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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실록 / 세조 2년 병자(1456) 10월 2일(무술)
02-10-02[01] 대가의 호종에 대해 잘못 아뢰었던 집의 홍연 등을 귀양보내다
임금이 남대문(南大門) 바깥 평원(平原) 위에 이르러 연(輦)을 멈추니, 구경하는 자가 길을 메웠다. 한 여자가 홑옷을 입고 아이를 업고 있으니, 명하여 유의(襦衣) 1령(領)을 주었다. 임진(臨津) 태산(泰山) 아래에 이르러 계양군(桂陽君) 이증(李璔)을 명하여 영의정(領議政) 정인지(鄭麟趾)에게 묻기를,
“어제 대간(臺諫)이 청하기를, ‘사냥을 구경할 때에 정부(政府) 대신으로 하여금 모두 입시(入侍)하게 하소서.’ 하였는데, 이 말이 어떠한가?”
하니, 정인지가 대답하기를,
“사냥하는 것을 구경할 때에 대신이 위내(圍內)에 들어오지 않는 것은 예전부터 그러합니다. 지금 대간(臺諫)이 망령되게 헤아리고 계달(啓達)한 것입니다.”
하였다. 이증(李璔)이 그대로 아뢰니, 또 이증으로 하여금 정인지에게 힐문(詰問)하기를,
“대간의 말이 망령되게 헤아린 것인가, 실상이 있는 것인가?”
하고, 저녁에 임강(臨江)에 머무르고, 의금부(義禁府)에 재촉하여 집의(執義) 홍연(洪演)ㆍ헌납(獻納) 신자교(申子橋)를 잡아들이어 묻기를,
“너희들이 대신으로 하여금 나를 가르쳐 시키고자 한 것이냐, 임금의 위엄이 아래로 미치고자 한 것이냐?”
하고, 의금부에 명하여 장(杖) 1백 대를 때리어 홍연은 무안(務安)에 귀양보내고, 신자교는 함안(咸安)에 귀양보내었다.
ⓒ 세종대왕기념사업회 | 이식 (역) | 1978
성종실록 / 성종 9년 무술(1478) 5월 21일(임오)
09-05-21[04] 손순효가 신자교의 공적을 보고함에 포상을 명하다
석강(夕講)에 나아갔다. 도승지 손순효(孫舜孝)가 아뢰기를,
“전일에 남원(南原) 사람인 전 사성(司成) 신자교(申子橋)가 선왕조(先王朝) 때에 벼슬하여 이름이 있었는데, 지금 눈이 멀어서 시골에 물러가 살면서도 임금에게 향하는 충성을 잊지 못하여 상소(上疏)한 말이 매우 간절하고 지극하니, 성상께서 불러 보시고자 하시나, 이제 늙고 병들어서 진실로 부름에 나오기가 어렵습니다.”
하였는데, 임금이 말하기를,
“그의 나이가 몇인가?”
하니, 손순효가 아뢰기를,
“장차 70살이 됩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상소의 뜻이 매우 간절하고 지극하니, 포상(褒賞)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는데, 손순효가 아뢰기를,
“그가 사는 남원은 바로 진상(進上)하는 도회(都會)이니, 감사(監司)로 하여금 혜양(惠養)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가하다.”
하였다. 우승지(右承旨) 홍귀달(洪貴達)이 아뢰기를,
“무릇 기도(祈禱)는 마땅히 정성과 공경을 다해야 하니, 이번의 기청(祈晴)에는 문사(文士)로 하여금 별도로 제문(祭文)을 짓게 하고, 특별히 근신(近臣)을 보내어서 헌관(獻官)을 삼아 제사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무릇 제사는 정성이 지극한 뒤에야 신(神)을 감동시킬 수 있으니, 아뢴 바에 의하여 시행하라.”
하였다. 손순효가 아뢰기를,
“요즈음 비로 인하여 조계(朝啓)를 오래 폐하였으니, 형결(刑決)이 유체(留滯)될까 두렵습니다. 청컨대 의위(儀衛)를 동서랑(東西廊)에 베풀고 조계를 행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가하다.”
하였다.
【원전】 9 집 607 면
【분류】 인사-관리(管理) / 왕실-궁관(宮官) / 왕실-경연(經筵)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주-D001] 도회(都會) : 물건을 만들거나 모을 때 각도의 중심 고을.[주-D002] 혜양(惠養) : 은혜를 베풀어 잘 대우하는 것.[주-D003] 기청(祈晴) : 장마가 계속될 때에 날이 개이기를 빌던 나라의 제사.[주-D004] 조계(朝啓) : 죄인(罪人)의 논죄(論罪)할 일에 대하여 임금에게 계문(啓聞)하는 일.
ⓒ 세종대왕기념사업회 | 김익현 (역) | 1981
保閑齋集卷第十四 / 記 / 咸陽城門樓記
세조 | 7 | 1461 | 신사 | 天順 | 5 | 45 | 3월, 「北征錄」을 撰進하다. ○ 7월, 忠淸道都體察使가 되다. ○ 8월, 還朝하여 泰安의 堀浦에 운하 뚫을 것을 계청하다. |
天順辛巳(1461,세조7)孟夏(4월)。上以臣叔舟先代曾受封贈。而連年在塞下。尙不得拜先塋。特賜暇焚黃于湖南。至南原則從兄咸陽守子橋惠翁亦來。與懽數日。謂叔舟曰。咸陽城有門。門有樓。頹圯有年。人不堪登。而莫爲之脩。余守任踰年。政簡多暇。念邑無臺觀。無以慰悅王人。道滯宣鬱。乃與衆謀之。擧而新之。簷楹豁然。甍桷整然。丹雘奧然。如是而止。功訖。相國南原府院君黃公適至。與監司成安金公。設筵以落之。首題詩兩篇。群從皆和之。懸之于板。亦一奇也。邑在頭留山麓。奇峯絶壑。磅礴千里。蒸雲起霧。變態不常。晨昏異觀。登是樓則一擧目而盡。爾爲我記之。 叔舟曰。旣不能一往登臨。以觀其設施景致。則當觀諸公之作。以得梗槪。然後記可得也。還京數日。兄又馳書。視南原公以下詩數十篇求記。 叔舟方困於路。又病於暑。得書一讀諸公詩。諷詠之間。不覺沈痾去體。令人爽然而起嘆曰。與兄結髮讀書。嘗見其景慕古人之眞淳。不以作爲幹局介意。今爲郡。能政先仁恕。脩整紀綱。寬猛相濟。吏畏民懷。人稱有古遺政。是固眞淳之所爲也。而又能不煩民。爲此幹局者之所不能爲。亦可怪也已。樓之詩足以已人之病於千里之外。況身登騁眺焉。 叔舟雖老。倘得從兄一登。當爲兄極其鋪張。姑書是爲記。又賡其韻以塞命。是年仲夏上旬九日。左議政高靈府院君申叔舟泛翁書。
신증동국여지승람 / 卷三十一 / 慶尙道 / 咸陽郡
樓亭
學士樓。在客館西偏。崔致遠爲太守時所登賞,故名。後爲倭兵所焚,移邑治時,樓亦移構而仍名焉。
齊雲樓。
申叔舟記:“天順辛巳(1461,세조7)孟夏(4월),上以臣叔舟先代曾受封贈,而連年在塞下,尙不得拜先塋,特賜暇焚黃于湖南。至南原,則從兄咸陽守子橋惠翁亦來。與懽數日,謂叔舟曰:‘咸陽城有門,門有樓,頹圮有年,人不敢登,而莫爲之修。予受任踰年,政簡多暇,念邑無臺觀,無以慰悅王人,導滯宣鬱。乃與衆謀之,擧而新之,簷楹豁然,甍桷整然,丹雘奐然,如是而止。功訖,相國南原府院君黃公適至,與監司成安金公設宴以落之。首題詩兩篇,群從皆和之,懸之于板,亦一奇也。邑在頭流山之麓,奇峯絶壑磅礴千里,蒸雲起霧變態不常,晨夕異觀。登是樓,則一擧目而盡,爾爲我記之。’ 叔舟曰:‘旣不能一往登臨以觀其施設、景致,則當觀諸公之作以得梗槪,然後記可得也。’ 還京數日,兄又馳書,示南原公以下詩數十篇求記。叔舟方困於行路,又病於暑,得書一讀諸公詩,風詠之間,不覺沈痾去體,令人爽然而起。嘆曰;‘與兄結髮讀書,嘗見其景慕古人之眞淳,不以作爲幹局介意。今爲郡,能政先仁恕,修整紀綱,宽猛相濟,吏畏民懷,人稱有古遺政,是固眞淳之所爲也。而又能不煩民,爲此幹局者之所不能爲,亦可怪也已!樓之詩足以已人之病於千里之外,況身登騁眺焉?叔舟雖老,儻得從兄一登,當爲兄極其鋪張。姑書是爲記。’”
