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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과학23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2) -2016년 6월 7일 화요일<휴일로 인한 날짜 연기> 감상문 우리에게 있어서 기준이란 얼마나 중요한가를 코페르니쿠스는 알려주고 있다. 토머스 쿤의 말, ‘코페르니쿠스는 혁명적이었다기 보다는 혁명을 시작하는 것이었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와 프톨레마이오스, 그리고 그 외에 많은 이전 사람들의 우주의 체계와 계산 방식을 따라갔다. 그러나 한 가지, 그는 지구중심에서만, 즉 자기중심적으로만 생각한 것이 아니라, 나아가 더 큰 것과 그것의 입장, 다시 말해 운영자의 입장에서 바라보았을 뿐이다. 이러한 따라가는 입장에서 오류-불만-는 거의 두 가지에서만 생겨난다. 하나는 운영자의 실수와 둘째는 따라가는 자의 실수이다. 그러나 이것은 결국 자기중심적 생각에서 일어난다. 왜냐하면 운영자는 자기중심적 생각에서 이끌다 보니 따라가는 자의 불만을 만들고, 따라가는 자가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다보니 운영자의 생각을 미처 알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작은 것 보다 큰 것이 더 완벽하다는 것이다. 인간보다는 자연이, 자연보다는 지구가, 지구보다는 우주가, 우주보다는 창조주가 더 완벽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항상 더 큰 것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 나보다는 운영자의 입장에서, 운영자보다는 만물의 입장에서, 만물의 입장보다는 우주의 입장에서. 그리고 나아가 창조하시고 영광 그 자체이신 삼위일체 하나님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바라보아야 하며, 마침내는 인격체이신 하나님의 뜻을 묻고 동행해야 할 것이다. 이런 이치는 작은 것이든, 반대의 것이든 간에 어디서든 찾아 볼 수 있다. 이것은 우주의 이치, 즉 태양을 중심으로 행성들은 돌며 자신의 입장에서는 다른 행성과 떨어져 있다하더라도, 결국 중심에서는 같은 거리를 유지하며, 자신이 역행하는 것처럼 보일 지라도 결국 같은 속도라는 것에서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주는 확실히 완벽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변하고, 그런 변화에서 튕그러져 나가는 것은 우리의 책임일 것이다. -속도는 크기를 크기는 속도를 무한이 증가 시킨다. 그렇다면 속도는 빨라질 것이고 그 빠른 속도의 힘이 증가될 것이다. 그 안에서는 결코 우리의 힘으로 버틸 수 없을 것이다. 이치에 맞추어 살아가지 않는 한-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포기하지 않는 한에서 같은 이치를 살아감을 믿고, 결국 이치가 확실하다면 그 이치를 따라가는 현명한 우리가 되자.
제 1 권
천문학은 ‘보이는 신’인 우주를 탐구한다는 점에서, 수학의 정점을 찍는다는 점에서 세속적으로 최고의 학문이다. 뿐만 아니라 천문학은 그 질서와 장엄함, 거기에서 오는 신성함이 창조주의 빼어난 솜씨를 찬양하게 한다는 점에서 종교적으로 최고의 학문이라 하겠다.
천문학이 최고의 학문인만큼 이를 탐구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 예를 우리는 그리스인에게서, 그리고 프톨레마이오스에게서 볼 수 있다. 그리스인들은 이 학문에 대한 다양한 가설을 세웠지만, 의견의 일치를 이루지 못해 단일한 계산법을 찾지 못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40년 연구 결과로 뛰어난 업적을 이루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결과로는 천체에 대한 많은 부분들이 설명되지 않는다. -즉 복잡하고 어렵다-
따라서 나는 신의 도움을 통해 그것들을 좀 더 면밀하게 검토할 예정이다. 그리고 나는 이러한 것들에 대한 탐구에 길을 처음으로 열어 준 선배들의 연구를 기초로 하기는 하겠지만, 문제의 대부분을 그들과 다르게 설명할 것이다.
제 1장 우주는 구형이다.
