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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들은 바다 건너편 거라사 사람들의 지역으로 갔다.
2. 예수께서 배에서 내리시니, 곧 악한 귀신 들린 사람 하나가 무덤 사이에서 나와서, 예수와 만났다.
3. 그는 무덤 사이에서 사는데, 이제는 아무도 그를 쇠사슬로도 묶어 둘 수 없었다.
4. 여러 번 쇠고랑과 쇠사슬로 묶어 두었으나, 그는 쇠사슬도 끊고 쇠고랑도 부수었다. 아무도 그를 휘어잡을 수 없었다.
5. 그는 밤낮 무덤 사이나 산 속에서 살면서, 소리를 질러 대고, 돌로 제 몸에 상처를 내곤 하였다.(마가복음5:1-5)
1 Jesus and his disciples arrived on the other side of Lake Galilee, in the territory of Gerasa. 2 As soon as Jesus got out of the boat, he was met by a man who came out of the burial caves there. This man had an evil spirit in him 3 and lived among the tombs. Nobody could keep him tied with chains any more; 4 many times his feet and his hands had been tied, but every time he broke the chains and smashed the irons on his feet. He was too strong for anyone to control him. 5 Day and night he wandered among the tombs and through the hills, screaming and cutting himself with stones.
1. 그들은 바다 건너편 거라사 사람들의 지역으로 갔다.
1 Jesus and his disciples arrived on the other side of Lake Galilee, in the territory of Gerasa.
예수님은 많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가르치셨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이해시키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주님은 길가에 돌밭에 가시밭에 혹은 옥토에 떨어진 씨앗 이야기로
그 물에 잡힌 물고기
농사꾼이 밭을 일구다 발견한 보물
진주 장사를 하는 일.......
수많은 비유를 들어가시며 오직 하나님 나라를 설명하셨던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경험하는 인간 만사가 다 하나님 나라의 비유를 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실 때 아주 그렇게 만드셨던 것입니다.
그 날 저녁 주님은 잠시 쉼을 위해 그 해변을 떠나던 길이었는데 그 바다 가운데서 엄청난 풍랑을 만났습니다.
제자들은 거기에서 물에 빠져서 죽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 장소에서 미친 풍랑을 잠재우시는 주님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도대체 미친 바다도 잔잔케 하시는 예수님은 누구시냐며 놀라던 제자들을 주님은 꾸중하셨습니다.
40. 예수께서 그들에게 "왜들 무서워하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하고 말씀하셨다.(막4:40)
폭풍도 잠재우신 일이야 주님께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 분은 하나님이시니 말입니다.
그런데 사람을 보고 그에게 무엇을 기대하시나요?
그 미친 바다 가운데서.......
죽게 생긴 바다에서 나에게 믿음을 드러내라고 하시니 내가 과연 그런 존재인가?
후일에 성령을 받고 베드로는 공중 앞에 벌떡 일어나 설교를 하는 것을 시작으로
성전 앞의 앉은뱅이를 벌떡 일으키고
죽은 자를 살리고.......
그런 자신을 전에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그 때에서야 베드로는 아 미친 바다에서 그 말씀이 이 말씀이셨구나....... 기억해 냈을 것입니다.
이제는 이방인이 사는 다른 지역에 왔습니다.
이방 땅의 문제는 무엇이었을까요?
그들의 문제는 어떻게 해결되었을까요?
실은 해변에서나 그 바다 가운에서 이제 이방 땅 거라사에서도 예수님은 말씀 한 마디로 그 폭우를 잠재우셨습니다.
2. 예수께서 배에서 내리시니, 곧 악한 귀신 들린 사람 하나가 무덤 사이에서 나와서, 예수와 만났다.
2 As soon as Jesus got out of the boat, he was met by a man who came out of the burial caves there. This man had an evil spirit in him
그 땅은 예수님께서 바다 저 편으로 가자던 그 땅이었습니다.
거기서 주님이 배에서 내리셨을 때 귀신들린 사람을 만났습니다.
성경에는 귀신 이야기가 자주 나옵니다.
우리의 삶을 두고는 영적인 귀신과의 전쟁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어제도 우리는 바쁘게 우리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귀신을 본 적이 있습니까?