〔新增〕 金宗直詩:“雨脚看看取次收,輕雷猶自殷高樓。雲歸洞穴簾旌暮,風颭池塘枕簟秋。菡萏香中蛙閣閣,鷺鷥影裏稻油油。憑欄更向頭流望,千仞峯巒聳玉虯。”
白沙亭。在郡西一里。○趙承肅詩:“尋春載酒過孤村,布穀聲中晝掩門。雨後殘花浮水出,人間無處不桃源。”
〔新增〕 望嶽樓。城南門樓。望見智異山,故名。○金宗直詩:“去年塵迹汚巖巒,望嶽樓中更靦顔。却恐英靈恥重滓,洞門牢與白雲關。”
淸香堂。在客館西。下有蓮塘。郡守曺偉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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樗軒集卷上 / 詩 / 次羅州撫夷樓韻
李石亨 | 1415 | 1477 | 延安 | 伯玉 | 樗軒 | 文康 | 延城府院君 |
自憐頻賦仲宣樓。何恨難封李廣侯。正似壺中閑日月。不知皮裏有春秋。林花著雨紅仍落。籠竹和煙翠且浮。來不由人去由意。一身行止自休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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保閑齋集卷第八 / 五言四韻 / 次撫夷樓詩韻
申叔舟 | 1417 | 1475 | 高靈 | 泛翁 | 保閑齋, 希賢堂 | 文忠 | 高靈君 |
以焚黃掃墳。受暇南來。至錦城。監司李公 子至,光州柳君 轂,靈光金君 永湔,南平李君 專粹,珍原李君 貞粹,綾城金君 栗 咸平李君 渙,州之校書正字羅仲山,進士吳愼仲,光州之進士崔恭冀。與僕同年也。潭陽李君 寬植,長興卞君 袍,錦山李君 始元。結髮故交也。水使江城君奉公 石柱,靈岩權君 僩。同盟也。皆來見慰。前監察丁君 克仁 自泰仁。正字柳君 休復 自南平亦至。皆布衣交也。從兄子橋惠翁守咸陽又來。州牧崔君善復 子初。切親也。半刺卞君 宗信 也。與之登樓極歡。有感而作。
登樓集舊友。置酒且張候。故國千山暮。歸心兩鬢秋。杯樽歌舞簇。軒冕雨雲浮。聚散憐萍水。淸懽夜未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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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실록 23권, 세조 7년 3월 9일 경술 1번째기사 1461년 명 천순(天順) 5년세자가 거처하는 인지당의 토목 공사에 대해 신하들과 논의하다
전라도 도관찰사(全羅道都觀察使) 이효장(李孝長)이 아픈 아내를 와서 보고 돌아가려고 하직하니, 임금이 인견하고 말하기를,
"공물(貢物)을 대납(代納)하는 데에 그 폐단이 적지 않으니, 경은 마땅히 나의 뜻을 몸받아 마음을 다해 규찰(糾察)하고, 또 전죽(箭竹)을 여러 해 전(前)부터 베어 두어야 한다는 법(法)은 앞서 내린 유서(諭書)에 다하였으니, 경은 마음을 다하여 받들어 행하도록 하라."
하고, 명하여 술을 올리도록 하였다.
全羅道都觀察使李孝長來見病妻辭還, 上引見曰: "貢物代納, 其弊不貲, 卿當體予意, 盡心糾察, 且箭竹經年斫伐之法, 前降諭書盡之, 卿其用心奉行。" 命進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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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암집(圃巖集) 윤봉조(尹鳳朝)생년1680년(숙종 6)몰년1761년(영조 37)자명숙(鳴叔)호포암(圃巖)본관파평(坡平)특기사항노론(老論) 준론(峻論)
圃巖集卷之二十 / 墓誌 / 慶尙道都觀察使李公墓誌
李孝長 | 14?? | 1463 | 全義 |
故都觀察使李公孝長。系出全義。高麗太師棹。其鼻祖也。公以世家華閥。爲國朝名卿。事行賢德多可書。而世旣遠。事蹟或多未傳。且公後孫遭家難。死亡奔逬。家乘文字。蕩析靡遺。公之事愈莫詳。而並其表德而無稱。噫。是其後人之恨歟。李氏自麗朝。累世而至戶曹典書丘直。生中樞院使謚孝靖公貞幹。年八十。奉百歲母。以孝聞。搢紳賢大夫記述而盛傳。比老萊子云。其子漢城府尹士寬。聘領議政淸州韓公尙敬女。生七子。第六子爲公。而兄弟五人。並登文譜。一以武進。公又與兄諴。長一榜闡重試。聲明燀爀。莫與比。世之論五子科者。必先數公家爲第一。公初决科。在世宗丁卯間。歷司贍令,慶尙都事,繕工副正。擢重試。在世祖丁丑(1457,세조3)。時爲政府舍人。
癸未(1463,세조9)四月。從從二品。拜慶尙都觀察使。六月。卒于官。
官爵踐歷。可考据而徵信者。亦止此。此其大略也。葬在忠州金遷里甲向麓。配貞夫人淸風金氏。考曰監司義之。先歿而祔。男源植無後。源達別坐。源英郡守。婿曰判敦寧尹坦,僉知崔玉浩。源達生司直繼祐,繼祉,繼祚。源英生察訪昌根,縣監昌蕃,縣令昌茂,判官昌衍。尹生府使商老,鈴陽君衡老。明宗己酉。繼祐子有成,遂成。被李洪男兄弟誣告。與康舟川惟善同死。季允成沒爲隷。及後伸雪也。允成又屛居自靖。不就仕。其子孫亦皆守其志。在鄕耕釣。累世無華官膴仕。仍以不振。仁善之無後祐又何也。今公九世孫鼎燁尸公祀。徒步謁余文。以誌公墓。屢反而色不懈益勤。甚矣。其奉先追遠之誠也。余竊念公始與五昆弟一時競爽。燁若敷花之韡萼。而公之後其摧敗。又倐焉如歷刦之飛灰。豈盛衰自有其時。人力旣不能容。而報施亦無所憑歟。是可慨也。公墓舊有碣。而刓不可讀。首揆金公在魯略序爲表。又歷採公外裔之顯者。列其下。前之所未備者旣大備。而余又發其所慨。托鼎燁歸掩幽竁。公之遺事始克完。而亦可以少慰鼎燁追遠之誠。庶乎傳後而無憾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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保閑齋集卷第十 / 五言古詩 / 贈別全羅吳監司之任
僕近日。奔忙尤甚。不謂發軔之遽。今日口昏。見從弟薛順天。乃知行軒駐于江濱。未及話別。恨可量耶。夜坐無聊。爲綴荒句。歷敍所懷。非敢爲詩。
湖南古百濟。繁華舊所遺。君今晝錦還。正値春風吹。棠花故鄕路。玉節照葳蕤。人生祗如此。丈夫得意時。自嘆世汨沒。白首猶未歸。家山每入夢。梅柳空離披。帶方臥病老。從兄前司成申子橋 谷城有孤嫠。三寸叔故正言申枰妻氏 南中數十州。處處皆親知。如光州之薜孝祖。南原之金從直。古阜之李專粹。泰仁之丁克仁。皆親戚故交。無處無之。 與君本同源。亦君所憐慈。送君無限意。戚戚心南悲。握手且不得。懷抱安可夷。爲我愼眠食。勉勉平生期。
保閑齋集卷第十一 / 七言古詩 / 送全羅道觀察使李公 克均
李克均 | 1437 | 1504 | 廣州 | 邦衡 |
頭留瑞石鎭南極。錦城靈岩相盤延。湖南形勝甲東方。甄王舊跡猶森然。紛紛爭戰互呑吐。世移事去空山川。昇平百年民按堵。鷄鳴狗吠達海壖。土沃地奧容奸細。俗猾奇訟常連緣。邇來凶歉又相仍。人窮草竊時乘便。推賢往鎭朝有議。聖主隆眷應君偏。南人額手望淸塵。棠陰處處勤巡宣。龍鍾多病老門客。白頭束帶隨朝聯。庭前一夕秋風起。柴桑松菊眞堪憐。上書乞骸尙未遂。空有歸夢飛南天。舍弟棄官愛閑適。末舟在淳昌 從兄老病恣醉眠。薜孝祖在光州。申子橋在南原。 山齋高臥老正言。敎育英才窮魚鳶。前正言丁克仁居泰仁。敎授徒弟。 先塋馬鬣松楸合。不事椒桂今有年。先墳在玉果縣 郞君建節雙鬢靑。早立功業光家先。澄淸只在若持衡。撫字不過如烹鮮。送君此去不多言。莫使張范獨美前。
성종실록 / 성종 4년 계사(1473) 8월 3일(임술)
04-08-03[06] 노사신ㆍ윤필상ㆍ김길통ㆍ이극증 등에게 관작을 제수하다
이극균(李克均)을 겸 전라도 관찰사(全羅道觀察使)로 삼았다.
