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저만회고택은 해저리마을의 오른쪽 깊숙한 곳에 우거진 뒷동산을
배경으로 남향하여 있는 집으로 조선 후기의 문신 김건수가 살던 집이다.
김건수는 순조 30년(1830)에 과거에 급제한 이후 현감, 부사를 거쳐 우부승지를 지냈다.
사랑채인 명월루는 그가 지었으며 철종 1년(1850)에 수리한 바 있다.
안채는 김건수의 6대조가 이 마을에 처음 들어와서 이곳에 살던 여씨에게 샀다고 전한다.
'ㄷ'자형의 안채와 'T'자형의 사랑채가 있고, 중문채가 있었으나 현재는 없다.
안채는 남향한 중앙에 대청이 있고, 대청 양쪽에 안방과 상방이 대칭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원래는 '一'자형 중문간채가 있었으나 없어져 현재는 남쪽이 트인 상태이다.
사랑채는 안채의 동쪽 날개 끝에서 동쪽으로 치우친 위치에 있다.
안채는 조선 중기 건축으로 추측되며, 안방과 사랑방 뒷쪽에 수납공간을 두고 있는
옛 경북지방의 'ㅁ'자 집 평면배치법과 통하는 것으로 조선시대 주택연구에 좋은 자료가 된다.
이 고택은 3.1 운동 직후에 해저 출신인 심산 김창숙(金昌淑) 선생과 유생들이
파리 만국평화회의에 제출하기 위한 독립청원서를 작성했던 뜻 깊은 장소이다.
첫댓글 만회고택 정보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