는 『청정도론』 『아비담마길라잡이』에서는 초월지나 신통지로 옮겼다.
주로 육신통을 나타내는 문맥에서 사용되기 때문이다. 본서에서는 대부분‘최상의 지혜’로 옮기고 있다.
(*9) ‘성스러운 팔정도[八支聖道]’는 ariya aṭṭhaṅgika magga를 옮긴 것이다.
이것을 직역하면 ‘성스러운( ariya) 여덟 가지 구성요소를 가진(aṭṭhaṅgika) 도(magga)’가 된다.
(*10) 여기서 보듯이 중도는 팔정도이다.
법의 상속자를 설하는 본경에서 사리뿟따 존자가 중도인 팔정도로 본 경의 결론을 맺고 있다는 것은
팔정도를 실천하는 자야말로 진정한 부처님의 법의 상속자라고 천명하는 것이다.
(*11) 이상으로 본경 §§8~15에서 언급되는 탐욕과 성냄부터 허영과 방일까지 모두 16개의 오염원들이 나타난다.
중도가 이들을 모두 버리기 위해 있다. 이들의 원어는 다음과 같다.
탐욕(lobha), 성냄(dosa), 분노(kodha) 적의(upanāha), 모욕(makkha), 얕봄(paḷāsa),
질투(issa), 인색(macchariya), 속임수(māya), 사기(sāṭheyya), 완고함(thambha), 뻔뻔스러움(sārambha),
자만(māna), 거만(atimāna), 허영(mada), 방일(pamāda).
법의 상속자 경(M3)이 끝났다.
대림스님 옮김 『맛지마니까야』 제1권 193-20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