먼저 우리는 우주가 공 모양임을 주목해야 한다. 우주가 구형인 이유로는 1) 구형은 하나의 완전한 전체로 가장 큰 용적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2) 구형은 태양, 달, 별, 심지어 물방울마저 구형 모양으로 경계되어지기 때문이다.
제 2장 지구도 역시 구형이다
지구도 역시 구형으로 지구의 모든 지역이 중심을 향하고 있다. 그러나 높은 산과 깊은 계곡 때문에 지구가 완전한 구형임을 즉각 알 수는 없다.
지구가 구형이라는 점은 다음과 같은 사실로써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북쪽으로 여행한다고 할 때, 일주운동의 중심축인 북극점은 점점 높아질 것이고 남극점은 같은 정도로 낮아질 것이다. 그리고 북쪽에 있던 많은 별들은 지지 않게 될 것이고, 남쪽의 별들은 뜨지 않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지구의 극점으로부터 같은 거리만큼 떨어져 있는 지역 어디에서나 천구 극점의 고도는 같은데, 이러한 일은 구형 이외의 다른 형태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또한 동쪽 지방의 주민들은 저녁에 일어나는 일식을 감지하지 못하고 서쪽 지방의 주민들은 아침에 일어나는 형상들을 감지하지 못한다. 이러한 현상들은 중부지방의 사람들 중 어떤 사람들은 일찍 보고 어떤 사람들은 늦게 본다.
게다가 항해자들은 수면도 마찬가지로 구형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예를 들어, 돛대에 등불을 달고 배가 육지로부터 멀어져 간다면, 육지에 있는 사람에게는 그 빛이 점차 아래로 내려가 결국은 별이 지듯이 사라지는 것으로 보이게 된다.
제 3장 땅과 물은 어떻게 하나의 구체를 형성하는가.
재미있게도 물은 언제나 낮은 곳을 향하여 흐르고 뭍이 허락하는 높이 이상으로 올라올 수 없다. 그래서 육지를 둘러싼 바다의 물은 사방으로 흘러들어 육지의 깊고 우묵한 곳들을 메운다. 따라서 모든 육지의 침수를 막고 생물의 보존을 위한 땅이 어느 정도라도 남아 있기 위해서는 물이 육지보다 적게 있을 필요가 있다.
우리는 물이 육지보다 열 배는 많다고 주장하는 소요학파들을 믿어서는 안 된다. 그들은 기하학에 대하여 무지하기 때문에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물이 더 무거워져서 땅이 그것의 무게 중심에서 벗어나 물에게 자리를 내주지 않는 한, 물이 땅보다 일곱 배 이상 많으면서 육지의 많은 부분이 잠기지 않고 남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물이 땅보다 많다면 땅보다 물이 더 무거울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물이 덜 무거운 땅을 밀어내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물은 흐르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보다 가벼운 것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에서 알 수 있다-
이것은 단순히 구의 부피를 계산해 보아도 알 수 있다. 구의 부피는 반지름의 3 제곱에 비례한다. 그러므로 만얀 물이 육지보다 일곱 배 더 많다면, 육지의 반지름은 물이 만드는 구의 반지름보다 클 수 없다. 그러므로 물이 육지보다 열 배가 많다는 것은 더더욱 가능하지 않다.
이러한 점은 또 크기와 무게의 관계로 설명할 수 있다. 당연히 크기와 무게는 비례한다. 그렇지 않았다면 물과 땅으로 구성된 지구의 모습은 지금보다 훨씬 단조로웠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지구가 갖고 있는 육지 높이의 다양성은, 겉으로는 물이 땅보다 많아 보이지만 땅이 물보다 많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육지와 이를 둘러싼 물은 지구에 의해 형성된 그림자의 모양을 따라야 한다. 그런데 지구가 달을 가릴 때 지구는 달에 완전한 원주를 투여한다. 그러므로 지구는 완전한 구형임에 틀림없다.
