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가까운 묘소에 음력 10월 묘사 지내면 마을 아이들이 대거 몰려들었다. 묘사 음복 상 받으러 모여든 손님이다. 지금은 성묘 벌초 때 묘사 대신 술잔 올려 배례하는 방법으로 묘사 제례 행사가 바뀌는 듯하다. 옛날에는 쌀과 떡이 귀하고 기호성 별미로 즐겨 먹은 음식이다. 묘사에 차린 떡은 후손이 아니라도 가까이서 자기 일하는 사람에게도 대접하던 풍속이었다. 산소 묘사 행사를 마치고 묘소 옆에 나무하는 나무꾼에게도 준다. 떡과 실과를 나는 어른 심부름으로 가져다드린 경험이 생각난다. 물론 나무꾼이 달라고 조르는 일 없어도 드려야 하는 관례였다. 이웃집에도 묘사 차린 음식을 나누는 대접 풍속이다.
마을 주변 묘소는 어린이들이 모여들기 마련이다. 아기를 업은 아이도 있다. 아기를 업은 사람은 아기 몫까지 챙겨주는 관행의 풍경이다. 많은 어린이를 차별하지 않고 대접하는 정성도 어렵던 시절의 미풍양속이다. 한 사람이라도 빠뜨리지 않고 고루 대접해야 했다. 현재 80대 이전 농촌 사람들은 보고 느낀 모습이고 생활 풍경이다. 당시에는 배가 고픈 시절이고 과자나 군것질거리도 부족했다. 지나간 세월의 가난한 생활에서 살아왔던 모습이었다.
아무리 가난하고 배고픈 시절이라도 남의 사정부터 먼저 살피는 배려하는 정신은 지금도 배워야 할 마음 자세다. 한국전쟁 직후 자주 오는 거지들에게 밥을 덜어주는 주부 밥그릇은 절반으로 줄어드는 때가 허다하다. 그래도 불평 한마디 없는 표정이 부처님 예수님 마음의 아주머니다. 배에서 꼬르륵 줄인 비명의 소리 지르면 맹물만 한 그릇 더 마신다. 너그러운 모습은 우리나라 어렵던 시절의 여인상이다.
세월이 곡물 부족 시대를 겪게 되어 나라도 흉년 기근을 최악 대처로 별도의 방법이 없었다. 가장 아름답게 보인 풍경은 십시일반 나누어 베풀고 견디는 인정의 모습이다. 이웃끼리 나물밥도 자기 집에서 같이 먹자는 너그러운 인정 표현은 눈물겹다. 이웃사촌 서로 도우려는 마음들이 자아내는 표현은 우리 겨레의 보물로 여겨진다.
현재 국가 남북 분단도 부족해 보수와 진보로 갈라 세워 겨레끼리 서로 잡아먹기로 싸움질이다. 맹수처럼 변하는 정치 행태가 오히려 불행을 자초한다. 정치인들 권력자 호강 넘치는 시대보다 배고픈 시절 인정이 더 그리워진다. 주부 밥그릇 비워도 거지 보호하던 어진 인정 베풂을 잊을 수 없다. 내 탓이라는 말이 다시 되새겨진다. 상대의 허물 찾기 전에 내가 해야 할 사명감이 아쉽다. (글 : 박용 20250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