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인사말
민구시기 지음
슬슬 겨울 옷을 꺼내야 하는 때가 되었습니다
바짝 다가선 겨울
숨 가쁘게 달려온 한 해를 슬슬 마무리하듯
나무도 낙엽을 떨구고
그 위로 하얀 서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조금 있으면 첫 눈이 오겠지요
마음으로부터 준비도 단디 해야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두꺼운 스웨터를 입고
따뜻한 헤즐럿 향기 진한 커피를 준비하고
벤치로 나가 잠시 앉아 있어봐도 좋고
햇볕 따듯한 오후를 만나봐도 좋겠습니다
쌀쌀하지만 상쾌한 11월의 하루입니다
겨울 먹을 양식을 저장하는 다람쥐의 발걸음이 바쁩니다
우리도 긴 겨울을 잘 보내려면
마음 창고에 양식을 잘 갈무리해야 하겠습니다
등화가친의 계절이니까요
쌀쌀한 가 싶더니 어느덧 나무들이 앙상한 가지만 남기고
낙엽은 모두 땅으로 떨어져 뒹굴고 있습니다
겨울 소리가 들립니다
시간도 이런 모습으로 빠르게 지나가고 있지요
우리도 이렇게 숙성되고 있는 것이겠지요
아침저녁으로 불어오는 쌀쌀한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합니다
올 겨울은 가끔 유난하게 추울 거라고 합니다
단 한번을 위해서라도 춥지 않을 두꺼운 외투가 필요 하듯이
단 한번이라도 실수하지 않기 위해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하겠습니다
가을이 겨울에 밀려가는 것인지
가을이 겨울을 끌고 오는 것인지는
내 마음에 따라 다를 것 같습니다
어떻든 계절은 멈추지 않고
시간도 멈추지 않으니
그 속도에 잘 편승하여야 하겠습니다
국화가 필 때
누이가 생각나듯이
김장을 생각할 때
어머니가 생각나고
넓은 들판을 생각할 때면
아버지가 생각납니다
가을이 되면 잊혀진 이름들이 생각나지요
서리가 하얗게 내린 날 아침
머리에 서리를 안고서도 고고함을 잃지 않고 핀
국화를 봅니다
가까이 다가가 향기를 맡아봅니다
그대의 얼굴이 향기가 다가옵니다
오늘은 전화를 한번 해 보심이 어떨지요?
늦가을을 즐기고 픈 11월의 하루입니다
흔들림이 적어진 나무들이
조용하게 겨울을 보내라는 듯
꼿꼿하게 의젓합니다
나도 그렇게 동안거를 잘 보내야 하겠습니다
추수를 끝낸 가을 들녘에
여름의 땀들이 얼룩이 되어 번지고 있습니다
가을의 절반은 땀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낙엽을 쓰는 청소부의 바쁜 손길을 봅니다
길을 낙엽을 허락하지 않지만
계절을 낙엽을 가만히 맞이하지요
받아들여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을 생각하는 11월입니다
아침부터 하늘이 어둡더니
드디어 첫눈이 오는가 봅니다
첫눈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지요
잊었던 약속도 꺼내고
미쳐 마무리하지 못한 것들도 서두르게 되지요
세상에 새 그림을 그리는 첫눈입니다
아직 매달려 있는 몇 안되는 이파리를 봅니다
아직 이루지 못한 아쉬움이 있는가 봅니다
늦 가을 비를 맞고 있는 낙엽에게
잘 마무리하라는 안부를 전합니다
은행 나무 잎들이 길 위를 덮고 있습니다
노란 포장을 한 길이
마감 인사를 하는 것 같습니다
바람이 낙엽을 쓸고 가면
첫눈이 오겠지요
따뜻한 찻집 난로 가에 앉아
가을 냄새 가득한 국화 차 한잔을 놓고
가을이 가는 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그 소리를 함께 들어줄 사람이
옆에 있다면
가을이 더 아름답겠네요
잎을 다 떨구고 열매만 남은 산수유가
빨간 가을을 매달고 있습니다
하얀 눈을 쓰고 있었던 지난 겨울의 산수유 열매를 본 기억이 있습니다
11월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립니다
추워진 날씨에 기침소리가 자주 들립니다
감기 조심하세요
감기는 아마도 나를 좀 봐 달라는 신호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따뜻한 옷차림을 한 사람들의 종종걸음을 봅니다
바쁜 듯이 걷는 걸음들도
오늘 하루 멋진 마무리로 저 길을 되돌아올 것이라고 믿습니다
기지개 크게 켜고
모두의 안녕을 빌어봅니다
올 겨울은 얼마나 많은 눈이 올까요?
눈이 많이 오면 겨울은 더 무겁겠지요
불편함을 넘어서
겨울다운 맛을 느낄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해 봅니다
빨간 홍시 하나가
까치 밥이 되어 매달려 있습니다
마음이 넉넉해집니다
내 마음에도 까치밥처럼
누군가를 위해 남겨둔
작은 베품 하나쯤 있으면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11월이 되면
수고한 지난 것들을 접어 넣고
겨울 것을 꺼내 닦고 준비하는 계절이기도 합니다
누구는 겨울 타이어를
누구는 겨울 옷을, 등산 용구들을
누구는 스키나 보드 같은 즐길 것을
그리고 누구는 깊이 간직한 새로운 단어들을
콧물을 훌쩍이는 계절
코로나와 마스크 덕분에 감기가 줄었다고 합니다만
겨울은 누구에게나 힘든 계절이기도 합니다
건강은 누구도 자신하면 안됩니다
내 몸의 가장 약한 부분을 잘 관리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겨울을 멋지게 즐길 수 있겠지요
11월이 지나면
한해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달이 옵니다
길어지는 밤의 길이를 생각하며
더 많은 사유와
더 많은 이름들과
더 많은 나눔을 생각하는 11월이기도 합니다
석양이 더 붉어지는 11월의 끝 무리입니다
겨울 잠을 자는 동물들이 땅 속으로 들어가고 난 시간
움직임이 줄어든 숲에는
조용한 기다림이 흐르고 있는 모습입니다
발걸음도 신중해지는 겨울입니다
빨갛던 단풍잎이 말라버린 채
떨어져 있고
이제는 물들 것이 없는 숲은
눈들이 덮을 것입니다
그리고 침묵하면서
생각이 깊어질 숲으로 여행을 한번 계획해 보심이 어떨지요?
11월에는 그리움을 만들고
12월에는 그리움을 펼치고
새해에는 그리움이 기쁨으로 바뀌어 지는
겨울을 보냈으면 합니다
잊혀진 이름들을 기억해 내고
고맙고 감사한 생각들을 꺼내 보고
짧지만 분명한 인사를 건네 볼 연구를 해 보심이 어떨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