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노래자랑
김미순
내 최대 기쁨은 일요일 날 전국노래자랑을 보는 거다. 워낙 노래를 못 불러서 대리만족으로 그러는 같다. 그걸보면서 흥얼거리는 소리가 하도 커서 담장을 넘어 옆집으로 넘어갔다.
옆집에는 젊잖은 부부가 살았는데 부인이 암환자라 조심해야 하는데 잘 아는 내가 실수를 하곤 한다.
그런데 정말 기쁘게도 둘째 며느리가 내 소원을 이뤄줬다. 처음 참여했는데 장려상을 닸다. 잔치를 벌이려고 했으나 며느리가 민망하다 제지해달라고 하도 애위해서 그만두었다.
아들 셋 중 둘찌가 제일 몌쁘다.공부도 잘 하지 운동도 잘하고 그림도 잘 그랬다.학교 축제 땨 커다란 판넬로 제작해서 사람들의 이목을 클었다. .
둘째 아들이 노래만 잘 불렀으면 완전체일텐데ㆍㆍㆍ
나머지 두 놈은 내 눈밖에 난 지 오래다. 그 중 큰아들은 개새끼다. 공부를 잘하여 학교에서 전체 10등 안에 들었다. 잘 다니던 학교를 아무 말도 없이 자퇴를 했다. 알고보니 다른 동네 가시내한테 씨를 심은 탓이었다. 나는 아주 마음이 상해 그만 지우라고 성화를 했다.이미 지우기는 넘은 기긴이었다. .할 수없이 노래방을 차려줬다. 1억이나 들었다..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지만 티격티격 할 수없이 사는 것 같다.특히 가게 문을 안 여는 아침 때는 다른 여자를 본다고 며느리가 말려달라고 애원한 적이 있다. 아마 미성년자 여자를 건드려 보상금 몇 백을 물려줬다는 눈치다.
막내놈은 혼자 살겠다고 평택 기계공장에서 쇠를 갈고 있다. 돈은 많이 번것 같은데 한달에 달랑 십 만원만 준다
즐거운 일은 역시 둘째다. 용돈도 오십만원 두둑히 주고 액교 만땅, 손주도 둘이나 척척 낳아 주었다.
그런데 우리 시에 전국노래자랑이 개최된다고 예약 날짜가 화면에 떴다. 드디어 최우상에 도전! 당장 들째며느리에게 전화했다.
햔참 벨이 울리더니 들뜬 듯 높은 목소리가 울렸다.
"어머, 아버님, 웬일로 전화하셨어요?"
"
니도 보고 있냐? 우리 시에 2주 후에 온단다"
"보고 있어요. 떨리네요"
우리는 예약 날짜에 만나 기로 약속했다.
그때부터 며느리는 하루에 십 만원을주고 노래교실 강시에게 연습을 받으러 다녔다.예전부다 채 섬세해지고 콧소리의 울림이 잦았다
돈의 위력은 대단하다. 친구 셋과 큰아들 내외, 손주들을 달고 가운뎃 자리에 앉았다. 막내 아들과 그 친구들이 서서 프랑을 들었다.
며느리는 중간 번호였다. 그 앞에 우리 시 특산물로 김신영을 즐겁게 했다. 아직까지 며느리의 실력을 넘는 참여자는 없다. 초등학생들은 인기상일거고 정말 잘 부르던 아줌마는 장려상 정도다.
며느리는 열과 서믈 대해 불렀다.가창력도 누구도 따를 수 없는 높은 실력을 자랑했다. 나는 벌써 최웃수상을 예측히고 있었다.
그러나 며느리는 우수상이었다. 안티깝지만 돈이 좀 부족했나?
나는 그래도 같이 응원 온 지인들에게 한 턱 냈다. 무려 이십 만원이 들었다. 토깽이 손주들한테는 장난감도 안겼다. 돈 80만원은 심사본 작곡기들에게 오롯이 바치고ㅈ털레털레 돌아서는 며느리의 어깨를 어루만져 주었다. 며느리는 그때부터 맹연습에 돌입했다. 노래방 강사에게 삼십 만원씩 강사료를 주고 하루종일 복지관에 처박혀연습했다. 어떤 날은 손주한테 전화가 오기도 했다. 엄미가 안 오니 할아버지 집에 가겠다는 볼멘소리를 했다.
그런데 며느리가 집에왔다. 얇은 개량하복을 입고 다소곳이 소파에 앉아 하고 싶은 말을 꺼냇다.
"식사는 하셨어요,"
"시간이 몇 신데"
며느리는 미적미적 대더니
"아버님, 저, 돈이 좀"
"무슨?"
""저번 심사했던 자콕가가 가수 밀들어 준다고 해요. 그라서 말씀드리는 건데요, 저 한달에 백만원 주기로 했어요?""
"아니! 뭐"
이런 이럴수가? 백만원이 누구 이름인가!
그래도 가수가 되고 싶다는 데 어쩔 수없자ㆍㆍ
나는 그날 즉시 예금을 헐었다. 천만원을 며느리에게주었다. 손이 벌벌 떤렸다. 꼭 가수가 돼라. 머늘 아가!
든발이 먹혔는지 며느리늘 지역축제에서 몇 번 무대에섰다. 그때마다 둘째아들과 손주들은 우리 집에서1박 2일을 보냈다.
하지만세월이 갈수록 집에 안오는 날이 많았다. 나는 요양보호사에게 만해서 밥도 많이 하고 ,돈도 더 주어 집 살림을 .아예 맡겼다.
'잘 되고 있는 간가'
한 달이 되어가자 안달이 났다. 방송국으로 전화를 했더니 작곡가 전화번호는 가르쳐 줄수가 없다고 하였다.
하루가 지나 전화가 왛다. 작곡가라는 사림이었다.전혀 모른다고 하였다. 며느리의 이름도,자기가 가수 만들어 준다고 한 적도 없다는말이었다.자기는 세상에 알려진 샤람이니 그런 거짓말은 절대 못 한다는 것
정말 그럴 것 같다. 나는 큰아들을 통해 우리 시의 모든 노래방을 되졌다. 노래방 도우미로 혹시 있을까? 헛수고였다. 탐색 범위를 넓혀 옆 시도 뒤졌다. 결국 실종 신고를 했다. 돌쨔아들은 휴직을 하고 백방으로 소문을 찾아 비슷한 사람이 있다면 발빠른
게 다려갔다.사례금으로 5천 만원을걸었다.
거짓말 제보자도 맗이 있었다. 허탈해진 기분에 울화가 치밀어 술만 잔뜩 마셨다.
그렇게 또 한 달이 지났다. 강가에서 모른 여자 시체가 발견되었다고 해서 부검까지 참석하기도 했다.
나는 기가 막혔다. 어디에서 죽기라도했나? 시체라도 있어야 포기하지~~
세 달이 흘렀다. 세상에?이런 일이 생기다니~~
우울한 마음으로 구례편 전국노래자랑을 보고 있었다. 노래가 나와도 따라 부르지 않고 그냥 멍하니 화면만 보고 있었다, 의외로 노래를 잘부르는 사랑이 쾌 많았다.
심사 결과를 발표하기 전에 초대가수가 소개되었다, 그런데 고운 한복을 입은 며느리였다. 구례 계곡에서 삼 개월 피나는 연습을 했다는 김신영의 감탄어린 소개가 노래가락을 타고 흘러 나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