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정경 / 김은숙
오늘도 4시 30분에 집을 나섭니다.
아직은 별들이 새벽을 기다리며 떨고 있는 어둠속으로.
생명의 신비를 온 누리에 뿌리면서 깨어나는 아침을 보려고.
한 달 전, 새벽 기도를 시작한 후로 거의 매일 반복되는 일입니다. 새벽 기도를 다닌다고 해도 훌륭한 행실과 튼튼한 믿음을 가졌다고 자랑할 것은 없습니다. 다만 어눌한 신앙의 언어로나마 그의 이름을 부르고 내 심정을 고백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계단 입구에 서서 잠겨 있는 어둠 속으로 얼굴을 내밉니다. 밤의 표정을 살펴보는 일이 버릇처럼 되었습니다. 싸늘한 공기의 반갑지 않은 애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어깨를 움츠립니다.
그러나 언제나 제 구실을 다 하는 가로등이 눈앞을 따뜻하게 비춰주고 있습니다. 그 빛에 힘을 얻어 차도 가까이 발걸음을 옮깁니다. 교회 버스가 쉽게 발견할 수 있도록.
어느 날은 서로의 시간을 맞추지 못해 이렇게 서 있다가 들어가기도 합니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인가 봅니다. 벌써 자동차의 불빛을 수없이 흘려보냈는데도 차가 오지 않습니다.
어느 부부의 이야기를 해야겠습니다. 매일 아침 그녀와 나는 이곳에서 마주칩니다. 언제나 내가 먼저이고 그녀가 차도를 건너 와 곁에 섭니다. (그 순간 우리는 서로의 존재에 큰 위안을 느낍니다.) 비가 억수같이 퍼 붓는 날도 그랬고 안개가 끼어 몇 미터 앞을 분간 할 수 없는 날도 그랬습니다. 혼자 조용히 걸어와서 말없이 서는 여인.
항상 그녀보다 내가 먼저 차를 타게 되어 그녀가 어느 교회에 나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손에 들고 있는 성경책을 보아 틀림없이 새벽 기도를 하러 교회에 나가는 사람인지는 알 수가 있습니다.
내가 이 여인에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그 남자 때문입니다. 틀림없이 남편이라고 짐작되는 남자가 건너편에 서 있습니다. 가볍게 근처를 달리기도 하고 맨손체조를 하면서 이쪽을 이따금 건너다봅니다. 처음에는 그저 새벽 운동을 하러 나온 사람이겠거니 했습니다. 그러나 지켜보니까 언제나 이 여인과 함께 걸어와서는 가볍게 대화를 나누다가 그 자리에 서곤 했습니다.
아 이런! 아직까지는 한 번도 나보다 앞 서 차를 타지 않던 여인이 떠나버렸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발길을 돌려 집으로 돌아가나 봅니다. 어차피 달콤한 새벽잠을 떨치고 일어났으니까 함께 기도하러 가면 좋을 텐데 꼭 저기까지만 데려다주고 가는 걸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내가 탈 차를 놓친 모양입니다. 그러나 이대로도 좋습니다. 차량 방지 턱에 걸터앉아 새벽이 깨어나는 것을 봅니다.
어둠을 쓸어내는 아저씨가 저기 보입니다. 손수레에 어둠의 찌꺼기를 모아 담고 있습니다. 밤이 마구 버린 쓰레기들을 저렇게 쓸어내 주어야만 비로소 새날이 오나봅니다. 잔잔히 가라앉아 있던 어둠이 푸석푸석 날리며 흩어집니다.
빗자루 소리를 신호로 신문배달을 하는 기특한 소년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갑니다.
내가 차를 타고 떠난 뒤의 이 거리는 어떤 모습일까를 생각한 적이 있는데 오늘은 제대로 거리의 모습과 기지개 켜는 새벽의 모습을 봅니다. 내일도 여전히 쓰레기는 모아져서 손수레에 담기고 여인의 남편은 집으로 돌아가며 신문 배달을 하는 소년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갈 것입니다.
아! 참 별 얘기를 잊을 뻔 했습니다. 유난히 영롱한 별 하나가 아까부터 나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유난히 푸르게 빛나는 그 별을 어릴 적에도 본 적이 있습니다. 그 별을 나는 새벽별이라 부른답니다. 아마 내가 그렇게 불러주기 전에도 그 별의 이름은 새벽별이었다지요.
어느새 가로등이 모두 꺼졌습니다. 하늘이 여릿하게 열립니다. 오늘 비록 교회에 가지 못했어도 나는 또 하나의 새벽을 깨웠습니다.
[김은숙] 시인. 수필가. 현대문학 등단.
전북문협, 전주시인협회, 전북수필 이사.
* 새천년학국문인상, 전북문학상, 전북시인상 등
* 수필집 《그 여자의 이미지》, 《길 위의 편지》외
* 시집 《세상의 모든 길》, 《귀띔》
‘새벽기도!’하니, 여고시절 여름방학을 이용해 새벽기도를 다녔던 기억이 새삼스럽게 떠오르네요. 피아노가 배우고 싶었는데 시간이 마땅치 않았었죠. 교회 반주자 언니가 새벽시간을 할애해 주었어요. 새벽기도 끝나고 반주자 언니 집으로 가서, 그 새벽에 한 시간을 피아노를 쳤던 기억. 벌써 40여 년 전 추억이 된 새벽의 정경을 돌이켜 봅니다. 여름이라 낮이 길어 하루가 빨리 열렸고, 쾌적했던 새벽시간과 마룻바닥의 시원한 감촉이 어제 일처럼 감각되네요. 세월 참 유숩니다.
탈 차를 놓쳐 비록 교회는 가지 못했지만 깨어나는 새벽을 만났으니, 영롱한 새벽별과 눈인사도 나눴으니 얼마나 감사해요. 아~~ 푸르스름하니 하루가 열리네요.
첫댓글 천천히 깨어나는 새벽을 함께 지켜 보는 듯 잘 읽었습니다.
꼭 시같은 수필입니다
스며드는 글이군요
어둠을 쓸어낸다
깨어나는 아침 속으로...
저는 수십년을 교회 가까이에 거주하며
새벽기도를 합니다
글도 새벽에 씁니다
날마다 꽃들에게 물도 주고요
아침이 좋은 시간입니다
작가님! 이해숙 선생님! 감사합니다^^^