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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람의 향기
서옹 상순대종사 1주기 추모집
대한불교조계종 고불총림 백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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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람의 향기
제2장 선과 현대사상
21. 조사선이 인류를 구제할 수 있다
(대담 공종원 조선일보 논설위원)
< 임제선을 통해 참 나를 찾자 >
불교 조계종의 5대 종정을 역임하고
지금은 백양사 운문선원의 조실로
후학제접에 여념이 없는
서옹 큰스님을
서울 상도동에 위치한
백운암으로 찾아 법음을 청했다.
불교춘추가
시리즈로 기획한 인물집중 인터뷰의 첫 번째로
노선사의 수행생활과 일상은 물론
깨달음의 자취와 살면서 보고 듣고 느낀 바,
심지어 평생의 실수까지도
가리지 않고 듣는 자리였다.
조사선의 법통인 임제선을
오늘에 되살리고 있는 큰스님의 가르침은
우리 한국불교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주고 있다.
이날 대담은
공종원(조선일보 논설위원)씨와
3시간에 걸쳐 진행되었으며,
특히 큰스님은
이날 자신의 인간적인 면모를
밝혀 들려주었는가 하면
일생의 화두로 삼고 있는
조사선의 가풍인
임제선의 돈오돈수 사상을 집중 거론하였다.
서옹 큰스님은
임제선을 통해 대자유인의 영성을 참구하여
오직 무위진인(無位眞人)인
참나를 깨달아야만 한다고 말씀하고 있다.
<편집자 주>
< 오늘날은 인류 역사상 가장 혼란기 >
- 요즘 눈은 괜찮으세요.
▽ 눈은 밝은 편이예요.
찌르는 것이 있어서
한 달에 한번 속눈썹을 뽑지요.
또 어깨, 무릎에 관절염이 있어요.
- 연세가 높으신 분은 대개 그런 고통이 있지요.
▽ 대개 있나 봐요.
- 약을 드십니까?
▽ 약을 먹으니 훨씬 부드러워요.
- 운동은 자주 하세요.
▽ 아프다고,
귀찮다고 누워 버리면 안 되겠어요.
그래서
한 20분 정도 산책을 합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간단한 운동을 하고,
그게 건강에 퍽 좋아요.
- 연세가 드셔도 운동을 하셔야 되지요.
▽ 그냥 드러누우면
영 드러누워 버릴 것 같아서
되도록 운동을 합니다.
이제 여든넷이거든요.
- 제가 8년 전에
백양사에 가서 스님을 뵌 적이 있습니다.
하루 종일 인터뷰 하지 않았습니까?
하루 종일 대화하시느라고 고생 많이 하셨지요.
▽ 나는 얘기 잘 못하는 사람인데
얘기 잘하는 사람을 만나서 혼났지.
- 그때는 정정하셨어요.
웬만한 사람은 지쳐서 말씀을 잘 못하거든요.
▽ 그때는 기운이 좋았어요.
- 8년이 지나 연세가 더 드셨지만
또 들으니
요즘 독감을 몹시 앓으셨다는데
기색은 좋아 보이십니다.
▽ 지금은 편안하니까 얼굴이 좋아졌어요.
- 여기 오신지 꽤 되신 것 같은데
또 내려 가셔야지요.
▽ 또 내력가야 됩니다.
늘 백양사 운문선방에서 지냅니다.
혹 병원에 올라오지요.
이번에는 일본 갔다 오는 길에 여기 들렸지요.
- 일본은 어디 갔다가 오셨습니까?
▽ 경도, 대판
- 그럼 거기하고
이번에 큰 지진이 난 고베가 가깝지 않습니까?
▽ 그래도 거기는 안전했어요.
어쨌든지 인류 역사상
지금이 제일 혼란기일 것이에요.
- 천재지변이 많습니다.
유럽에는 홍수 때문에
그리고, 일본은 지진 때문에,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가뭄 때문에 식수가 어렵지요.
아랫 지방에는 공장 가동도 어렵답니다.
어째서 천재지변이 많이 일어날까
세계 도처에서 의론이 분분합니다.
▽ 인류 역사상 가장 타락한 때 일거예요,
- 인간적으로도 타락했지만
너무 잘 살려고 발버둥 치다 보니까
환경파괴가 심한 것입니다.
▽ 이대로 가다가는 생물이 다 죽게 되지요.
그러니까
인간 역사에 수렵시대가 있지 않습니까.
수렵만 하고 지낼 때는
겨우 자기 먹을 것만 구해서 살았거든요.
그러니 욕심이란 없지.
중국에서도 자연주의자인 노자, 장자는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했지요.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은
욕심 없이 사는 것이니까
질서가 그대로 유지되고 자연스럽게 사니까
평화가 되거든요.
그렇다고
원시로 돌아갈 수는 없는데,
원시적이면서 이상적으로
인간이 자연의 성품을 살려서 살자는
정신만은 중요합니다.
원래 그런 생각이었는데
딴 관점에서 보면 옛날에도 결국은
수렵, 채집하고 살다가 사람이 많아지고 하니
사람은 좀 더 저축도 하고 싶고
편하고 싶어 하게 되었다고 봅니다.
지금으로부터 만 이천년 전에
농사짓는 것을 개발했거든요.
농사짓는 것을 개발하니까
농사지으면 생산품이 많아지잖아요.
또 목축을 시작했거든요.