제 4장 천체의 운동은 규칙적이고 영원하며 원운동 또는 원운동의 혼합이다
이제 천체의 운동이 원형이라는 점을 서술할 것이다. 회전은 구에게 있어 가장 쉬운 운동이다. 회전은 처음과 끝을 찾아낼 수 없고, 그 자신의 항상 같은 부분들을 통과하며 운동한다.
그러나 다양한 구 또는 궤도에 의한 많은 회전 운동이 존재한다. 가장 명백한 것은 일주운동이다. 지구를 제외한 온 우주는 이 일주운동에 의해 동쪽으로부터 서쪽으로 움직여 간다고 생각된다. 온 우주는 이 운동으로 우리에게 하루라는 길이를 준다.
다음으로 우리는 반대공전운동을 보게 되는데, 이 운동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가는 운동이고, 태양과 달, 그리고 다섯 행성이 이런 운동을 한다. 태양과 달은 이 운동으로 우리에게 1년, 1 달의 길이를 준다.
행성의 이러한 운동은 앞서 언급한 일주운동과 여러 가지로 다르다. 첫째, 그것들은 일주운동의 극을 중심으로 회전하지 않고 대신 황도 위를 비스듬히 움직인다. 다음으로 그것들은 자신의 궤도를 규칙적으로 이동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태양과 달은 어떤 때는 빨리 가고 어떤 때는 느리게 운동한다. 그리고 우리는 다섯 행성의 역행운동을 알고 있다.
그런데 행성의 회전운동에서는 왜 이런 변화를 나타나는 것일까? 그에 대한 답은 대개 두 개로 생각되어 왔다. 1) 행성의 운동은 많은 원들의 혼합운동이다. 2) 회전하는 물체로부터 생기는 변화다. 그러나 어떤 이유를 대더라도 ‘천체는 질서정연하다’는 제 1원칙에는 부합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다른 변화의 답을 찾아야 하는데, 그렇다면 행성들의 중심이 지구가 아닌 것은 아닐까.
천체의 연구에 있어서,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지구에 의한 변화를 놓치지 않고 또 지구의 성질을 천체의 성질로 돌리지 않기 위해서는 하늘과 지구의 관계가 어떤 것인지를 주의 깊게 관찰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제 5장 지구는 원운동을 하는가? 그리고 그 위치는?
앞에서 지구가 구형이라는 것을 보였으므로, 이제 우리는 지구의 운동이 원형인지와 지구의 위치가 어디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지 않고는 천체의 운동에 관한 확실한 원인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많은 권위자들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 정지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어떤 물체의 위치가 변하는 것이 관측되는 경우는 관측자와 물체의 운동이 차이를 보일 때이다. 당연히 같은 방향으로 동일하게 움직이는 물체 사이에서는 서로간의 운동이 지각되지 않는다. -운동이 지각된다면, 지구가 중심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지구가 움직인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우린 천체의 운동은 지구의 운동에서 비롯된다고도 생각할 수 있겠다. 만일 지구가 어떤 운동을 한다면, 그것은 외부 우주에 재현되어 외계의 것이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특히 일주운동이 그런 예이다. 왜냐하면 지구와 그 근방의 것들을 제외한 전우주가 일주운동에 의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만약 하늘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서에서 동으로 회전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진지하게 고려해 본다면, 태양·달·별들의 출몰은 바로 이런 경우라는 것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하늘은 모든 물체를 포함하는 것이고 모든 것의 공통된 장소이다. 왜 담긴 것이 아니라 담은 것이 움직여야 되고, 왜 장소에 놓여진 물체가 아니라 장소를 제공하는 것이 움직여야만 하는 걸까?