ⓒ 세종대왕기념사업회 | 유승주 (역) | 1980
성종 4년 계사(1473) 8월 21일(경진)
04-08-21[02] 전라도 관찰사 이극균이 사조하다
전라도 관찰사(全羅道觀察使) 이극균(李克均)이 사조(辭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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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증동국여지승람 제35권 / 전라도(全羅道) / 나주목(羅州牧)
樓亭
撫夷樓。在客館東。○成任詩:“雨餘山色傷心麗,酒後春光滿面浮。風景雖佳非我土,故園從此可歸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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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증동국여지승람 제35권 / 전라도(全羅道) / 나주목(羅州牧) / 【제영】
십이영(十二詠) 김종직(金宗直)의 시에, “염백(鹽白)의 누선(樓船)이 변한(卞韓)을 지나가니, 환호성이 이미 금성산(錦城山)에 진동하더라. 흥폐(興廢)를 알아 먼저 귀순하니, 예로부터 주민(州民)의 인상이 좋기도 하올씨고.” 하였다. ○ “교활한 오랑캐의 깃발이 덕진(德津)을 가리니, 어찌 남포(南浦)에 천인(天人)이 주둔했을 줄 알았으랴. 가련하다. 맹덕(孟德 조조(曹操))의 천 척 군졸이, 마침내 주랑(周郞 주유(周瑜))의 한 횃불에 재가 되었어라.” ○ “용손(龍孫 고려 태조를 말함)이 당일에 군함을 대고서, 갑자기 아침엔 구름이 되고 저녁엔 비가 되는 선녀를 만났도다. 천년의 박씨(薄氏) 계집이 진실로 좋은 짝을 만나니, 지나는 사람도 그곳을 완사천(浣紗泉)이라 하는구나.” ○ “비단 빨던 강가가 고려 태조 처가의 고향이요, 흥룡사(興龍寺) 안에는 그 서광이 어리었도다. 지금도 부로(父老)들은 남긴 덕을 그리워하여, 피리 불고 북 치면서 추대왕(鄒大王 혜종(惠宗))을 즐겁게 하도다.”
○ “패강(浿江 대동강(大同江))의 푸른 나무가 창으로 하여 문드러졌는데, 현묘(顯廟)가 비단 빨던 강물로 항해해 왔도다. 무엇이 명황(明皇 당 현종(唐玄宗))이 서촉(西蜀)으로 도망간 것과 다르랴. 무이루(撫夷樓)가 산화루(散花樓) 되었도다.”
○ “누가 종지(宗之)를 기(蘷)ㆍ설(偰)의 무리라 하였던가. 험한 땅과 평지가 마침내 몸을 위태롭게 하였구나. 부질없이 부로들을 동문(東門)에서 타일러 괴롭히는 것이, 어찌 세 번 꿰매고[三緘] 회진(會津)에 숨은 것만 하랴.” ○ “산과 바다는 아름다워 빼어난 기운이 새롭고, 옛부터 다만 명신(名臣)을 낸 것 뿐 아니다. 삼향(三鄕)의 죽전(竹箭)이 천하에 소문나니, 주석돌[錫]과 단은(丹銀)이 어찌 보배라 할 것인가.” ○ “붉은 뱃전[舷] 검은 돛대가 파도에 가득하고, 짤달막한 집 마을마다 노적가리가 높구나. 백만 섬 영산(榮山) 창고의 안에 있으니, 금년에는 백성의 고혈(膏血)을 빤다고 말하지 마소.” ○ “우러르고 엎드린 두 바위 기이하고도 훌륭하니, 노니는 나그네는 동쪽 서쪽 배가는 대로 놔둔다. 빙설(氷雪) 같은 금강(錦江)에 섭섭한 생각나서, 말타는 것을 뿌리치고 걸어서 수홍교(垂虹橋)를 건너는구나.” ○ “월정봉(月井峯) 서쪽 시내에는 모래가 달음질치고, 성안엔 악한 흐름[流惡]이 몇 집이나 되는가. 학교(鶴橋)에 신발 끄는 소리 얼마인 줄 알리. 아름다운 이름 마땅히 추천하여 완화(浣花)와 짝지을 것이라.” ○ “남녀의 비단옷 푸른 봉우리를 쌌고, 사바(娑婆)의 노래와 춤 신간(神姦)을 즐겁게 하도다. 사군(使君)은 바로 서문표(西門豹)이니, 이 경내에 늙은 홀아비 없게 만들리라.” ○ “광탄(廣灘)은 지척 사이라 성지(城池)에 붙었는데, 긴 모래사장에서 추는 졸렬한 춤은 옛부터 있었던 것이로다. 금일에 개척한 삼십 리엔 흰 느릅나무가 응당 생사당(生祠堂)을 정결하게 하였으리.” 하였다.
十二詠 金宗直詩:“鹽白樓船過卞韓,歡聲已振錦城山。知興知廢先歸順,從古州民有好顔。” ○“猾虜旌旗蔽德津,豈知南浦駐天人。可憐孟德千艘卒,終作周郞一炬塵。” ○“龍孫當日艤戈船,忽夢朝雲暮雨仙。千載薄姬眞合轍,行人指點浣紗泉。” ○“濯錦江邊舅氏鄕,興龍寺裏藹祥光。至今父老懷遺德,簫鼓歡娛皺大王。”
○“浿江靑木爛戈矛,顯廟來航濯錦流。何異明皇竄西蜀,撫夷樓作散花樓。”
○“誰謂宗之夔契倫,崎嶇平地竟阽身。謾煩父老東門諭,爭似三緘隱會津。” ○“山海扶輿秀氣新,古來不獨出名臣。三鄕竹箭聞天下,錫石丹銀豈足珍。” ○“紅舷烏榜滿波濤,矮屋村村積稻高。百萬榮山倉裏粟,今年休道浚民膏。” ○“仰伏兩巖奇且勝,遊人一棹任西東。氷雪錦江生悵望,却揮騎從度垂虹。” ○“月井峯西溪走沙,城中流惡幾人家。鶴橋響屐知多少,合薦嘉名配浣花。” ○“士女羅紈裹碧巒,婆娑歌舞樂神姦。使君定是西門豹,一境能令無老鳏。” ○“廣灘咫尺附城池,拙舞長沙自昔時。今日拓開三十里,枌楡應已潔生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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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필재집 시집 제22권 / [시(詩)] / 금성곡(錦城曲)
金宗直 | 1431 | 1492 | 善山 | 季昷 | 佔畢齋 | 文忠 |
○ 그 첫째[其一]
염백의 누선이 변한 지방을 지나가니 / 鹽白樓舡過卞韓
환호성이 이미 금성산을 진동하였네 / 歡聲已振錦城山
흥함도 알고 폐함도 알아 먼저 귀순했으니 / 知興知廢先歸順
예로부터 주민들은 좋은 인상이 있었도다 / 從古州民有好顔
○ 그 둘째[其二]
교활한 오랑캐 깃발이 덕진을 뒤덮었을 제 / 猾虜旌旗蔽德津
어찌 남포에 천인이 주둔한 줄을 알았으랴 / 豈知南浦駐天人
가련하여라 맹덕의 배 천 척의 군졸들은 / 可憐孟德千艘卒
끝내 주랑의 한 횃불 티끌이 되고 말았네 / 終作周郞一炬塵
○ 그 셋째[其三]
용손이 당일에 군함을 여기에 대고서 / 龍孫當日艤戈船
아침엔 구름 되고 저녁엔 비 되는 신녀를 만났네 / 忽夢朝雲暮雨仙
천재에 박씨 계집과 참으로 같은 법칙인데 / 千載薄姬眞合轍
행인들은 그곳을 가리켜 완사천이라 하네 / 行人指點浣紗泉
○ 그 넷째[其四]
비단 빨던 강가는 혜종 외가의 고향인데 / 濯錦江邊舅氏鄕
흥룡사 안에 그 서광이 어리었도다 / 興龍寺裏藹祥光
지금도 부로들이 남긴 덕을 사모하여 / 至今父老懷遺德
퉁소와 북 울려 추대왕을 즐겁게 하네 / 簫鼓歡娛皺大王
○ 그 다섯째[其五]
대동강 가의 청목이 전란으로 문드러지매 / 浿江靑木爛戈矛
현종이 배를 타고 비단 빨던 강으로 왔으니 / 顯廟來航濯錦流
당 명황이 서촉에 몽진한 것과 뭐가 다르랴 / 何異明皇竄西蜀
무이루를 도리어 산화루로 삼았구려 / 撫夷樓作散花樓
○ 그 여섯째[其六]
누가 종지를 기설의 무리라 하였던가 / 誰謂宗之夔契倫
험난함과 평탄함이 끝내 몸을 위태롭게 하였네 / 崎嶇平地竟阽身
부질없이 동문에서 부로들을 유시했으니 / 謾煩父老東門諭
어찌 잠자코 회진에 숨은 것만 하리오 / 爭似三緘隱會津
○ 그 일곱째[其七]
산과 바다 아름답고 빼어난 기운 산뜻하니 / 山海扶輿秀氣新
예로부터 유독 명신만 날 뿐이 아니었네 / 古來不獨出名臣
세 고을의 화살대는 천하에 소문났으니 / 三鄕竹箭聞天下
석석과 단은이 어찌 진기할 것 있으랴 / 錫石丹銀豈足珍
○ 그 여덟째[其八]
붉은 뱃전 검은 노가 파도 위에 가득하고 / 紅舷烏榜滿波濤
자잘한 집 마을마다 노적 더미가 높직한데 / 矮屋村村積稻高
영산창에는 백만 섬의 곡식이 쌓여 있으니 / 百萬榮山倉裏粟
금년에는 백성의 고혈 탈취한다 말하지 마소 / 今年休道浚民膏
○ 그 아홉째[其九]
앙암 복암 두 바위는 기괴하고도 훌륭한데 / 仰伏兩巖奇且勝
노는 사람은 동쪽 서쪽 멋대로 배를 띄우니 / 遊人一棹任西東
빙설 같은 금강을 창연히 바라보고파 / 氷雪錦江生悵望
말 타기를 뿌리치고 수홍교를 건너가노라 / 却揮騎從度垂虹
○ 그 열째[其十]
월정봉 서쪽 시냇물은 모래밭을 달리어라 / 月井峯西溪走沙
성 안에 흐르는 걸 몇 집이나 싫어하는고 / 城中流惡幾人家
학교엔 나막신 끄는 소리 많음을 알겠으니 / 鶴橋響屐知多少
좋은 이름 천거하여 완화와 짝지음이 합당하리 / 合薦嘉名配浣花
○ 그 열한째[其十一]
남녀들 비단옷이 푸른 봉우리를 둘러싸고 / 士女羅紈裏碧巒
춤추고 노래하여 간악한 신을 즐겁게 하는데 / 婆娑歌舞樂神姦
사군은 정히 서문표와 같은 인물이니 / 使君定是西門豹
온 경내에 늙은 홀아비가 없게 하리라 / 一境能令無老鰥
○ 그 열두째[其十二]
광탄이 성지와 지척 사이에 붙었는지라 / 廣灘咫尺附城池
장사의 졸렬한 춤은 옛부터 있어 왔는데 / 拙舞長沙自昔時
오늘날에는 삼십 리를 더 개척해 놓으니 / 今日拓開三十里
느릅나무가 응당 생사당에 정결하리라 / 枌楡應已潔生祠
정미년 2월에 조지(朝旨)에 따라 광산(光山) 병화로진(幷火老津) 밖 30리의 땅을 나주에 소속시켰다.