솜, 말, 돼지, 양 여러 가지 목축을 하니
먹을 것이 풍부하고
소를 부리고 말을 부리니 편리하잖아요.
수렵시대와 달이 도회지를 형성하고
국가도 형성하고
물품을 많이 쌓아놓고 살고 그러니까
욕심이 많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니 전쟁도 하고 약탈도 하고 살인, 강도가 납니다.
혼란이 오거든요.
지금으로부터 2천5백 년 전
부처님이 나오시고
공자가 나오고 소크라테스가 나오고
그렇게 혼란할 때에도 성인이 나옵니다.
농경, 목축이 몇 천 년을 쭉 내려왔거든요.
그때는 평화스럽게 살았지요.
- 농경만 해도 괜찮은데
그것이 산업화로 진행되고 나서는 다르지요.
▽ 2백 년 전부터 공업화가 되어서
생산품이 얼마나 많아요.
농경시대에 비하면 생산품은 말할 수가 없어요.
그러니 욕심은 더 생겨났어요.
인심이 얼마나 각박해요.
우리 어려서 생각도 못한 일이 일어나요.
그렇게 험악하니까
오늘날 공업시대를 밑받침해 줄
정신, 지침이 나와야 될 시기입니다.
그런 시대가 왔어요.
대혼란기입니다.
인류 역사상 이런 혼란기는 없을 것입니다.
< 인류를 구제하는 길은 ‘선’ >
- 산업화, 공업화 시대를 지나서
미래사회는 정보화 사회라고 하는데요.
더 한 발짝 나간 것이죠.
소비, 개인주의로
다품종 소량주의로 나아가거든요.
개인이 강조되고 컴퓨터가 다 하는
더 특이한 시대가 되지요.
자연환경의 파괴 등
이런 시대의 고민은 더 심각한 것 같습니다.
▽ 자연환경이 파괴되어서 이대로 가면
곧 생물이 살아갈 수가 없게 된다지요.
산성비가 안 오나 공기, 물이 오염되어서
생물이 못 살게 되고
수돗물을 못 먹잖아요.
이렇게 되니 어떻게 살아.
그러니까 인류가 어떻게 사느냐 하는 과제가
오늘날처럼 복잡하고 어려운 때가 없었어요.
- 그런 시대에 인류를 구하는 길은 무엇일까요.
▽ 나는 선밖에 없다고 봅니다.
첫째,
공업시대의 병폐는 복잡한데 끄달려서
제 정신을 못 차리는 것입니다.
주체성을 상실한 것이 첫째입니다.
그러니까
참선을해야 주체성이 살아나거든요.
어디든지 걸리지 아니하고
자유자재한 자기 주체성이 선이거든.
주체성을 확립시키고 살리는 것은 선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서양종교 철학은
대자연을 지배한다는 것이에요.
사람을 창조자 비슷하게 만들어서
대자연은 사람을 위하는 물건이지요.
종같이 부려 먹으려는 물건이지
딴 것이 아니다 하는 것이지요.
종교부터 지배하고
철학까지 자연을 지배하다 보니까
오늘날 이렇게 된 것이거든요.
그런데 참선을 하면
인간과 대자연이 둘이 아니고 한 몸이 됩니다.
대자연을 자기 몸같이 보호하고 사랑하고
내 몸같이 아끼는 것이 선바탕입니다.
그러니까
자연과 인간을 구제할 수 있는 것이 선입니다.
인간과 인간의 질서도
오늘날 무너졌지만 선을 하면
근본하나로 통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개별개체가 전부 살아있거든요.
그래서 원융무애하게 서로 존중하고,
조화있게 살 수 있도록
질서를 잡아주는 것이 선입니다.
조사선을 잘 살려서
공업시대의 인류를 구제해야겠다는 것입니다.
< 참사람 운동 통해 참 나 깨닫자 >
- 스님이 늘 주장하시는
참사람 운동이 바로 그것이겠군요.
▽ 맞아요.
참사람운동을 해야 인류가 살아남지요.
이대로 가면 다 죽을 판입니다.
- 우리나라에서는 근년
돈오돈수다 돈오점수다 라는 것을 가지고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개혁회의를 통해
새로 출범한 조계종 내에서도
새 종헌 종법에 밝힐 종지 종통과 관련해
상당히 심각한 논전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스님의 견해는 어떻습니까?
▽ 법통문제는
송광사에서 보조스님을 자꾸 내세워요.
보조스님은 정통으로 법받은 적도 없고,
자기가 교를 많이 연구하고 선도 연구해서
선교일치(禪敎一致)적이요.
순수한 선이 아니지요.
돈오점수를 주장하니,
본래 선 종풍하고는 달라요.
그 스님이
고려 때 불교가 희미할 때
혼자 독창적으로 수행을 여법히 잘해서
그때 영향을 많이 주었어요.
하지만 그것이
순수한 선은 아니거든요.
선이라는 것은
불교가 종교 철학적으로 심오한 것인데 비해
교는 말과 생각을 의지해서 들어가는 것이지요.
극치에 가면
생각도 끊어지고 말도 끊어지고
그것을 초월한 생생한 그 자리가 극치이거든요.
극치를 살린 것이 선입니다.
인간의 극치,
불교의 극치를 살린 것이 선이라고 할 수 있죠.
조사선이지요.
그게 중국에서 번성해서
한국으로도 오고, 일본으로도 갔어요.