그런데 막상 우리 삶의 현장에서 귀신 이야기를 뉴스 시간에 들은 적이 없습니다.
제가 알기로 그런 귀신 이야기는 우리 문화에서 말하는 사람을 못 봤습니다.
세상에서는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심각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이미 정신 병원에 입원해 있을 것입니다.
나도 귀신을 본 적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처지다 보니 귀신을 설명하기가 아주 난감합니다.
그래서 저는 먼저 하나님의 영에 대해 성경의 말씀들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설교를 듣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로 말하자면 4년 전에 세상 사람에게 팔려서 카페가 될 뻔 했습니다.
교인들조차 우리 교회가 어떻게 운영되느냐고 물었습니다.
실은 노회에 가면 교회라고 불리지도 못합니다.
이런 시골 기도처에서 여러분은 지금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바로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 일 지금 설교를 듣고 있는 이 일이 하나님의 사건입니다.
이 일은 아주 특별한 영적인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영의 도움이 없이 절대 이 일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성경은 바로 이 일에 대해 단정 짓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의 역사 없이 주님의 말씀 앞에 아무도 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65. 예수께서 또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버지께서 허락하여 주신 사람이 아니고는, 아무도 나에게로 올 수 없다고 말한 것이다."(요6:65)
물론 여러분께서 여기에 놀러 오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알고 믿기 때문에 지금 교회에 모여서 그 분의 말씀을 듣고 기도하며 찬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예수님을 어떻게 그리스도로 아셨습니까?
혹시 여러분 중에 죽을병에 걸렸었는데 어디 부흥회를 다녀왔다가 예수님을 통해 나은 경험이 있습니까?
그 일 때문에 예수님을 알게 되었습니까?
그래서 그 일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게 되신 분이 여기 있으십니까?
예수님 당시에 한 엘리트가 예수님을 찾아와서 꼭 그렇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2. 이 사람이 밤에 예수께 와서 "랍비님, 우리는, 선생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임을 압니다. 하나님께서 같이하지 않으시면, 선생님께서 하시는 그런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습니다" 하고 말하였다.(요3:2)
그럴듯한 말인데 예수님은 그의 고백을 정면으로 부인하셨던 것입니다.
기적 때문에 예수님을 알아보게 되었다는 말은 잘못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기적을 통해서 알아볼 수 있는 분이 아니셨습니다.
주님의 절대부정입니다.
성령의 역사가 아니면 누구든지 예수님을 알아볼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3.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다시 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요3:3)
그러므로 여러분은 성령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옛적에 시계는 태엽을 감아야 똑딱거리며 시계가 갔습니다.
태엽의 힘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요즈음도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전지를 넣어야 그것이 돌아갑니다.
전지 약이 떨어지면 그 자리에 딱 서고 맙니다.
영적인 사건의 전지는 하나님의 성령이십니다.
성령께서 여러분 안에 들어오시자 여러분은 이제 전 사람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새로 태어난 사람이 된 것입니다.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절대로 부정할 수 없는 일이 날마다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3.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에게 알려드립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예수는 저주를 받아라" 하고 말할 수 없고, 또 성령으로 감동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는 주님이시다" 하고 말할 수 없습니다.(고전12:3)
예수님이 주님이시라는 고백쯤이야 누구인들 못 하랴 내 입에서 자동으로 가볍게 되는 일이 그 일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이 고백이 보통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 성령의 역사이셨습니다.
그런데 성령이 언제부터 그렇게 임하셨지 그 때를 설명해 보세요.
참으로 기이한 일입니다.
그렇게 내 안에서 황동하시고 날마다 나와 함께 하시고 내 입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고백하게 하시는 성령님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 하나님 때문에 교회의 장의자에 지금 앉아있고
성령 하나님 때문에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성령 하나님 때문에 성경 읽고 은혜를 받고.......
그런데 그 성령 하나님을 그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언제 몇 시에 내 안에 오셨는지 글로 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나의 인식을 뛰어넘어 내 안에 역사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8. 바람은 불고 싶은 대로 분다. 너는 그 소리는 듣지만,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는 모른다. 성령으로 태어난 사람은 다 이와 같다."(요3:8)
구원파의 주장처럼 몇월 몇시 방언을 했던 날이 아닙니다.