[주-D001] 어찌 남포에……알았으랴 : 신라(新羅) 말기에 견훤(甄萱)이 후백제(後百濟)라 자칭하고 나주(羅州) 등지까지 다 차지했을 적에 고려 태조(高麗太祖)가 궁예(弓裔)의 명을 받들어 수군(水軍)을 거느리고 나주에 가서 견훤군을 공격하는데, 당시 나주 사람들이 태조에게 전혀 반항하지 않고 모두 귀순해 옴으로써 이 곳을 깨끗하게 평정했던 데서 온 말이다. 천인(天人)이란 대단히 뛰어난 사람을 이른 말로, 여기서는 곧 고려 태조를 가리킨다.[주-D002] 끝내 주랑의……되고 말았네 : 맹덕(孟德)은 조조(曹操)의 자이고, 주랑(周郞)은 오(吳) 나라 주유(周瑜)를 가리킨다. 일찍이 조조와 주유가 적벽(赤壁)에서 대전(大戰)이 붙었을 때, 조조는 북쪽 언덕에 있었고 주유는 남쪽 언덕에 있었는데, 주유의 진영에서 배에다 섶[薪]을 가득 싣고 가서 조조 진영의 배를 불지를 적에 때마침 동남풍이 급히 불어와 조조의 배를 모조리 불태움으로써 조조가 크게 패했던 고사인데, 여기서는 곧 고려 태조에게 패한 견훤군을 비유한 것이다.[주-D003] 아침엔……신녀를 만났네 : 용손은 고려 태조를 가리킴. 고려 태조가 수군장군(水軍將軍)으로 나주에 가 주둔하고 있을 적에 목포(木浦)에 배를 정박시키고 물 위를 바라보니 오색 구름이 서려 있으므로, 그곳을 가 보니 후일 장화왕후(莊和王后)가 될 오씨(吳氏) 처녀가 빨래를 하고 있었다. 그 처녀는 앞서 용(龍)이 품안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었는데, 태조는 그 처녀를 불러 동침을 하면서 그가 미천한 신분이라 하여 임신을 시키지 않으려고 정액(精液)을 자리에 쏟았더니, 왕후는 곧 자리를 핥아 빨아먹고 드디어 임신하여 아들 혜종(惠宗)을 낳았다. 그래서 혜종은 얼굴에 자리의 무늬가 있었으므로, 세상에서 그를 접주(襵主: 얼굴이 주름진 임금)라고 불렀는데, 그곳에는 큰 절을 세워 흥룡사(興龍寺)라 하고, 그 앞에 오씨가 일찍이 빨래했던 우물은 완사천(浣紗泉)이라고 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주-D004] 천재에……같은 법칙인데 : 박씨 계집[薄姬]이란 바로 진(秦) 나라 말기에 위왕 표(魏王豹)의 궁중(宮中)에 있었던 미천한 신분의 여자였는데, 위왕 표가 멸망한 뒤에 그가 한 고조(漢高祖)의 부름을 받고 들어가 문제(文帝)를 낳았는바, 문제가 대왕(代王)에 봉해지자 대태후(代太后)가 되었고, 문제가 제위(帝位)에 오름에 미쳐서는 황태후(皇太后)가 되었으므로, 여기서는 태조의 장화왕후를 비유한 말이다.[주-D005] 퉁소와……즐겁게 하네 : 나주(羅州)가 바로 혜종(惠宗)의 외가 고향이라, 그가 즉위한 후에는 그곳을 특별히 돌보고 보호해 주었으므로, 고을 사람들이 흥룡사(興龍寺) 안에 혜종사(惠宗祠)를 세워 혜종을 제사지내고 있음을 뜻한다. 추대왕(皺大王)은 얼굴이 주름진 임금이란 뜻으로, 곧 혜종을 가리킨다.[주-D006] 무이루를……삼았구려 : 고려 현종(顯宗)이 거란(契丹)의 침략을 피해 나주(羅州)로 파천하여 10여 일을 머물다가, 거란군이 퇴각하자 다시 환도(還都)했던 고사를 가지고 당 명황(唐明皇)이 안녹산(安祿山)의 난을 피해 서촉(西蜀)으로 몽진한 것에 비유한 말인데, 금강(錦江)은 서촉과 나주에 다 있고,
무이루(撫夷樓)는 나주에 있는 누각이며, 산화루(散花樓)는 서촉에 있는 누각이다.
이백(李白)의 상황서순남경가(上皇西巡南京歌)에 “비단 빨던 맑은 강이 만리를 흐르는데 구름 돛단 큰 배가 양주로 내려가네 북쪽 서울엔 비록 상림원을 자랑하지만 남경에는 도리어 산화루가 있다오[濯錦淸江萬里流 雲帆龍舸下揚州 北地雖誇上林苑 南京還有散花樓]” 하였다. 《李太白集 卷七》
[주-D007] 어찌 잠자코……것만 하리오 : 종지(宗之)는 정도전(鄭道傳)의 자이고, 기설(夔契)은 순(舜) 임금을 섬긴 두 명신(名臣)의 이름이다. 고려 신우(辛禑) 초기에 정도전으로 하여금 북원(北元)의 사신을 맞이하라고 하자, 정도전이 말하기를 “내가 의당 북원 사신의 머리를 베어 오거나, 아니면 그를 결박하여 명(明) 나라로 보내겠소.”라고 하여, 마침내 회진(會津)으로 귀양을 가게 되었는데, 그가 회진에 가던 도중 나주의 동문루(東門樓)에 올라 아름다운 산천과 번성한 인물들을 바라보고 나서 그곳의 부로들을 유시하는 글[諭父老書]을 지었던 데서 온 말이다.[주-D008] 완화 : 두보(杜甫)가 일찍이 성도(成都)의 완화리(浣花里)에 살았는데, 그 근처에는 금강(錦江)과 완화계(浣花溪)ㆍ완화교(浣花橋) 등의 경치 좋은 곳들이 있었다.[주-D009] 서문표 : 전국 시대 위(魏) 나라 사람인데, 그가 일찍이 업령(鄴令)으로 나갔을 적에 그곳 풍속이 하백(河伯)에게 부녀자를 시집보내야만 해를 입지 않는다 하여, 늙은 여자 무당의 지휘 아래 자주 부녀자를 하수(河水)에 바쳤으므로, 서문표는 그 사실을 들은 즉시 그 늙은 무당들을 하수에 빠뜨려 죽여서 영원히 그런 폐해가 없게 하였다.[주-D010] 장사의 졸렬한 춤 : 지역이 좁음을 뜻함. 한 경제(漢景帝)의 아들인 장사왕 발(長沙王發)은 신분이 미천한 당희(唐姬)의 소생이라 하여 애당초 비습(卑濕)하고 가난한 나라인 장사에 봉해졌는데, 일찍이 제왕(諸王)들이 천자에게 내조(來朝)하여 헌수(獻壽)하고 가무(歌舞)할 적에 유독 장사왕은 옷자락을 벌리고 약간 손을 들기만 하므로, 좌우에서 모두 그의 춤이 졸렬함을 비웃자, 상(上)이 괴이하게 여겨 그렇게 춤추는 까닭을 물으니, 장사왕이 대답하기를 “신(臣)은 나라가 작고 땅이 좁아서 회선(回旋)할 수가 없습니다.”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漢書 卷五十三》[주-D011] 느릅나무 : 임금의 고향을 뜻함. 한 고조(漢高祖)가 고향인 풍(豐)에 느릅나무 두 그루를 심어 토지신(土地神)으로 삼은 데서 유래되었다.