중국에서 성행했는데 지금은 끊어졌지요.
한국하고 일본에는 선이 있는데
종교 철학적으로
인간 근원을 생생히 살린 그 자리가 선입니다.
다른 철학에는 그런 것이 없어요.
서양에서도
이 보배를 잘 살리자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어요.
선을 살리자,
신부들이 아전인수 격으로 참선해서
선을 잘못 만들면
인류 역사상 보배를 잃어버리는 것이 되니까
안 된다는 그런 운동이 일어났어요.
선에는
오가칠종(吾家七宗)이 있는데,
임제선이 최고지요.
활발하고 대기대요,
그게 제일인데
그 전통을 잇는 것이 한국이지요.
이런 보배를 두고
교도 아니고 선도 아니고
애매한 보조스님을 내세운다는 것은
우리 역사적 전통도 무시하는 것이고
인류 역사상 보배를 잘 살려야 할 텐데
그것도 망각한 것이 되는 여러 가지 잘못이에요.
보조스님을 내세워서 공부를 한다면
지혜로 아는 것인데
견성했다 해서 쉽게 선지식 노릇을 할 수 있어요.
선지식 노릇도
아무나 할 수 있으니까 그 영향이 많아요.
- 스님께서는
우리 조계종 종지 가운데
그 점이 잘못이라고 보시고
그걸 고쳐야 된다고 보시는 것인가요.
< 조계종의 뿌리는 태고보우이다 >
▽ 우리나라 선의 종통을 보면
석옥스님으로부터
태고보우스님으로 해서
서산스님으로 내려 왔거든요.
서산스님도
태고보우스님을 종조로 모셨고,
그 제자들은 그랬지요.
임제 25세가 서산스님이라고
서산스님 문중에서 못박아 놓았어요.
그런 것은 바꿀 수가 없는 것이고
지금까지 전부
태고스님 문손으로 되어 있지요.
이렇게 내려온 것을
별안간 바꾼다는 것은 말이 안 되어요.
- 바꾼 것은 오래 된 것 아닙니까?
▽ 그게 정화 때부터 그렇게 되었어요.
- 그때 만암(蔓庵)스님이
왜 그렇게 하느냐하고 반대하셨지요.
▽ 네, 환부역조(換父易祖)한다고 했지요.
- 하지만 지금 새 종헌에서도
아직 영향이 남아 있지 않습니까.
▽ 아직 영향이 있어요.
- 조계종 개혁 때 전국승려대회에
서옹스님을 모시고 했지 않았습니까.
스님이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신 것인데,
그렇다면 새 종헌은
스님의 말씀이 많이 참작되었을 텐데요..
▽ 받아들이는 사람도 많이 있어요.
많이 있는데
송광사 그 쪽에서는 반대지요.
- 그래서 스님이 크게 걱정이시군요.
▽ 그것도 걱정이죠.
올바로 잡아야 조계종 생명이 살아나는데
희미하면 죽어버려요.
- 북한산 너머 태고사에 보면
태고 보우스님의 부도가 있지요.
그런데 제가 가끔 등산하다 들러보면
우리나라 법통을 제일 높이 세운 분인데
상당히 소홀한 것 같던데요.
▽ 나도 느끼는데 종단적으로 해야 되는데,
개인적으로는 할 수 없고, 너무 소홀히 해요.
- 거기 있는 것도
신도 대부분이 모르고
우리나라 법통을 세운분이라고 표시를 해야 되요.
▽ 맞아요. 말씀 잘 하셨습니다.
- 또 태고종만이 아니라
조계종에서도 그분을 뿌리로 인정한다면
그곳을 소홀히 방치해선 안 되지요.
그리고 일부에서는
보조스님보다도 태고스님이
더 선교일치를 주장했다고 하는데
스님은 어떻게 보시는지요.
▽ 나는 그 점에 대해서 연구를 안했는데
태고스님이 원융부를 만들었고,
선교를 원융하게 했다고 하지만
태고스님 어록을 보면 조금도 그런 것이 없거든요.
고려정부에서 정치적으로 그랬을 꺼야.
태고스님 정신으로 한 것이 아니라
정부에서 불교를 하나로 묶으려고 그랬지
태고스님 정신은 아니라 봐요.
- 그렇다면 지금 조계종이
선교융합의 통불교를 내세우고 있는 것이
태고스님의 입장과는 안 맞는다는 뜻인가요.
태고스님은
오직 선만을 내세운 분이고,
보조스님은 선교융합을 내세운 분이라서
합할 수 없다는 것인지요.
▽ 원칙적으로 주의 주장이 다른 것이지요.
그리고 실제 공부도 달리하고 있지요.
그렇지만
현상적으로 조계종이 분열되는 것은
모두의 도움이 되지 않지요.
지금도 조계종이 힘이 부족해 큰일을 할 수 없는데
주장을 앞세워 갈릴 수는 없는 일이지요.
그래서 개혁과정에서도
서로 의견일치는 못하지만
문제를 확대하지 않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외국 사람들은
조계종은 분명 선종인데
어째서 선과 교가 섞여 있느냐,
선교일치를 주장하느냐고 이상하다고 해요.
- 성철스님이 말년에
돈오돈수를 주장하신 것도 연관이 있는 것이군요.
그 분은 주장을 강하게 해서
싸움을 일으키기는 했지만요.