혹은 입신을 했더니.......
귀신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공포 영화에서처럼 깊은 산속 초가집의 문이 저절로 열리더니
바람이 휙 불고
촛불이 꺼지고.......
물론 한 사람을 미치광이로 만들어서 무덤 사이를 뛰어다니게 한 것은 귀신입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어느 시에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지 알기 힘듭니다.
귀신의 역사가 도져서 정신 병원에 입원한 날짜를 기억할 수는 있습니다.
그 사람의 귀신들린 영적 사건을 물리적으로 명료하게 확인시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일을 그림으로 그릴 수가 없습니다.
무게를 달 수 없습니다.
그것의 체온을 잴 수가 없습니다.
다만 그리스도 예수를 부인하는 모든 것이 악한 영의 역사입니다.
그리스도를 부인한다면 거라사의 광인과 같은 그런 가시적 역사가 없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사람은 공중 권세 잡은 영의 지배 아래에 놓인 것입니다.
1. 여러분도 전에는 범죄와 죄로 죽었던 사람들입니다.
2. 그 때에 여러분은 범죄와 죄 가운데서 이 세상의 풍조를 따라 살고, 공중의 권세를 잡은 통치자, 곧 지금 불순종의 자식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을 따라 살았습니다.
3. 우리도 전에는 그들 가운데서 모두 육신의 정욕대로 살고, 육신과 마음이 바라는 대로 행하여,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날 때로부터 진노의 자식이었습니다.
4. 그러나 하나님은 자비가 넘치는 분이셔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으로,
5. 범죄로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려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엡2:1-5)
바울의 고백처럼 우리 역시 마찬가지였던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신앙의 여부에 따른 현재 진행형이기도 합니다.
나는 귀신과는 상관없이 말짱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에게는 귀신의 종이냐 혹은 정상적이며 주체적인 인간이냐를 가르는 기준은 예수님에 대한 신앙 뿐입니다.
이전의 삶은 공중에 권세 잡은 악한 영이 규정하는 삶이었습니다.
그런 뜻에서 하나님 이외의 것을 절대자로 두는 모든 것이 귀신이 하는 짓입니다.
우리 안에는 하나님이신 예수님만이 절대적인 자리에 스셔야 합니다.
십계명의 첫째 계명이 그것인데 하나님 외에 절대화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것이 절대화되었다면 모조리 악한 영의 종이 된 것입니다.
3. 너희는 내 앞에서 다른 신들을 섬기지 못한다.
4. 너희는 너희가 섬기려고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어떤 것이든지, 그 모양을 본떠서 우상을 만들지 못한다.
5. 너희는 그것들에게 절하거나, 그것들을 섬기지 못한다. 나, 주 너희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에게는, 그 죄값으로, 본인뿐만 아니라 삼사 대 자손에게까지 벌을 내린다.
6. 그러나 나를 사랑하고 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에게는, 수천 대 자손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은 사랑을 베푼다.(출20:3-6)
사탄이 하는 일은 단 한 가지입니다.
십계명 중에 제 일 계명을 어기게 하는 것입니다.
이 한 가지의 사건이 사탄이 뜻하는 대로 사람 안에서 이루어지게 되면 그 사람의 모든 것이 완전히 고장 나고 맙니다.
사탄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리스도의 자리에 가짜 절대자를 앉혀두려는 것입니다.
6.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는 '내가 그리스도다' 하면서, 많은 사람을 속일 것이다.(막13:6)
오늘의 본문도 그 말입니다.
우리 마을 사람들의 마음은 한 가지입니다.
어떤 누구도 돼지 2,000 마리와 한 사람의 생명을 바꿀 생각이 없습니다.
그 사람이 귀신들려 미쳐 날뛰어도 괜찮습니다.
이런 식의 일이 우리 마을에서 다시 일어날까 무서우니 어서 우리 마을을 떠나주세요.
우리는 진짜 하나님을 우리 옆에 모셔두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일을 해주는 가짜를 원합니다.
그런 귀신의 작업들을 수두룩합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말씀을 종교 이념으로 바꾸어 두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짜 그리스도를 섬기게 하는 중요한 방식입니다.
1.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셨다. 그런데 거기에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
2. 사람들은 예수를 고발하려고, 예수께서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쳐 주시는지를 보려고, 예수를 지켜 보고 있었다.