ⓒ 한국고전번역원 | 임정기 (역) |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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灌圃先生詩集 / [詩] / 送鐵城謫客羅翰林還拜本職 名世鑽
어득강(魚得江, 1470~1550)이다. 본관은 함종(咸從), 자는 자순(子舜), 호는 자유(子游)ㆍ관포당(灌圃堂)ㆍ혼돈산인(渾沌山人)이다. |
老夫曾佐湖南幕。踏盡溪山五十州。㝡愛錦城風物好。顯宗曾御撫夷樓。
靑年學士擧於鄕。載筆三長侍玉皇。蹔謫人間留數歲。鐵城風土入奚囊。
藥言苦口中時病。權貴褊心盡惡之。有底身無言事責。極陳深戒駭人爲。
金鷄詔與除書下。遐裔諸公盡賜環。湖海老臣心魏闕。不看君輩復淸班。
屈指名邦舊遊侶。如今落落曉天星。禧之父子爲州秀。晩得吾君眼更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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石川先生詩集卷之六 / 七言四韻 / 次撫夷樓韻
林億齡 | 1496 | 1568 | 善山 | 大樹, 大壽 | 石川, 荷衣 |
淸曉悠悠獨上樓。狂詩到處傲王侯。虛名誤我客多病。積潦呑郊農不秋。苦待靑天白日出。如何荒野濕雲浮。非無湖海陳登興。人事悤悤那得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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寓庵先生遺集卷之四 / 律詩○七言 / 次羅州撫夷樓韻
金澍2 | 1512 | 1563 | 安東 | 應霖 | 寓庵, 萬窩 | 文端, 文靖 | 花山君 |
黃昏獨坐庾公樓。羽扇論兵愧武侯。小醜陸梁方猾夏。腐儒疏懶敢防秋。調軍到處冤聲動。凱舞何時喜氣浮。卽見王師來破賊。病骸收拾合歸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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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담집 제4권 / 칠언율시(七言律詩) / 나주 무이루 시에 차운하다〔羅州撫夷樓韻〕
具鳳齡 | 1526 | 1586 | 綾城 | 景瑞 | 栢潭, 圭峯 | 文端 |
애오라지 나그네의 눈으로 높은 누에 오르니 / 聊將客眼上危樓
여덟 경치 읊은 심은후를 부끄럽게 하네 / 八詠還慙沈隱侯
남쪽 바다 새벽 구름에 밝은 해가 오르고 / 南海曉雲騰霽日
북쪽 산 안개 낀 나무엔 서리 내린 가을을 그렸네 / 北山煙樹畫霜秋
대나무 섬돌의 차고 푸른빛 옷에 젖어 들고 / 竹階冷翠侵衣潤
국화 언덕의 맑은 향기 술잔에 떠있네 / 菊塢淸香拍酒浮
시골 흥취 끝이 없어 원대한 뜻을 재촉하는데 / 野興無端催遠意
어느 때 세상일 그만두는 게 마땅할까 / 幾時塵事便宜休
[주-D001] 심은후(沈隱侯) : 남조(南朝) 시대 양(梁)나라 심약(沈約, 441~513)을 말한다. 시문에 능하였다고 한다. 건창후(建昌侯)에 봉해졌고 시호가 은(隱)이었으므로 심은후라 불렀다.
ⓒ 한국국학진흥원 | 장재호 (역)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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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봉집 제1권 / [시(詩)]
奇大升 | 1527 | 1572 | 幸州 | 明彥 | 高峯, 存齋 | 文憲 | 德原君 |
계해년(1563, 명종18)에 원기가 다시 시 자 운을 써서 보내 주므로 용문과 함께 화답하고 드디어 왕복하였다. 오후에 해미 현감 양숙전이 마침 오자 통판이 그를 위해
무이루에 올라 잔치를 베풀고 과녁을 쏘았는데 나도 참석하였다. 원기는 술에 취해 나오지 못하고 아름다운 시만 여러 차례 보냈다. 용문과 나는 화답할 겨를이 없고 술에도 피곤해서 연이어 차운하지 못한 것이 4, 5편 되었다. 취중에 글씨가 마구 쓰여 마침내 희담이 되고 자못 모양을 못 이룬 것도 있지만 그런대로 한번 웃자는 것이다.〔癸亥 圓機再用詩字韻寄示 同龍門和呈 遂與往復 午後
海美倅梁叔躔適來
通判爲上撫夷
設筵射帿 余亦參 圓機被酲未出 獨佳什屢至 龍門曁余酬答不暇 復困杯勺 未能繼次者 蓋四五篇焉 醉墨淋漓 終相爲戲 頗有做不成者 聊以博笑云〕
梁應台 | 1517 | 1571 | 濟州 | 叔躔 |
회포를 풀기는 오히려 술인데 / 開懷猶綠酒
흥을 일으켜 다시 시를 짓누나 / 發興更新詩
우연히 세 사람 모여 이야기 나누니 / 偶作三人話
이 일이 도리어 기이하여라 / 還令此事奇
서로 만남 계속하기 어려우니 / 相逢難袞袞
돌아가는 길이 더딜 수밖에 / 歸路且遲遲
여윈 말 타고 읊조리며 멀리 가니 / 瘦馬吟鞭遠
서산에 해 지는 때로다 / 西峯落日時
또〔又〕
강가의 매화에 봄빛이 왔으니 / 江梅春已着
그윽한 꽃송이 시를 재촉하는 듯 / 幽萼似催詩
여러 편을 그대는 빨리 짓는데 / 累紙公何捷
외로이 시 읊으매 나는 기이한 것 없네 / 孤吟我未奇
정 머금은 글 쉽게 못 이루고 / 含情詞就久
병 많아 술도 더디 깨네 / 多病酒醒遲
긴 해에 맑은 이야기로 머무니 / 永日留淸語
조용한 방에서 마주 앉은 때로다 / 虛堂對榻時
또〔又〕
나도 일찍 돌아가려 했지만 / 歸策吾當早
머문 것은 시 화답 위함이네 / 停驂爲和詩
사흘이나 흥겹게 놀았으며 / 歡娛三日勝
일생에 기이한 풍치로다 / 風韻一生奇
버들은 연기에 늘어져 매끄럽고 / 柳嚲烟光潤
매화는 햇빛을 머금어 더디네 / 梅含日色遲
서로 만나 좋은 경관 수작하니 / 相從酬美景
맑은 꿈 다른 때에도 기억하리라 / 淸夢記他時
또〔又〕
고집스럽고 옹졸함 쓸모없는데 / 伉拙知無用
붓을 잡고 늦게나마 시를 배웠네 / 含毫晩學詩
좋은 시 만들려고 생각 깊이 하고 / 思深篇致意
글자도 기이코자 괴롭게 읊는다 / 吟苦字求奇
영웅이 이제 수가 있는데 / 英雄今有數
호해의 모임이 어찌 더딘고 / 湖海會何遲
자리를 재촉하며 자주 흥 더하니 / 催席頻添興
서로 보며 한바탕 웃는 때라오 / 相看一笑時
또〔又〕
봄날은 높은 누각에 밝은데 / 春日明高閣
한가로운 시름 참으로 시흥 때문이네 / 閑愁正惱詩
바쁜 속에 처음으로 흥을 보내니 / 忙中初遣興
어려운 곳이라 어찌 기이할 수 있는가 / 難處豈能奇
우뚝하게 앉아 깊이 마음을 쓰고 / 兀坐游心遠
나지막이 읊조리며 더디게 글자를 놓네 / 微吟下字遲
재주가 없어 나는 졸음 오려 하니 / 才疎吾欲睡
많은 시간 머리터럭 흩뜨렸네 / 散髮更多時
또〔又〕
맑은 새벽에 병든 눈이 활짝 열리니 / 淸晨開病眼
맑은 바람 이는 듯한 몇 수 시로세 / 幾首穆如詩
경색은 원래 흥을 돋우는 것이고 / 景色元挑興
정회는 어찌 기이함을 자랑할까 / 情懷豈詑奇
어린 종은 어서 가자 자주 아뢰고 / 小奚愁報數
외론 손님은 더딘 걸음 괴이하게 여긴다 / 孤客怪行遲
후일의 모임은 어느 곳이 될까 / 後會知何處
봄 강물 푸르게 불어날 때이리라 / 春江綠漲時
또〔又〕
미묘한 역경을 엿보기 어려워서 / 微妙難窺易
화평한 시를 설명하기 좋아하네 / 和平愛說詩
마음 맞으니 참으로 맛이 있고 / 會心眞有味