스님께서도
[ 임제록 ] 등을 통해 틈틈이 말씀하셨지요.
▽ 시종일관 그렇게 주장을 해왔지요.
그러니 이만큼 주춤하고 있지요.
그렇지 않았다면
벌써 보조 쪽으로 되었을 것입니다.
- 스님, 요즘
정중 무상(無相)스님의
정중종(淨衆宗)에 대해서
여러 가지 논의가 많이 되고 있거든요.
무상스님은
중국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그 시대는 중국에서
굉장히 두각을 나타낸 선사였는데도
그 분이 돌아가신 다음에는 묻혀 버렸죠.
육조스님의 법맥으로 다 묻혀서요.
그런데 원래는 마조스님이
정중 무상스님의 후계라 되어있거든요.
우리나라 신라에 들어온 선가도
마조스님에게 선이 닿아 있는데
결국은 무상스님에게서
온 것이다 하는 해석이 있거든요.
중국의 호적(胡適)박사 같은 분도
그것을 굉장히 중시하고
요즘 많이 연구되고 있어요.
그러니까 결국은
우리 선맥이 공식적으로는
육조의 계통이라고 다 얘기 되지만
내용적으로 보면
무상스님의 계통을 받았으면서도
중간에 역사가 흐려져서
그렇게 됐다는 설이 있거든요.
그런 것을 생각해보신 적이 있습니까?
▽ 역사를 깊이 연구하는 성격이 아니라
역사를 세밀히 연구한 것은 없는데,
내가 아는 것으로는
무상스님이
수행으로는 아주 훌륭한 분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무상스님하고
남악 회양스님, 마조 도일스님 하고는
가풍이 완전히 다르거든요.
마조스님이 무상스님 밑에 있을 때는
영향을 많이 받았어도
남악스님 만나가지고서는 딴 판이 되었거든요.
무상스님과는 아주 다르지요.
다른 게 무언가하니
무상스님은
계, 정, 혜 삼학을 수행하는 편인데
마조계통은
무심무종이거든요.
수행이 훌륭하지만
계, 정, 혜 삼학이 붙어있어요.
그러니까 근본적으로 달라요.
마조스님이 젊어서
무상스님 제자 노릇했다던가
서로 탁마한 것은 있을는지 모르지만
남악 회양스님 만나가지고는 딴 판이 되었어요.
종지가 달라졌어요.
달라져 버렸으니까
그 전에 수행과정에는
이념이 있다고 할 수 있지만
마조스님 종풍을 이어가는 데에는
관계가 없는 일이 되어요.
그렇게 나는 봅니다.
무상대사 훌륭하지요.
계, 정, 혜, 수행해서 훌륭한데
그 계, 정, 혜 삼학을 초월해 버리는 것이 선이거든.
마조스님은
전환이 된 스님인데,
옛날에 서로 상종한 것 가지고
붙인다는 것은 말이 안 돼요.
- 선종사찰을 가보면
염불 쪽으로 기울어진 절이 많아요.
▽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우리 조사선에서는 인정을 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염불을 해서
극락을 간다고 해도 업을 띱니다.
- 초기에 북종선이 들왔다는 설이 있습니다만.
▽ 우리 조계종은
태고보우스님이
석옥스님의 임제종의 가풍을 이은 것은
만고에 명확한데 다른 말할 것 없어요.
- 그 전에는, 고려 이전에는요.
▽ 고려 이전에는
마조스님 제자들한테 법을 많이 받아왔지요.
북종선 조금 들어왔고,
주로 임제계인 마조계통이 들어왔어요.
구산선문이 전부 마조계통이예요.
오가칠종이 모두 혜능계통입니다.
- 스님이
선의 돈오돈수라는 입장을
확고히 가지시게 되는 과정에 대해 궁금합니다.
스승한테 가르침을 받은 것인지,
스스로 많이 생각하신 끝에 그렇게 된 것인지
그 과정을 설명해 주십시오.
▽ 그 과정은 복잡하다면 복잡하겠는데,
태고스님으로부터 내려온 승보(僧譜)가 있어요.
나한테도 그 승보가 있는데
태고스님으로부터 쭉 내려왔거든요.
한국 승려는 누구나 승보가 내려왔어요.
역사적 사실이지요.
그런데 그것을 무시하고
보조스님을 내세우는 것은
지금까지 내려온 전통을 무시하는 것이 되어버려요.
내 자신은
한국에서 중앙불교 학교를 다녔지만
일본에서는
지금은 하원대학이 된 임제대학에 다녔지요.
순수한 임제가풍이라,
우리 조계종도
석옥청공으로부터 임제가풍이 쭉 내려왔거든요.
그러니까 확고부동하게 훌륭한 임제가풍,
조사선 중에서도 임제가풍이 제일인데,
한국도 임제의 전통이 맥맥히 내려온 것이
분명하구나 하는 확고한 자신이 서게 되었지요.
- 그것을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 스님이 된 후 승보를 전해주니까
그대로 믿은 것이지요.
< 만암스님 은사로 득도 >
-백양사 들어오신 다음에 받았습니까?
▽ 백양사 승려 된 다음에 승보를 받았지요.
만암스님이 주셨지요.
한국 승려는다 똑같아요.
- 거기서 득도하신 거예요.
▽ 백양사에서 득도했지요.
- 사법도 거기서 하시구요.