3. 예수께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일어나서 가운데로 나오너라" 하고 말씀하셨다.
4. 그리고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에 선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악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옳으냐? 죽이는 것이 옳으냐?" 그들은 잠잠하였다.
5. 예수께서 노하셔서, 그들을 둘러보시고, 그들의 마음이 굳어진 것을 탄식하시면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손을 내밀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 사람이 손을 내미니, 그의 손이 회복되었다.
6. 그러자 바리새파 사람들은 바깥으로 나가서, 곧바로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를 없앨 모의를 하였다.(막3:1-6)
바리새파 사람들과 헤롯 당원들은 예수님을 죽여 없애려 했습니다.
막상 그들은 성전 안에서 회당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수없이 불렀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수없이 부르며 하나님을 부인하고 있었습니다.
좌우간에 말씀을 부인하게 하는 것들이 사탄입니다.
사탄은 신앙을 세속을 위한 수단으로 삼게 할 것입니다.
5. 그리고 마음이 썩고 진리를 잃어서, 경건을 이득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사람 사이에 끊임없는 알력이 생깁니다.(딤전6:5)
얼마 전 러시아의 성탄절 날입니다.
푸틴이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도 우리가 부르는 하나님과 예수님을 불렀습니다.
성탄 성명을 발표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전쟁을 일으켜 사람을 죽이는 자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휴전 운운 신앙 고백을 했을 때 여러분들은 무슨 생각이 들었습니까?
아주 종교적인 형태를 취했지만 가증했습니다.
그것은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닙니다.
전두환이가 조찬 기도회 할 때 그 사람을 두고 여호수아 운운 기도했습니다.
독재자들이 그 조찬 기도회를 연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자는 것이 아닙니다.
정치 통치술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죽이려는 헤롯이 한 일은 종교 지도자를 부르는 일이었습니다.
그리스도를 죽이기 위해 종교 엘리트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4. 왕은 백성의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을 다 모아 놓고서, 그리스도가 어디에서 태어나실지를 그들에게 물어 보았다.
5. 그들이 왕에게 말하였다. "유대 베들레헴입니다. 예언자가 이렇게 기록하여 놓았습니다.
6. '너 유대 땅에 있는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통치자들 가운데서 가장 작지 않다. 네게서 통치자가 나올 것이니, 그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먹일 것이다.'"(마2:4-6)
그리고 그는 베들레헴으로 군인을 보냈습니다.
16. 헤롯은 박사들에게 속은 것을 알고, 몹시 노하였다. 그는 사람을 보내어, 그 박사들에게 알아본 때를 기준으로, 베들레헴과 그 가까운 온 지역에 사는, 두 살짜리로부터 그 아래의 사내아이를 모조리 죽였다.(마2:16)
독재자가 기독교를 제 정치술에 이용해 먹은 것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군들을 조사했습니다.
적군의 생명을 향해 자발적으로 총을 쏠 수 있는 사람의 비율이 15~20%였다고 합니다.
적이라도 사람의 생명을 향해 총질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군은 이 비율을 끌어올리는 작업을 했는데 한국 전쟁에서 그 비율이 55%에 달했다고 합니다.
이 비율을 끌어올리는 일을 누가 감당했을까요?
군목입니다.
여러분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군목으로써는 모범이라고 불리는 영국 성공회의 제프리 케네디(1883~1929)는 “총검 정신은 바로 예수의 정신”이라며 총검술 훈련하는 병사를 충동했다는 것입니다.
미국 감리교의 한 목사는 “나 같으면 독일놈의 배를 총검으로 찌르는 데 하등의 머뭇거림도 없을 것이고, 차후에도 하등의 가책을 느끼지 않을 것”이라고 원색적 설교를 했답니다.
이제 적군 독일 군의 군목을 봅시다.
2차 대전 독일 교회는 사회주의 혐오를 교회의 신조로 내세워 설교했습니다.
자본주의를 하나님주의로 대변하는 한국 교회와 같은 설교 내용입니다.