만약 어떤 사람이 지구가 세상의 중심이라는 것을 부정하고, 중심에서의 지구의 거리가 천구의 크기에 비해서는 무시할 만하지만 태양과 행성들의 궤도에 비해서는 현저하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그리고 행성들의 운동이 지구의 중심이 아닌 다른 중심을 가지기 때문에 불규칙하게 보인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불규칙하게 보이는 운동의 적절한 이유를 완벽하게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지구가 돌고 있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즉 지구가 돌고 있다는 것은 중심이 아닌, 도는 위치에 있다는 것이다-
제 6장 지구의 크기에 비한 하늘의 광대함에 관하여
과연 하늘의 크기에 대해서 지구의 크기는 어떠할까? 간단히 말하면 지구의 크기는 하늘의 크기에 비교도 할 수 없이 작다. 그것은 지평선이 전체 천구를 이등분한다는 사실로부터 알 수 있다. 이런 일은 하늘의 크기와 비교할 만큼 지구가 크다면 일어날 수 없다.
이를 증명해 보자. 원 위의 직선AC, BD를 지평선이라 하고, 우리의 시점이 있는 E를 지구라고 하자. 이 점은 또한 보이는 별과 보이지 않는 별을 나누는 지평선의 중심이다(그림1).
디옵트라가 E에 놓여 있을 때 게자리의 첫째별이 C점에서 뜨는 것이 보인다면, 동시에 염소자리의 첫째별이 A점에서 지는 것이 보일 것이다. 그런데 AEC는 디옵트라와 직선상에 있으므로 이 직선이 황도의 지름이라는 것은 명백하다. 왜냐하면 황도의 육궁은 반원을 만드는데 이 반원의 중심은 지평선의 중심과 마찬가지로 E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회전이 일어나 염소자리의 첫째 별이 B에서 뜰 때에는 게자리가 D에서 지는 것이 보일 것이다. 이때 BED는 직선이자 황도의 지름이 된다. 직선 AEC가 황도의 지름이라는 것은 이미 증명하였으므로, 그들의 중심은 두 직선의 교점 E가 될 것이라는 것은 명백하다. 그러므로 이런 식으로 지평선은 구의 대원인 황도를 언제나 이등분한다.
또한 하늘의 광대함은 지구의 중심을 지나는 선과 지구의 표면을 지나는 선은 다르지만, 그들은 지구에 비해 너무나 크기 때문에 마치 평행선 같이 보인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
이상의 논의에서 우리는 하늘은 지구에 비해 막대하게 크며 무한대의 양상을 보인다는 것과, 지구는 하늘에 비하면 하나의 점 또는 무한대에 대한 유한대의 물체에 불과하다는 것이 충분히 증명했다고 본다.
만약 우주의 일부분에 불과한 지구가 아니라 이렇게 광대한 우주 그 자체가 24시간 동안에 완전히 회전해야 하다니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우주의 회전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중심과 극에 가까울수록 회전 속도라 느려진다고 한다. 예를 들어 우주의 극에 가까운 북극성은 큰개자리의 별보다 훨씬 적게 움직임을 이로서 설명한다.
하지만 이 원리를 지구에 적용한다면 지구는 중심에 가까움으로 근 거리에 있는 행성들보다 작지만 그들과 거의 같은 크기에 회전운동을 할 것이다. 그렇다면 지구의 한 곳은 언제나 낮이며 다른 한 곳은 언제나 한밤중이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관측된 사실을 본다면, 토성은 30년에 걸쳐 1회전을 하고, 달은 한 달에 1회전을 완료하고, 지구를 중심이라 할 때 지구는 1주야에 1회전을 한다.
여기서 다시 일주운동에 관련된 문제가 등장한다. 그리고 이번에는 지구의 위치도 확실히 정해지지 않는다. 이러한 논의로부터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단지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 있지 않더라도 우주의 중심으로부터 지구까지의 거리는 특히 우주의 중심으로부터 항성구까지의 거리와 비교할 때 거의 없는 것과 같다는 사실이다.
제 7장 고대인들은 왜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 정지해 있다고 생각했는가?