백양사에 계시면서
일본으로 유학 가신 것입니까?
▽ 네, 중앙불전 졸업하고
백양사에서 2년,
오대산 선방으로 옮겨가서 있다가
일본으로 갔어요.
그래서 나는
임제선을 일관되게 쭉 공부하게 된 거예요.
- 일본에 가시게 된 동기가 있습니까?
▽ 전문학교를 졸업했을 때
그 때 일본대학을 나와야
그래도 공부를
제대로 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거든요.
한국에서는 부족하거든요.
그래서 갈려고 하였는데
우리 스님이 안 보냈어요.
내가 중이 되고
곧 백양사에서 외전(外典) 강사를 했어요.
사미승이니 비구니 하는 그런 계단을 안 받고
절에 가서 대번 선생이 되었으니
전문적으로 수도를 못한 것이지요.
그래 내 마음이 안 맞아서
선방으로 간 거지요.
오대산 방한암스님 선방으로 갔어요.
그때 유종묵이란 이가
임제대학 다니다가 방학 때 나왔어요.
그런데 그때는
학교 졸업하고 수좌로 다니는 사람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나는 전문학교 졸업하고
수좌로 있으니 유일한 존재였지요.
그러니까 이런 데서 참선하는 것보다
일본대학 다녀보는 것이
좋다고 해서 권하길래
내가 우리스님보고 5원만 대주면
장학생으로 가게 된다고 졸랐지요.
노스님이 ‘가거라’ 했죠.
노스님이 주신 5원도
나는 장학생이므로 돈이 필요 없으니까
그때 고학하는 사람 주었어요.
- 일본에서 공부하실 때
어려움이나 고민 같은 것은 없으셨나요.
< 일본 유학시절에 선철학 영향 받아 >
▽내가 일본에 유학해서
구송진일(久松鎭一)박사라는 분을 만났어요.
구송박사는
임제대학에서 강사하신 분인데
묘심사에 사셨지요.
거사지만 승려처럼 방 하나를 얻어 놓고 사는 거라.
내가 그 분하고 교류했어요.
그 분이 선철학의 세계적 권위자이거든요.
그 영향을 많이 받았지요.
- 거기 학생이 전부 스님입니까.
▽ 임제대학은 전부 스님입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그때는 그랬어요.
구송박사는 세계적인 학자지요.
독일에서는 그이의 철학을 연구하는 기관도 있어요.
- 듣기로는 김지견박사가
해방 후에 구송박사를 찾아가니
서옹스님 안부를 크게 걱정했다고 하더군요.
▽ 그분이 나를 좋아해서
일본 학생보다 더 생각했어요.
왜 그런고 하니 서로 잘통하니까,
잘 이해를 하니까,
일본 학생들은 선 깊은 것을 모르거든요.
나는 그래도
오대산에서 참선하다가 갔으니까 깊이가 있었지요.
- 거기서 생활 하셔서 취미활동은 안 하셨어요.
▽ 취미활동은
선문화에 대해서 감상하고 그랬지요.
일본은 선문화가 형성되어 있거든요.
선서니, 다도니, 선화니.....
아까 말한 바와 같이
인류를 구제할 종교는 선 밖에 없어요.
주체성을 확립시키는 것도
다른 종교는 없고 선 밖에 없어요.
또 인간과 대자연을 둘이 아닌데서
잘 조화있게 세계를 건설하는 것도
선이라야 되고,
서양종교, 철학에는 그것이 없어요.
인간과 인간의 질서를 바로 잡는데도
선이라야 됩니다.
선은
철학이고 종교의 종교이고, 그렇게 깊은 것이지요.
이런 보배가 인류 역사상 달리 없어요.
선이라야 인류를 구제할 수 있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선문화를 일으킨다는 것보다
대중적으로 하려면
‘참사람 운동’이라고 할까
이렇게 해야 될 것 같아요.
선문화라고 하면 좀 좁아.
가까이 하기가 좀 어려워요.
그래서 ‘참사람 운동’이라고 하면
보편적으로 대중이 이해할 수 있거든.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아요.
< 참사람운동 위해 ‘우리의 서원’ 만들다 >
- 스님께서 참사람 운동을 위해
‘우리의 서원’이란 걸 만드신 일도 있지 않습니까.
▽ 그렇지요.
그 내용은
“첫째
무상 무주의 진아를 깨달아
자비의 생활을 합시다.
둘째
어디에도 걸림 없이 자유자재하여
세계인류가 평등하고
평화스럽게 사는 역사를 창조합시다.
셋째
자기와 생불과 우주가 유일 생명체이면서
각각 별개임으로 서로 존중하고 서로 도와서
집착함이 없이
진실하게 알고 바르게 행하고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세계를 건설합시다.”
라는 것이지요.
- 그럼 그 당시부터 글씨를 쓰셨나요.
▽ 그때는 글씨 쓴 일이 없고,
나뿐만 아니라
한국 수좌들도 글씨 쓴 일이 없었지요.
거기에서도 감상은 했지만 붓 잡은 일이 없어요.
그런데 뒤에 총무원에 있으면서
써달라고 하니까 붓을 잡은 것이지요.
그러나 선 바탕에서 쓴 것이지요.
- 다들 스님 글씨가
아주 특이하고 좋다고 하거든요.