독일 군목 에밀 오트라는 “우리는 이 전쟁에서 신을 경험한다”라고 전제하고 “전장에서 성경의 세계가 현실화되어 나와 하나님이 하나가 돼 민족들 사이에 우리의 권세를 과시함으로써 기적을 일으킨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렇게 동요된 수많은 독일군들은 일기장이나 개인 편지 등에 “예수와 기독교 순교자들의 희생”에 빗대어 “고상하고 만족스러운, 남성다운 희생”이라고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들은 무슨 생각을 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양쪽 군대에서 양쪽 사람 죽이는 일에 편들어 주시는 분이 예수님이십니까?
그래도 핏대 세우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제 이념을 대변하실 것입니까?
남북 전쟁의 앞잡이가 되실 것입니까?
연합군이고 독일군이고 전두환 같은 독재자들이고 제 입맛에 맞는 대로 가져다 쓰는 것이 예수님의 이름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이름을 정치적인 이권 그 세속적인 이익의 수단으로 삼은 것입니다.
가짜 예수님을 절대적인 자리에 앉혔을 때 어떤 비극이 일어나는지 우리는 경험한 것입니다.
세계대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께서 제시하신 기독교 정신의 핵심으로 돌이켜 우리의 종교 생활을 헤아려 보아야 합니다.
29.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30.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여라.'
31.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여라.' 이 계명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막12:29-31)
첫째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 네 이웃의 종교를 사랑하는 것도 아닙니다.
네 이웃의 이념을 사랑하는 것도 아닙니다.
흑인은 사람 축에 못 낀다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면 누구라도 그 생명 자체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이웃 생명 사랑에 이념 따위를 들먹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념은 사람의 작품이고 계명은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주 간단합니다.
그가 사람을 죽였어 안 죽였어? 그것을 물으라는 것입니다.
사람 생명을 위협했는지 그 독재를 물으라는 것입니다.
이념, 종교, 경제 발전, 사회 계급, 인종....... 어떤 것도 사람 생명을 해하는 일에 정당성을 제공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생명이 절대 기준입니다.
하나님은 종교나 이념을 만드신 것이 아니라 이웃의 생명을 만드신 것입니다.
탕자가 죽게 되어서 집에 돌아왔을 때 형 안에 불끈 일어난 것은 윤리의식이었습니다.
그 윤리 의식으로 동생이라는 관계를 무시했습니다.
그 윤리 의식으로 인해 동생의 생명이 위협당했습니다.
아버지는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대단히 윤리적이구나.
그런데 대단히 잔인하구나!”
32. 너의 이 아우는 죽었다가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으니,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느냐?' 하였다."(눅15:32)
기독교는 이런 이념이나 종교를 고수하기 위한 도구가 아닙니다.
하지만 교회가 적극 나서서 계명의 절대성을 부인하므로 세상으로 하여금 무덤 사이로 뛰어다니게 한 적이 수없이 많습니다.
왜 신앙으로 이념을 대변하는가!
하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사람의 생명을 살리신 것입니다.
그 십자가에서 윤리의 기준을 세우신 것이 아닙니다.
비극의 장소 거라사에 예수님께서 오신 것입니다.
광인이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예수님과의 만남이 기적입니다.
이 거라사 사람은 자기 자신을 귀신에게 완전히 내주었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귀신이 원하는 대로 찢어진 옷을 입고 이상한 말을 중얼거리며 침을 흘리고 무덤 사이를 뛰어 다녔습니다.
모조리 그 귀신이 원하는 것들입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가 도래한 것입니다.
그가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28.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영을 힘입어 귀신을 내쫓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왔다.(마12:28)
예수님과 만남으로 귀신에게 종말이 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사람의 몸에 마귀를 허락하시는가?
예수님과 함께 했는데 그런 미친 바다를 만났던가?
거기는 제자들이 예수님을 만난 장소였습니다.
거기는 제자들이 자신들의 믿음을 드러낼 장소였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공생애를 시작하는 그 순간 왜 마귀의 시험부터 당하셨는가?
주님은 그것을 극복하셨을 뿐입니다.
또 우리 역시 마귀의 시험을 극복하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그것을 극복할 답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주님의 손을 빌어서 그 마귀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이 구원입니다.
3. 그는 무덤 사이에서 사는데, 이제는 아무도 그를 쇠사슬로도 묶어 둘 수 없었다.
