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의 제6대, 7대 원로회의 의장을 지낸 혜광(慧光)당 종산(宗山)대종사의 영결식과 다비식이 조계종 종단장으로 엄수됐다.
구례 화엄사는 지난 6월 27일 대웅전 앞마당에서 23일 청주 보살사에서 입적한 조실 혜광당 종산대종사의 영결식과 다비식을 엄수했다.
영결식에는 종정 진제스님, 총무원장 원행스님과 종단 중요소임자, 원로회의 의장 세민스님을 비롯한 원로의원, 각 교구본사 주지, 종회의원, 화엄사 교구 스님 등 300여 분의 스님들과 전남도 김영록 도지사와 신도 등 800여명의 사부대중이 참여해 큰스님을 보내는 마지막 시간을 함께했다.
행사는 명종 5타를 시작으로 삼귀의 영결법요(인묵스님), 행장소개(보광스님)에 이어 종산스님의 생전 육성법문이 행사장을 숙연하게 했다. 이어 영결사(원행스님), 법어(종정 진제스님), 추도사(세민스님), 조사(중앙종회 의장 범해스님, 교구본사주지협의회장 정묵스님, 중앙신도회장 이기흥, 전남도지사 김영록), 조가(화엄사 마하바라합창단), 헌향(종단대표, 각계대표, 신도대표)이 이어졌다. 이어 화엄사 문장 명선스님의 인사말이 이어졌다.
진제스님은 법어를 통해 “주장자를 듦이여, 옛 부처와 삼천 세계를 잡아 열고, 모든 중생의 한 조각 마음을 가리켜냄이로다. 평생토록 심담을 만 사람에게 기울이니, 허물이 하늘에 가득함을 범하니 많고 많음이로다”라고 게송을 말하고, “종산 대종사께서는 생사무상(生死無常)의 고통을 느끼고 출가를 단행하신 이래 본분사(本分事)인 생사해탈을 위해 위법망구(爲法忘軀)한 종장이셨다. 또한 종단의 안정과 발전을 위하여 원로회의 의장의 소임을 마다하지 않은 대자비의 수행사(修行事)를 보이시어 후학의 귀감이셨다”라고 회고했다.
법어에 앞서 원행스님은 영결사에서 “종산 대종사께서는 육신을 치료하는 의사의 길이 아닌 마음을 다스리고 치유하는 납자의 길을 가겠다며 발심 출가하시어, 오직 참선수행의 길을 걸으셨으며, 범어사와 천축사 무문관에서의 용맹정진은 후학들에게 귀감이 되었다” 말하며, “대종사님은 종단의 위계질서를 바로 세우고 승풍을 진작하기 위해 참으로 노력해주셨다”고 종단에 기여한 업적을 추모했다.
세민스님은 추도사에서 “큰스님은 오늘 적멸의 진상(眞相)만 남기고 무생(無生)의 세계로 돌아가 법계(法界)의 자유인이 되셨다”며 “생멸이 없는 세계로 돌아가셨는데 가슴은 무너지고 슬픔은 참을 수가 없다”라고 애도했다.
범해스님도 조사를 통해 “큰스님께서 이 사바세계에서 보이셨던 구도자로서의 행장과 참 모습은 불교의 등불을 환하게 밝히고, 인천의 사표이자 민족의 스승으로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라고 추모했다.
조사에 이어 화엄사 문장 명선스님은 감사의 인사말을 통해 “영결식에 참여해 주신 사부대중에게 화엄사 문도를 대표해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앞으로 큰스님의 유훈으로 부지런히 정진하는 문도의 삶을 살아가겠다”고 말했다.
영결식에 이어 법구는 화엄사 대중스님들에 의해 경내와 일주문 노재를 통해 다비장으로 이운됐다. 이운은 인로왕번, 명정, 삼신불전, 오방불번, 십이불전, 법성게, 만장을 앞에 두고 영정과 위패, 법주, 법구가 이운되고, 문도와 장의위원, 비구, 비구니, 재가불자 등이 뒤를 따랐다.
다비장에 도착한 법구는 ‘아미타불’ 염불 속에 장작더미에 옮겨졌고, “큰스님 불 들어갑니다”라는 외침과 함께 거화와 5시간의 다비가 진행되며 세연의 인연을 다했다.
장례위원회는 추후 6월 29일 화엄사 초재를 시작으로 2재는 7월6일 화엄사, 3재는 7월13일 보살사, 4재는 7월20일 화엄사, 5재는 7월27일 태안사, 6재는 8월3일, 막재는 8월 10일 화엄사에서 각각 봉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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