그게 그냥 글씨가 아니고 풍기는 것이
선 바탕에서 쓴 것이니까
매력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 예술도 인간의 심오한 내면,
영원의 그 바탕,
인간의 근원 그 바탕에서 해야 하지요.
가령 문학도 그 바탕에서
인간 인격을 형성하고
인간과 인간관계를 해야
노벨상 타는 문학작품이 되지.
재미있게 써서는 안 되거든요.
글씨도 그런 깊은바탕에서 나와야지
예술적 가치가 있는 거라.
- 음악 같은 것은?
▽ 음악은 본래 내가 음치예요.
- 악기 같은 것은?
▽ 그런 것은 못해요.
그러나 선도 음악하고 관계가 있지요.
일본에 노가꾸(能)라는 것은 선에서 나온 것이죠.
신비롭고 아주 깊은 예술이죠.
- 요새 선무도(禪武道) 무예 있지 않습니까.
그것은 옛날에도 있었습니까.
▽ 일본에는 옛날부터 있었어요.
일본은 작은 나라지만
선문화는 중국에서도 형성이 잘 안되었는데,
일본에서 형성이 되었어요.
선바탕에서
다도, 선서, 선검일치(禪劍一致)라고 해서
무사들이 전부 참선했어요.
그래서 선에서 음악도 나오고
예술도 나오고 한 것이 일본 특색 이예요.
우리가 잘 살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 그렇죠.
요새 보면 음악도 선체조도 나오고,
음악도 김영동씨의 선음악 같은 것은
상당히 우리 전통을 살리면서 아주 좋더군요.
▽ 음악도 깊은 곳에서 나와야 대음악이 되지
그냥 나온 것은 깊이가 없어요.
- 다른 취미는 없으신지요.
▽ 글씨 쓰는 것인데
손이 아파서 글씨도 못쓰고,
반송장이 되었으니
산책이나 하고
수좌들 공부 가르치는 것이 고작 이예요.
< 선의 최고봉인
[ 벽암록 ] 백측을 운문암서 제창 >
다른 활동은요.
▽ 요새 제일 중요한 것이
[ 벽암록 ] 제창을 하는 것입니다.
[ 벽암록 ]이 인류 역사상 최고예요.
제일 어려워요.
어려운 가운데 일본에서 잘못한 것 비판도 하고,
그것이 100측인데 28측까지 했어요.
백운선사라고 하면
일본사람들이 비판을 못해요
나는 비판을 해요.
- 예를 들어서
백측 중에서 가령 어떤 부분일 잘못인지요.
▽ [ 벽암록 ] 에
조사불의 종래 조사불[佛從來不爲人]
이니라는 대목이 있어요.
백운선사 같은 이는
‘그 자리는 언어로도 말할 수 없다’
라고 했거든요.
그런데
원오극근(圓悟克勤) 선사가 착어를 붙였는데,
일본선사들은 뭐라고 했느냐 하면
‘두병수(斗柄垂)’
그것은 말로 해서 가려고 하면 안 된다.
말을 의지해서 수행을하면 안 된다.
말로 의지해서 거기에 갈려고 하면
낙처야 부지야(落處也 不知也)가 된다.
이렇게 했거든
그것이 내가 얘기해도 어려워요.
선의 구경을 쳐부순 것인데
구경까지 쳐부순 낙처야
부지야는
구경까지 쳐부순 것인데
일본 사람들은 그렇게 안 봐.
이것을 언어에 의지해서 말로 의지해서
거기에 갈려고 하면 그것은 죽어버려요.
- 선을 하시면서
또 한문을 잘 해석할 수 있으려면
글을 배우셨어야 하는데, 언제 배우셨습니까?
▽ 나는 한문 전공한 일은 없고,
일제 때는 학교 때 조금 배우잖아요.
그런데 그것 가지고는 안 되거든.
일본 사람들이
선서등 한문에 대해서 풀이는 잘 해 놨어요.
종지는 틀리게 하는 경우는 많아도
글자 풀이는 잘 해 놓았어.
그것을 의지해서 내가 공부하다 보니까
그대로 하게 된 것이지.
한문 실력은 없는 사람이고.
- 남이 풀어 놓은 것을
선적인 풀이를 통해서
아, 이 사람이 잘못 풀었구나를
꿰뚫어 보신다는 것이죠.
▽ 육조스님 같은 분을 글자를 모르니까
다른 사람한테 읽으라고 하지요.
읽는 사람은 뜻을 몰라도 육조스님은 뜻을 알지요.
- 지금 우리나라에 대해 생각하신 적이 있으신지요.
▽ 한국 민족이 지금 정신이
이렇게 타락해 가지고는 망해요.
질서를 못 잡아 가고
일본 군인이 일본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서
한국에 보낸다는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어.
가령 그렇게 된다고 하면 또 지배를 받는 거지.
그러니까 이대로 혼란을 겪게 되면 그래.
우리나라 위기입니다.
- 어려운 입장에서 잘 헤쳐 나가고 있습니다.
▽ 잘 나가고 있는데 지금은 전부 혼란이야.
- 우리나라가 어느 정도 잘 살지만
나라도 갈려져 있고 혼란이죠.
< 불교바탕에서 남북통일 이루어야 >
▽ 이북도 불교를 통하고
우리나라도 불교를 통하면 남북통일 쉬어요.
하나로 통하는 길이 있으니까.
그렇지만 현시에선
하나의 정신으로 맺어주는 종교, 그
게없어 우리 민족은.