3 and lived among the tombs. Nobody could keep him tied with chains any more;
한 사람이 귀신들려서 그 마을 사람 전체가 미칠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쇠사슬에 쇠고랑을 동원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물리력을 가지고 귀신을 통제할 수 없었습니다.
물론 그 마을에서 가장 괴로운 사람은 귀신들린 당자사였습니다.
그는 고통으로 몸서리를 치면서도 자신의 뜻을 역행하는 귀신의 더러운 의지를 따라야 했습니다.
그 사람의 존재를 결정하는 것은 귀신이었습니다.
귀신이 그 사람 안에서 주인 노릇을 하고 있었습니다.
귀신이 그 사람을 규정하게 된 것입니다.
귀신들린 사람!
바로 이 점에서 주님은 사도들을 파송하면서 그들에게 귀신 몰아내는 권세를 주신 것입니다.
사도들은 귀신으로부터 이 사람을 구원해 주어야 했습니다.
1.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가까이 부르셔서, 그들에게 악한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고, 악한 귀신을 내쫓고 온갖 질병과 모든 허약함을 고쳐 주게 하셨다.(마10:1)
귀신을 몰아내는 것을 기적의 과시 행위가 아닙니다.
그 일은 인간 회복의 관건입니다.
4. 여러 번 쇠고랑과 쇠사슬로 묶어 두었으나, 그는 쇠사슬도 끊고 쇠고랑도 부수었다. 아무도 그를 휘어잡을 수 없었다.
4 many times his feet and his hands had been tied, but every time he broke the chains and smashed the irons on his feet. He was too strong for anyone to control him.
첫째 귀신 들린 사람은 귀신으로 말미암아 자기 통제가 불가능했습니다.
둘째 귀신 들린 이 사람이 이 마을 사람들에게 얼마나 위협적인 존재가 되었던가!
귀신들린 한 사람이 이 마을을 충분히 뒤집어 놓았습니다.
그것이 침 흘리며 희죽거리며 무덤에서 뛰어나와 마을을 활보했습니다.
우리 봉성에서는 낫을 허리에 차고 한길을 다녔습니다.
마을 사람 모두 이 한 사람의 통제를 바랬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을 어떻게 통제 할 수 없었습니다.
쇠고랑과 쇠사슬로 묶는 것도 헛일이었습니다.
물론 그 수단 쇠고랑과 쇠사슬만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이 영적인 방식이라고 해도 그렇습니다.
그것은 어떤 주술사가 해결할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1. 어찌하여 뭇 나라가 공모하며, 어찌하여 뭇 민족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2. 어찌하여 세상의 임금들이 나서고, 어찌하여 통치자들이 음모를 꾸며 주를 거역하고, '기름 부음 받은 분'을 거역하면서 이르기를
3. "이 족쇄를 벗어 던지자. 동여맨 이 사슬을 끊어 버리자" 하는가?
4. 하늘 보좌에 앉으신 분이 웃으신다. 내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신다.
5. 마침내 주께서 분을 내고, 진노하셔서, 그들에게 호령하시며 이르시기를
6. "내가 거룩한 산 시온 위에 '나의 왕'을 세웠다" 하신다.(시2:1-6)
나의 구원이란 내가 보리수 밑에 앉아서 도를 닦는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아니면 금식을 한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어떤 도술도 아닙니다.
우리는 그 구원의 주체에 주의해야 합니다.
그 구원의 일은 내 손 밖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 일은 오직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그 일이 하나님의 손에서 해결되었습니다.
그것은 오직 주님의 손안에서 해결될 문제입니다.
그 일을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해결하신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이 사건은 예수님과 만남에서 시작됩니다.
만남이 이 사람의 운명을 바꿀 것입니다.
목사가 다른 것입니까?
목사의 역할은 예수님을 만나게 해주는 것입니다.
의사 중에는 진단과 수술에 용한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의 기술의 여부에 따라서 그 결과가 결정되어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목사는 다릅니다.
목사가 기술을 부리는 것이 아닙니다.
목사의 축귀 기술 혹은 설교 기술.......
용한 목사의 할 일은 자신이 가장 무능해지는 일입니다.
자신은 흔적이 없이 사라지는 일입니다.