고대 철학자들은 다른 이유들로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 정지해 있다고 단언하려 했다. 1) 그들은 무거움과 가벼움을 그 이유로 내세웠다. 지구는 가장 무거운 것이므로, 무게를 가진 모든 것들은 지구를 향하고, 그 중심으로 움직이려고 한다. 그리고 지구는 그 무게로 인해 정지해 있을 것이다. 2) 아리스토텔레스는 운동과 운동의 본성을 통해서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 있음 증명하려 했다. 그는 지구를 이루는 요소들을 흙, 물, 공기, 불이라 가정했는데, 이 요소들은 아래로 향하거나 위로 향하는 직선운동을 하나, 천체는 원 운동을 한다고 주장했다. 3) 프톨레마이오스는 지구 내의 불안정을 주장했다. 즉 그는 지구가 움직인다면 오래전에 지구나 모든 생물이나 물체는 부서져 하늘 너머로 날아갔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제 8장 전술한 이유들의 불충분함, 그리고 반론.
전술한 이유들로 그들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 정지해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누군가가 지구가 회전한다고 생각할 때는, 그는 또한 지구의 운동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자연스럽다는 것은 무리하는 것과는 다른 효과를 산출한다. 힘이나 무리가 가해지는 것은 분해되고 오래 존속될 수 없지만, 자연스럽다는 것은 프톨레마이오스의 염려와 달리 적절한 상태에서 최적의 구성을 유지할 수 있다.
이런 걱정은 오히려 지구보다 크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더 큰 속도로 움직여야만 하는 우주에 대해서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늘의 운동이 너무 세차서 하늘은 그렇게 커져버린 것일까? 혹시 너무 커져서 공중분해 되는 것은 아닐까?
이 추론이 정당하다면, 확실히 하늘의 크기는 무한대로 확대될 것이다. 왜냐하면 운동에 의해 하늘이 위로 올라갈수록 24시간 안에 돌아야 하는 원주가 더욱 커지고, 그에 따라 운동은 더욱 빨라지기 때문이다. 즉 속도는 크기를, 크기는 속도를 무한히 증가시킨다. 그렇다면 “무한한 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움직여질 수 없다”라는 물리학 공리에 따라 하늘은 정지해만 한다. -속도는 유한한 것에서 생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라. 무한하다면 시간도 없고, 한정된 공간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속도는 있을까?-
또한 일주운동의 외양은 하늘에 속하지만 그것의 실체는 지구에 속한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즉 하늘은 멈추어 있고 지구가 1일 1회전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지구의 운동은 세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1) 땅이나 물처럼 지구에 결합된 물체는 당연히 지구와 함께 회전한다. 2) 지표 근처의 공기들도 역시 지구와 함께 회전한다. 3) 공기의 가장 높은 부분은 천체의 운동을 따르며 지구의 회전 운동에서 벗어나 있다.
그리고 지구와 관련된 직선 운동과 원 운동을 생각해 보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과 달리 원 운동은 자기 위치에서 행해지는 단일 운동이나, 직선 운동은 자기 위치에서 밀려나 가속되고 감속 되므로 한결 같고 단일한 운동이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은 단순한 이성적 이상에 불과하다.
이상으로 문제의 첫 번째 부분에 대해서는 충분하다 생각한다.
제 9장 여러 가지 운동이 지구로부터 발생할 수 있는가와 우주의 중심에 대하여.
앞서 모든 증거가 지구가 운동한다는 것을 나타내므로, 나는 이제 지구에 하나 이상의 움직임이 있는지를 살펴보고, 지구가 행성의 하나로 간주될 수 있는지를 알아보겠다.
행성들의 운동은 불규칙하게 보이고 행성과 지구 사이의 거리는 변하는데, 이것은 그들이 지구를 중심으로 한 동심원상에 있다면 일어날 수 없다. 따라서 지구가 모든 회전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은 명백하다.
나는 중력은 창조주가 우주의 각 부분들이 각각 떨어지지 않고 그 단일과 전체성을 간직하며 구체로 모일 수 있도록 부여한 자연적 욕구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이 성질은 태양, 달, 그리고 행성들에 존재하고 그들을 구체로 남아 있게 한다. 우리가 지구의 특별 성을 내려놓는다면 지구는 자전을 하며 다른 행성들과 같은 궤도 운동을 하는 천체들과 다를 바 없음을 알게 될 것이다.