눈에 들어오면 다시 기이하여라 / 寓目更成奇
글은 어찌 삼동만으로 족하겠는가 / 文豈三冬足
성공은 십 년 동안 기다려야 하리 / 功須十載遲
고향의 초가집 조용하니 / 故園茅屋靜
얼마나 많은 세월 책을 펼쳤던가 / 披卷幾多時
또〔又〕
수작함에 내 뜻을 아는 이가 많으니 / 相酬多會意
내가 어찌 시를 피하겠는가 / 吾豈敢逃詩
옛 격률 정하고 또 묘하거니와 / 舊格精仍妙
새소리도 바르고 또 기이하네 / 新聲正又奇
채찍을 휘두르니 해 저물어 시름하고 / 揮鞭愁日晩
술을 대하니 봄이 오래기를 원하네 / 對酒願春遲
남쪽 북쪽에 갈려 있다 혐의일랑 마소 / 南北休嫌阻
부평초도 만날 때가 있다오 / 萍蓬亦有時
또〔又〕
좋은 손님 찾아왔다 하니 / 似聞佳客至
우리들도 시 짓는 일 쉬자꾸나 / 吾輩合休詩
활이 굳세지만 재간은 도리어 빠르고 / 弓勁才還捷
술잔 깊으니 흥도 자못 기이하구나 / 盃深興太奇
빈 누각에 봄빛이 아름답고 / 虛閣靑春好
외로운 성에 해는 느리네 / 孤城白日遲
좋은 놀이는 으레 퍼지기 마련이라 / 勝遊從爛熳
북소리도 요란하게 울리누나 / 雷鼓亂鳴時
또〔又〕
닭 잡느라 번거롭게 칼을 놀리지만 / 鷄割煩游刃
높은 회포 시 읊음 폐하지 않았네 / 高懷不廢詩
글씨는 백영의 건장함을 임서하고 / 書臨伯英健
글자는 자운의 기이한 글자를 묻네 / 字問子雲奇
벽이 굳건하니 적수 없음 알고도 남는데 / 堅壁知無敵
항복서 올리니 스스로 더딘 것이 부끄럽네 / 投降愧自遲
겹겹의 포위 술을 만나 풀리니 / 重圍須酒解
누대 위에서 술잔을 잡았노라 / 樓上把盃時
또〔又〕
봄 누대에 기대어 있으니 / 徙倚春樓上
강산이 시흥을 도와주는구나 / 江山爲助詩
담담한 연기는 도리어 빛을 띠었고 / 淡烟還帶色
먼 나무는 다시 기이함 더하네 / 遠樹更添奇
북소리 자주 들려오는데 / 鳴鼓頻頻報
새 시편 짐짓 더디어지는구나 / 新篇故故遲
이완과 긴장 예로부터 전해 오니 / 弛張傳自古
좋은 일 때를 같이하여 다행이로다 / 勝事幸同時
또〔又〕
술을 얻어 새 흥이 나지만 / 得酒生新興
거친 성품이라 이미 시를 꺼리네 / 踈狂已諱詩
누대의 구름은 빗방울이 엉기고 / 樓雲霏漸合
연못의 달은 그림자 기이하여라 / 池月影初奇
옥 술잔에 회포 시원하게 열리고 / 玉斝開懷遠
거문고엔 손가락 서서히 놀린다 / 瑤琴下指遲
맑은 놀이 원래 스스로 좋은데 / 淸遊元自勝
더구나 봄철의 행락임에랴 / 行樂況春時
또〔又〕
난간에 기대어 한가히 시 읊으니 / 憑欄閒覓句
참으로 간재의 시를 생각하네 / 正憶簡齋詩
푸른 대나무에 모두 시를 쓸 것이고 / 靑竹題應遍
찬 매화 대하면 또한 기이하구나 / 寒梅對又奇
맑은 이야기 회포를 실컷 풀었고 / 淸談開抱盡
취한 후 술잔을 더디게 잡기도 하네 / 泥醉把盃遲
거꾸러지며 반가워함 의심하지 마오 / 顚倒休相訝
만나는 장소 이도 한때로다 / 逢場此一時
또〔又〕
하늘땅에 큰 뜻 부질없이 품었으니 / 乾坤空抱志
한 기예 시 읊음을 웃노라 / 一技笑吟詩
그런데도 굳건히 붓을 휘두르니 / 猶復揮毫健
모름지기 기이하게 운을 맞춰야지 / 須應押韻奇
급급한 압박을 강하게 받으니 / 剛被侵陵急
더딘 수색을 어이 견디리 / 那堪搜索遲
서로 만나면 참으로 번뇌스러우니 / 相逢眞自惱
깊은 밤 괴로이 생각하는 때로다 / 深夜苦思時
또〔又〕
누대 위에서 맑은 잔치 열었으니 / 樓上開淸宴
아문에서 좋은 시 이어 쓴다 / 衙中繼好詩
하늘의 별빛 구름 속에 나타나고 / 天星雲裡見
산속의 불빛은 깊은 밤에 기이하구나 / 山火夜深奇
촛불 가까이 자주 옮겨 앉고 / 蠟燭移頻近
술잔을 잡아 멈추지 않았네 / 花盃把不遲
즐거움이 한창 다하지 않았는데 / 歡娛方未畢
닭 울음소리 요란하게 들려오네 / 喔喔聽鷄時
또〔又〕
처음으로 활쏘기 끝내고 / 初罷鳴弓射
다시 붓을 대어 시를 쓰네 / 還爲落筆詩
소반을 치니 노래 절로 호방하고 / 擊盤歌自放
기생을 끼니 좌석도 기이하여라 / 擁妓坐成奇
고개가 내둘리는 시 읊음 어찌하리 / 最奈吟頭掉
느릿느릿 춤가락도 시름겨이 보네 / 愁看舞袖遲
이 풍류 참으로 다행스러우니 / 風流眞自幸
아름다운 흥이 당장에 솟아나네 / 佳興聳當時
또〔又〕
고상한 담론은 나의 술에서 나오지만 / 高談縱我酒
맑은 흥은 그대의 시가 빌미로다 / 淸興祟君詩
남 따라 크게 취하기도 하고 / 大醉從他得
내 맘대로 미친 듯 읊기도 하네 / 狂吟任自奇
엷은 연기 숲에 서려 어울리고 / 微烟侵樹合
새 달도 느릿느릿 산으로 내려가네 / 新月下山遲
노래하고 춤추는 자태를 구경하니 / 歌舞看餘態
난만하게 회포를 푸는 때로다 / 開懷爛熳時
또〔又〕
열백 번 겨뤄도 그대에게 지고 마니 / 百籌輸子去
높은 흥이 시를 멈춰 다행이로세 / 高興幸休詩
술잔을 잡으면 생각이 솟아나고 / 把酒思還逸
등잔 옮기니 일이 또한 기이하여라 / 移燈事亦奇
날카로운 바람은 장막 밖에서 불어오고 / 尖風隔幔動
외로운 달 숲 옆에 떠오른다 / 孤月傍林遲
뒷날 밤에도 서로 만날 수 있지만 / 後夜知相對
회포를 풀기로는 이때만 못하리라 / 開懷欠此時
또〔又〕
송천은 나와 뜻이 같은 벗님인데 / 松川吾執友
존백도 시를 능히 하지 / 尊伯更能詩
우연히 아름다운 의표 접하였고 / 偶接嘉儀靜
돌이켜 소자의 기이함을 보았네 / 還窺小子奇
밤 자리에 술잔을 조용히 나누었으니 / 夜席傳盃細
높은 누대에 파연도 더디었네 / 高樓罷宴遲
두 고을은 냇물 길이 먼데 / 兩鄕川路遠
어느 때나 또 우연히 만나 볼까 / 邂逅又何時
또〔又〕
밤에 돌아와서 방에 누워 / 夜室且歸臥
한가로이 동해시를 펼쳐 보았네 / 閑繙東海詩
조각 말도 그 입에서 나왔으니 / 片言猶出口
이십 수에 점점 기이함을 알겠도다 / 卄首轉探奇
화답하고 싶지만 나는 재주가 없고 / 欲和吾嫌拙
기다리자면 그대는 늦다고 하리 / 相須子苦遲
등불을 돋우며 공연히 붓만 깨무니 / 挑燈空吮墨
우뚝하게 앉아 잠을 이루지 못하였네 / 兀坐不眠時
또〔又〕
깊은 술잔은 봄의 일을 따르고 / 深酌從春事
정을 융화하긴 옛 시가 있네 / 融情有古詩
엉성하면서도 호탕한 성격 많고 / 迂踈多跌宕
진부한 것이 신기하게 변화했네 / 臭腐化神奇
피곤한 졸음에 일어나기 어려우니 / 困睡知難起
새벽빛 느림을 깨닫지 못하여라 / 晨光不覺遲
청아한 아낙 내 뜻 시험하지 마오 / 淸娥休試意
술에 만취하여 병풍에 기대었노라 / 醉爛倚屛時
또〔又〕
등잔 심지 자주자주 돋우며 / 燈燼頻頻剪
시름에 잠겨 각각 시를 읊었노라 / 愁顔各詠詩
그대를 만남 참으로 다행이고 / 逢君眞是幸
붓을 뽑아 드니 또한 기이하여라 / 拈筆亦爲奇
원적은 어찌 능히 숨겠으며 / 元積能何隱
용문은 공교롭게 스스로 느리누나 / 龍門巧自遲
외로운 자취 절망을 알겠노니 / 孤蹤知絶望
빈 여관에 누워 쉬었노라 / 空館臥休時
또〔又〕
용문은 정신 맑아 잠자지 않고 / 龍門淸不寐
촛불 돋우며 다시 시를 쓰네 / 剪燭更題詩
생각이 씩씩하니 편편마다 빼어나고 / 思壯篇篇逸
정이 새로워 구구마다 기이하네 / 情新句句奇
새벽이라 별은 드물게 보이고 / 寥落天星曉
물시계 소리 톰방톰방 울리네 / 丁東玉漏遲
미친 듯한 흥 스스로 부끄러워 / 自慙狂興爛
아침까지 드릉드릉 코 골며 잤네 / 鼾睡達朝時
또〔又〕
어저께 누대에서 술을 마셨는데 / 昨日樓中飮
시도 한 수 기억할 만하네 / 端須記一詩