30. 그는 흥하여야 하고, 나는 쇠하여야 한다."(요3:30)
그래서 예수님께서 전도자를 파견하실 때에 오직 믿음만 가지고 가리고 하신 것입니다.
어떤 것들도 다 놓고 가라는 것이니다.
3. 그 때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길을 떠나는 데는,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말아라. 지팡이도 자루도 빵도 은화도 가지고 가지 말고, 옷도 두 벌씩은 가지고 가지 말아라.(눅9:3)
의사는 청지기를 주사기를 필요로 합니다.
목수는 망치와 톱을 손에 들어야 합니다.
목사는 아무것도 손에 들면 안 됩니다.
예수님만이 그에 도우심이라는 것을 보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귀신이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 예수님께 한 말입니다.
24. "나사렛 사람 예수님, 왜 우리를 간섭하려 하십니까? 우리를 없애려고 오셨습니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 압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거룩한 분입니다."
25. 예수께서 그를 꾸짖어 말씀하시기를 "입을 다물고 이 사람에게서 나가거라" 하셨다.(막1:24,25)
참으로 이상한 일이 있습니다.
마귀는 예수님의 정체를 알고 있었습니다.
마귀조차 예수님의 능력을 알고 고백했습니다.
그 분께서는 그 마귀 정도는 없애버리실 충분한 능력을 가지고 계셨던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 능력으로 그를 그 마을에서 없애신 것이 아닙니다.
귀신과 함께 그 사람을 태워 죽이신 적이 없습니다.
주님께서 하신 일은 그 재앙의 원인을 그 마을에 그대로 남겨주신 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고만 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이런 입장은 일관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때까지.......
7. 천 년이 끝나면, 사탄은 옥에서 풀려 나서,
8. 땅의 사방에 있는 민족들,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려고 나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전쟁을 하려고 그들을 모을 것인데, 그들의 수는 바다의 모래와 같을 것입니다.
9. 그들은 지면으로 올라와서, 성도들의 진과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도시를 둘러쌌습니다. 그러나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서, 그들을 삼켜 버렸습니다.
10. 그들을 미혹하던 악마도 불과 유황의 바다로 던져졌는데, 그 곳은 그 짐승과 거짓 예언자가 있는 곳입니다. 거기에서 그들은 영원히, 밤낮으로 고통을 당할 것입니다.(계20:7-10)
주님은 더러운 귀신에게 거라사 동사무소에 주민등록을 하고 살게 허락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을 마녀로 지목하고 사람들을 매달아 죽이고 태워죽였던 역사가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귀신과 사람을 분명하게 구분하셨습니다.
주님은 귀신을 그 사람에게 쫓아내셨을 뿐입니다.
주님은 다만 귀신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이 사람에게서 나가라!”
더욱이 놀라운 사실은 주님은 더러운 마귀의 요구를 그대로 들어주셨다는 사실입니다.
12. 귀신들이 예수께 "우리를 돼지들에게로 보내셔서, 그것들 속으로 들어가게 해주십시오" 하고 간청하였다.
13. 예수께서 허락하시니, 악한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들 속으로 들어갔다. 거의 이천 마리나 되는 돼지 떼가 바다 쪽으로 비탈을 내리달아, 바다에 빠져 죽었다.(막5:12,13)
하나님은 욥의 의를 칭찬했습니다.
그러자 사탄이 욥을 고발했습니다.
9. 그러자 사탄이 주께 아뢰었다. "욥이,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겠습니까?
10. 주께서, 그와 그의 집과 그가 가진 모든 것을 울타리로 감싸 주시고, 그가 하는 일이면 무엇에나 복을 주셔서, 그의 소유를 온 땅에 넘치게 하지 않으셨습니까?
11. 이제라도 주께서 손을 드셔서, 그가 가진 모든 것을 치시면, 그는 주님 앞에서 주님을 저주할 것입니다."(욥1:9-11)
사탄의 말은 욥이 정말로 의롭다면 주님이 주셨던 것을 다 빼앗아도 하나님을 대하는 일에 상관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탄의 말에 그 시험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12. 주께서 사탄에게 말씀하셨다.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다 네게 맡겨 보겠다. 다만, 그의 몸에는 손을 대지 말아라!" 그 때에 사탄이 주님 앞에서 물러갔다.(욥1:12)
욥은 그 시험을 통해 자신의 의를 드러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의 생명에는 손을 대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욥은 시작이 미약했으나 나중에는 대기업주가 되는 일 때문에 하나님을 믿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회사가 부도처리 되었어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그의 의가 드러난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다만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더러운 귀신아!” 이 말 뿐입니다.