- 우리나라 종교는 지금 수 백 가지입니다.
▽ 글쎄 말이야.
종교혼란만 있고.
불교바탕이 되어야지
유교, 기독교 바탕이 되어서는 안 돼요.
우리 한국 역사만 보더라도
화랑도가 전부 불교 신자거든.
불교 바탕에서 충효를 한 것이지요.
화랑오계는 충효가 중심인데
불교 바탕에서 하니까
사리사욕이 끊어지고 생사를 초월해서
자기 생명도 바치고
공을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 싸우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삼국 통일이 된 것입니다.
불교 바탕에서 충효를 했기 때문에,
고려 때도 몽고군이 쳐들어 왔을 때
40년이나 싸우잖아.
40년을 싸우는데
나라에서는 더 싸우면 국민이 도탄에 빠지니까
강화조약을 해도,
국민들이 뭉쳐서 끝까지 싸웠다는 삼별초가 있잖아.
제주도까지 피해 가면서 싸웠어요.
그렇게 강해요.
불교정신이라서 그래요.
생사를 초월하고
사리사욕이 없이 공을 위해서
자기를 바치는 것이 불교라.
이조는
충효만 중요한 것이라 충효가 골자지요.
그게 정신입니다.
그런데 이조 말에는
일본이 쳐들어오니 한번 싸워보지도 못해,
그러니 불교바탕에서 충효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문화를 형성해야 올바로 되지
그 바탕이 없으면 무능해.
오늘날 정치도
사리사욕에 끄달려 혼란을 야기하잖아.
불교바탕에서
생사 없는 자리에서 공명심을 다하면
화랑도와 같이 그렇게 잘 될 거십니다.
이조 5백 년 동안 불교 탄압 한 것이
우리 민족성을 버려놨어.
종교 음치가 되니 자기 밖에 몰라.
그래서 누가 그러더라.
경제적으로 발전한 것은
세계적으로 13위 안에 드는데
정신적 타락은 제일이래요.
그러면 나라 망해요.
정신 타락해서 안 망한 나라가 어디 있어요.
그러니까
정신운동이 필요해요.
선바탕에서 공업시대를 구제하고
우리나라도 잘 살고
인류에 이바지하는 나라가 되도록 각성해야 됩니다.
< 선바탕에서 인류를 구제하자 >
- 스님 혼자만 해도 안 되고
종단만 해도 안 되겠지요.
▽ 종단만 의지해서도 안 되고
또 내가 가만히 생각한 건데
이것을 각성한 사회인사들이 많이 참여해서
운동을 일으켜야 됩니다.
그러니까
공선생도 이 기회에 같이 합시다.
- 좋지요.
그러려면 선을 해야 하는데,
보통사람이 선을 하려면 어렵지 않습니까.
▽ 어려운데
그 풍토를 이루고 그 방향으로 나가면 되요.
그러니까
선 하자는 풍토에서 서로 노력하면
그중에 훌륭한 사람도 나올 수 있다는 거지요.
그런 풍토에서 하면 그런 문화가 형성이 되요.
- 요즘 시중에 보면
요가나 선체조나 명상이나 그런 것이 많아요.
그걸 직업적으로 하기도 하거든요.
그런 동향을 보면
의식주가 풍부해지니까
건강해져야겠다는 생각이 생기나 보지요.
▽ 건강을 본위로 한 운동이지요.
불교는 그런 것이 아니고
첫째 해탈을 해서 마음을 다스리는 것인데
멍청한 사람은
몸을 다스리고 마음은 다스리지 않지요.
참선을 하면 건강이 다 들어 있어요.
- 스님, 위빠사나(vipassana)라고
인도에서 온 선에 대해서 들어보셨어요.
▽ 그런 것 조금 알지.
행동하는데 정신통일 하자는 것이지요.
- 그것이 요즘 많이 들어왔어요.
▽ 조사선을 모르고 그것을 주장하는데
조사선이라는 것은
그것을 초월한 더 깊고 근원적이고 훌륭한 것인데,
소승선은
부처님이 직접 전한 것이라 해석 간단해요.
정신통일 하는 것인데
그것 가지고는 해결이 안 돼요.
생사문제도 해결이 안되고
모든 문화 형성하는 바탕도 될 수 없고
기술에 불과해요.
- 부처님 당시에는
부처님이 하신 것이 아닌가요.
▽ 부처님은
근기에 따라서 쉽게 말한 것이지요.
쉽게 말한 범위이지 깊은 것은 아니에요.
- 스님이 종정으로 계실 때
불교계에 영향을 끼쳤던 일은요.
▽ 부처님 오신 날이 국경일로 제정되고
또 스리랑카 가서 약소국가들이
전부 이북편 들었는데,
내가 가서 우리 편 들도록 했어요.
태국 대통령이
불상을 준 것은 임조에게 주었죠.
- 스님이 살아오신 중에 제일 보람 있었던 일은요.
▽ 제일 보람 있는 것은
글세 종조를 바꿀려고 한 것을 바로 잡아
태고스님을 역설한 것.
또 운문암에서
[ 벽암록 ]법문 한 것도 고금에 없는 일이고.
< 종정 중심제로 전 책임을 맡은 게 실수 >
- 그러면 스님 일생에
큰 실수를 했다고 할 만한 것은요.
▽ 내가 종정으로 있을 때
총무원장의 권한이 너무 커서 문제가 많았어요.
