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실록 25권, 태종 13년 3월 12일 辛卯 3번째기사 1413년 명 영락(永樂) 11년
대간의 서경을 허락할 것을 사헌부에서 상소하다
○司憲府上疏。 疏略曰:
臣等昨以告身一事, 干瀆天聰, 未蒙兪允, 不勝隕越之至。 竊念公議, 國家之所賴; 廉恥, 士夫之所重。 無公議, 不可以爲國; 無廉恥, 不可以爲人。 謹按古事, 除授之際, 使翰林承旨, 職掌麻制, 必論列其德行事業而授之, 苟不合公義, 必當諫止, 雖制下, 言者亦非之。 如裵延齡欲相, 而諫議陽城, 欲壞白麻; 錢惟演圖相, 而御史鞠詠, 欲裂麻制。 我盛朝官敎之法, 雖倣此意, 名同實異。 今也自一品至三品除授之際, 不論德行而下敎, 或有不合公義者僥倖得之, 其告身不復署經臺諫, 故無所忌憚, 廉恥道喪, 累犯邦憲者, 比比有之。 伏望自今, 除授一品大臣, 則依唐、宋故事, 使掌制之臣, 論其德行, 而授以官敎; 自二品至九品除授者, 一依前朝盛時之制, 署經臺諫, 則廉恥興而士風正矣。
疏留中。
〔○〕 大司憲鄭易復請曰: "出謝之際, 詳考祖系與己身行實, 故激勵廉恥, 扶持世道, 不爲不多。" 上曰: "凡可行事, 筆之於書, 則誠爲良法, 但奉行者過之耳。 自太祖時, 四品以上, 方許官敎, 至上王時, 臺省請兩府以上, 皆署告身, 得蒙兪允。 所司將政丞趙浚告身, 堅執不署, 尋卽罷之。 凡位至兩府者, 不宜更論。" 上以臺諫之言, 命集時散耆老, 取其可否, 可多否少。 臺諫上言曰: "前日疏請一品以下告身署經之法, 命下政府可否, 可者多而否者少。 願蒙兪允。" 上曰: "事重, 不可輕改。" 遂問諸左右政丞, 對曰: "事干一二品, 臣等不敢言耳。 惟上所裁。" 上曰: "予更思之。"
사헌부에서 상소하였는데, 소(疏)의 대략은 이러하였다.
“신 등이 어제 고신(告身)의 일을 가지고 천총(天聰)을 번독하였으나, 아직 윤허를 받지 못하여 운월(隕越)의 지극함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그윽이 생각하건대, 공의(公議)는 국가에서 덕을 입는 것이요, 염치(廉恥)는 사대부가 중히 여기는 것이니, 공의가 없으면 나라를 다스릴 수 없고 염치가 없으면 사람이라 할 수 없습니다.
삼가 고사(古事)를 살피건대, 제수(除授)할 즈음에 한림 승지(翰林承旨)로 하여금 마제(麻制)의 직무를 관장하여 반드시 그 덕행(德行)과 사업(事業)을 논렬(論例)하게 하고서 제수하였는데, 진실로 공의에 불합(不合)하면 반드시 간하여 중지함이 마땅하고 비록 제하(制下)라 말하더라도 역시 비방하였으니, 배연령(裵延齡)이 재상이 되고자 하는데 간의 대부(諫議大夫) 양성(陽城)이 백마(白麻)를 찢어버리려 하였던 사실과 같으며, 전유연(錢惟演)이 재상되기를 꾀하는데 어사(御史) 국영(鞠詠)이 마제를 찢어버리려 하였던 사실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 성조(盛朝)의 관교(官敎)의 법은 비록 이 뜻을 모방했다고 하지만 이름은 같되 실지는 다릅니다. 오늘날 1품부터 3품에 이르기까지는 제수할 즈음 덕행을 논하지 아니하고 하교(下敎)하시니, 혹 공의에 불합한 자라도 요행으로 얻게 되고, 그 고신을 다시 대간에서 서경하지 않는 까닭에, 기탄함이 없어 염치의 도가 없어지고 자주 국헌[邦憲]을 범하는 자가 많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이제부터는 1품 대신을 제수하게 되면 당ㆍ송의 고사에 의하여 마제를 관장한 신하로 하여금 그 덕행을 논하여 관교를 제수하시고, 2품부터 9품에 이르기까지 제수할 자는 한결같이 전조 성시(盛時)의 제도에 의하여 대간의 서경을 거치게 하면 염치가 흥기하고 사풍(士風)이 바르게 될 것입니다.”
소를 궁중에 머물러 두었다. 대사헌 정역(鄭易)이 다시 청하였다.
“출사(出謝)할 즈음에 조계(祖系)와 자기 몸의 행실을 자세히 상고하는 까닭에 염치를 격려하고 세도(世道)를 부지(扶持)함이 많습니다.”
임금이 말하였다.
“무릇 행사할 만한 것을 글로 쓰면 진실로 양법(良法)이 되나, 다만 봉행자가 잘못할 뿐이다. 태조 때부터 4품 이상에게는 관교(官敎)를 허락했으나, 상왕(上王) 때 이르러 대성(臺省)에서 ‘양부(兩府) 이상도 모두 고신에 서경하게 하소서.’하여 유윤(兪允)을 받았지만, 소사(所司)에서 정승 조준(趙浚)의 고신을 굳이 고집하여 서경하지 않았으므로 얼마 안 되어 즉시 이를 혁파하였으니, 대체로 위(位)가 양부에 이른 자는 다시 논하지 아니함이 마땅하다.”
임금이 대간의 말을 가지고 시산(時散)ㆍ기로(耆老)를 부르도록 명하여 그 가부를 묻게 하니, 가는 많고 부는 적었다. 대간에서 상언하였다.
“전일에 소청한 1품 이하의 고신에 서경하는 법을 정부에 내려 가부를 묻도록 명하였는데, 가는 많고 부는 적으니, 원컨대 윤허하여 주소서.”
임금이,
“일이 중하여 가볍게 고칠 수 없다.”
하고, 드디어 좌우 정승에게 이를 물으니, 대답하기를,
“일이 1,2품에 관계되어 신 등은 감히 여쭙지 못하니, 주상이 재량하소서.”
하므로 임금이 말하였다.
“내가 다시 이것을 생각해 보겠다.”
[주-D001] 운월(隕越) : 절실히 원하는 마음.[주-D002]
마제(麻制) : 중국 당(唐)나라 때 중서성(中書省)에서 윤명(綸命)을 받아 삼[麻]으로 만든 황백(黃白) 두 가지 종이에 써서 주던 고신장(告身狀).[주-D003] 제하(制下) : 황제가 직접 명령을 내려 관리를 임명하던 일. 또는 그 명령.[주-D004] 배연령(裵延齡) : 당(唐)나라 덕종(德宗) 때 호부 시랑(戶部侍郞). 하동(河東) 사람으로 범수위(氾水尉)에서 사농 소경(司農小卿)에까지 여러 관원을 거쳤음.[주-D005] 전유연(錢惟演) : 송(宋)나라 말엽 원(元)나라 초엽의 사람. 송나라 때 평장사(平章事)가 되고, 원나라 때 중서령(中書令)이 되었음.
ⓒ 세종대왕기념사업회 | 이해철 (역) |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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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冥先生集卷之一 / 七言絶句 / 德山偶吟
偶然居住絲綸洞。今日方知造物紿。故遣空緘充隱去。爲成麻到七番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