이방 땅 거라사 뿐 아니라 유대 땅에서도 주님의 첫 사역이 그 일이셨습니다.
23. 그 때에 회당에 악한 귀신 들린 사람이 하나 있었는데 그가 큰소리로 이렇게 말하였다.
24. "나사렛 사람 예수님, 왜 우리를 간섭하려 하십니까? 우리를 없애려고 오셨습니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 압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거룩한 분입니다."
25. 예수께서 그를 꾸짖어 말씀하시기를 "입을 다물고 이 사람에게서 나가거라" 하셨다.(막1:23-25)
5. 그는 밤낮 무덤 사이나 산 속에서 살면서, 소리를 질러 대고, 돌로 제 몸에 상처를 내곤 하였다.
5 Day and night he wandered among the tombs and through the hills, screaming and cutting himself with stones.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셨습니다.
밤에 잠을 자고 낮에 활동할 수 있는 사람은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귀신들린 자에게는 그 일이 안 됐습니다.
그리고 산 속이 아니라 마을 사람과 잘 어울려서 사는 사람을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귀신들린 자에게는 그 일이 안 됐습니다.
그 사람의 거처가 묘지가 되었습니다.
그는 알 수 없는 소리를 질러댔습니다.
듣는 사람들은 혼란에 빠졌고 정말 고역이었습니다.
그들이 질러대는 소리는 방향도 없은 불안이었습니다.
또 이유 모를 적대였습니다.
그것은 사랑과는 거리가 멀고 정의와 거리가 먼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귀신들린 사람은 자신의 몸을 자해했습니다.
이런 지극히 비상식적인 일의 원인은 귀신에게 있었습니다.
한 탈북자의 고백입니다.
그 녀는 “나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이 가사에 충격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 짧은 가사를 통해서 그는 자신에 대한 전혀 새로운 시각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사랑받을 존재였다는 것을 처음 안 것입니다.
그 녀는 반평생 내가 누구인지 모르고 살아왔던 것입니다.
그 녀가 중국에 몸이 팔려가고 악질 브로커에게 강간을 당하며 배운 것입니다.
자신은 사랑받을 대상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사랑을 십자가에서 시작하신 것입니다.
19.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함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여 주셨기 때문입니다.(요일4:19)
하지만 귀신이 보여주는 것은 오직 증오뿐입니다.
이제 자신까지 자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사랑의 대상으로 발견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신 분입니다.
생명을 만드셨습니다.
일관된 사랑으로 이 땅을 섭리하십니다.
또한 그 사랑의 사건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1912년 4월 10일 초호화 여객선 타이타닉호에 몸을 실은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딸과 여동생을 데리고 미국 시카고로 가는 그 배를 탔습니다.
배가 출항 나흘만에 영국령 뉴펀들랜드 해상에서 빙산과 충돌했습니다.
침몰되는 배에 구명정은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물에 빠져 죽어갔습니다.
그는 무서운 바다 위를 헤엄쳐 다니며 물에 빠진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예수님을 전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구명조끼를 "나보다는 당신에게 더 필요합니다"라며 한 불신자에게 벗어주었습니다.
그것을 얻어 입은 그 사람은 이해를 못 했습니다.
왜 자신은 죽고 나를 살리는 것이지?
그렇게 이해할 수 없는 일을 한 사람은 후퍼 목사였습니다.
캐나다 온태리오에서 생존자 재회모임이 열렸을 때 그 젊은이가 그 후퍼 목사 대신 살게 된 사람이 자신이라고 간증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있을 때 누구든 세상과는 전혀 다른 방향성을 가지게 됩니다.
그 일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 일은 사람의 생명에 관한 일입니다.
거라사 사람들은 쇠사슬과 쇠고랑으로 이 미친 사람을 통제하려 했습니다.
그런 물리적인 방식을 귀신에게 통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십자가의 영적인 사건을 통해 그 귀신을 통제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생명을 살리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