활은 당기면 반드시 맞히고 / 彎弓發必中
젓대 부니 더욱 기이하게 들리누나 / 橫笛聽尤奇
함께 취해 기세등등하고 / 共作騰騰醉
서로 이끌며 느릿느릿 걷기도 했네 / 相携步步遲
원적 노인에게 침범했지만 / 侵陵元積老
서쪽 방에서 홀로 술을 깨었노라 / 西室獨醒時
[주-D001] 닭……놀리지만 : 예악(禮樂)으로 고을을 다스림을 말한다. 자유(子游)가 무성(武城)의 읍재(邑宰)가 되어 예악을 가르쳐 고을 사람들이 모두 현악(弦樂)에 맞추어 노래를 불렀는데, 공자가 무성에 가서 그 소리를 듣고는 빙그레 웃으며 “닭을 잡는 데에 어찌 소 잡는 칼을 쓰느냐.〔割鷄焉用牛刀〕” 하였다. 《論語 陽貨》 칼을 놀린다는 것은 《장자》〈양생주(養生主)〉에 보이는 ‘포정해우(庖丁解牛)’의 고사를 들어 말한 것이다.[주-D002] 백영(伯英) : 후한 장지(張芝)의 자이다. 초서(草書)를 잘 써서 사람들이 초성(草聖)으로 일컬었다.[주-D003] 자운(子雲) : 한나라 때 부(賦)의 대가인 양웅(揚雄)의 자이다. 양웅이 고자(古字)를 많이 알고 있었으므로 유분(劉棻)이 일찍이 그에게 찾아가 기이한 글자를 배웠다 한다. 《漢書 卷87 揚雄傳》[주-D004] 벽이……부끄럽네 : 싸울 때 힘이 모자라면 성벽을 굳게 지키고 싸우지 않는 것이 최상인데, 시재를 겨룬 것이 잘못이라고 뉘우친다는 뜻이다.[주-D005] 이완과 긴장 : 《예기》〈잡기(雜記)〉에 “활을 조이기만 하고 늦추지 않듯이 백성을 오랫동안 부리기만 하고 풀어 주지 않는다면 문왕ㆍ무왕일지라도 다스리지 못하고, 활을 풀어 놓기만 하고 조이지 않듯이 백성을 안일에 빠지게 한다면 문왕ㆍ무왕도 하지 않을 것이니, 한 번 조이고 한 번 늦추는 것이 문왕ㆍ무왕의 도이다.〔張而不弛 文武弗能也 弛而不張 文武弗爲也 一張一弛 文武之道也〕” 하였다.[주-D006] 봄철의 행락 : 이백(李白)의 〈월하독작(月下獨酌)〉에 “잠시 달과 그림자를 짝하니, 모름지기 봄날에 즐기어야지.〔暫伴月將影 行樂須及春〕” 하였다.[주-D007] 간재(簡齋) : 진여의(陳與義)의 호이다. 정강(靖康)의 난 이후에 북송(北宋)의 시인이 모두 없어지고 오직 간재만이 남았는데, 그 시재가 탁월하고 변화에 능했다 한다.[주-D008] 송천(松川) : 양응정(梁應鼎 : 1519~1581)의 호이다.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공섭(公燮)이다. 저서에 《송천유집》, 《용성창수록(龍城唱酬錄)》이 있다.[주-D009] 존백(尊伯) : 상대방의 형님을 말한다.[주-D010] 용문(龍門) : 용문처사(龍門處士) 남격(南格)을 가리킨다. 동강(東岡) 언경(彦經)의 아들로서 조식(曺植)과 서경덕(徐敬德)의 문인이다.
ⓒ 한국고전번역원 | 성백효 (역) | 2007
高峯先生文集卷第一
奇大升 | 1527 | 1572 | 幸州 | 明彥 | 高峯, 存齋 | 文憲 | 德原君 |
癸亥。圓機再用詩字韻寄示。同龍門和呈。遂與往復。午後海美倅梁叔躔適來。通判爲上撫夷。設筵射帿。余亦參。圓機被酲未出。獨佳什屢至。龍門曁余酬答不暇。復困杯勺。未能繼。次者蓋四五篇焉。醉墨淋漓。終相爲戱。頗有做不成者。聊以博笑云。
開懷猶緣酒。發興更新詩。偶作三人話。還令此事奇。相逢難袞袞。歸路且遲遲。瘦馬吟鞭遠。西峯落日時。
又
江梅春已着。幽萼似催詩。累紙公何捷。孤呤我未奇。含情詞就久。多病酒醒遲。永日留淸語。虛堂對榻時。
又
歸策吾當早。停驂爲和詩。歡娛三日勝。風韻一生奇。柳嚲煙光潤。梅含日色遲。相從酬美景。淸夢記他時。
又
伉拙知無用。含毫晩學詩。思深篇致意。吟苦字求奇。英雄今有數。湖海會何遲。催席頻添興。相看一笑時。
又
春日明高閣。閑愁正惱詩。忙中初遣興。難處豈能奇。兀坐游心遠。微吟下字遲。才疏吾欲睡。散髮更多時。
又
淸晨開病眼。幾首穆如詩。景色元挑興。情懷豈詑奇。小奚愁報數。孤客怪行遲。後會知何處。春江綠漲時。
又
微妙難窺易。和平愛說詩。會心眞有味。寓目更成奇。文豈三冬足。功須十載遲。故園第屋靜。披卷▣多時。
又
相酬多會意。吾豈敢逃詩。舊格精仍妙。新聲正又奇。揮鞭愁日晩。對酒願春遲。南北休嫌阻。萍蓬亦有時。
又
似聞佳客至。吾輩合休詩。弓勁才還捷。盃深興太奇。虛閣靑春好。孤城白日遲。勝遊從爛熳。雷皷亂鳴時。
又
雞割煩游刃。高懷不廢詩。書臨伯英健。字問子雲奇。堅壁知無敵。投降愧自遲重。圍須酒鮮。樓上把盃時。
又
徙倚春樓上。江山爲助詩。淡煙還帶色。遠樹更添奇。鳴皷頻頻報。新篇故故遲。弛張傳自古。勝事幸同時。
又
得酒生新興。疏狂已諱詩。樓雲霏漸合。池月影初奇。玉斝開懷遠。瑤琴下指遲。淸遊元自勝。行樂況春時。
又
憑欄閒覓句。正憶簡齋詩。靑竹題應遍。寒梅對又奇。淸談開抱盡泥醉把盃遲。顚倒休相訝。逢場此一時。
又
乾坤空抱志。一技笑吟詩。猶復揮毫健。須應押韻奇。剛被侵陵急。那堪搜索遲。相逢眞自惱。深夜若思時。
又
樓上開淸宴。衙中繼好詩。天星雲裡見。山火夜深奇。蠟燭移頻近。花盃把不遲。歡娛方未畢。喔喔聽雞時。
又
初罷鳴弓射。還爲落筆詩。擊盤歌自放。擁妓坐成奇。最柰吟頭掉。愁看舞袖遲。風流眞自幸。佳興聳當時。
又
高談縱我酒。淸興祟君詩。大醉從他得。狂吟任自奇。微煙侵樹合。新月下山遲。歌舞看餘態。開懷爛熳時。
又
百籌輸子去。高興幸休詩。把酒思還逸。移燈事亦奇。尖風隔慢動。孤月傍林遲。後夜知相對。開懷欠此時。
又
松川吾執友。尊伯更能詩。偶接嘉儀靜。還窺小子奇。夜席傳盃細。高樓罷宴遲。兩鄕川路遠。邂逅又何時。
又
夜室且歸臥。閑繙東海詩。片言猶出口。廿首轉探奇。欲和吾嫌拙。相須子若遲。挑燈空吮墨。兀坐不眠時。
又
深酌從春事。融情有古詩。迂疏多跌宕。臭腐化神奇。困睡知難起。晨光不覺遲。淸娥休試意。醉爛倚屛時。
又
燈燼頻頻剪。愁顔各詠詩。逢君眞是幸。拈筆亦爲奇。元積能何隱。龍門巧自遲。孤蹤知絶望。空館臥休時。
又
龍門淸不寐。剪燭更題詩。思壯篇篇逸。情新句句奇。寥落天星曉。丁東玉漏遲。自慙狂興爛。鼾睡達朝時。
又
昨日樓中飮。端須記一詩。彎弓發必中。橫笛聽尤奇。共作騰騰醉。相携步步遲。侵陵亢積老。西室獨醒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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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봉집 제1권 / [시(詩)] / 무이루에서 장난삼아 요체를 본받아 원기에게 보내다〔撫夷樓戲效拗體 呈圓機〕
여름 햇볕 누에 비춰 찌는 듯 더운데 / 盾日侵樓勢欲蒸
침상에 오른 호방한 기상 진등을 생각노라 / 上床豪氣憶陳登
푸른 외 시원한 맛에 자주 더위 식히고 / 靑苽氷片頻消熱
옥 자루 먼지떨이로 이야기하며 파리를 물리치네 / 玉麈談鋒轉却蠅
노래하는 부채 춤추는 적삼 모두 자태 있고 / 歌扇舞衫渾有態
술의 군사 시의 진터 각기 재주 보이네 / 酒兵詩陣各呈能
그대와 같은 취미 누가 분별하겠나 / 同君臭味誰分別
치수는 전부터 오히려 민수와 합한다네 / 淄水從前尙合澠