연주운동을 생각해 보자. 만약 태양을 움직이지 않게 하고 태양의 운동을 지구가 한다고 해도 우리는 태양이 움직일 때와 동일한 황도 12궁과 항성들의 출몰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행성들의 역행과 순행은 행성의 움직임이 아니라 지구의 움직임으로 만들 수 있으며, 이것들은 단지 지구의 움직임에 의한 겉보기 현상에 불과하다는 것도 알 수 있다. 결국 태양이 우주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고 여겨질 수 있을 것이다.
제 10장 천체 궤도의 질서에 관하여.
고대 철학자들은 공전 궤도의 크기에 따라 행성의 순서를 정했는데, 그 이유는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일수록 느리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천체 궤도의 순서를 공전 궤도가 작은 것부터 차례로 달, 화성, 목성, 토성으로 정했다.
그런데 태양, 수성, 금성은 공전 궤도가 비슷했으므로 의견이 분분했다. 플라톤의 추종자들은 태양이 행성들의 위치에 따라 가려지는 현상들이 없기 때문에 수성과 금성은 절대 태양 아래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반면 금성과 수성이 태양 아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알아낸 태양과 달사이의 거리를 그 이유로 든다. 왜냐하면 지구를 1단위로 했을 때, 지구와 달의 거리는 64 1/4단위이고, 지구와 태양 사이의 거리는 1,160단위이다. 그렇다면 달과 태양 사이의 거리는 둘의 차인 대략 1,096단위 정도이다. 그들은 이렇게 넓은 공간을 지구로부터 행성까지의 최대 거리와 최소 거리의 차로 궤도의 두께를 추론하여 메웠다. -1,096처럼 넓은 공간이 비어 있을 수 없기 때문에-그 결과로 달 다음에 수성, 금성, 태양의 순서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이런 논의는 필연적으로 지구가 행성들의 순서와 궤도에 관한 중심이 아님을 인정하거나, 혹은 금성과 수성의 순서에 대한 이유가 불분명해짐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몇몇 저자들은 금성과 수성은 태양을 중심으로 회전하고, 타원 궤도가 허용하는 이상의 이각을 가지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나는 이 주장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분명 행성들은 태양을 중심으로 회전하기 때문이다. 태양을 중심으로 회전하는 수성의 궤도는 금성에 둘러싸여 있을 것이고, 같은 중심을 따라 회전하는 토성, 목성, 화성도 지구를 둘러쌀 만큼 클 것이다.
행성이 태양의 반대편에 있고 지구가 태양과 행성 사이에 있을 때 지구와 행성의 거리는 최소이다. 반대로 태양이 행성과 지구 사이에 있을 때는 그 행성과 지구의 거리는 최대이다. 이 모든 것에 의해 행성들의 중심이 태양이고, 또한 그것이 금성과 수성의 중심임이 충분히 증명된다.
따라서 우리는 두 개의 결론을 얻을 수 있다. 1) 금성 궤도와 화성 궤도 사이의 공간은 두 궤도와 동심원을 이루는 궤도 또는 구로 보아야 하고, 이 공간에는 지구와 달의 회전이 들어갈 정도로 충분히 넓을 것이다. 2) 우주의 중심은 태양이며 지구는 다른 행성들처럼 태양 주위의 거대한 궤도를 돌며 1년 1회전 하는 연주 운동을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구들의 순서를 다음과 같이 정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첫 번째의 것은 항성구이다. 이 구는 그 자신과 다른 모든 것을 포함하며, 움직이지 않는다. 항성구 아래의 첫 번째 행성은 토성이다. 토성은 그 궤도를 30년 만에 돈다. 토성 뒤로 12년 만에 1회전을 하는 목성이 오고, 다음으로 2년마다 궤도를 도는 화성이 온다. 네 번째로는 궤도를 1년에 1회전을 하는 지구가 온다. 다섯째 자리엔 7 1/2달에 1회전 하는 금성이, 마지막 여섯째 자리에는 88일에 1회전을 하는 수성이 온다. 그리고 태양은 모든 궤도의 중심에 정지해 있다.