그래 잘하려고 시정하려니까
저절로 종정 중심제가 되었어.
내가 정치는 잘 모르거든
그게 큰 실수라.
종정 중심제로 전책임을 맡은 것이 큰 실수라.
원장한테 맡기고
뒤에서 감독만 하면 되는데
내가 전체 종무를 맡은 것이 실수였지요.
내게 그런 능력이나 정치 수완은 없거든.
그때 내가 계획적으로 한 것이 아닌데
잘못한 것을 잘못됐다 하고 시정하다 보니
내 중심제가 되었어.
종정 중심제가 되다 보니
책임이행 하기가 어려운 거라.
그게 큰 실수였지.
- 다른 것은 없습니까?
▽ 다른 것은 생각이 안 납니다.
많겠지만 생각이 얼른 안 나는군요.
- 그럼 마지막으로
스님이 늘 강조하고 계신
참사람운동이라든가,
‘선문화운동’을 위해 한마디 해주셔야겠습니다.
▽ 참선. 선을 널리 펴기 위해서는
‘참사람 운동’과 ‘선문화 운동’을
적극적으로 해야 하는데,
내가 건강이 전 같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미
선문화 진흥원을 설립하기 위해
힘을 쓰고 있으니
여러 선지식의 동참이 기대됩니다.
< 종성(宗成)스님
(임제선원장)이 본 서옹 큰스님 >
태고를 중흥조로
선법의 계통을 바로 세워야 한다
계보 상으로 볼 때
부처님의 법은 1세 마하가섭존자와
2세 아난존자를 이어
28세 보리달마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법은
33세 대감혜능, 35세 마조도일,
36세 백장회해, 38세 임제의현선사로 이어진다.
그것이 56세 석옥청공이
57세인 고려의 태고보우선사에게
법을 전함으로써 우리나라에 이어지는 것이다.
그 계맥은
63세 청허휴정으로 이어지고
69세 연담유일로 이어져
연담계보가 성립하며
75세 만암종헌과
76세 서옹상순으로 계속되는 것이다.
이런 계보나 가승은
역사 가운데 연면하기 때문에
갑자기 날조 할 수 없다.
선의 사법계보는 엄연한 것이라서
누구도 이것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런데 우리 조계종의 종헌에서는
이런 중요한 법통을
흐리는 경향이 있어서 걱정스럽다.
조계종의 개혁도
그 점에서는 아직 미흡하다는 이야기다.
종헌, 종지 종통 같은 문제는
종안이 있는 큰스님들에게 자문을 얻고
그 분야의 전문인들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
태고보우스님을
중흥조로 분명히 하고
선종의 법통을 세워야
비로소 조계종의 입장이 분명해지리라 본다.
일부에서
보조지눌스님을
종조로 모셔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법통상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또 태고종이
보우스님을 종조로 모시고 있지만
그 취지가 다른 것도 밝혀야 한다.
태고종에서는
보조스님보다
태고스님이 선교일치를 주장하고
원융부를 만들었다고 하지만
원래 태고스님은
선의 구산통합을 주장한 것이지
선교통합을 주장한 것은 아니다.
그런 만치 새 조계종을 이끌고 있는 개혁파가
조계종을 통불교로 만들려고 하지만
그것은 선종인
조계종의 면목을 없애는 것이나 같은 일이다.
보조스님도 물론 훌륭한 분이지만
법통의 입장에서 보면
그분은 정계로 볼 수 없고
어디까지나 방계라고 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엄연한 선종을
선교일치로 흐리는 점에서는 위험하기도 하다.
그 점에서 우리 서옹스님은
틈틈이 조사선의 법통인
임제선의 법맥이 흐려지는 것을
돈오점수가 아닌 돈오돈수를 강조한 것이다.
돌아가신 성철스님이
돈오점수를 배격하고 돈오돈수를 외친 것도
서옹스님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다.
또 근래 마조가
무상의 선맥을 이었다는 주장도
법맥의 입장에서는 가당치 않다.
요즘 학자들은 종지를 모르고
수행과정만 보고서 실수를 한다.
호적박사 같은 이도 석학이긴 하지만
그의 주장도
완전히 선교일치적인 입장이라
일본의 스즈끼다이세쯔 같은 종지를
보는 입장에는 못 미친다.
무상스님은
계, 정, 혜 삼학을 원칙으로 하고
염불을 배제하지 못하고
화두선을 하지도 않았다.
따라서 순수한 선이라고 하기 어렵다.
서옹스님은 늘 그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서옹스님은 이렇듯
분명한 법맥을 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 주장도 분명하다.
그점에서
일본의 불교학자들도 서옹스님을 존경하고 있다.
젊어서 임제대학에서 공부할 때나
묘심사 선방에 있을 때나
스님은 일본 승려들에게서 존경을 받았다.
세계적인 선학자인 구송박사도
늘 서옹스님의 안부를 물었다.
한번은 구송박사가 서문을 한 가지 써서
서옹스님에게 주었는데,
서옹스님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하니
그도 스님의 지적을 그대로 따랐다.
일본의 니시다, 스즈끼 다이세쯔, 히사마스는
일본의 3대 선철학자인데,
특히 히사마스는
스님에게 게송을 받았다.
이처럼 많은 일본 선학자들이 스님을 존경한다.
정리/공종원
(불교춘추, 199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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