[주-D001] 요체(拗體) : 율시나 절구로서 평측(平側)을 따지지 않고 짓는 시체를 말한다.[주-D002] 침상에……진등(陳登) : 국사(國士)로 이름이 높던 허사(許汜)와 유비(劉備)가 형주 목사(荊州牧使) 유표(劉表)와 함께한 자리에서 천하의 인물을 논하면서 “진원룡(陳元龍)은 호해(湖海)의 선비라 그 호기가 없어지지 않았다.”며 불평하였다. 이에 유표가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묻자, 허사가 “지난날 난리를 만나 하비(下邳)를 지나다가 그를 방문하였는데 손님을 맞는 예(禮)도 갖추지 않고 오랫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자신은 큰 침상 위에 올라가 눕고 손님은 침상 아래에 눕게 하였다.”라고 대답하였다. 이에 유비가 “나 같으면 백 척의 누각 위에 자고 그대를 땅에 재울 것이니, 어찌 침상의 위와 아래의 차이뿐이겠는가.” 하였다. 원룡은 삼국 시대 위(魏)나라 진등의 자이다. 《三國志 卷7 魏書 陳登傳》[주-D003] 옥 자루 먼지떨이 : 진대(晉代)의 청담가(淸談家)들이 들고 다녔던 먼지떨이의 일종이다. 후대에는 청담을 의미한다.[주-D004] 치수(淄水)는……합한다네 : 서로 취미가 같음을 비유한다. 치(淄)와 민(澠)은 각각 강물의 이름이다. 《열자(列子)》〈설부(說符)〉에 “백공(白公)이 묻기를 ‘물에다 물을 타면 어떻겠습니까?’ 하니, 공자가 이르기를 ‘치수와 민수를 합해 놓으면 역아(易牙)가 맛보고서 구별한다.’ 하였다.” 하였다.
ⓒ 한국고전번역원 | 성백효 (역) |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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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수는 전부터 오히려 민수와 합한다네 / 淄水從前尙合澠->치수는 전부터 오히려 승수와 합한다네 / 淄水從前尙合澠승
*蒸 登 蠅 能 澠은 평성 증운의 압운임. 민지는 못이름이고 승수는 물이름 치수에 합류하는 물이 승수임
澠
拼 音 miǎn shéng
部 首 氵 笔 画 15 五 笔 IMGV
生词本
基本释义
[ miǎn ]
見“澠池”。
[ shéng ]
1.古水名。源出今山東省·淄博市東北,西北流至博興縣東南入時水。此下時水亦通稱澠水。久湮。
2.古水名。在今四川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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八谷先生集卷之一 / 七言律詩 / 次羅州撫夷樓韻。呈牧伯郭赳。二首。
具思孟 | 1531 | 1604 | 綾城 | 景時 | 八谷 | 文懿 | 綾安府院君 |
文簿侵尋懶上樓。還將形勝付君侯。遠林帶雨全輸暝。高葉含風已辦秋。照座庭榴紅閃閃。撲簾山靄碧浮浮。平生誤逐名途意。客裏方知一半休。
錦城佳氣擁高樓。竹馬懽迎郭細侯。歌播閭閻方有袴。澤流田畝豈無秋。頑雲覆野陰猶積。漲水圍山勢欲浮。苦雨從來多害稼。憂民一念未應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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霽峯集卷之三 / 詩 / 次撫夷樓韻。兼述鄙懷。
高敬命 | 1533 | 1592 | 長興 | 而順 | 霽峯, 苔軒 | 忠烈 |
落日蒼茫獨倚樓。靑門誰識故秦侯。窮愁已覺虞卿老。遠別還驚楚客秋。漢闕星辰勞北望。錦江煙浪渺南浮。鵷行舊侶如相問。白首丹心死不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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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음유고 제1권 / 금성의 방회 錦城榜會
尹斗壽 | 1533 | 1601 | 海平 | 子仰 | 梧陰 | 文靖 | 海原府院君 |
반가운 눈빛으로 함께 무이루에 올라 보니 / 共擡靑眼撫夷樓
젊은 시절 을묘년 가을이 배나 생각나네 / 倍憶紅顔乙卯秋
일대의 풍류는 길이 꿈속으로 드는데 / 一代風流長入夢
당년의 이백 인 반은 무덤에 들었네 / 當年二百半成丘
금산은 비 온 뒤에 청색이 홀로 쓰기에 적합하고 / 錦山雨後靑宜笏
영수는 가을 전에 녹색이 배를 띄울 만하네 / 靈水秋前綠可舟
이 자리 진중히 여기고 저버리지 마세나 / 珍重此筵須勿負
내일 밤은 적벽의 달빛 아래에서 노닐 것이네 / 明宵赤壁月中遊
ⓒ 한국고전번역원 | 권경열 (역) |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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草澗先生文集卷之二 / 詩○七言律詩 / 羅州撫夷樓。次鄭使相八溪君韻。
權文海 | 1534 | 1591 | 醴泉 | 灝元 | 草澗 |
鳴弓獨上海邊樓。豪氣還輕萬戶侯。翠幄蔭來梧散暑。黃雲割盡麥登秋。錦江水膩煙中闊。無等山平眼底浮。行役一年頭欲白。此生何日賦三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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重峯先生文集卷之一 / 詩 / 敬次羅州撫夷樓韻 幷序
趙憲 | 1544 | 1592 | 白川 | 汝式 | 重峯, 後栗, 陶原 | 文烈 |
五代祖有諱環。以門蔭受知于世宗朝。爲京畿都事。歷宰善山,江華。宣德五年庚戌。以通政。繼李勖爲州牧使。十二月旣望下車。越六年乙卯季冬晦秩滿。以上護軍致仕。歸老于通津田廬。嗚呼。自乙卯至萬曆辛巳。凡百四十七年。而孱孫以承乏佐幕。俛仰治所。撫循餘民。欲訪故事。無從問聞。只於州吏所記先生案中。歷考始末。不勝感愴。敢次板上韻。以敍遠慕之意。
雄藩南服撫夷樓。詩屬昇平但射帿。鼻祖治聲知幾歲。孱孫浪迹幸今秋。遺民自爾誠心愛。祛瘼緣何喜色浮。努力願將王澤究。邊城永保萬年休。
其二
緬憶吾家五代親。六年於此牧羅人。通津只有三間屋。宣德從知一境春。憑想先朝圖久任。因思時宰要端身。雲孫戇拙悲無似。弊瘼難聞民所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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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제(申梯) (1393~1443)
조선 세종(世宗) 때의 문신. 본관은 고령(高靈). 사간원 사간(司諫院司諫)을 지낸 신자교(申子橋)의 아버지로, 지평 현감(砥平縣監) 등을 지냄.
신자교(申子橋) (1413~1484)
조선 세종(世宗)~단종(端宗) 때의 문신. 본관은 고령(高靈). 영의정을 지낸 신숙주(申叔舟)와 사촌간으로, 사간원 사간(司諫院司諫) 등을 역임하다가 세조(世祖)가 왕위에 오르자 낙향함.
신숙주(申叔舟) (1417~1475)
조선 세종(世宗)~성종(成宗) 때의 문신ㆍ학자. 훈민정음(訓民正音) 창제에 큰 공을 세웠으며, 계유정난(癸酉靖難)에 참여한 공(功) 등으로 정난공신(靖難功臣)ㆍ좌익공신(佐翼功臣)ㆍ익대공신(翊戴功臣)ㆍ좌리공신(佐理功臣) 등에 책록됨.
정극인(丁克仁) (1401~1481)
조선 문종(文宗)~성종(成宗) 때의 문신ㆍ학자. 본관은 영광(靈光). 최초의 가사(歌辭) 작품인 〈상춘곡(賞春曲)〉을 지음. 단종(端宗)이 왕위를 빼앗기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후진을 가르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