이런 구들의 순서로부터 우리는 천문학의 여러 난제들을 풀 수 있다. 1) 왜 목성의 순행과 역행은 토성보다는 크고 화성보다는 작게 보이는지, 어째서 금성의 순행과 역행이 수성보다 크게 보이는지, 2) 어째서 이런 왕복 운동이 목성보다 토성에서 더 자주 일어나고 또 왜 화성과 금성보다 수성에서 더 자주 일어나는지 3) 또한 어째서 토성, 목성, 화성이 태양과 평균 충의 자리에 있을 때에 태양에 가려지거나 태양으로부터 나타날 때보다 지구에 더 가까운지 4) 항성과 행성의 차이 등을 설명할 수 있다.
이 모두가 질서가 있어 숙고한다면 이해 가능하니 가장 위대한 창조자의 작품은 얼마나 장엄하고 훌륭한가!
제 11장 지구의 세 가지 운동의 증명.
지구가 움직인다는 것에 대해 일반적으로 세 가지 운동을 인정해야 한다.
첫 번째는 지구의 자전이다. 지구는 축 주위를 서에서 동으로 도는 운동을 한다. 이 운동에 의해 우주는 동에서 서로 도는 것처럼 보인다.
두 번째는 지구가 1년 동안 움직이는 운동이다. 지구는 이 운동에 의해 황도 12궁을 따라 서에서 동으로 원을 그린다. 다시 말해 양자리에서 황소자리로 움직이는 것과 같이 계속 다음 궁으로 이동한다. 또한 지구는 이 운동을 하면서 금성과 화성의 사이를 통과하기도 한다.
세 번째 운동은 적위의 운동이다. 이것도 역시 1년을 주기로 하는 운동이지만 운동의 방향이 공전과 반대이다. 거의 동일하면서 방향만 반대인 이 운동의 결과로 지구의 축과 적도는 마치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게 되어 언제나 우주의 동일한 부분으로 향하게 된다.
이것들을 그림으로 그려 설명하기로 하자. AEC를 황도의 직경으로 놓자. 이것은 황도면에 수직인 원과 황도면의 교선이다. 여기서 A는 게자리, C는 영소자리로 보고, 지구의 축을 DF, 북극을 D, 남극을 F, 적도의 지름을 GI로 잡자. 점 F가 점 E에 있는 태양을 향하고 적도가 각 IAE에 대해 북쪽으로 기울고 있을 때, 지구의 자전은 직경 KL과 LI만큼 떨어지고 적도에 평행한 원을 남반구에 그릴 것이다. 이 원은 남회귀선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해 지구의 자전에 의해 지구의 지름은 원뿔면을 그리게 되고, 이때 이 원뿔의 정점은 지구의 중심이고, 그 밑변은 적도에 평행하게 그려진 원이다. 반대 지점인 점 C에서도 마찬가지의 일이 일어나지만, 그 방향은 반대다.
이것에 의해 서로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두 가지 운동이 지구의 축을 어떻게 같은 방향으로 고정 시키는지, 또 어떻게 그들이 모든 것을 태양의 움직임처럼 보이게 하는지는 이제 명백해진다.
첫댓글 질문: 선생님, 저는 무엇인가 먼저 하나님과 관계되어 있는 것보다는 다른 것을 연구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것은 수많은 대화의 산물, 즉 결말이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에라스무스는 어떤 보이는 것이든 간에 보이지 않는 것과 연결시키라고 했습니다. 제가 지금 쓰는 글쓰기하고는 다른 것일까요? 또, 저는 글쓰기의 주제가 최근에는 이런 것과 관계되어서만 떠올랐습니다. 이것 또한 저의 궁금증을 통한 하나의 결론이었기 때문에, 저는 선생님의 제안처럼 글로 표현해보았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잘못된 글쓰기인가요? 만약 그렇다면 –저도 그럴 수도 있다는 것에 동의하기 때문에-부디 잘못된 부분을 지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